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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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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14     조회 : 314     추천 : 5     분량 : 6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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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음.."

 

 눈을 비비며 부스스한 얼굴로 몸을 일으킨 에밀리.

 저쪽 침대에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는 아인을 확인하고는 그 옆에 비어 있는 침대를 바라본 에밀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전날밤 외출해서 돌아오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늦게 돌아왔다가 다시 일찍 외출한 것인지 미로가 보이지 않았다.

 

 이불을 벗어나자 괜스레 서늘한 기분이 드는 것이 어쩐지 상쾌했다.

 침대에 누워 편안히 잠을 청하는 것이 이토록 몸을 가볍게 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요즘이다.

 

 미로를 만나고 잠을 편히 잘 수 있게 된 것이, 잠시도 마음 놓을 틈 없이 쫓기지 않아도 된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천천히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에밀리.

 부엌으로 보이는 곳에서 인기척이 들려와 그곳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홀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몇 손님들에게 음식을 차려주고 주방으로 돌아왔던 리사가 인기척을 느껴 슬쩍 돌아보자, 주방 입구에 서성이는 에밀리가 눈에 들어왔다. 몸을 반 이상 숨긴 채, 눈만 빼꼼 내놓고 안을 살피는 에밀리에게 리사가 미소 지으며 다가갔다.

 

 "일찍 일어났네?"

 

 리사가 다가오자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가, 그녀의 미소에 다시 한걸음 내디뎠다.

 이제 자신은 더 이상 누베스에 갇혀 있지 않음을 되새기며.

 

 그런 에밀리의 무의식적인 행동에 리사는 미소를 머금은 입안에 쓴맛이 도는 것을 느꼈다.

 이 작은 아이에게, 그 마을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해온 것인지..

 

 "지금 아침 먹을래?"

 

 미소로 묻는 리사에게 에밀리가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리사를 빤히 바라보자, 리사는 그 귀여움에 와락 안아버릴 뻔한 것을 참으며 목을 긁적였다.

 

 "미로는 아침 일찍 외출했어. 일어나면 아침 먼저 먹고 있으라고 하긴 했는데.. 어떡할래?"

 

 그러자 살짝 고개를 떨어트렸던 에밀리가 다시 리사를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미로가 돌아오면 함께 먹을래요."

 

 아직은 희미하기만 한 에밀리의 미소에 리사는 따라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래?"

 

 

 

 

 ***

 

 

 이른 아침부터 에스타스의 중심부를 거니는 미로. 새벽공기가 내려앉은 시각부터 쉬지않고 걷고 있다.

 녹스와 달리 낮이 더 긴 에스타스는 이른 시간부터 날이 밝아 활기를 띄우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하나같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어쩐지 그 생기가 전해지는 것 같아 미로는 입술을 곱게 휘고 거리를 바라봤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에스타스의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미로.

 은발의 렌을 수색하러 나온 그 목적을 망각하기라도 한 것처럼 정처없이 걸었다.

 

 간만에 에스타스의 아침 공기를 마셔보고 싶기도 했고, 딱히 기대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물론 거리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귀담아 듣고는 있었다.

 

 한참이나 거리를 걸어 시간이 꽤나 지난 것을 인지하고는 다시 펜션으로 돌아가려는데, 그 걸음을 멈추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이 멍청아, 내가 그래서 은발은 함부로 내어놓고 다니면 안된다고 몇 번을 말하냐, 어? 가릴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많아!"

 "아, 목소리 낮춰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가리고 있잖아."

 

 미로는 조심스레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란스런 길거리. 그렇게 큰 소리도 아니었고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지만 '은발'이라는 단어는 정확히 미로의 귀로 흘러 들어왔다.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탓에 희미한 그 목소리를 잡아챈 것이다.

 

 제대로 걸렸다는 생각을 하며 입가에 미소를 띄운 미로는 즐비한 상점들 사이로 존재를 드러낸 좁은 골목을 바라봤다. 상점의 뒷문으로 통하는 곳인 듯 보였다.

 

 슬쩍 시선을 돌리자, 골목 바로 옆에 에스타스의 오래된 물건들을 파는 엔티크샵이 보였다.

 물론 미로의 눈에는 그저 골동품을 파는 곳처럼 보였지만.

 

 그 상점을 기고 걸음을 옮기자, 목소리가 점점 더 뚜렷하게 들려왔다.

 

 "헨리한테 들었어. 게다가 지난밤에는 위험했다던데. 네 얼굴을 본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이야?"

 "아니, 얼굴을 똑똑히 본건 이쪽인데."

 

 이어 들려온 렌의 대답에 미로가 살짝 미간을 좁히는 사이, 한대 얻어맞기라도 하는 듯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렌이 짧은 신음을 흘렸다.

 

 "널 잡으러 온 사람 얼굴을 똑똑히 봐서 뭐해, 이 등신아. 머저리. 이 모자란 놈."

 "악! 그만 때려!"

 

 슬쩍 상점 뒤의 골목 쪽으로 얼굴을 내민 미로. 그녀의 눈에 머리를 문지르며 투덜거리는 남자가 보였다.

 그날 밤엔 얼굴을 반쯤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길고 날카로운 눈매는 확인할 수 있었다.

 전날과는 달리 머리가 은발이 아니었지만, 그 눈동자는 여전히 잿빛을 머금고 있었다.

 

 대화의 내용으로 봐선, 머리를 문지르는 저 남자가 렌이다.

 

 

 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가 돌연 미로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미로가 급하게 몸을 숨겼지만 그는 이미 발견해버린 뒤인 듯싶었다.

 

 "너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에? 어디 가는데? 가게 들어가 봐야하는 거 아닙니까?"

 "잔말 말고.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

 

 벽에 등을 기댄 미로는 기척이 다가옴을 느끼고는 픽 코웃음을 치며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골목을 이루는 좁은 벽면을 차고 뛰어올라 상점 지붕에 올라선 미로가 슬쩍 고개를 내밀어 자신이 방금 전까지 서있던 곳에 다가와 두리번거리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사람을 찾을 때 보통은 더 나아가 그 주변을 살피기 마련. 그러니 하늘로 피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는 말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운 미로가 돌아서 지붕 위를 걸었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 않아, 금세 자신을 뒤따라오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탓.

 

 

 "뭐하는 사람이길래 엿듣고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닌 곳으로 도망치는 거지? 뭐하는 인간이야."

 

 미로는 당황함을 감추며 슬쩍 남자를 돌아봤다.

 날카로운 인상에 다부진 몸. 구리빛 피부에, 얼굴 선마저 날카로웠다.

 미로는 본능적으로 힘의 차이를 느끼고는 이내 걸음을 옮겨 렌이 서있는 지점으로 뛰어내렸다.

 

 "잠..!"

 

 남자가 말릴 새도 없이 렌의 눈앞으로 뛰어내린 미로.

 멍하니 서있던 렌은 갑작스레 하늘에서 떨어진 미로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며 벽을 짚었다.

 

 지붕에서의 착지로 인하여 너울의 천이 펄럭이며 미로의 얼굴이 드러나자, 렌이 놀란 얼굴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네이핀?"

 

 렌의 조용한 한마디에 손바닥만한 단도를 품에서 꺼내든 미로가 렌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겨눴다.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건 좋지 않아. 말이란, 누군가는 듣게 되어 있으니까."

 

 곧이어 금세 미로를 따라 뛰어내린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노려보았다.

 

 "렌!"

 

 미로의 손에 들린 단도를 본 그가 두 눈을 부릅뜨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쯤 해 두는 것이 좋을 거야. 그 이상은 내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 눈빛에서 뚜렷한 살기를 느낀 미로가 픽 웃었다. 황당하다는 듯이.

 여유로운 손짓으로 천을 들어오려 맨 얼굴을 보이는 미로.

 렌에겐 이미 얼굴을 보인 적이 있어 이제와서 숨기는 것도 무의미해졌다.

 

 똑바로 마주한 미로의 얼굴은 얼핏 보았던 것 이상으로 매혹적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홀려버릴 듯이.

 

 잿더미 위에 금빛 숲이 들어서듯 렌과 미로의 시선일 얽혔다.

 똑바로 렌을 응시하던 미로가 그의 목덜미를 당겨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너의 정체를 알았으니, 노블에게 잡히고 싶지 않다면 네 발고 찾아와. 내가 아직 너한테 들을 말이 있으니 가디언에 넘기지는 않겠어."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당황한 렌이 숨을 멈춘 사이 고운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 들어왔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던 미로가 한걸음 물러나자, 렌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후 뱉아냈다.

 붉어진 볼을 가리기 위해 렌이 손등으로 얼굴을 가리자, 미로가 걷어냈던 천을 다시 내렸다.

 

 "번화가를 가로질러 녹스 쪽 게이트 방향에 있는 아쿠아 펜션으로 와. 오늘밤 안으로 오지 않으면.."

 

 말끝을 흐린 미로가 손으로 가볍게 천을 흩트리며 자신에 찬 미소를 머금고 렌을 바라봤다.

 

 

 "내가 너를 잡으러 올 테니까."

 

 

 

 

 ***

 

 

 폭풍이 지나간 듯 어쩐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마크가 렌을 노려보았다.

 

 "그러게 내가 조심하라고 몇 번 말했어!"

 

 머리를 긁적인 렌이 넉살 좋게 웃으며 그의 말을 흘려 넘겼다.

 아쿠아 펜션으로 찾아오지 않으면 잡으러 오겠다는 말 만을 남긴 네이핀은 너무나도 여유로운 자태로 유유히 돌아갔다.

 그 뒷모습에 차마 말을 걸지도, 붙잡지도 못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는 건가-'

 

 입술을 곱게 휘며 웃은 렌이 자신의 반짝이는 은발을 뒤덮은 검은 머리칼을 슬쩍 만지작거리며 미로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 손이 붕대로 감겨 있던 것이 어쩐지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듣고 싶은 말이 있나 본데.. 그전엔 나를 어쩌지 못할 거야."

 

 마크는 기다렸다는 듯이 렌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쳤다.

 

 "뭘 자신만만하게, 이 자식이. 너 내가 형 말 들으라고 몇 번을 말했어! 너 따라 들어와, 오늘 좀 맞자."

 "아, 잠깐, 형님. 아니 왜 이러세요, 안에 손님들 계십니다."

 "오늘 문 닫자."

 

 

 그날은 골동품들 사이로 남자의 비명이 들려왔다는 설이 있다.

 

 

 

 

 ***

 

 

 "배고파!"

 

 아침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관광을 위해 모두 빠져나가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미로는 펜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곧장 들려온 건 재촉하는 리사의 목소리였다.

 

 싱긋 웃은 미로가 안을 한번 살피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너울의 천을 슬쩍 걷었다.

 

 "그러게 아침 먹고 있으랬잖아."

 "애들이 기다린다는 걸 어떡해! 얼른 와, 먹자."

 

 그들은 조용한 키친에 마련된 작은 식탁에 둘러앉아 아주 늦은 아침 식사, 아니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리사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아인이 미로의 손에 난 상처를 다시 치료하고 있었다.

 

 "정말.. 손이 이게 뭐야."

 

 상처가 벌어져 피가 베어 나온 붕대를 풀고 새 붕대를 감아주며 아인이 투덜거렸다.

 

 "응. 어쩌다 보니."

 

 무미건조한 대답에 아인이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자, 미로는 괜스레 소리 내어 웃었다.

 의자에 앉아 한쪽 손을 아인에게 건네 준 채 다른 손은 턱을 괸 미로를 바라보다 에밀리가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마음에 들어?"

 

 에밀리를 힐끔 바라보던 미로가 묻자, 에밀리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다. 그 지옥의 불구덩이 같은 마을에서 꺼내 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다.

 그곳에 비하면 이곳은 낙원이다. 하지만..

 

 "나도.. 미로와 함께 가면.."

 

 말끝을 흐리며 올려다본 미로의 얼굴이 당황과 곤란함으로 뒤섞여 있는 것을 확인한 에밀리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안되겠죠.. 역시."

 

 미로가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자, 에밀리는 괜스레 웃으며 말했다.

 

 "전 여기서 리사와 함께 있을 게요. 에스타스는 덥지만, 얼음과자도 맛있고, 또, 재미있는 축제도 많으니까-"

 

 갈 곳 잃은 에밀리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미로가 손을 뻗어 에밀리의 작은 머리위에 올려 놓았다.

 그러자 횡설수설 떠들던 에밀리가 입을 꾹 다물었다.

 가만히 에밀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미로가 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올게. 어딜 가든, 이후로도 계속 에스타스에 올 때마다 에밀리를 만나러 올 거야."

 

 그 말에 동그랗게 뜬 두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 끔찍한 마을에서 자신을 구해준 미로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감사했다.

 리사는 좋은 사람이었고 편히 잠들 수 있었으니까. 불만을 가지면 천벌을 받을까 두려울 만큼.

 

 금세 소매로 눈물을 훔쳐낸 에밀리는 지금껏 보여주지 않은 환한 미소로 미로를 마주했다.

 

 "네."

 

 

 

 

 ***

 

 

 "야, 너 정말 가려고?"

 

 날이 지고, 가게를 나서려는 렌을 놀란 눈으로 보는 마크가 물었다.

 

 "응. 안 그럼 잡으러 온다잖아."

 "그렇다고 제 발로 찾아가냐?"

 

 한심하다는 마크의 얼굴에 렌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머금었다.

 

 "그게 더 재밌잖아."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렌은 가뿐히 상점을 나섰다.

 은발을 가린 가발이 답답한 듯 괜스레 머리를 긁적이는 렌.

 

 아쿠아 펜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에스타스의 제일가는 정보통이다.

 걸음을 옮기는 렌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살면서.. 네이핀을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아니, 네이핀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는 렌의 앞을 갑작스레 누군가 막아 섰다.

 흠칫 걸음을 멈추자, 누가 보아도 귀족과 관련된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

 에스타스의 사람들이 즐겨 입는 차림과는 조금 다른, 더운 날씨에도 상관 않고 하얀색과 검은색의 수트를 입은 남자들.

 

 걸음을 멈춘 렌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훑었다.

 

 

 "타마린드 아가씨께서 찾으시니 잠시 동행하시죠."

 

 하얀색 수트 차림의 남자가 한걸음을 내디디며 렌에게 말했다.

 분위기를 살핀 렌은 능글맞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저 같은 별볼일 없는 시민이 노블과 대면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최근 일어나고 있는 도난 사건들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봅니다. 가시죠."

 

 렌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휴, 아직도 못 잡았다죠? 어서 잡아야 할 텐데.. 근데, 전 뭐 아는 것도 없는데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능글맞게 어깨까지 으쓱이며 슬쩍 바라본 하얀 수트 남자의 표정은 완고했다.

 마치 확신하고 있다는 듯이.

 

 지금껏 단 한번도 단서를 남긴 적이 없다. 자신을 찾아올 리가 없었다.

 은발이 흔치 않은 에스타스에서 당당히 으발을 내보이며 귀족들의 저택을 털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 한번도 평소에 은발을 드러낸 적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렌이 잠시 혼란스러운 틈을 타, 하얀 수트의 남자가 눈짓을 주자 검은 수트의 남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렌을 붙잡았다.

 

 "잠깐, 이게 무슨! 무고한 시민에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렌이 큰소리로 외쳐 보았지만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노블이 하는 일에 간섭할 만한 용기가 있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끌고 가."

 "예."

 "잠깐, 이거 놔! 난 아무 상관 없다니까요!"

 

 발버둥 쳐봤지만 검은 수트 장정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이들을 제압하고 탈출할까 잠시 고민했던 렌이지만, 그랬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이내 한숨을 내쉰 렌이 순순히 그들의 손에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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