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으로 대학 생활을 즐겨보고자 영화동아리에 가입했다. 단순했다. 별로 할 게 없어 보였다.
동아리라는 소속감은 하나 챙겨보고 싶었다. 그러나 딱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딱히 없었다. 대충 영화나 보면서 사람도 만나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굉장히 우습고 안일하게 여기고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들여놓았다.
모든 것이 어설프고 어색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제는 정말 어른이라는 마음은 강해졌는데 정작 성격은 그대로였다. 그게 충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 모임은 진짜 빠지면 안 돼.”
이런 말은 그냥 모든 대화의 필수 코스였다. 저 말을 해놓고 가서 보면 그냥 별일 없이 매번 술만 마셨다. 나와 같은 1학년 한 명이 물었다.
“오늘은 술집이 아니고 아파트에요?”
“여기가 누구네 집인지 아냐?”
“누군데요?”
우리가 알 리가 있나. 말을 해줘야 알지. 이런 호기심 기법은 매번 통한다는 게 문제다. 속으로는 빈정거리면서도 내심 대답을 기대하게 만든다.
“김 유현. 너희 김 유현 알지?”
질문을 던졌던 1학년은 호들갑스럽게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어? 저 그분 알아요.”
“오늘 거기 가는 거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너무 자랑스럽게 말하니까 이상했다. 자기네 집도 아니면서.
사실 그의 이름은 그 전부터 익숙했다.
동아리에 가입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 인사를 적는 일이었다. 따로 양식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 난감했다. 작년엔 어떤 식으로 적었는지 기웃대다가 본 것이 바로 그의 가입 인사였다.
김유현의 글을 다른 글보다 조회 수가 월등히 높았다. 자신의 이름과 학과, 사는 곳 따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적어놓았는데 인터넷 용어나 이모티콘이 하나도 없었다. 왜 이곳에 가입했는지 설명한 글이었다. 별 것 아닌데도 글이 참 정갈했다.
심지어 그는 물리학과, 공대생이었다. 뭔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다른 이들의 글과는 달랐다. 진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저 그런 딱딱하고 재미없는 글이었으나 시선을 멈출 수 없었다. 제일 흥미롭게 본 것은 마지막 문구였다.
좋아하는 시인이 했던 말이라며 영화는 본인에게 있어 극복의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비록 전쟁의 세상에 살지만 / 전쟁이 내 안에 살지 않게 하는 것-
머리가 띵했다.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는 점에서 한번 놀라고 그의 놀라운 표현력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조금 감동했다.
이 사람도 그랬겠지? 좋으니까 여기에도 써놓은 거겠지. 나처럼 사는 게 퍽퍽한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한 번 더 훑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동아리였는데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날 노트북을 끄고 세수와 양치를 하면서도 그 문구가 머릿속에 자꾸 맴돌았다. 자기 전까지 줄곧 생각했다.
나에게도 그런 게 있을까? 내게 일어나는 전쟁을 이겨낼 힘이 있을까? 난 무엇으로 극복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적어도 잠들기 전까지는 그랬다. 다음 날 아침부터는 또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아파트를 보자마자 위축됐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은 흔했다. 종종 나는 내가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방학에 어디로 어학연수를 갈 건지, 해외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지 말할 때나 매일매일 화려하게 바뀌는 친구들의 옷차림을 보고도 그랬고 곱게 화장한 여자애들끼리 화장실에서 파우치를 꺼내 브랜드는 물론이고 이름조차 생소한 화장품을 줄줄 꿰며 신랄한 비평과 칭찬을 해댈 때도 그랬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애들과 멀어졌다.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세계였다.
나는 그런 걸 잘 몰랐다. 물론 알려고 들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가지거나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관심 없는 척 굴었다.
이상하게 그런 감정을 파고들수록 슬펐다. 화장품 한 개 값이 매달 내는 월세에, 왕복 항공권 값이 내가 사는 집 보증금과 맞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은 아예 안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싶지 않았다.
그 애들에게선 늘 향수 냄새가 났다. 은은하게 풍길 땐 좋다가도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땐 역하기도 했다. 시간에 따라서 달랐고 장소에 따라서도 그랬다. 나에겐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게 싫었다. 기껏해야 가끔 건조해서 바르는 핸드크림 냄새가 다였다. 몇 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릴 냄새였다.
나도 좋아하는 향수 하나쯤은 가지고 싶었다. 분칠은 하지 않더라도 좋은 향기가 내게서 풍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 밤, 인터넷을 뒤져 평판이 좋은 향수 몇 가지를 검색해 메모했다. 그리고 백화점에 가서 직접 시향을 했다. 점원에게 어떤 향이 더 나랑 어울리는지, 어떤 게 더 좋은지 몇 번을 묻고 또 물었다.
향수 하나를 고르면서도 참 줏대 없이 골랐다. 귀가 얇은 건지 주관이 없는 건지, 취향이 없는 건지, 결국 나는 꽤 유명한, 그리고 제일 잘 팔린다는 향수를 집었다.
“포장해드릴까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작고 예쁜 쇼핑백을 집으로 들고 오는 길이 너무 행복했다.
“혼자 산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와 같은 1학년이 순수한 눈망울로 물었다.
내 말이 그 말이었다. 김유현은 분명히 혼자 산다고 했다. 그러기엔 너무 고급 아파트였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달랐다. 현관 로비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경호원 같은 사람들을 지나칠 때였다.
“그니까, 좀 빡치지 않냐?”
“네?”
“백날 뼈 빠지게 일해봐야 이런 집에서 살 날이 오겠냔 말이다.”
아까부터 대화를 이끄는 사람은 2학년 오현석이었다. 원통한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내가 대학 와서 여실히 느낀 건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거.”
그 말에 피식 웃는 여자 선배가 말했다.
“뭐가 그렇게 불공평한데?”
“나 빼고 다 부자야. 진짜로. 솔직히 말을 안 하는 것뿐이지. 그런 거 다 느끼지 않냐?”
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 오현석은 눈썹을 구부리며 언성을 높였다.
"뭐야, 나만 그지냐?"
몇몇이 낄길거리고 웃었다. 오현석은 여전히 씩씩거렸다. 다른 선배가 오현석의 말에 동조했다.
“맞아. 가진 애들은 몰라도 없는 사람은 그런 거 뼈저리게 느낀다니까? 아, 그리고 일단 유전자부터! 김유현이, 그거 생긴 것부터! 그게 말이 되냐고.”
“아아, 쓰디쓴 인생이여.”
오현석은 두손을 모두 턱 앞에 치켜 올리며 개처럼 짖었다.
“오늘 술 개 같이 마셔야겠다! 왈왈! 왈!”
여자 선배는 치를 떨었다.
“미쳤나 봐. 왜 저래.”
집 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단순했다. 태어나서 집을 통해서 미로를 연상한 일은 처음이었다. 현관에서 통로를 지나 거실이 나오고 또 통로를 지나면 방이 있고 아무튼 특이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집 안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신기했다.
더 놀라웠던 건 자신의 공간에 아무렇지 않게, 아니 당연하다는 듯이 급속도로 집을 어지르고 있는데도 집주인인 그는 화를 내거나 불편해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하긴 이런 집은 아무리 어질러도 그리 더러워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집에 살면서 본인이 직접 청소를 할 것 같지도 않았다.
“유현아, 나 입을 옷 좀 줘.”
저 사람이다. 그 말로만 듣던 김유현이었다. 자세히 보고 싶었다. 그치만 오히려 더 그쪽을 볼 수 없었다.
“응, 필요한 애들 누구. 몇 개?”
생각했던 것보다 생김새는 깔끔하고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나는 김유현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를
등지고 섰다. 하지만 귀는 그쪽으로 쫑긋 세웠다.
“나, 나나!”
“아, 맞다. 나 저번에 왔을 때, 네 옷 그대로 입고 갔더라. 가져오는 거 깜빡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척하며 다시 김유현을 봤다. 어떤 사람인지 제법 궁금했다.
“어, 편할 때 줘.”
“너희 얘 옷방 봤어? 거의 매장 수준이야, 대박. 난 이런 거 처음 봤잖아.”
각자 본인의 구역이 있는 것처럼 누구는 화장실, 냉장고가 있는 부엌,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방으로 향하며 뿔뿔이 흩어졌고 나와 같은 1학년들은 서먹서먹하고 어중간하게 거실 소파와 바닥에 앉았다.
무엇 하나 만지기 조심스러워 쭈뼛거리고 있는 1학년들에게 이거라도 보라는 것처럼 티브이를 틀어줬다. 그 선배는 갑자기 우리들 가까이에 붙어서 작게 속삭이며 리모컨을 넘겼다.
“보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봐. 영화든 다시 보기든.”
다 같이 사는 합숙소 같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그런 걸 보는데 괜히 내가 더 마음이 쓰였다.
김유현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고 나는 남의 것에서 마저 내 욕심을 채우려 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냉장고엔 처음 보는 술과 과일, 음료수가 종류별로 착착 쌓여있었다. 1층도 아닌데 잔디가 깔린 꽤 넓은 정원이 있었다. 넓은 테이블과 예쁜 꽃이 꽤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릴 위에선 고기와 채소가 구워지고 있었다. 호화로웠다.
맛있는 음식들은 랩에 싸여있었다. 내가 할 일은 그걸 벗겨내는 것이었다.
“퍽퍽 뜯어도 돼. 너무 조심스럽게 할 필요 없이.”
“네.”
바닥부터 차근차근 뜯어내는 내가 답답했나 보다. 오현석은 양손으로 확 뜯어내며 시범을 보였다.
“대충해, 대충.”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하려고 노력했다.
술병은 구석에 삐뚤삐뚤 줄지어 서 있고 몇 개는 취한 듯 쓰러져있다. 매캐한 고기 향과 술 냄새가 진동하고 뿌연 담배 연기가 눈에 띄었다. 공기 청정기는 연신 에엥 거리며 작동 중이다. 열어 놓은 창문에선 간간이 바람이 들어오고 그 덕에 커튼이 자잘하게 흔들렸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곳에선 가끔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폭탄이 ‘파악’하고 터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웅성거리다가 어느 순간에 다 같이 동시에 웃음이 터지곤 했는데 시계 초침이 째깍째깍하다가 타이머가 멈추고 폭탄이 터지는 굉음 같았다.
나는 그곳과 조금 떨어진 곳에 어깨를 움츠리고 무릎을 두 손으로 안아 구부정하고 불쌍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가끔 저쪽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지만 무슨 소린지 잘 들리지도 않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모두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폭탄이 터질 때마다 덩달아 옅게 웃기도 했다.
“무슨 생각해?”
질문하는 사람은 다른데 질문을 같았다. 벌써 세 번째다.
“아무 생각 안 하는데.”
나는 혼잣말인 듯 아닌 듯 얼버무렸다. 정말로 그랬다. 아무 생각 없이 멀뚱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해? 라고 물으니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나 생각하게 됐다.
세상 근심과 걱정을 다 짊어진 여인네처럼 애처로워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렇게 형식적인 질문을 하고 내 대답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사라져 버렸다. 애초에 대답은 필요 없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배려심인 듯 느껴져 슬펐다. 아니다. 슬프기도 했지만 알딸딸하고 몽롱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괜히 마음이 뭉클한 거 보니 내가 좀 취했나 보다. 자세를 고쳐 어깨를 펴고 벽에 등을 기댔다.
"혼자서 야금야금 토끼처럼 풀만 뜯네."
김유현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나를 보며 웃었다.
처음으로 대화를 해보는 거였는데 굉장히 친근하고 다정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부터 김유현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미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반했던 것 같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