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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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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30     조회 : 293     추천 : 4     분량 : 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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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만물상의 마녀를 찾으러 왔다."

 

 

 처음 찾아왔을 때의 공소남 따위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었다.

 아쉬울 것이 없어진 키리는 거만하고, 억압적이었다.

 그는 손에 쥔 하얀 종이를 다시금 힘주어 구겨 쥐며 똑바로 리사를 마주했다.

 

 

 "마녀는 어디있지?"

 "글쎄요. 이곳은 많은 손님들이 찾는 펜션입니다. 모든 손님을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요."

 

 미로와의 만남 당시 함께 있었지만 당당히 말하는 리사의 태도에 키리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렇다면 방문 기록을 보도록 하지."

 

 제멋대로인 그의 태도에 리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죄송하지만 손님들의 정보는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그게 이 펜션을 운영하는 제 철칙이기도 하고요."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노블의 명령에 거역할 셈인가?"

 

 마치 자신이 노블이라도 되는 양 거만한 그의 태도에 리사는 더욱 열이 뻗쳐왔다.

 

 매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키리의 등뒤로 수십의 병사들이 보였다. 아마도 노블의 사병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시간을 끌어줘야 미로가 무사히 에스타스를 빠져나갈 것이다.

 

 

 "노블의 명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뭐?"

 "노블이 무슨 명을 했는지는 몰라도 영업소에 난입하여 이러한 행패를 부리는 것을 명했을 리가요. 명색이 왕국의 최고귀족이라는 분이."

 

 비꼬는 말투였지만 옳은 말이었다.

 하지만 키리에게 지금 그러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리사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물론 내용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이것이 노블의 서찰이다."

 "내용을 확인해도 되겠는지요."

 

 덤덤한 리사의 태도에 키리가 이빨을 드러냈다.

 

 "감히 너 따위가 노블의 서찰을 보려 하느냐!!"

 

 역정을 내는 키리를 당장이라도 때려눕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리사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키리의 고함소리에 병사들이 금장이라도 달려듯 테세를 취하자, 여린 목소리가 그들을 막아 섰다.

 

 "그 마녀는 이제 이곳에 없어요."

 

 입술을 깨무는 리사의 앞을 막아 서며 에밀리가 키리의 눈빛을 대신 받아냈다.

 에밀리의 말에 키리가 눈썹을 치켜 세웠다.

 

 "없다?"

 "이제 이곳에는 없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니 알아서 찾아보세요."

 "모를 리가 있나."

 

 매서운 눈빛으로 에밀리를 쏘아보았지만 에밀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런 눈빛, 에밀리에게는 오히려 익숙한 쪽이었다.

 누베스의 그들과 비교하면 저런 눈빛은 오히려 선한 눈빛으로 느껴질 만큼.

 

 

 "이곳에 마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를 끼친다면 즉시 가디언에 알리겠습니다. 왕국군에도 알릴 거예요. 그들이 정말 노블과 관련된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위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

 

 그 질문에 키리는 답할 수 없었다.

 노블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자신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가디언과 왕국군 모두 백성을 위해 움직이는 단체이니 오히려 자신들이 곤란해질 터였다.

 노블의 지휘는 그들보다 높아, 노블까지는 건들 수 없을 테지만 자신들이 문제가 될 듯싶으면 노블에게 간단히 버림받을 것이다.

 

 키리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에밀리가 무표정하던 그 얼굴에 살기를 띄웠다.

 

 차갑고 매서운 그 눈빛에 거만한 태도의 키리는 흠칫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 작고 왜소한 여자아이.

 자신이 아무리 매섭게 노려보아도 꿈쩍 않던 그 아이가 뿜어내는 살기가 온몸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도 좋아요."

 

 

 그 다른 방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에밀리의 살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데다가 어딘가 보통 여자아이 같지가 않았다.

 

 수적으로 당연히 이쪽이 우세했다. 게다가 늘 훈련을 받고 있는 사병들.

 저쪽은 그저 펜션을 운영하는 여자 하나에 작은 여자아이 하나.

 누가보아도 뻔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저 작은 아이가 뿜어내는 아우라. 보통 것이 아니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싶어 키리는 이내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만에 하나라도 저 믿는 구석이 노블보다 지휘가 높거나, 다른 노블이라면 일이 귀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큼.."

 

 괜스레 목을 가다듬은 키리는 펜션 안을 스윽 훑어보고는 뒤돌아 섰다.

 

 "이곳에 없는 듯하니 서둘러 찾아라. 아직 에스타스를 빠져나가지는 못했을 것이야."

 

 그들이 에밀리가 주술의 힘을 타고난 마녀임을 알았다면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도, 그냥 돌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보기 드문 마녀 중에서도 더욱 흔치 않은 주술을 타고난 마녀를 그냥 놓칠 리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우르르 돌아가자, 리사가 큰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문을 닫았다.

 

 "미로가 떠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여기서 더 시간을 끌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스런 얼굴로 리사가 말하자, 에밀리도 조금 걱정은 되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로라면 괜찮을 거예요. 게다가.."

 

 말끝을 흐리며 펜션을 둘러본 에밀리가 다시 리사를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이제 리사는 내가 지켜야죠. 리사와 이 펜션을 내 1순위에 두기로 했어요. 전 여길 지켜야죠."

 

 에밀리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리사가 이내 싱긋 미소 지었다.

 

 

 "그래, 든든하다."

 

 

 

 

 ***

 

 

 렌을 만나러 가는 길.

 찜찜한 기분에 사로잡힌 미로는 서둘러 에스타스를 벗어나고 싶었다.

 

 가발이 벗겨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

 

 은밀히 렌과 마크를 만나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수레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미로가 아인에게 말을 꺼냈다.

 

 "아, 아인. 수레 끌고 먼저.."

 "응?"

 

 말을 하던 미로가 뒷말을 삼켰다.

 누베스에서 수레와 함께 혼자 두었던 아인이 어떤 모습이 되어 자신의 앞에 나타났었는지 기억해낸 것이다.

 다시 아인을 혼자 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아무것도."

 

 그저 걸음을 서두르는 것만이 미로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찜찜한 기분은 그대로였지만 뭐.. 설마 벌써 자신을 쫓아오지는 않겠거니 싶었다.

 

 

 마크의 골동품 가게에 들어선 미로와 아인.

 수레는 저번에 렌을 발견했던 가게의 뒷문이 있는 곳에 세워 두었다. 수레가 눈에 띄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했기에.

 

 

 "우와.."

 

 입을 떡 벌이며 감탄하는 아인. 금세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었다.

 

 

 "왔나."

 

 안쪽으로 마크가 걸어 나오자, 미로가 싱긋 미소 지으며 너울을 벗었다.

 

 "표면상으로 진열해 놓은 물건 말고.. 저번에 그거 같은 물건들을 보고 싶은데요."

 

 픽 웃은 마크가 두 눈을 반짝이는 아인을 힐끔 보고는 따라오라는 듯 가볍게 손짓하며 등을 돌렸다.

 

 

 "들어와."

 

 마크를 따라 카운터 뒤로 들어가니, 저 앞에 진열된 잡동사니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한 희귀한 물건들이 잔뜩 있었다. 뭐가 뭔지 잘 알 수도 없는 물건들이었다.

 

 

 "마력이 담긴 물건인 거죠?"

 

 눈을 가늘게 뜨며 턱을 매만지는 미로에게 마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긍정의 제스처를 보이자, 미로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마력을 물건에 주입시키는 기술이 왕국에 있던 가요? 한번도 왕국 내에서 이런 물건을 본 적도 없고, 그런 기술이 있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로단테의 기술이 아니기는 하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마크를 힐끔 바라본 미로가 시선을 다시 물건들을 향해 옮겼다.

 

 "로단테 출신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마크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입가와는 다르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렌도 그렇겠죠?"

 

 마크과의 대화에 끼어들며 나타난 렌이 미로의 물음에 대신 답했다.

 

 "물론."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아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편해 보였다.

 아니, 불편한 것이 당연한 상처였다.

 하루만에 이렇게나 상처를 입을 만큼 고문을 당했다면 정신이 온전하기도 힘들 텐데 렌은 그 부분은 멀쩡해 보였다.

 

 마치 고문 따위 받지 않은 사람처럼 멀쩡했다. 다만 몸이 만신창이였을 뿐.

 

 

 "벌써 움직여도 돼?"

 "하지만 날 데리러 온 거잖아?"

 

 렌의 말에 미로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렇지."

 

 대저택에서 탈출하던 날 밤. 확실히 그런 말을 하기는 했었앋.

 응급처치를 끝낸 그에게 뒤늦게 나타난 미로가 픽 웃으며.

 

 '네이핀의 이름을 입에 올렸으니 넌 이제 날 따라와야 해.'

 

 하지만 렌은 알고 있었다.

 노블의 손에 끌려가던 날부터.. 이미 자신은 이제 에스타스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을. 그런 자신을 알고 미로가 괜스레 그런 말을 한 것도.

 

 고개를 돌린 미로가 마크를 바라보았다.

 

 

 "함께.. 가실래요? 손재주가 아주 탐이 나는데요."

 

 그러자 마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확인해볼 것도 있으니 왔던 곳으로 돌아갈 거야.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펜션 아가씨에게 말해 둬. 연락이 닿으면 만들어줄 테니."

 

 

 마크는 그날 목격했던 미로의 머리에 관하여 단 한마디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미로가 보였던, 마녀라고 해도 가지고 있다고 믿기 힘든 힘이나, 힘을 사용하면 물드는 머리카락.

 궁금할 법도 한데 그는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노블의 눈 밖에 났으니 에스타스에 머물기 힘들어진 것은 마크도 같았지만 마크는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만 말하고 자세히는 알려주지 않았다.

 

 무언가 자세히 말해줄 수 없는 입장은 미로도 같았기에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지금 바로 출발하는 거야?"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묻는 렌에게 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이렇게 급하게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이렇게 또 인원이 늘어버릴 줄은 몰랐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노블이 노리는 마범죄자를, 그들 손에 들어가도록 이곳에 방치하고 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노려지게 된 데에 어느정도 책임을 느끼고 있기에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다른 마범죄자와는 다르고, '네이핀'을 알고 있는 듯 하니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응.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인은 마크로부터 마력이 깃든 물건 중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뭐에 쓰는 물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녀올게."

 

 따로 작별 인사는 필요치 않았다. 노블의 대저택에서 빠져나와 요 며칠 마크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자신이 미로를 따라 나서는 이유도.

 

 

 마크의 입장에서는 렌을 혼자 두는 것이 영 마음이 불편했지만, 렌은 모르게 조치를 취했기도 했고 에스타스에 머물 수 없게 된 이상, 본국으로 잠시 돌아가는 것이 좋았다.

 

 이번에 돌아가면 그곳 상황도 살펴야 하고, 할 일은 많았다.

 

 

 굳게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긴 마크를 힐끔 본 렌이 복잡한 얼굴로 그를 한번, 미로를 한번 보았다.

 

 

 '그분께서 사라졌으면 했던 네이핀이 또 나타났어.'

 

 그러니 지켜보고 싶었다.

 그리고.. 외로운 역할만 하는 그 존재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나는.. 그 힘에 구원 받았으니까.'

 

 

 렌의 목소리를 떠올린 마크는 씁쓸한 미소를 애써 감추며 렌의 등을 시원하게 찰싹 하고 때렸다.

 

 "잘 다녀와."

 

 그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만물상에 렌이 올라타고, 다시 너울을 쓴 미로가 천을 걷어 마크를 똑바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신세를 졌습니다."

 "언제든지."

 

 살포시 천을 내린 미로가 걸음을 떼자, 마크가 나지막이 인사를 건넸다.

 렌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계속 머리에 맴돌아 어쩐지 마음이 쓰여서.

 

 

 "다녀와."

 

 그 말을 들은 미로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참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구나..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상냥하시네요."

 

 

 누군가에게는 그저 조금 마음을 쓴 것이, 누군가에게는 크게 와 닿는다.

 

 잠시 고개를 떨군 미로가 다시 걸음을 뗐다.

 

 

 "다녀오겠습니다."

 

 

 

 

 ***

 

 

 "절대 에스타스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게이트들부터 봉쇄해!!"

 

 키리의 말에 노블의 사병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의 손에 들린 하얀 종이가 더욱 일그러졌다.

 

 

 -반드시 붙잡아 두어라. 지금 즉시 그리로 갈 테니.

 

 

 짧은 그 말.

 그 마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은 알 수 있었다.

 

 

 노블의 자리에 앉은 자신의 주인이 한걸음에 달려오겠다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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