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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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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16     조회 : 269     추천 : 4     분량 : 5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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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오는데?"

 

 모두 잠자리에 들었을 야심한 시각. 아무도 없는 로비 구석에 미로와 함께 앉아 기다리던 리사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리사의 말에 미로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구겼다.

 

 분명 그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네이핀'이었다.

 그쪽도 묻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건가..

 

 짧은 한숨을 내뱉은 미로가 이미 어두워질대로 어두워진 창 밖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고?"

 

 놀란 얼굴의 리사를 바라보며 미로가 너울 천을 내려 얼굴을 가렸다.

 

 

 "제 발로 오지않으면 잡아 와야지."

 

 그리고 펜션을 벗어나려 문을 벌컥 여는데, 그 앞에 일전에 보았던 노블 가문 타마린드의 수행인, 키리가 서있었다.

 문을 열어 그를 발견한 미로는 순간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엗.

 

 그는 미로가 문을 열고 나오자,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보이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마주했다.

 

 

 "타마린드 가에서 직접 대도적을 잡았으니, 만물상에 했던 의뢰느 없던 것으로 하고 싶다 하셨습니다."

 "뭐..?"

 

 나쁜 예감은 어째서인지 반드시 들어맞는다.

 미간을 더욱 구긴 미로가 너울 너머로 키리를 노려보았다.

 

 "지금껏 아무런 단서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리 되었단 말입니까?"

 "잡아온 그 자가 대도적이 맞을 겁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으니."

 

 실소를 흘린 미로가 키리에게 물었다.

 

 "얼굴도 모르는 자를, 심증만으로 잡았다?"

 "마녀님께서 그자의 얼굴을 보셨지요?"

 

 키리의 반문에 미로가 입매를 비틀었다.

 

 "가면을 써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만."

 

 마치 자신이 그자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말투.

 그런 것이라면.. 오전에 자신이 그를 방문했던 것이 이들이 말하는 심증이 되었을 것이다.

 

 미로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 즈음 키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녀님께서 잡아 주신 것이 아니니, 제시하셨던 조건도 모두 무르겠다 하셨습니다."

 "하!"

 

 무덤덤하게 말을 뱉는 키리.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너울의 천에 가려, 미로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지금 미로의 얼굴에 떠오른 살기 어린 표정을 보았으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살기가 가득 베인 비소를 머금은 미로가 키리를 노려보았다.

 

 

 "그 말은.."

 

 미로가 입을 연 것은 수행인의 말이 다 끝나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마범죄자를 사사로이 데려가시겠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키리가 땅에 떨어트렸던 시선을 들어올려 다시 미로를 바라보았다.

 비꼬는 듯한 미로의 목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마범죄자를 사사로이 처분하려던 것은 마녀님이 아니십니까? 어찌 그자의 처분을 맡겨 달라 하셨는지, 그 이유와 마녀님의 정체를 밝히신다면 내거셨던 조건을 받으실 의향이 있다고도 말씀 전하라 하셨습니다."

 

 키리의 말에 미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해냈다.

 

 "받으실 의향이 있다? 그렇게 원하는 것 만을 얻어내고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을 셈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만 돌아가세요."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선 미로가 생각났다는 듯이 반쯤 닫았던 문을 다시 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저는 이제 일절 그쪽과 상관이 없는 것. 기억하시지요."

 

 쾅! 하고 미로가 일방적으로 문을 닫았다.

 늘 저런 식이다. 교묘히 말을 얼버무려 자신들이 원하는 것 만을 얻어내로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으려고 한다.

 

 "하여튼 마음에 안 들어."

 

 벽에 기대어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리사가 미간을 구겼다.

 

 "응. 한발 늦었네."

 

 '오늘 밤까지'라는 유예기간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곧바로 끌고 왔어야 하는 건데.

 입술을 지그시 깨문 미로가 키리의 말을 곱씹었다.

 

 직접 잡았다.. 게다가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다. 그렇다면 가디언이나 왕국군 쪽에 넘겼을 리는 없다.

 심증만 가지고 그들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뿐더러, 왕국군에 넘겼다면 오히려 미로로서는 다행인 일이다.

 

 문제는 노블이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사병을 계속해서 늘리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자꾸만 마범죄자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다시 한번 헛웃음을 토해낸 미로가 주먹을 꽉 움켜쥐고는 너울의 천을 걷었다.

 

 "리사, 저 노블이 그 놈을 어디에 잡아 뒀는지 알아낼 수 있어?"

 

 들려온 미로의 말에 리사는 의아한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구하러 가게? 도둑을?"

 

 

 미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도둑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내가 그놈과 선약인데 노블이 중간에서 가로챘다는 거야. 내가 그런 건 그냥 못 넘기지."

 

 잠시 턱을 집고 생각을 하던 리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노블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그 저택 하나일 텐데. 당연히 그 저택에 잡아 뒀을 테고. 문제는 그 대저택의 어디쯤이냐는 건데.."

 

 미로는 얌전히 리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일 밤까지는 무조건 알아내도록 할게."

 

 

 

 

 ***

 

 

 "쿨럭!"

 

 손발이 묶인 채 바닥에 쓰러진 렌이 피를 토했다. 머리에 쓰고 있던 검은 가발은 이미 벗겨져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흐릿한 시야로 자신의 앞에 버티고 선 검은 수트 차림의 남자 둘과, 그 뒤로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 입은 여자가 보였다.

 

 이 대저택의 귀한 외동딸, 멜리사 타마린드였다.

 

 "이 왕국에서.. 고문은 불법이 아니던가.."

 

 힘없이 중얼거리자, 멜리사가 입매를 비틀었다.

 곤란한 일이었다. 마력을 봉하는 반(反)마력석으로 만든 수갑을 채워 자력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어쩐다..'

 

 힐끔거리며 방을 살피는 렌을 멜리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아버님께서 에스타스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내게 일임하셨으니,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거야. 게다가,"

 

 그녀는 마치 제 미소를 누군가 보면 곤란하다는 듯이 손으로 살포시 입사를 가렸다.

 

 

 "네가 고문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아무도 모르면 될 일 아닌가?"

 

 

 

 

 ***

 

 

 날이 밝자 미로는 아인과 에밀리에게 절대로 펜션을 벗어나서는 안될 것을 몇 번이나 당부하고서 곧장 아쿠아 펜션을 나섰다. 리사는 미로의 부탁으로 조금 분주했기에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짧은 한마디만을 남겼다.

 

 펜션을 벗어난 미로가 곧장 향한 곳은 전날 렌을 발견했던 장소, 바로 그 골동품 상점이었다.

 

 딸랑.

 

 짧은 종소리가 누군가 상점 안으로 들어섰음을 알리자, 안쪽에 마련된 또다른 공간에서 문을 열고 마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하지만 너울을 발견한 그는 즉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단숨에 미로를 붙잡았다.

 

 "너..! 렌은 어디 있어!"

 

 무작정 달려들어 미로를 벽에 밀친 마크가 강하게 미로를 제압하며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밤새 렌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로는 애써 마크의 손을 떼어내고는 먼저 상점의 문을 잠갔다.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는 마크의 얼굴은 구겨질대로 구겨져 있었다.

 미로는 짧은 심호흡과 함께 큰맘 먹고 너울의 천을 걷어 마크에게 맨 얼굴을 보였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칼과 대조되는 하얀 피부. 마치 그려 놓은 듯한 아름다운 얼굴에 마크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들려온 미로의 말에 더더욱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렌.. 이라는 사람은. 노블에게 잡혀갔어요."

 "..뭐..?"

 

 마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거기엔 내 책임도 조금은 있는 듯 하니 오늘밤, 그를 구하러 갈까 해요."

 

 

 

 

 ***

 

 

 "나도 갈래."

 "안돼."

 "갈래."

 "안돼."

 

 같은 말로 말씨름을 계속하는 아인과 미로를 바라보는 에밀리.

 될 수 있으면 두 사람은 펜션에 머물게 하고 싶었지만 이번엔 리사까지 동행했기에 둘만 펜션에 남겨두는 것도 불안하여 이렇게 함께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거리에 목소리를 낮춰 옥신각신 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노블의 저택을 주시하던 리사가 말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언제 온다는 거야?"

 "왔다."

 

 리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마크가 나타났다.

 그의 옆엔 일전에 렌이 노블의 저택에 침입했을 당시 도주를 돕던 이도 함께 였다.

 그는 헨리라고 마크가 소개했고, 별 다른 반응 없이 그들은 늦은 시간, 의외의 장소에서의 만남의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렌이 지금껏 대도적이라며 이름을 떨치고도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고 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혼자서 한 일이 아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 판단한 미로가 낮에 마크를 찾아갔던 것은 정답이었다.

 마크와 헨리, 두 사람의 협력으로 지금껏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목적지인 집안 내부를 미리 샅샅이 조사해 놓는 역할은 마크가, 도주로를 확보하는 것은 헨리가.

 그리하여 미로는 이 노블의 대저택도 렌이 방문하기 전 마크가 샅샅이 조사했으니 혼자서 무작정 뛰어드는 것보다는 그의 도움을 받는 것이 효율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는 위험해."

 

 아인이 걱정스러운 듯 미로의 손을 붙들었지만 미로는 그저 싱긋 미소 지을 뿐이었다.

 잠입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너울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얇은 천으로 눈만 빼놓고 얼굴을 가렸다.

 

 "그렇게 걱정되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아인에게 다가간 헨리가 일전에 마녀만물상을 찾아온 키리의 초상화를 건넸다.

 

 "나를 이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

 

 가만히 헨리가 건넨 초상화를 보던 아인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에서 헨리의 변장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 마크가 미로에게 엄지손가락 만한 검은 기계를 건넸다.

 그가 알려주는 대로 받은 것을 귀에 꽂자, 마크가 지도를 펼쳤다.

 

 마력을 주입하여 한정 거리 이내에서는 그걸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말에 미로는 귀에 꽂았던 것을 다시 빼어 자세히 살폈다. 마력으로 참 신기한 것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귀에 꽂고는 마크가 펼친 지도로 시선을 옮겼다.

 

 "그걸로 이 지도 내에서 너의 움직임이 이쪽에 계속 전달될 거야. 그럼 그걸로 너한테 가야할 방향을 알려 줄게."

 

 지도에 위치까지 표기되다니 꽤나 쓸모 있는 물건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미로를 보고 마크가 펼친 지도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래서 목적지는?"

 

 그의 물음에 이번엔 리사가 대답했다.

 

 "여기."

 

 리사의 손끝이 향한 곳을 보고는 살짝 미간을 좁히는 마크.

 어쩐지 그 목적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리사의 손끝을 응시하던 미로가 이내 저택을 향해 돌아섰다.

 

 "어쨌든, 일단 잠입하도록 할게."

 "먼저 가세요. 저도 곧 따라서 들어갈 게요."

 

 아인의 손에 의해 점점 다른 사람의 얼굴이 되어 가는 헨리의 말에 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 하루동안 리사가 정보망을 풀어 알아낸 렌의 위치. 리사의 손끝이 향한 곳.

 

 미로는 높디높은 담벼락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머리를 가릴 만한 것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런 미로를 응시하던 에밀리가 아인에게로 가 그의 가방을 뒤적여 검은색 머리칼의 가발을 찾아내더니 꺼내어 들고 미로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던 아인은 이내 헨리를 내버려두고 다가와 에밀리에게서 가발을 건네 받아 미로의 머리에 떨어지지 않게 잘 씌워주었다.

 단발을 가리는 긴 검은 머리카락은 등허리까지 쏟아져 내려왔다.

 

 "다녀올게."

 

 머리카락이 가려지고 나서야 미로는 땅에서 솟아오르는 나무뿌리를 이용해 높은 담벼락을 넘을 수 있었다.

 가발에 가려진 머리카락은 또 분명 하얗게 물들었을 것이다.

 

 미로가 능력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던 아인은 뒤로 나자빠질 만큼 놀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무는 생명이다. 즉, 그녀는 생물을 다루는 마법을 쓴 것과 마찬가지이다.

 

 왕국에 존재하는 마법사, 마녀를 통틀어 생물을 다루는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들어 보지도 못했다.

 

 놀란 것은 아인뿐만이 아니었다. 나무뿌리를 타고 담벼락을 넘는 미로를 보며 마크와 헨리 역시 두 눈을 의심했다.

 

 

 '과연.. 혼자서 가겠다고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군.'

 

 그녀가 단독행동을 주장한 이유를 납득한 마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중 놀라지 않은 것은 리사와 에밀리 뿐이었다.

 

 나무뿌리는 미로가 담벼락 너머로 사라지고 얼마 지나자 다시 사라졌다.

 넋이 나간 얼굴로 나무뿌리가 생겨났던 자리를 응시하던 마크가 이내 머리를 흔들어 괜한 생각은 떨쳐냈다.

 

 지금은 렌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에 호기심은 접어두고 지도를 응시했다.

 

 

 

 달빛이 어스름하게 비추는 밤.

 

 

 노블 타마린드 가의 대저택에 침입자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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