2. 어미오리와 새끼오리
“신녀님을 황후로 책봉하셔야 합니다!”
“하늘님께서 보내신 폐하의 신부감입니다!”
“혼기가 늦으신 만큼, 빠른 실내에 혼인하셔야 하옵니다.”
신료들이 린의 존재를 높이 사고 있었다. 이미 20대 후반인 황제는 후궁조차 없었다. 아무도 입을 다물고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젠 그래서만은 안 되었다. 모두가 간청하고 있었다. 제량은 입을 다문 채 지켜보기만 했지만.
“짐도 알고 있소. 그녀가 가장 적합한 상대라는 것을.”
“그렇다면 폐하!”
“무려 하늘님께서 보내주신 분이요. 짐의 뜻만 내새워선 안되겠지. 그녀의 의지가 그러길 바랄 뿐이오.”
“폐하!!!”
떽떽 거리는 신하들을 보면서 결코 여유를 잃지 않는다. 그의 마음에 깊이 묻어준 존재… 그것은 상처였고 뼈아픈 고문이었다. 아무 여자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5년의 시간 동안에도 여인들은 뻣뻣한 나무 같았다. 제 진짜 속내를 아는 것은 바로 린이라는 신령뿐이었다. 다시는... 그녀도, 그 아이도 잃고 싶지 않았다. 천희국의 황제라는 놈은 사실 겁쟁이일 뿐이다.
“비현, 린은?”
“신녀님께선 정원에 계십니다. 심어둔 나무들에 폭 안겨있듯이 말입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건가….”
“지함무사는 그 분을 섬기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믿어왔던 것이 산산조각 났으니. 왠지 나도 그녀가 꺼려지는 구나.”
“세향님이 생각나십니까?”
그래. 말을 잇지 않고 여운만이 남았다. 비현 저에게도 속내를 잘 비추지 않으신다. 혼자 끌어안고 아픔을 감내하는 만큼 웃으신다. 16, 7살 무렵에 지독히 사랑하셨다. 지금처럼 싸늘한 기운을 뿜어내시지 않고 쾌활하고 호탕하고 행복해하셨다.
잃고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그나마 밝게 돌아오셨다. 그 안식처를 이제는 더 이상 찾지 않으신다.
“모든 걸 알고있는 린이 편하긴 하군.”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야.”
“폐하?”
“아니라고.”
또 성질 내셨다. 그러면서도 졸졸 따라붙는 비현이다.
* * * * * * * * * *
“너와 혼인을 하라는군.”
“(안되요.)”
“왜 그러지?‘
“(저는 폐하 곁에 오래 있을 수 없어요.)”
“하… 너까지 말이냐? 짐에게 남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야?!”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린은 강하게 부정했다. 그와 함께한 시간 동안에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자신이 떠나가면 마음 준 만큼 아파할 테니까... 그것이 염려 되었을 뿐이었다. 자신 또한 언제나 그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급하게 필을 놀리지만, 이미 멀어져 가버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 욕심만 채워서 미안해요…
“오늘은 만월이 뜨겠구나.”
“폐하, 준비할까요?”
“아니, 오늘은 되었다. 대신 린을 데려와라.”
“신녀님은 왜?”
“짐을 가장 잘 아는 ‘이’니까.”
짙은 군청색의 하늘. 무엇보다 환히 빛을 밝히는 보름달이 떴다. 백성들은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러 가장 값비싼 그릇에 담았다. 무릎을 꿇고는 하늘님께 기원을 한다. 이른 저녁부터 천희국은 고요했다.
“폐하, 신녀님께서 오셨습니다.”
“들라하라.”
“(꾸벅)”
“이리 오너라. 똑똑히 지켜보아라. 그 후에 나에게 안겨라.”
“(끄덕끄덕)”
그녀가 오기 전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누구도 모르는 황제의 또 다른 모습을 말이다. 오른쪽 눈을 가린 긴 머리칼을 쓸어 넘기자, 드러나는 붉은 눈동자. 화염을 포효하는 듯한 그 강렬한 눈빛. 꾸득 꾸득 소리가 나면서 몸에 룡의 비늘 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었다. 하나씩 좀 먹어가는 ‘저주’. 피고름이 피어나고 가시까지 돋았다.
인간이 아니었다. 괴물이었다. 존재할 수 없는 괴이한 것이었다. 입에서 연기까지 뿜어나오고 있었다. 끔찍했다. 그러나 린은 동요조차 하지 않았다.
“크하하하! 크크큭! 크하학!”
“……”
“너도 짐이 두려우냐?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게야?”
“(도리도리)”
“그렇겠지. 너는 인간이 아니니. 그러나 인간 행세라도 하고 있지 않느냐. 이럴 땐 부들부들 떨면서 두려워해야지.”
“(도리도리)”
린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얼굴까지 뒤덮인 비늘이 생긴 뺨을 매만졌다. 윤은 흠칫 놀랬다. 그녀는 양 볼을 감싸고 자신의 이마에 윤의 이마를 맞대었다. 어느새 촉촉한 눈망울로 눈물 한줄기가 흘렀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윤은 당황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입 맞춰도 되나요?)”
“이런 괴물에게 말이냐?”
“(끄덕끄덕)”
“그, 그래라.”
소중한 듯이, 손대면 깨질 듯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맞췄다. 살짝 벌어진 윤의 입을 통해 몸 안으로 따스하고 편안한 맑은 기운이 스며들어 갔다. 들 끊던 불이 가라앉고 갈증까지 해소되었다. 기운은 그의 몸 안을 돌면서 치유하고 있었다.
“이게 무엇이냐?!”
“(땅의 양기입니다.)”
“네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이더냐?”
“(네, 그렇습니다. 폐하.)”
“하… 하하하… 하하…”
“(폐하를 상처 입히던 여인들을 더 이상 찾지 않으셔도 되요.)”
“참으로 우습구나. 발버둥 친 것이 이리도 허무하게… 참으로 대단하구나!”
윤은 고통과 슬픔을 그대로 내비추고 린을 덮쳤다. 옷가지들을 찢어버릴 듯 벗겨내고 드러난 동긋한 가슴. 홀쭉한 배가 보였다. 치마를 들쳐 내곤 속곳을 단숨에 벗겨냈다. 작게 저항하던 린은 결국 잠잠해졌다. 입모양으로 뭐라 하는 듯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크흑... 큭...”
“((폐하…))”
“이젠 잊어버릴 것만 같았는데… 너만 보다 다시 떠올라… 너는 무례하구나, 무례해…”
“((윤, 사랑해요… 윤… 사랑해요…))”
들리지 않은 소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린은 숨기지 않았다.
슬픔과 절망의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