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첫회보기
 
/13
작성일 : 17-11-24     조회 : 325     추천 : 5     분량 : 5138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눅눅한 공기가 가득 찬 칠흑같이 어두운 통로.

 손으로 벽을 짚어야 할 정도로 한치 앞도 안보였다.

 조심스레 내민 발걸음도 밀폐된 통로에 소음이 되어 울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에 점점 미간이 구겨질 즈음, 차가운 철문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이번엔 단단히 잠겨 있어, 미로는 그곳에서 한참이나 잘그락거리는 소음을 만들어내며 열쇠꾸러미의 열쇠를 문에 맞춰보았다.

 

 

 

 

 ***

 

 

 "알려주면 어떡해요, 그냥 나오라고 했어야죠..!"

 

 안절부절 못하는 리사를 보며 아인의 얼굴은 걱정으로 더욱 일그러졌다.

 

 "그럼. 거기서 계속 실랑이 하고 있어? 최대한 오래 머물지 않게 하는 게 최선이야."

 

 단호한 마크의 목소리에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좁힌 리사가 불빛이 움직이는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후...."

 

 깊은 한숨을 내쉬는 리사를 보고는 굳어 있는 아인을 힐끔 바라본 마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지도와 손에 든 검은 기계를 리사에게 넘겼다.

 

 "저 꼬맹이 잘 보고 있어라, 사고칠라."

 "어딜 가는 거예요?"

 

 손에 든 지도가 우그러들게 움켜쥐며 리사가 눈을 치켜 뜨고 마크를 노려보았다.

 아인도 의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자 마크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 안에. 그 아가씨 혼자서 애먹을 수도 있으니까."

 

 

 

 

 ***

 

 

 한참만에 무겁고 차가운 철문에 맞는 열쇠를 찾아낸 미로가 문을 열었다.

 

 철컹.

 쇠가 돌아가는 날카로운 소리가 통로에 울려 퍼지고 끼이익 하는 소름끼치는 소음이 귓가를 찔렀다.

 

 안으로 들어선 미로는 얼마 안가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돌계단을 타박타박 내려가니 눅눅한 공기가 끈적하게 몸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어둠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에 미간을 좁힌 미로가 계속해서 걸음을 내디뎠다.

 

 

 

 

 차가운 창살. 차가운 바닥. 차가운 벽.

 온통 차가운 것들에 둘러싸인 어둡고 축축한 지하감옥.

 

 그곳엔 벌써 며칠째 그곳에 갇혀 있는 것인지 더러워진 몰골로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여자나, 잡혀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창살을 두들기는 여자들이 있었다.

 

 "내보내 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되돌아오는 것이 자신의 메아리 뿐인 것에 지쳐 나가 떨어졌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흑.. 으흑.."

 

 차가운 벽에 기대어 앉아있던 여자 하나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시끄러워, 울지 마."

 

 창살을 두들기던 여자는 미간을 잔뜩 구기고 흐느끼는 여자에게 짜증스레 말했다.

 

 "어차피 며칠 여기서 죽은 듯이 있으면 꺼내 줄 거야."

 

 신경이 날카로워진 여자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다른 여자 하나가 의연한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마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곳은 멜리사 타마린드의 처벌의 방. 이렇게 며칠 감금했다가 화가 풀리면 다시 꺼내 줄 거야. 그 후엔 그녀의 눈에 최대한 띄지 않게 사는 게 상책이야."

 

 

 타박타박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던 미로는 마지막으로 들려온 말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러한 횡포가 멀쩡히 행해지고 있다니.

 

 "왜요? 이곳에서 나가면 왕국군에 알리면 다시 잡혀올 일은 없을 거예요!"

 

 창살 앞에 주저앉은 여자가 불안한 눈빛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체념한 듯 등을 기대로 앉아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노블의 지휘는 왕국군 보다 높아. 그들이 뭘 할 수 있겠어."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 왕국의 최고권력자, 왕족이 권력을 독점해 독재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노블이다. 그 취지는 그러했으나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모든 노블이 그렇게 건전한 취지인지 장담할 수 없었다.

 

 실제로 미로가 보기에 그 중 일부는 잘라내야만 하는 썩은 부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참담한 심정으로 창살 밖을 바라볼 즈음, 어둠속에서 미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발견한 창살 앞에 있던 여자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누, 누구세요?"

 

 천으로 눈만 빼고 얼굴을 가린 긴 장발의 여인. 멜리사 타마린드는 아니었다.

 미로는 단단히 잠겨 있는 감옥 문으로 다가가 자물쇠를 손에 쥐었따.

 

 손에 닿은 부분부터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이 자물쇠도 반마력석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미로는 키리의 열쇠꾸러미를 다시 꺼내 들며 낮게 말했다.

 

 "무슨 일 때문에 이런 곳에 갇혀 있습니까?"

 

 자물쇠에 열쇠를 맞춰보며 묻는 그녀를 향해 이미 여러 번 이곳에 잡혀 온 것으로 보이는 여자가 미간을 구기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잘못한 일이 있어 잡혀온 것이겠습니까? 그저 타마린드 영애의 심기가 불편할 때에 눈에 띄었기 때문이겠지요."

 "노블이 이러한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걸 왕궁에 알릴 생각은 못하셨습니까?"

 "왕궁에 알린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어차피 윗분들 다 똑같지요."

 

 

 평화롭기만 한 나라. 살기 좋은 왕국.

 그것은 밖에서 보는 이들이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왕국밖에서 마물이 침입하지 못하지만 그 결계가 왕국내의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물쇠에 열쇠를 꽂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력이 빨려 들어가는 자물쇠를 직접 잡을 수 없어 천으로 감싸 쥔 미로가 빠르게 열쇠들을 맞춰보며 감옥에 갇힌 여자들을 훑었다.

 

 하나같이 한창 예쁠 나이에, 굳이 그 나이가 아니어도 예쁠 것만 같은 여자들이었다.

 

 망각초로 잠재워 요 며칠의 기억을 잊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 정도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시 돌아가 한대 걷어 차줄까 하는 고민마저 하며 열쇠를 맞추자, 드디어 지하감옥 문에 꼭 맞는 열쇠가 자물쇠와 만나 철컥하고 돌아갔다.

 

 눈을 동그랗게 떴던 미로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물쇠를 뽑아 집어 던지고는 문을 열었다.

 

 "나오세요. 여기서 내보내 드리겠습니다."

 

 창살 앞에 앉아있던 여자가 여자가 미로의 말에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울먹이던 여자도 주춤주춤 일어나 미로가 내미는 손을 잡고 나왔는데 체념한 듯 벽에 기대어 있던 여자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얼굴을 가린 미로를 바라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의아한 얼굴로 미로가 바라보자, 여자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렇게 탈출해서 또 타마린드 영애의 분노를 사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에 감옥을 빠져나왔던 다른 여자들이 흠칫하여 불안한 얼굴로 눈치를 살폈다.

 

 "도망친 것을 안다면 더한 벌을 내릴 것입니다. 차라리 며칠 더 갇혀 있다가 풀려나는 것이 안전할 겁니다."

 

 미로는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사실일 테니까.

 하지만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미로는 다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곧장 왕국군의 부대로 데려다드리겠습니다. 그곳에 며칠 머문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왕국군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하시고요."

 "그러니까 이곳을 멋대로 빠져나가면 결국..!"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내는 여자의 말을 미로가 잘랐다.

 

 "제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여자의 화가 언제 풀릴 줄 알고 이곳에서 계속 기다립니까? 화가 영영 안 풀리면요? 그래도 계속 기다리실 겁니까?"

 

 짜증을 내던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매번 이곳에 머문 기간은 다 달랐다.

 어둡고 밀폐된 곳에 대한 공포를 느낄 만큼 그녀는 이 지하감옥이 끔찍했다.

 멜리사 타마린드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왕녀님은 이런 일을 그냥 두고 보실 분이 아닙니다."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녀는 미로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안 생기게 해주실 수 있나요?"

 

 미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들은 전부 미로를 따라 지하실을 벗어났다.

 어두운 계단을 올라, 여자들을 지하실로 향하는 통로로 피난 시킨 미로는 대답을 하지 않았던 대신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나무뿌리로 막아버렸다.

 

 겹겹이 싸여 어둠을 봉쇄해버리는 나무뿌리를 본 몇 여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을 이끌고 계단 뒤의 작은 문을 빠져나온 미로는 조심스레 밖을 살폈다.

 어차피 이 인원으로 병사들 눈을 피해 빠져나가는 것은 무리다.

 

 

 "리사, 지하실에 갇혀 있던 사람들 데리고 지금 나갈 거야. 바로 출발할 수 있게 해줘."

 -뭐? 지하실에 사람이 있었어?!

 

 미로가 귀에 꽂혀 있는 기계를 손끝으로 매만지며 말하자, 지금껏 잔소리 외에는 조용히 있던 리사가 경악하며 물었다.

 

 -많아? 어떻게 데리고 나오려고?

 

 리사의 물음에 미로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정면돌파."

 -뭐어?! 아니, 잠깐, 지금,

 

 또 다시 말리려는 것이 분명한 리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로는 뒤돌아 지하감옥에서 꺼내 온 여자들을 바라봤다. 병사들이 이들의 얼굴을 본다 한들 왕국군의 보호아래에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미로가 먼저 움직였고, 여자들은 불안에 떨며 미로를 뒤따랐다.

 

 철컥.

 끼이이이.

 

 

 "꺄악!"

 

 그리고 저택의 문을 열고 나온 그녀들을 기다리는 건, 저택을 둘러싼 병사들이었다.

 현관부터 넓은 저택의 정원을 빠짐없이 둘러싸고 포위망을 펼친 병사들.

 

 병사들을 발견한 여자들이 공포에 떨며 허둥지둥했지만 미로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멜리사의 방에서 잠재운 병사들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상태였던 데다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을 확률이 더 컸기에.

 

 "움직이지 마라! 감히 노블의 저택에 침입하다니, 당장 얼굴을 보여라!"

 

 병사 하나가 외치자, 미로는 가소로운 듯 실소를 터트리고는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나무뿌리가 그녀의 뒤에 있던 여자들을 모두 들어올렸다.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혼비백산한 그녀들을 보며 병사들이 움찔거렸다.

 

 생물을 다루는 마법이 있다는 얘기를 일평생 들어본 적도 없었다.

 기이한 일을 행하는 여자. 하지만 마녀의 능력은 주술과 염력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아니, 그 외에 능력이라고는 저주밖에 없을 터였다.

 

 "당장 잡아!!"

 

 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기에 흩어지자 병사들은 저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마치 그것이 신호라도 되었던 양.

 

 미로는 미간을 구기며 소리친 당사자를 향해 고개글 돌렸다.

 수면초로 잠재웠던 키리였다.

 

 일단 여자들을 담 너머로 보내는 것이 먼저였다. 나무뿌리를 움직인 미로가 재빨리 그녀들을 담 너머에 넘기며 몰려드는 병사들을 상대했다.

 

 그들은 금세 미로를 둘러싸고 막무가내로 들고 있는 창 등을 내질렀다.

 

 

 "아가씨께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빽 소리친 키리가 병사들 뒤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미로를 노려보았다.

 달려들던 병사의 발목을 걷어찬 미로가 넘어진 그를 밟고 뛰어올랐다.

 

 "절대 놓치지 마라!!"

 

 어릴 적부터 단련 해온 몸이지만 이렇게나 많은 병사들을 상대로는 무리였다.

 

 땅에서 나무뿌리가 솟아 병사들을 붙잡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모두는 무리였다.

 솟아난 나무뿌리들 사이로 달아드는 병사들을 걷어차던 미로가 뒤쪽에서 찔러오는 창을 피하는 타이밍이 늦어져 기어코 팔에 상처를 냈다.

 

 "읏-"

 

 이를 악 물고 창을 걷어찬 미로가 뿌리들 사이로 뛰어오르는데, 상처가 나며 잠시 흐트러졌던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병사 하나가 미로의 팔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탕!!!

 

 

 날카로운 굉음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들었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34 /33 1/27 287 0
33 /32 1/22 286 0
32 /31 1/17 287 0
31 /30 1/11 285 0
30 /29 1/7 304 0
29 /28 1/4 304 0
28 /27 12/29 283 0
27 /26 12/24 300 0
26 /25 12/20 284 1
25 /24 12/17 285 1
24 /23 12/15 294 2
23 /22 12/13 283 3
22 /21 12/12 291 3
21 /20 12/10 312 3
20 /19 12/8 281 3
19 /18 12/7 313 3
18 /17 12/5 299 2
17 /16 12/1 312 4
16 /15 11/30 293 4
15 /14 11/26 292 5
14 /13 11/24 326 5
13 /12 11/21 297 4
12 /11 11/19 291 4
11 /10 11/16 270 4
10 /9 11/14 315 5
9 /8 11/13 314 5
8 /7 11/11 311 5
7 /6 11/9 303 5
6 /5 11/7 294 5
5 /4 11/5 275 5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