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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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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20     조회 : 285     추천 : 1     분량 : 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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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게 날아간 화살은 언뜻 보기엔 너무도 얇고 보잘것없어서 마물의 몸에 닿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순식간에 마물을 뚫고 지나 하늘에서 흩어졌다.

 의외의 결과에 어리둥절한 마물이 자신의 배쪽을 살피기도 전에, 화살이 지나간 자리를 땅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나무가 꿰뚫었다.

 

 마물의 배 한가운데를 관통하여 자란 나무는 그 위로 흐드러지는 나뭇잎을 아름답게 피워냈다.

 

 끼에에엑!!!!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물을 확인한 미로가 손에 든 활을 놓자, 그것은 다시 빛이 되어 허공에서 스러졌다.

 마물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은 이내 떨어져 나가고 미로는 등을 돌려 앉아있는 것도 버거운지 쓰러져 내리는 렌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힘없이 미로를 올려다보는 렌의 시선이 얼마나 짓씹었는지 다 찢어진 입술에 가 닿았다.

 렌의 상체를 받친 미로가 그를 조심스레 문턱에 기대게 하자, 렌이 손을 들어 미로의 입술을 짧게 훑었다.

 놀란 미로가 움찔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렌은 그 입술을 집요하게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너무 순식간이라 뭐가 지나간 건지 머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잠시 굳어졌던 미로는 화들짝 놀라 이미 정신을 잃은 렌에게서 두세걸음쯤 떨어졌다.

 

 

 [호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트로웰이 턱을 매만지며 렌을 관찰했다.

 그러더니 손등으로 입술을 스윽 훑는 미로를 돌아보고는 싸늘히 식은 시선으로 다시 렌을 바라봤다.

 

 

 [아가, 이 놈이 너한테 집적거리는 건 아니겠지?]

 

 이미 정신을 잃은 그를 두드려 깨워서 취조라도 시작할 기세의 트로웰을 보던 미로가 이마를 짚었다.

 

 

 "네 놈들.. 이게 끝이 아니다!!"

 

 그리고 기괴한 음성을 가진 마물의 말이 들려 왔을 때에야 다시 고개를 들었다.

 미로는 아직도 렌을 의심의 눈초리로 살피는 그를 불렀다.

 

 

 "트로웰."

 

 그리고는 그가 순식간에 렌에게서 떨어져 미로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검지손가락을 곧게 펴서 거대한 나무에 관통 당한 마물을 가리켰다.

 

 

 "저거, 정화시킬 수 있어?"

 [가능은 하다만. 아가, 네 체력이 못 버틸 게다.]

 

 미로는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이내, 멀지 않은 곳에서 열린 문 앞에 서있는 아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굴 한쪽에 피가 묻은 것에 얼굴을 굳히고 다가서려다, 그 옆에 아마도 그 피의 출처로 보이는 피범벅인 여자를 발견하고는 이기적이지만 아인이 다치지 않은 것에 안심했다.

 

 그 이기심에 짧은 한숨을 내쉰 미로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무사한 것을 확인했으니 되었다.

 

 

 "괜찮아. 저 마물이 사라지면 마을사람들이 렌의 치료도 해줄 테고."

 [저놈이 죽지는 않게 신경도 쓰마.]

 

 미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트로웰이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 흙색과 문양으로 물든 왼팔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등뒤에 서서 감싸듯 왼팔을 지탱한 트로웰이 나무에 박혀 고통스러워 하는 마물을 향해 팔을 겨눴다.

 트로웰의 힘이 나무를 타고 올라 마물에 닿자, 마물은 더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서서히 스러져갔다.

 

 미로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자신을 감싼 트로웰의 품은 아늑하고 포근해서 미로는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내 귓가에 그 목소리가 닿았을 때에는 더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가, 편히 쉬렴.]

 

 

 

 

 ***

 

 

 

 마물의 습격이 있고 열흘.

 헤르바의 주민들은 모두 약초밭에서 약초를 나르기 바빴다.

 

 쓰러진 미로 대신 렌의 치료는 마을사람들이 해야 했고, 쓰러진 미로 역시 체력이 많이 상한 상태라 회복을 해야 했다. 게다가 마물에게 공격받아 다쳤던 아이의 어머니도 치료해야 했다.

 

 남자들은 부서진 마을 공사와 각 지역에 약초 공급을 다시 시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여자들은 약초를 캐고 나르며 부상자의 치료로 정신이 없었다.

 

 

 미로가 깨어난 것은 마물 퇴치로부터 닷새.

 

 천천히 들어올린 눈거풀 사이로 제일 처음 보인 것은 아인의 얼굴이었다.

 줄곧 그녀의 곁을 지켰기에.

 

 

 "미로! 정신이 들어?"

 

 걱정스런 얼굴의 아인이 미로의 손을 붙들고 물었다.

 잠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본 미로는 그곳이 만물상 안이란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인을 향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렌은?"

 

 갈라진 목소리로 묻는 미로를 향해 아인은 미간을 찡그렸다.

 

 

 "회복 중이야. 지금 닷새만에 일어난 사람이 남 걱정할 때야?"

 

 얼굴을 찌푸리는 아인을 보며 미로는 픽 웃었다.

 닷새. 닷새나 잠들어 있었다는 말인가. 어쩐지 목이 잠겨 있었다.

 

 미로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아인이 얼른 미로의 팔을 붙들어 도왔다.

 과연 닷새나 잠들어 있었던 결과인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아인은 미로가 똑바로 앉자, 냉큼 약초를 띄운 차를 가져왔다.

 

 

 "자. 일어나면 이거 마시게 하랬어."

 

 따뜻한 물 위에 떠있는 약초를 보며 미로가 작게 미소 지었다.

 

 

 "마을사람이?"

 "응."

 

 차를 조금 들이킨 미로는 향긋한 약초 냄새에 기분이 좋아지는 듯 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풀냄새, 나무냄새, 등등.

 

 조금 진정이 되고 나자 무언가를 떠올린 듯 아, 하고는 허공을 응시하자 아인이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물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그러자 미간을 와락 구긴 미로가 아인을 노려보았다.

 

 

 "내가 수레 밖으로 나오지 말랬지!"

 "아."

 

 아인은 이제 와서 그걸 혼내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확실히, 미로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다친게 너였으면 어쩔 뻔했어!"

 

 상상하기도 끔찍한 장면이었다.

 만약 그 피범벅으로 쓰러져 있던 것이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아인이었다면.

 이기적인 생각이었지만 미로는 그랬다.

 

 

 "마물을 상대로 뭘 할 수 있다고 수레를 나와!"

 

 마물을 상대할 수 있는 건 마력을 지닌 사람뿐.

 그러니 마력 없이 태어난 아인은 마물과 맞설 힘 같은 건 없었다.

 

 풀이 죽은 얼굴로 잠자코 듣고만 있는 아인을 보며 미로는 자신의 말이 지나쳤음을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걱정해서 그런 것임을 아인은 잘 알고 있었다.

 마물을 상대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하지만..

 

 

 "난 아직 많이 약해."

 

 여전히 시선을 바닥에 떨어트린 채, 아인이 중얼거렸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는데도 미로의 귀에는 또렷이 들려왔다.

 

 

 "하지만 겁쟁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

 

 똑바로 미로를 올려다보는 아인.

 

 

 "에밀리한테 약속 했단 말이야. 그래서.. 아무런 도움 못 되도, 내가 위험해져도, 그대로 못 본 척 내버려둘 수는 없었어."

 

 말을 안들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실 잘못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물론 본심은 그냥 못 본 척 숨어있었으면 하지만 그러지 않는 아이라서.. 미로는 아인이 더 좋았다.

 

 잠시 곤란한 얼굴로 망설이던 미로는 이내 손을 뻗어 아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화내서 미안해. 잘 했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걸..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위험에 뛰어드는 것은 싫지만 남을 위해 나를 내던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을.

 

 느닷없는 칭찬에 아인이 잠시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미소 짓는 미로가 좋아서 이내 따라 웃어버렸다.

 

 

 

 

 ***

 

 

 

 "마물을 퇴치하는 대가로 약초를 받기로 했습니다만.. 약초의 양을 보니 스스로도 퇴치가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잠을 깨우는 목소리에 눈을 뜬 렌.

 그 목소리는 너울을 써 얼굴을 가리고는 팔짱을 끼고 협상을 진행중인 미로의 목소리였다.

 살짝 고개를 돌리자, 촌장이 내민 약초의 양이 성에 차지 않는지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렇게 많은 양을 드릴 수는.."

 

 얼굴을 가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말투와 행동이 마치 돈이라도 갈취하는 사람 같았다.

 픽 웃은 렌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미로의 시선이 렌을 향했다.

 

 

 "일어났네."

 

 앞 탁자에 약초 보따리들을 두고 촌장과 협상 중이던 미로는 짧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렌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3일만에 일어났다. 그 이후로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미로를 기다리며 몸을 회복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깨어난 미로를, 그것도 이리 협상을 할 만큼 쌩쌩한 그녀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촌장은 렌이 일어나자, 하소연이라도 하는 듯 말했다.

 

 

 "이것이 상처 회복에 쓰이는 약초, 이것이 말씀하셨던 망각초와 수면초, 게다가 해독초까지 넣었습니다. 이걸로 좀 봐주세요."

 

 곤욕스러워 하는 촌장을 보던 렌이 웃음을 참으며 미로를 바라봤다.

 

 

 "마치 갈취라도 하는 사람 같으니까 그쯤 해 둬."

 "그럼 뭐 하나 물어봅시다."

 

 마지못해 입을 떼는 미로를 보며 촌장은 무엇이든 대답해줄 기세로 미소를 머금었다.

 누가 보아도 영업용 미소였다.

 

 

 "예, 예. 뭐든 물어보세요!"

 "헤르바 지역은 온 왕국에 약초를 공급하지요?"

 "예? 뭐.. 그렇죠?"

 

 그걸 왜 묻는지 의아한 촌장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럼 녹스에도 약초를 공급하겠군요."

 "예."

 

 미로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말했다.

 

 

 "제가 녹스에서 조금 희귀한 약초를 받았었는데.. 그걸 여기서도 구할 수 있을까요?"

 "예? 무슨 약초를 말씀하시는지.."

 "빙결초."

 

 촌장은 처음 들어보는 약초 이름인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한참을 기억을 되짚어보았지만 헤르바 지역에서 나는 약초는 아닌 것 같았다.

 

 

 "헤르바 지역에서 자라는 약초 중에 그런 약초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아!"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말을 하던 촌장이 돌연 무릎을 치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고보니 비슷한 이름의 약초를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다지 약으로 쓰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꽤나 오래전 일인지 촌장은 기억을 되짚으려 눈썹을 꿈틀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마 그건 프리나에서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이쪽 지역은 따뜻해서 그 풀이 자라기엔 무리가 있죠."

 "그럽니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미로가 아쉬움을 감췄다.

 

 '프리나'라..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약초를 챙겨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미로.

 나서기 전에 촌장에게 한마디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 앞으로 헤르바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약초를 받아가는 걸로 협상하죠."

 "예?!"

 

 미로는 더이상 들을 말이 없다는 듯 뒤돌아 문을 나섰다.

 

 

 "렌! 일어났으면 빨리 와!"

 "아, 어!"

 

 충격에 빠진 촌장을 남겨두고 나간 미로를 따라 렌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마을회관을 빠져나왔다.

 성큼성큼 걸어가던 미로가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렌이 의아한 얼굴을 하며 서둘러 미로를 따라가자, 미로가 너울로 표정을 숨긴 채 툭 내뱉듯 말했다.

 

 

 "이제 움직여도 돼?"

 

 그 말에 픽 웃은 렌이 한쪽 팔을 미로의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이미 움직였는데 뭘. 걱정되면 부축해줘도 돼."

 

 갑작스런 접촉에 미로는 렌이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은 것을 떠올리고는 싱긋 웃는 렌의 얼굴을 퉁명스레 바라보다가 손바닥으로 그 얼굴을 밀치며 걸음을 내디뎠다.

 

 

 "멀쩡하네. 얼른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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