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끝이 허무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너를 본 그 순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방식이 결코 너를 짓밟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어여쁜 아이로구나. 나는 제량이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아… 저, 전 마야라고 하옵니다. 대신님.”
“간혹 나와 말동무를 해주겠느냐? 싫으냐?”
“아니, 아니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야는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로 대하는 제량을 처음부터 미워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에 작은 꽃이 피어났다. 무녀관에서 멀지 않은 호숫가에서 다정한 시간을 보낸 나날은 그녀에게 있어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애틋한 추억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옭아매고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두는 그를 몰랐다. 더 크게 애정을 가질수록 그 집착이 더 강대해지는 것조차도.
“마야. 그 분과 가까이 지내지 말거라.”
“네? 대무녀님 어째서인가요?”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타고난 탐욕스러움은 너를 상처 입힐 거야.”
“아니에요. 그런 분이 아니에요!”
남들이 끔찍한 괴수라 그 분을 칭해도 그녀는 제량을 믿었다. 그의 처소로 달려가 안기리라... 황실에서 내쳐져 상처 입은 당신을 위로하리라. 곳곳을 살펴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혹여 얼굴을 붉히고 욕탕을 기웃거렸다. 작게 들리는 목소리는 바로 제량의 것이었다. 수중기로 인해 보이지 않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달콤하고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아니야- 아니야- 저 분이 나를 두고 그럴 리가!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었다. 비릿한 냄새가 풍겨오고 목을 물어뜯어 그 피를 마시는 그를 보았다. 돌아보는 그의 눈이, 송곳니가 두려웠다. 뒤로 물러나는 그녀를 알아본 것일까? 아니었다. 그녀를 덮치고 말았다.
“싫어! 싫어요! 제량님! 제발...!”
“흐흐흐... 다 죽일 테다! 너도 죽여서 영원토록 내곁에 있거라! 크하학! 크하하하!”
“싫...어... 하지...마요... 흐... 흐읍...”
“너는 내 것이야! 일생동안 나를 벗어날 수 없게 해주마!”
“안 돼-----!”
혼절한 그녀였지만, 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마야가 흘린 혈액에 입맛을 다셨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상이기도 했다. 결국 본인의 의지대로였다. 마야를 안고 대무녀를 찾았다.
“여전히 사랑을 못 받았다고 징징거리십니까? 이 아이가 잘 못된다면 절대 용서치 않을 겁니다.”
“네가 무어라고? 한낱 무녀주제에!”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그리 할 것입니다.”
“이 아이는 영원토록 내 것이다.”
“과연 그럴까요?”
건방진 것, 감히 누구에게! 그러나 돌아서야 했다. 날카로운 매서운 시선을 보내고 사라진다. 그리고 마야는 눈을 떴다.
“흐으... 흑... 흑...”
“어리석은 것. 불쌍한 것. 미안하구나, 내가...”
“대무녀님... 대무녀님...!”
“그래, 그래. 그를 넘어서는 힘을 기르자. 더 이상 상처 받지 않도록.”
“흐...아... 흑! 흐아아앙! 흐아아! 흐윽 흑!”
그러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새긴 나의 흔적이 사라졌다며 겁탈하였다. 두 번째 사태에 그때 당시의 윤 태자가 발견했다. 그의 무사들을 대동한 채였다. 대무녀에게서 태자에게 까지 사태를 처리했다.
“괜찮아? 마야?”
“태자저하...”
“들었어, 이야기는. 당분간 나의 궁에서 지내도록 해. 그곳에서 대무녀와 상처를 치료하자.”
“황공합니다, 태자저하.”
“사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지?”
“...어떻게 아십니까?”
“나도 그러니까.”
구원자이자 동지가 되었다. 상냥한 배려에 지내다 보니, 몇 달이 지났을까?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씩 치르는 현상도 없었다. 결국 애를 배고 만 것이다. 대무녀는 울었고, 태자는 애써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고, 마야는... 무서웠다.
제량이 없는 나날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는 나타났다. 제법 티가 나는 그녀를 알아봤다.
“누구냐. 누구의 아이지?”
“당신은 아니에요.”
“괘씸하구나. 그런 것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해.”
“제량님!”
“걱정 말거라. 너를 죽이진 않을 테니.”
검을 들어 복부를 베어냈다. 허억! 놀라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쓰러진 마야. 그 뒤는 이미 아이는 죽어있었다. 그것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어미는 절규를... 절망하였다.
“아아아!!!”
“마야, 어딜 가는 거야! 마야!”
“너 몸을 추슬러야 한다! 마야!”
힘든 몸으로 제량 앞에 나타났다. 만족의 미소를 띤 그는 그녀를 안았다. 부드럽게 이마에 키스, 볼에 키스,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마야는 가만히 있었다. 이미 텅 빈 눈은 무엇에 시선을 두는 지, 알 수 없었다.
“알아요? 당신의 아이였어...”
“아, 그랬던가?”
“……나에게 왜 이러는 거죠?”
“당연히 너를 사랑해서이지.”
“아이를 돌려줘요... 돌려 달라고! 돌려 놔!”
“새로운 아이를 만들면 돼. 그게 좋아.”
그렇게 짓밟혔다. 외교를 구실로 윤은 제량을 바다에 떠다니게 했다. 살아갈 의미가 사라져, 죽음을 택할 수도 없이 인형처럼 지냈다. 열 달이 지나자, 여아가 태어났다.
“그 사람을 닮았어. 버려요.”
“마야…”
“증오해. 이렇게 만든 그를 죽이고 싶어.”
“내가 도와줄게. 자유를 줄게. 그러니 나의 사람이 되겠어? 살아갈 의지를 만들어 줄게.”
“고마워요, 태자저하.”
“애초부터 나보다도 뛰어난 네가 대무녀의 자리를 물려받는 게 좋을 거야. 그 작자에게 복수해주렴. 너의 힘으로.”
후회해. 나는 후회해. 잠시나마 당신을 사랑한 나를.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랑이 증오로 변모된 감정이야. 앞으로 태자저하를 모시고, 그 분께서 진정한 사랑을 의미를 찾는다면 그걸로 족해.
“폐하… 제 아이를 곁에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폐하로 인해... 제가 해드릴 게 있어 기쁩니다… 감사했습니다… 린님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미안하다… 미안하구나, 마야…”
“그... 그...럼... 안녕히...”
청아는 대무녀 마야의 죽음에 의미모를 눈물이 흘렀다. 저를 보고 웃는 저 사람이... 사실은... 자신의 어미였던 걸까? 그것을 우리는 이제야 알게 된 걸까? 입모양으로 미안하다고 전하는 저 사람과 이젠 작별인 걸까?
“아아악-!!!”
“아버지...”
다 사라지고 텅 비어 버렸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홀로 남았다. 자신은 백조가 아닌, 미운 오리 새끼였던 것이다. 자신의 존재 의미가 없어진 거다. 외로웠고 추웠고 시렸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