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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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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19     조회 : 290     추천 : 4     분량 : 5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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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택으로 들어선 미로.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 모두가 잠들었을 시각인데도 몇 군데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불이 꺼져 어둡기만 했기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실로 대단한 크기의 대저택이었다.

 달랑 세명인 식구에, 더군다나 노블 본인은 수도에 머무는데 이런 거대한 저택이라니.

 이것이 낭비가 아니면 뭐가 낭비란 말인가.

 

 

 -2층으로 추정된다.

 

 못마땅한 얼굴로 대저택을 노려보고 있는데 마크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정말 유용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며 미로는 저택의 정원수 위에 올라섰다.

 몸을 숨긴 미로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내부로 들어가는 경로는?"

 

 그러자 귓가에 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채에 문을 열어 놓은 곳이 있을 거야. 별채와 본채가 이어지는 통로가 하나 있어. 거길 통해서 본채로 들어가.

 

 "응."

 

 

 거대한 본채와는 분명 차이가 났지만 별채 역시 상당히 깔끔하게 지어져 있었다.

 본채와 이어진 짧은 통로가 있는 이 별채는 고용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러니 다들 기를 쓰고 노블의 저택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리사가 미리 조치를 취해 놓았기에 어렵지 않게 안으로 들어선 미로는 귓가에 들리는 지시대로 어두운 저택을 소리없이 걸었다.

 

 -코너에서 왼쪽으로 가면 본채와 연결된 통로가 나올 거야.

 

 "응."

 

 벽에 몸을 바짝 밀착시켜 침착하게 걸음을 옮기는 미로.

 코너를 돌자, 곧이어 본채로 향하는 통로가 나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통로를 가라앉은 눈으로 응시하던 미로는 이내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소리 죽여 걸음을 옮겼다.

 

 그다지 길지 않은 통로이지만 앞이 뚜렷이 보이지 않아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이러한 숨을 곳도 없는 통로에서 누군가를 마주친다면 아주 곤란해지니.

 

 숨을 내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워 하며 통로를 지나, 미로는 무사히 본채로 들어설 수 있었다.

 

 

 

 

 ***

 

 

 미로가 저택으로 들어가고 한참.

 

 분장을 끝낸 헨리마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리사의 도움으로 키리는 수면초를 섞은 저녁을 먹고 지금은 아주 깊이 잠들어 있을 터.

 

 "조금 더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져. 위층으로 가는 계단은 저택 중앙에 있어."

 

 

 리사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지도위에 움직이는 불빛을 바라봤다.

 

 어째 영 찜찜한 것이, 저택을 조사하던 와중 미로가 물었던 것이 계속 머리속에 맴돌았다.

 

 

 '지하에 따로 마련해둔 공간이 있을까?'

 

 별 생각 없이 있을 수도 있다고 대답했었다.

 노블이 아니어도 귀족들 중 간혹 저택 외에 개인 공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었기에.

 

 하지만 그 개인공간이 지하로 내려간다면 그건 대부분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되는 일을 벌이는 귀족들의 경우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렌이 잡혀 있는 곳은 지하가 아니었지만 어쩐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리사."

 

 미간을 찌푸리던 리사가 에밀리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에밀리가 이름을 부른 건 처음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근처를 둘러보던 에밀리가 리사의 옷자락을 붙들며 말했다.

 

 

 "이쪽으로 사람이 와요."

 

 마크는 즉시 지도를 접었다.

 서둘러 자리를 피한 네사람은 어두운 골목으로 몸을 숨기고 저택의 주위를 둘러보며 보초를 서는 사병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그를 주시했다.

 

 

 

 

 ***

 

 

 

 "늦은 시간에 어딜 다녀오십니까?"

 

 

 저택을 둘러싼 높은 담벼락.

 유일한 출입구인 게이트를 지키던 사병이 익숙한 얼굴의 방문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아가씨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입니다. 당부하신 일이 있어서 늦더라도 곧장 아가씨께 오라고 하셨습니다."

 

 평소의 딱딱한 그의 태도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전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병사가 게이트를 열어 그를 저택 안으로 들여보냈다.

 

 

 

 ***

 

 

 "여기서 어디로 가면 돼?"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계단을 오른 미로가 귀에 꽂은 기계를 손끝으로 살포시 매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기다려도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려도 돌아오는 것은 침묵 뿐.

 

 "뭐야.."

 

 입술을 비죽 내민 미로가 계단을 올라, 둘로 나뉘어져 있는 복도를 번갈아 바라봤다.

 어느 쪽으로 갈지 잠시 고민하던 미로는 이내 왼쪽으로 늘어선 복도로 들어섰다.

 

 어둡고 긴 복도를 거니는 미로는 복도로 들어서서 보이는 몇 개의 방들을 확인했지만 손님 용으로 꾸며 놓은 방들이 있을 뿐,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왼쪽 복도의 끝에 자리한 방문을 열자, 그 안엔 몇 번인가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노블의 수행인, 키리가 침대에 잠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수면초를 먹고 소리소문 없이 깊이 잠든 덕분에 헨리가 그로 변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양이 아니었을 테니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곁에서 소란을 피우는 건 피해야 했다.

 

 그곳에 렌이 없음을 확인한 미로가 살며시 문을 닫으려는데, 키리의 머리맡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열쇠꾸러미.

 

 노블의 말을 직접 전하고, 어지간해서는 표정을 흩트리지 않는 그는 이 집에서 꽤나 많은 일을 맡고 있을 터였다.

 그런 그가 관리하는 열쇠꾸러미.

 

 문을 닫으려던 미로는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서 잠들어 있는 키리의 곁으로 다가갔다.

 달빛이 어스름이 방안을 비추고,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은 어쩐지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아 미로는 더욱 숨을 죽였다.

 

 

 잘그락.

 

 방안에 침묵이 가득했던 탁에 아주 작은 소음도 크게 느껴졌다.

 열쇠꾸러미를 손에 꾹 쥔 미로는 키리가 깨어나기 전에 서둘러 그 방을 나섰다.

 

 

 

 -어이, 내 말 들려?

 

 키리의 방을 벗어나 다시 계단이 있던 방향으로 복도를 거닐던 미로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오자 더욱 벽으로 몸을 밀착시키며 목소리를 낮췄다.

 

 "뭐야, 왜 이제야 연락해요. 무슨 일 있었어요?"

 -순찰 도는 사병이 있어서. 반대쪽 복도로 갔나보군. 계단을 올라서 오른쪽이야. 연락이 늦어져서 미안하군.

 

 한숨을 내쉰 미로가 아니라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다다른 복도 끝자락, 중앙 계단에서 키리로 완벽히 변장을 마친 헨리와 마주쳤다.

 

 "세상에."

 

 조금 전 잠든 키리를 그의 방에서 보고 왔는데도 흠칫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 꼬마, 솜씨가 대단하네요."

 

 어깨를 으쓱인 헨리가 미로와 합류하여 오른쪽 복도로 꺾어졌다.

 

 

 -곧이야. 중심부에 위치한 방.

 

 조금 더 가면 렌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거대한 대저택은 마음이 불편했지만 렌 말고도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러니 서둘러야 했다.

 

 마크가 안내한 중앙 계단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진 복도.

 다시 그 중앙에 존재하는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짧은 복도.

 

 그 중앙에 위치한 기가 죽게 만드는 거대한 문. 그리고 그 앞을 병사 둘이 지키고 있었다.

 

 "저기인 것 같네."

 

 낮게 중얼거리는 미로의 말에 수긍하듯 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로는 키리와 조금도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는 헨리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나 똑같이 생겼으니까 병사들도 못 알아챌 거야. 잠시만 주의를 끌어줘. 금방 재울게."

 

 고개를 끄덕인 헨리가 몸을 똑바로 세워서 천천히 안쪽으로 꺾어진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운 저택이었지만 복도는 촛불로 밝히고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오는 이는 모두가 병사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구조였다.

 

 헨리가 저벅저벅 그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은 아는 얼굴을 반겼다.

 

 "이 시간엔 어쩐 일이십니까?"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일을 끝내고 왔습니다."

 

 그러자 병사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벽에서 나뭇가지가 자라나고 있었다.

 

 "아가씨라면 지금-"

 

 그리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을 하던 병사의 입을 순식간에 틀어막았다. 같이 보초를 서던 다른 병사도 함께.

 나뭇잎이 풍성한 나뭇가지가 벽에서 자라나와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자, 병사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죄송."

 

 싱긋 웃으며 짧은 한마디를 남긴 헨리가 미로에게서 건네 받았던 수면초를 병사의 몸에 푹 찔러 넣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의 입이 봉해지자 복도에 모습을 드러낸 미로가 달려들어 잠재웠다.

 

 풀썩 쓰러진 병사들을 바닥에 내버려두고 나뭇가지는 제 할 일을 끝낸 듯 사라졌다.

 

 

 "저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병사들을 힐끔거리며 헨리가 문을 열려는 미로를 불러 세웠다.

 

 "이 일 끝나면 궁금한 거 한가지 물어봐도 돼요?"

 

 문고리를 잡았던 미로가 가만히 헨리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문고리를 돌려 방문을 열었다.

 

 "봐서."

 

 짧은 대답과 함께 두사람은 방안으로 들어서 재빨리 문을 닫아 복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착.

 

 문을 닫는 짧은 마찰음이 울리고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방안으로 고개를 돌린 미로와 헨리.

 어둠 속에서도 어지간히 넓은 방이라는 건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희미한 불빛이 비추는 방 한구석에 의자에 묶여 있는 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헨리는 그를 발견한 즉시 몰래 잠입한 입장이라는 사실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외쳤다.

 

 "렌씨!"

 

 한걸음에 그에게 달려가는 헨리를 뒤따라 미로도 그에게 다가갔다.

 만신창이인 렌이 인기척에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는 마주한 미간을 잔뜩 찌푸린 키리의 얼굴.

 

 "렌씨, 괜찮아요?!"

 

 숨을 헉! 하고 들이킨 렌이 몸부림치다가 의자가 뒤로 넘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넘어졌다.

 

 "꽤나 난폭한 짓을 했네."

 

 가까이 다가간 미로가 렌을 보며 중얼거렸다.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놓고 폭력이라.. 비겁하기 짝이 없어 미로가 딱 싫어하는 짓이었다.

 

 "렌씨! 저예요, 저! 헨리라고요!"

 

 몸부림치는 렌을 헨리가 진정시키고 다시 의자를 일으켜 렌을 바로 앉혔다.

 

 "괜찮아요?"

 

 걱정스레 묻는 헨리에게 대답할 기력도 없는지 렌은 그저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렌은 놀란 얼굴로 헨리를 바라보고는 이내 얼굴을 구겼다.

 아마 변장하고 있는 그 얼굴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는 얼굴을 가린 미로를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보기에 미로가 천을 슬쩍 내려 얼굴을 내비쳤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던 렌이 말끝을 흐리며 미로의 등뒤로 시선을 옮겼다.

 

 "..네이-..."

 

 그의 시선이 옮겨가자, 미로가 다시 천을 올려 얼굴을 가리고는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며 달려드는 채찍을 가벼운 몸짓으로 피했다.

 

 또각또각.

 구두와 바닥이 만들어내는 마찰음이 침묵 위에 내려앉았다.

 

 어둠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풍성한 치맛자락을 치렁치렁 늘어트리고는 붉게 칠한 손톱이 돋보이는 하얀 손으로 채찍을 꽉 움켜쥐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난 손님을 초대한 기억이 없는데."

 

 바닥에 끌릴 만큼 긴 채찍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멜리사 타마린드.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그녀에게 세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이 넓은 방에 불빛이 머무르는 곳은 렌이 묶여 있던 이곳 뿐이었다.

 슬쩍 방안을 훑어보자, 여느 귀족 여식의 방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취미 한번 고상하네."

 

 렌을 힐끔거린 미로의 말에 채찍을 손에 꽉 움켜쥔 그녀가 입술을 비틀었다.

 

 "그거, 내가 먼저 잡아왔으니까 손대지 말아 줄래?"

 "굳이 누가 먼저, 이런 걸 따진다면 내가 먼저니까."

 

 다시 렌에게 돌아서려는 미로를 향해 멜리사가 채찍을 휘둘렀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걸 피한 미로가 똑바로 멜리사를 마주했다.

 

 그녀는 분한 듯 미로를 노려보다가 이내 렌의 곁에 서있는 헨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여자 여기까지 들어올 동안 뭐했어! 당장 내쫓아!"

 

 경계태세로 그녀를 응시하던 헨리는 그녀가 대뜸 자신에게 짜증섞인 고함을 내지르자, 황당함에 눈썹을 치켜세웠다가 이내 자신이 지금 누구의 모습으로 그곳에 서있는지 뒤늦게 깨닫았다.

 

 "아.."

 

 늘 봐왔을 제 주인마저 혼동할 정도다.

 헨리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아인의 실력을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네요. 그 꼬마."

 "그렇지?"

 

 미로가 자랑스러운 듯 씩 웃었다.

 

 혼란스러운 눈으로 키리와 미로를 번갈아 바라보는 멜리사를 보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미로가 한껏 비꼬며 말했다.

 

 

 "뭐야, 아직도 얘가 네 수행인으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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