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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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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21     조회 : 296     추천 : 4     분량 : 5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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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리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이해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렌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는데 헨리가 아무리 용을 쓰고 풀려고 해도 풀어지지 않았다.

 부숴볼까 했지만 렌의 손이 다치지 않게 부술 자신은 없었다.

 

 한참을 열쇠구멍에 가는 철사를 집어넣고 낑낑대던 헨리는 결국 미로를 향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안풀어져요.."

 "뭐하는 거야, 정말."

 

 아직도 렌을 풀어주지 못한 헨리를 한심하게 바라본 미로가 슬쩍 렌의 손에 채워진 수갑을 바라봤다.

 혼란스러워 하던 멜리사는 이내 조금 여유를 되찾은 얼굴로 웃었다.

 

 "그건 풀 수 없을 거야. 반(反)마력석으로 만든 수갑이거든. 표면에 닿는 마력은 전부 흡수하지. 열쇠가 없으면 빠져나가지 못해."

 

 왕국군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수갑을, 노블이라 한들 한낱 귀족 여식이 가지고 있는 것이 못마땅한 미로가 미간을 와락 구겼다. 그리고는 가만히 멜리사를 응시하던 미로가 빠르게 방안을 훑었다.

 

 가지런히 정돈 되어있는 방안. 고용인들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리고 딱히 손대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서랍 같은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열쇠가 어딘가에 놓여 있지도 않았다.

 

 수갑을 풀려면 열쇠가 필요하다. 열쇠.. 열쇠..

 

 어두운 방안을 훑으며 열쇠를 보관할 만한 곳을 찾던 미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열쇠?'

 

 그러고보니 수행인의 방에서 그의 머리맡에 놓인 열쇠꾸러미를 발견했었다.

 미로는 그 방에서 챙겨온 열쇠꾸러미를 헨리에게 던졌다.

 

 "우왓."

 

 얼결에 열쇠꾸러미를 받아 든 헨리.

 

 "되는 거 있나 해봐."

 

 도대체 이런 건 어떻게 가지고 있냐는 시선으로 미로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헨리가 열쇠를 바꿔가며 렌의 수갑을 풀려 노력하자 멜리사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어떻게 된 거야..! 키리! 감히 노블을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악에 바쳐 고함을 내지른 멜리사가 렌과 헨리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하지만 미로가 손을 뻗자, 채찍은 허공에 맞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건 마력을 지닌 이. 마력을 지닌 여자라고 한다면 마녀 뿐이었다.

 

 "하.. 염력계 마녀? 이젠 찾아보기도 힘든 마녀를 이렇게 만나다니.. 이건 무슨 운일까?"

 

 비꼬듯 말하는 멜리사를 향해 미로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불운?"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채찍을 휘둘렀지만 닿지 않았다.

 

 늘 그녀가 휘두른 채찍은 목표물에 닿았었다. 그건 그녀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노블의 여식. 그녀가 가진 그 위치가 목표물을 무겁게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을 뿐.

 

 채찍을 꽉 움켜쥐며 입술을 비틀어 올린 멜리사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뭘 어쩔 셈이야? 저거, 데리고 나가게 놔두지 않을 거야 난. 하지만 날 건드릴 수는 없겠지. 노블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자는 물론, 그의 가족도 건드리면 안되니까."

 

 경고하는 듯 말하는 그녀를 보며 미로는 가소롭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랬다. 가소로울 수밖에.

 

 "노블이면 국법을 어겨도 되나? 마범죄자를 빼돌려도 돼?"

 

 미간을 구기는 멜리사를 바라보며 미로는 작은 주머니에서 망각초를 꺼냈다.

 

 "어차피 넌 아무것도 기억 못할 거야."

 

 빠르게 미로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 망각초는 허공을 가르고 날아,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어 드러난 멜리사의 하얀 어깨에 푹 하고 꽂혔다.

 

 "이번엔 이정도로 넘어가지만.. 두 번은 없어."

 "이게 뭐-"

 

 쿵.

 

 한순간에 몸 전체에서 힘이 빠져나간 멜리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어차피 기억 못하겠지만."

 

 쓰러진 멜리사를 보며 붕어처럼 입술을 뻐끔거리던 헨리가 기가 찬 듯 물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한쪽 눈썹을 일그러뜨린 그 얼굴이 우스워 픽 웃은 미로가 서둘러 수갑에 맞는 열쇠나 찾으라 말하자 헨리가 다시 열쇠를 수갑게 꽂았다.

 

 힘겹게 얼굴을 든 렌이 뚫어져라 미로를 바라보았다. 미로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다 렌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떼자 미로가 재빨리 그 말을 가로막았다.

 

 "미로."

 

 의아한 얼굴을 하는 렌에게 미로가 재차 강조하듯이 다시 말했다.

 

 "미로. 미로라고 불러.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 말조심 하란 말이야."

 

 입을 꾹 다문 렌이 살짝 고개를 떨구자, 미로가 짧은 한숨 끝에 헨리에게 다가가 열쇠꾸러미를 빼앗았다.

 어째서인지 수많은 열쇠들 사이에서 맞는 것을 찾아내지 못하던 것을 미로가 아무 열쇠나 수갑의 열쇠구멍에 집어넣자 딱 맞아 철컥하고 수갑이 열렸다.

 

 '허..' 하고 황당한 얼굴로 수갑을 풀던 헨리는 수갑이 손에서 떨어져 나가자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나가는 렌을 더욱 당황스런 얼굴로 바라봤다. 마력을 봉하던 마력석 수갑이 풀어지자 렌은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며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며 멜리사의 드레스룸 입구로 향했다.

 

 "왜, 왜 그래요, 렌씨?!"

 

 당혹스러워 하는 헨리의 목소리도 무시한채 렌은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달려 드레스룸 입구에 다다랐다.

 어찌나 몸이 상했는지 달려나가는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여서 미로는 미간을 구기고는 이미 바닥에 쓰러진 멜리사를 경멸의 눈초리로 내려다봤다.

 

 어떻게 사람을 하루만에 저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야! 이게 뭐야!"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임무교대를 하러 왔던 병사들에게 문 앞에 쓰러진 병사들이 발견된 것이다.

 목소리가 들려오자 미로와 눈빛을 주고받은 헨리가 즉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렌에게로 달려갔다.

 방문 밖에서는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렌은 드레스룸 입구에 세워진 장식장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안에 걸려있던 월계수 모양의 펜던트가 달린 긴 목걸이를 꺼냈다.

 

 '드디어..'

 

 월계수 펜던트를 손에 꼭 쥐는 렌을 달려온 헨리가 부축했다.

 

 쾅! 쾅!!

 

 "아가씨!! 문을 열어주십시오! 무사하십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아가씨!!"

 

 뛰어다니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내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우는 병사들 덕분에 헨리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목걸이를 손에 꼭 쥐는 렌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본 헨리는 미로가 인도하는 대로 창가를 향해 그를 부축했다.

 

 커다란 창문을 연 미로가 근처에 있는 정원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단단하고 굵은 나뭇가지가 창틀을 너머 방 안까지 들어왔다.

 

 쾅쾅!!

 

 "아가씨!! 무사하십니까?!!"

 

 문을 두드리는 굉음이 점점 커지는 것을 들으며 헨리와 렌은 그 굵은 나뭇가지에 올라섰다.

 미로가 손을 움직이자, 두 사람을 태운 나뭇가지가 방 밖으로 나갔다.

 

 서둘러 문 주위에 수면초로 만든 향초를 피운 미로가 코를 틀어막고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본채 외벽에 매달려 있는 미로를 보며 헨리가 미간을 구겼다.

 

 "뭐하십니까? 어서 이리로 오세요..!"

 

 보는 사람이 더 불안하게 외벽에 매달려 있던 미로는 더욱 위태롭게 한손으로 매달리며 다른 한손을 헨리와 렌을 향해 뻗었다. 그녀가 나무쪽으로 오려는 건 줄 알고 손을 뻗었던 헨리는 나무가 점점 그녀에게서 멀어지자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렸다.

 

 "이게 무슨..!"

 "먼저 돌아가 있어. 난 잠시 확인할 게 있으니까."

 "잠깐..!!"

 

 헨리의 말은 듣지도 않고 미로는 나무를 움직여 두 사람을 노블의 대저택을 감싸고 있는 높디높은 담벼락 너머로 보냈다. 말을 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지 눈을 부릅뜬 렌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미로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눈을 마주쳤을 뿐, 그 목소리는 닿지 못하고 두 사람은 담벼락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쾅! 쾅! 콰앙!!

 

 이내 굉음을 내며 문을 부수는 데에 성공한 병사들이 물밀듯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아가씨!!"

 

 목청껏 멜리사를 부르며 쏟아져 들어온 병사들은 쓰러져 있는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멜리사를 살피기 위해 다가간 병사가 그녀를 살피다 말고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뭐야! 왜 이러는.."

 

 외벽에 매달려 창문 너머로 이를 지켜보던 미로는 멜리사를 살피던 병사들이 하나 둘 쓰러지고 이내 모두가 쓰러져 잠들었을 때에야 코를 단단히 틀어막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이들을 한번 가볍게 훑고는 서둘러 방을 나서 방문을 닫았다.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한껏 목소리를 낮춘 리사가 헨리를 다그쳤다.

 얼굴을 뒤덮었던 키리 분장을 뜯어내고 한숨을 내쉬는 헨리를 노려보다 자리를 뜨려는 아인을 마크가 붙잡았다.

 

 "이거 놔! 내가 미로한테 가야겠어!"

 

 발버둥치는 아인의 입을 틀어막은 마크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리사 역시 걱정을 지우지 못하고 이마를 짚었다.

 

 "죄송해요.."

 

 잔뜩 풀이 죽은 헨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리사가 입술을 꾹 깨물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미로가 고집부리면 어차피 말릴 수 없었을 거예요. 후.."

 

 이마를 짚었던 손이 스르륵 흘러내리며 리사의 눈읖 덮었다.

 고민을 하는 듯한 리사의 옷자락을 에밀리가 잡아당겼다.

 

 "리사. 이 사람 상태가 안 좋아요."

 

 에밀리의 목소리에 각자 굳어진 얼굴로 한숨만 내쉬던 세사람이 득달같이 렌에게 몰려들었다.

 

 "일단 이 사람부터 옮기는 게 좋겠어요. 지금 당장 치료해야 해요."

 

 리사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듯 발버둥치던 아인마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렌을 바라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구석이 없었다.

 피떡이 되어서 나타난 그의 모습에 제일 경악한 것은 마크였다.

 

 당장에 게이트로 쳐들어가 뒤집어 엎을 얼굴이라 리사와 헨리가 달려들어 붙들었었다.

 그러고 나자 이번엔 미로가 돌아오지 않음을 눈치챈 아인이 그녀의 행방을 묻자, 헨리의 대답에 아인이 저택으로 달려가려는 것을 마크가 붙잡은 것이었다.

 

 부드럽게 흩어지던 렌의 머리카락도 피가 덕지덕지 엉겨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몸, 얼굴 할 것 없이 상처투성이였다.

 눈두덩이는 붓고, 입술은 터지고.

 

 말할 기력도 없는 와중에 손에 쥔 월계수 펜던트의 목걸이는 절대로 놓지 않았다.

 미간을 잔뜩 구긴 채 험악하게 굳은 얼굴로 렌을 살피던 마크가 헨리에게 그를 맡겼따.

 그리고 약초를 조금 다룰 줄 안다며 에밀리가 헨리를 따라 나섰다.

 

 그때 지도 옆에 놓여진 손바닥만한 기계에서 미로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마크씨. 지하로 가는 길 좀 안내해 줘요."

 

 목소리를 낮춘 미로가 속삭이자, 귓가에 화가 난 듯한 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짓이지.

 

 너무 화가 난 리사를 뒤로하고 마크가 말했다.

 

 "이들이 지하실에 개인공간을 가지고 있다면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렌은 이미 여길 빠져나갔으니 괜찮아요."

 -그게 뭐가 괜찮아! 너 당장 안 나와?!

 

 기계 너머에서는 흥분한 듯한 리사와 아인이 당장 나오라고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이 다 잠든 덕분에 더 소란스러워지지는 않았지만 언제 다시 깨어날지 몰랐다.

 그러니 서둘러야 함으로 빠르게 저택 중앙에 자리한 큰 계단을 내려온 미로가 마크를 재촉했다.

 

 "여기서 이렇게 실랑이 하는 게 더 위험해요. 서둘러서 둘러볼 테니까 얼른..!"

 

 마크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계단 뒤로 돌면 작은 문이 있어. 그리고 들어가서 통로를 지나면 지하실로 가는 문이 있어.

 

 리사가 마크를 다그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미로는 개의치 않았다.

 

 

 "고마워요."

 

 그리고는 계단을 내려와 계단을 끼고 뒤쪽으로 걸어가자, 성인 남성은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문이 나왔다.

 

 

 다행히도 잠겨 있지 않아서 미로는 곧장 문을 열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깔려 있는 통로로 망설임 없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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