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거대한 짐승과 마주한 경험이 있는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수있는 맹수를 말이다.
'그르릉' 거리는 소리와 적의로 가득찬 눈동자 앞에 서게 되면 어느 누구든 맨 몸으로 칼바람을 맞는것 처럼 부르르 떨게 되고 온 몸의 감각은 최고조의 긴장을 하게 되어 움직일 수 없을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부터 말하고자 하는 '포식자' 앞에서는 맹수라 불리며 공포감을 불러오던 모든것이 한낱 들짐승에 불과 하다는것을 알게 될것이다.
포식자는 어둠에 몸을 숨기고 움직인다, 그렇기에 항상 곁에서 지켜볼수 있고 내가 가장 무방비 할때를 노려 찾아 온다.
크기의 끝을 짐작 조차 할 수 없는 놈은 나를 집어 삼켰다.
아니, 불꺼진 컴컴한 방이 나를 짓누른는게 맞는것 같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것은 같지만 포식자가 올때는 한 줌의 빛도 용납하지 않는듯 끈적하고 농도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깊은 수렁속에 머리 끝까지 갇힌 느낌이 었으며 손가락 하나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갑갑함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기가 없어지듯 숨쉬는것 또한 힘들어지고 정신이 희미해져갔다.
완전히 정신을 잃기 직전 발가락 끝에서 부터 머리끝 까지 서늘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칠판을 긁는 소리를 들은 것과는 비교할수 없을 만큼의 소름이 온 몸에 돋았고 동시에 힘이 쭉 빠져버렸다.
눈을 떳을때 가장 먼저 보인것은 밝게 빛나고 있는 형광등 이었다.
살면서 다시는 느낄수 없을 만큼 큰 안도감이 밀려 들어오고 작은 한숨과 함께 주위를 살펴볼 여유를 찾았다.
밝은 형광등, 깔끔한 옅은 베이색 벽지, 하얀 커튼, 그리고 이름이 적혀있는 침대들과 거기에 누워있는 하얀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
약간의 알코올 냄새가 병원이라는 확신에 힘을 실어주었고 몸을 반쯤 일으켜 침대 뒤 벽에 등과 머리를 기댔다.
그제서야 내 무릎 옆에 양 손을 올리고 자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하얀 셔츠가 구겨져있고 묶고있는 머리도 부스스 했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 보니 마스카라가 전부 번져 분장한 삐에로 같은 모양이었다.
울컥 하는 마음과 함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당장 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쳐 깨우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않고 마른 입술만 서로 맞닿을 뿐이었다.
내 성대에선 끅끅 거리는 소리만 나올뿐이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 했는지 푹 숙여져있던 엄마의 고개가 일어났고 눈 주위가 검정으로 번져있는 엄마와 내 시선이 마주했다.
"태준아! 괜찮니? 어디 아픈곳은 없는거고? 엄마좀 봐봐"
몇초 전 에는 졸음으로 가득했던 눈이었는데 졸음기는 싹 가시고 커다래진 눈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커진 눈과 비례 하듯이 이곳저곳 내 몸을 살피는 손 또한 바쁘고 다급했다.
내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확인하던 엄마는 큰 상처가 보이지 않았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가볍게 포옹을했다.
"엄마가 진짜... 아니다, 우리 태준이 안다쳤으면 다 괜찮지.. 진짜 아픈데는 없고?"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던 엄마가 포옹을 풀고 다시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수 차례 끄덕이고 마른 기침을 한 뒤에야 말할수있었다.
"응.. 아픈곳은 없어 그냥 몸에 힘이 없는거야, 아! 말하고 보니까 갑자기 배고프다."
헤헤 하고 실없는 미소를 짓는 나를 보고 엄마도 피식하곤 웃었다.
"태준 아빠, 태준이 지금 일어났어. 응, 아픈곳은 없어보이는데 지금 배가고프다고 하네? 혹시 모르니까 죽으로좀 사다줄래? 어... 태준아 전복죽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