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옵니다, 폐하!”
“누구에게도 맡기고 싶지 않다. 짐이 구할 것이야!”
“이 비현도 있고, 무사 지함도 있지 않습니까? 반드시 저희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 자 라면 더더욱 맡길 수 없다. 지함에 대한 짐의 신뢰는 사라졌다.”
“하오나, 폐하!”
“다물라! 지금 짐이 제정신으로 보이느냐? 미쳐서 날뛰고 있다. 누구도 짐을 막아설 수 없다!”
윤과 비현이 실랑이 중이었다. 지함이 기척 없이 나타나 황제께 예를 올렸다. 뒤돌아본 그는 평소와 너무도 다르지 않았다. 윤에게 있어서 배신이었고, 질투였고, 서운했다. 자신은 그녀를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는데... 그 생각이,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비현이 구원자를 만난 듯 지함에게 말려보라고 눈짓하지만 그는 외면했다. 비현은 울상을 지었다.
“폐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따라오라.”
험한 분위기에 비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곁에서 수하들이 위로해주었다. 왠지 모르게 피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괜찮을까? 서로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네가 어찌 네 본분을 잊었느냐.”
“송구합니다, 폐하. 그저 저 혼자 연모할 뿐입니다. 그러나 저의 우선순위는 주군이십니다. 주군의 연인을 탐하는 파렴치한 짐승으로 타락하지는 않았습니다.”
“너의 인내심에 박수라도 치라는 게냐?”
“잠깐 머무는 바람일 뿐입니다. 허나 폐하를 농락한 점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죽음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누이라도 떠올렸나?”
“……”
목에 검이 들이밀고, 선혈이 흘렀다. 그의 의지를 꺾었다. 검은 온전히 집에 밀어놓아서야 뒷짐을 쥐고 물러난 윤이었다. 그들은 많이 닮아있었다. 그래서 형제라고 생각했었다. 지함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우직한 성격은 한편으로 윤을 원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속 좁은 생각은 그만 하겠다. 허나 짐이 가는 것은 막지 못할 것이다. 대신에 짐을 위해 수행하라.”
“…저도 폐하를 벗으로 생각하옵니다. 그렇기에 끝까지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짐은 너를 알고, 너는 짐을 안다. 그것으로 되었다.”
“송구합니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모든 차비를 꾸리고, 은밀한 시각에 윤과 지함은 린을 찾았다. 아직은 깨어나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뜨지 않았다고 현자는 말했다. 손가락 하나가 움직임을 보였다.
“린-?”
눈을 천천히 떴다. 완전히 뜨지 않았지만, 윤과 지함을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그녀의 연인... 윤-... 입꼬리가 올라가며 평온하고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뻣뻣한 손을 내밀자, 황제는 그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린- 잠시 쉬어. 금방 다녀올게.”
“어...어디...가요?”
“너를 살릴 방도를 찾으러 가.”
“그...런...건... 없어...요...”
“아니, 반드시 괜찮아질 거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
“윤...”
린의 이마에 조심스럽고 애정 가득한 윤의 키스가 이어졌다.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함도 평소 같았다. 든든한 두 남자로 인해서 안도를 느끼며 다시 눈을 감았다. 금방 색- 색- 숨을 내쉬며 잠들었다.
“가지.”
“예, 폐하.”
거창할 것도 없었다. 북쪽으로 냉지대로 향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보다 빠르게 이동했다. 거추장스러운 예도 없이 오로지 목적지를 향해서 움직였다.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다. 다그치기도 하지만, 원하는 대로 될 리가 없다.
“날이 많이 쌀쌀하옵니다.”
“얼마나 남았느냐?”
“이제 삼일 정도일거라 장군이 말했습니다.”
“이 눈만 아니었어도!”
조급하고 불안해도 별 수가 없었다. 장군이 예측한 대로, 홍림을 찾았다. 과히 붉은 숲이라는 호칭이 딱 들어맞았다. 정말로 존재했던 것이다. 윤과 지함, 비현은 흥분했다. 그제야 너그러운 평소의 여유가 넘치는 윤으로 돌아왔다.
“실초라...”
“약초사, 어디에 주로 자라는 거냐?”
“실초라는 약초는 없사옵니다, 폐하.”
“뭐라? 없다?”
“그 옛 전설적인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다하나, 하늘님께서 이 땅에는 그 씨를 뿌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리가 있느냐! 찾아라, 찾아야 한단 말이다!”
“폐하!”
가마에서 굴러 떨어진 윤. 쓰러지면서 돌에 머리를 박았다.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온다. 모두가 그를 일으키며 의원을 찾았다. 뒤쪽에 있던 그가 다급하게 살펴보았다.
“잠시 연약한 부위에 상처를 입어 기절하신 겁니다. 곧 깨어나실 겁니다.”
“이것을 폐하께 발라주시면 금방 아물 것입니다.”
“폐하...”
“다 물러나 계십시오.”
금방 깨어난 윤의 눈빛이 흔들리며 스스로 찾아 나서기로 한다. 그를 말리는 수하들을 두고서. 그 앞을 막는 지함과 비현. 제발... 간절한 그를 알았지만 물러날 수는 없었다. 푹신한 땅에 자란 풀을 잡아 뜯으며 마치 야생의 동물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태가서! 태가서!”
“서두르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속히 황궁으로 돌아간다!”
“이곳을 벗어난다!”
“예-!”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윤을 끌어 가마에 태웠다. 점점 멀어지는 홍림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텅 비어 아무것도 담지 못했다. 황제의 체면, 위엄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단지 아픈 그녀만을 떠올릴 뿐이었다. 내 가여운 연인, 나의 사랑스러운 린-...
“미안하구나, 미안해... 못난 나의 탓이다. 내가 널 이리 만든 거야...”
“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무지도 죄라 하였다. 너를 곁에 둘 자격도, 사랑할 자격도 없어진 듯 하다.”
“윤- 알잖아요. 내 선택이었어, 내가 욕심을 부려서 당신을 아프게 했어요. 죄는 나에게 있어요.”
그러나 말이 없는 윤이었다. 그 앞에 나타난 ‘태카서 자민.’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이 으르렁 거렸다.
“왜 그런 거짓나부랭이를 짓거린 게냐!”
“인간의 강함을 시험했다. 네가 이 작은 신령에 어울리는 인간인지를 확인했다.”
“결국 방도가 없는 거냐?”
“대신령인 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일개 인간 따위가 해낼 거라 잠시나마 기대는 했지만...”
“정녕... 짐이 그녀가 떠나는 걸 지켜봐야한다는 소리군.”
“네 지독한 애정을 봐서 한 가지 선물을 주겠다. 이제 이 아이를 위해서 남은 시간 함께하라.”
린이 손을 내밀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윤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곤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이 온기를, 이 향기를 기억하기 위해서 더 깊이 감싸 안았다.
“고마워요.”
“응.”
“사랑해요.”
“응.”
애써 올라오는 감정을 참는다. 손을 부여잡고 걸었다. 아주 달콤하고, 은은하게… 안도와 불안을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