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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나
작가 : 수석
작품등록일 :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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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나
작성일 : 17-12-17     조회 : 448     추천 : 0     분량 : 28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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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나

 

 

 

  헤어짐과 만남

 

  am. 7:00 현장 도착

  이 훵한 현장에 나왔네. 어제의 행복한 환상에서 깨어나자. 마지막 근무다. 정상작동이 되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

  월요일은 아침 일찍 실리콘 쏘는 팀 온다고 이사는 끝나는 오늘까지 임무를 부여했지. 그러면 토요일에 통보한 것은 무슨 이유? 기성비 2억 가까이 밀려 있어서 매일 업자들 전화 오는데, 준공까지 어떻게 마무리 하나? 준공 후 확장 공사는 서초동 소장이 오나?

  말이 서초동이지, 거기는 언덕배기에 차 한 대 세워 둘 곳도 없고, 지게차도 운용이 안 될 지경이라 평당 430으로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건축주 아줌마도 협조적이지 않아 보여서 못하겠다고 했지만, 회사는 인테리어 하다가 건축 처음 하니 뭘 모르나?

  방이동이 제일 알차게 해서 1억 이상 남겨준 건 당연한 건가? 현장이 5곳이나 있는데 17년 된 회사가 너무 냉정한 것 아닌가?

  세면대에는 실리콘 쏘지 말라고?

  준공 검사를 앞둔 내가 세운 건물에서 무거운 어둠을 밀어 내며 서성거린다.

  어제 대구를 떠나 경부선 고속버스로 강남터미널로 되돌아왔다. 밤 열 시 넘었나, 집에 도착하자 바로 문자를 보냈다.

 

  집 도착

  술 깨고 정신이 드니 머저리 짓만 생각나네.

  존경하네. 후의에 감사감사

 

  할 일 해야 되는, 반드시 해야 하는, 벽과 담과 그리고 법을 넘어서는 내 의무다. 반듯하게 먼저 해야 하는 일을 이제는 창이 닫힐 둘만의 카톡방에서 나는 마지막 문자를 보낸다.

 

  방배동 522-3. 딸 1 대학원. 집사람-대구

  d여상 출신. 부동산개발회사 부장. 나-가장

  -엄청 잘남. 평생 여자 둘 모시고 사는

  어색, 깡패기질

 

  카톡!

  하루 밤 자고 오늘 아침 일찍 답이 왔네.

 

  안녕

  잘 잤어?

  무사히 도착했다니 다행이다.

  생각지도 못한 너의 행동에 황당했다.

  그리고 쓸데없는 질문해서 미안하고

  모든 것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잘

  지내시게~~^^

 

  내가 월요일이면 문자를 보냈지. 이른 아침 이 시각이지. 고운 꿈이 된 몇 주가 지났네. 스쳐서 지나간 것도 아니고 이게 뭐지. 내가 ‘나’ 라는 사람으로 더 이상 살 수도 없을 듯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기계적으로 활로를 찾는다. 먼저 온 그녀의 문자에 답을 보낸다. 나는 모든 게 다 고마운 마음으로 돌아온다. 내 정성을 다한 답을 쓴다.

 

  감사

  항상 내 마음에 천사로 남겠네. 어쩌나

 

  감사

 

  머리가 더 희끗희끗하게 되겠지. 만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면? 한 장 흑백사진으로 고이 남았겠지. 그냥 덮어버렸다면?

  그래도 만나야지. 말이 안 되는 소리였지. 잘 했어. 잘 했어. 아예 이별이란 없어. 왔으니 헤어짐이야. 헤어지면 만나지. 외롭게 홀로 여럿 난 길로 갈 일뿐이지. 이제 추운 겨울이 오는 날 저문 들길로 나만 사라질 뿐이지.

  덕이요, 복이라. 대구행은 잊어야 하지만, 그 환상과 현실의 경계선을 다시 넘어서야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온, 진짜 내게 다가온 멋지고, 아름다운, 꿈같은 만남이었지. 행복한 만남이었지.

  환한 드라이브를 했다. 늦가을이 빛나는 그 일요일에 우리는 함께 거기 있었다. 그 옛날처럼 웃었다.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점심 식사를 했다.

  말은 하고 나면 더 하고, 더 해야 하지. 나는 늘 미안 하지. 미안하기만 하지. 실체도 매듭도 없는 그 미안함에 억눌려 텅 빈 미안한 마음으로 되돌아 왔다.

  에이플러스 인테리어는 사장이 암투병이라 몇 달째 연락이 되지 않지. 그렇다고 태양 디자인은 사장, 실장 다 너무 젊어서 부담스럽고, 용역으로 다시 사무실 나가는 것도 어설프다. 아침 6시까지 기다렸다가 어딘지 모르는 일 맞춰서 나가는 그런 방식은 아무래도 그렇다.

  대현건설도 돌아갈 고향처럼 편하기야 하겠지만, 나과장이 전화도 오고, 문자도 보내왔지만 차라리 눈감고 더 험하거나 말거나 더 진화해서 앞으로 나갈 일이다. 다시 원숭이가 되어 아프리카 정글 숲속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직이라는 게 그렇지. 우리야 엄연 일당이 기본인데, 며칠 갭이 생기면 뻔히 나만 손해다. 그거야말로 우스개도 아니다.

  휴대폰 검색. 구인구직 싸이트. 건설, 제조업 파트. 용접. 금속 조공

  문자를 보냈다. 이름, 나이, 사는 동네, 5년 건축 잡부 및 2년 직영반장, 소장 경력.

  4시까지 오라는 답.

  일찍 끝났다. 자리 한 번 마련한다는 이사의 최종 인사말을 듣는다.

  여름 땡볕에 시작된 방이동 신축빌라 근무는 추운 겨울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일어난 일처럼 시원섭섭하게 종료되었다.

  몽촌토성역으로 해서 잠실에서 갈아타고 대림역 13번 계단 내려오니, 중국집 같은 사무실. 4층 하늘용접인력소개소. 헌 책상 벽면 따라 빙 둘러 놓고, 흥정하듯 떠드는 직원도 많고, 소개 받는 사람도 많네.

  “우리나라 사람 맞지요? 마침 방배동에 집 가까이 회사가 나와서 다행인데, 다른 사람 가기 전에 바로 가세요.”

  부장 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가 명함을 건넨다. 신분증 복사. 소개료 20만.

  사당역 8번 출구 편의점 앞으로 내일 아침 7시까지. 세움금속회사 주소와 사장 핸드폰 번호. 혹시 안 되면 다시 오라는 소개료 보관증.

  이사가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네.

  ‘성질 급한 놈 만나 고생 많이 했어요. 자리 한 번 마련해 볼께요.’

 

  사장은 주눅 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뒷짐 지지 말 것. 건방져 보이니까. 그리고 달려들어서 해. 하면 돼. 물론 처음이니까 그렇겠지만 한 일 년 하면 어디가나 먹고 살아. 먹고 살라고 하는 짓이라 반복한다.

  임팩, 피스 통. 임팩 통. 드라이버 주둥이와 사각 14. 사게부리, 함마 드릴, 함마 드릴통. 카터기. 4인치 글라인더. 막돌, 시아게돌, 해바라기돌. 코끼리 바이스. 그냥 바이스 집게. 전기 용접기. 2.6, 3.2, 알루미늄 용접봉. 홀더선. 아스선. 목수평, 길고 짧고, 검은 색에 노란 작업선. 레벨기. 레밸기 통과 다리 가방. 직각자. 4x2, 3x6,5x5 파이프. 6메타 평철. 철판, 절곡 주름판, 알루미늄 자재. 스텐 자재. 방화문 자재. 석분필. 먹통.

  한 차 싣고 다니는 공구는 가지가지 많기도 하다.

  “철쟁이들은 옛날부터 곤조가 있어. 주눅들지 말아.”

  용산 현장으로 따로 뺀 이유가 직접 나를 검색하는 절차. 기공 3명은 공사차로 암사동 가고, 사장 승용차로 우리만 간다.

  “뭐 나이 많아. 뭐 많아. 나랑 동갑이잖아. 말 놔도 돼. 먹고 살라고 하는 짓이지. 이걸 누가 해.”

  “사장님은 최고 전문가에 다 이루셨잖아요?”

  “사장, 사장? 말이 사장이지. 돈 좀 벌면 어디 가 다 꼴아 박고, 마누라가 또 뭔가 해서 없 애고, 장사하는 사람은 맨날 그래. 사람에 치여, 사람에 치여서 못해먹어.”

  내게서 필요한 정보는 어디 가나 그렇듯 ‘전에는 뭐 했어?’ 라든지, 집은 자기 집인지 확인한다. 그러면 딸래미 하나 서로 같고, 그러면 이런 일 안 해도 되잖아? 하고, 자기는 노후 대책으로 필리핀에 관광호텔 합작으로 해 놓은 게 있다고 한다.

  자르고, 용접해 지져 잇는다. 끊어서 철거하고, 다시 때워 만들어 곱게 다듬는다.

  벽면에 선반을 붙인다. 전기, 에어콘 선을 천정에 ㄷ자 죄회전 한 번 한 모양으로, 갈바통으로 감싸서 올려붙인다. 함마 드릴로 천장에 박은 전산철대에 달아 붙이는 용접하고 등 박스를 단다. 방화문을 설치한다. 평철로 계단 난간대를 만든다. 모든 게 0.5미리 오차 범위를 계산해야하는 금속공사다. 나무나 돌이 아니라 쇠로 한다.

  여 놔라, 저 놔라, 그거 가져 와, 저거 가져 와, 전기 용접기 설치하고, 이늠 저늠 심부름에 손 시린 금속 작업이다.

  지지직 섬광이 일면 용접 불통이 불꽃놀이처럼 터진다. 연기가 피어난다. 글리인더 쇠가루 불꽃이 사방으로 날린다. 쇠가루 뒤집어 쓴 옷이 따끔따끔하다. 바라시돌로 용접 똥을 고루고, 해바라기돌로 매끈하게 그리고 윤나게 갈아 낸다.

  바지 위에 빤스 입은 듯한 모습으로, 나는 내가 선택한 이 어색한 조직에서 한 분야를 책임져 맡고, 비로소 정을 나누고, 동서남북 소통으로 나가야 한다. 머나먼 길로 보인다. 내리 사랑이야 쉽지. 치사랑은 하나같이 치사하고, 힘들고, 까다롭고, 어렵다.

 

  “형님, 용접 장갑 있어요?”

  이순석 유도건설 직영반장은 70줄인데도, 그 놀라운 자기 낮춤, 나름의 친화력과 유머, 무한의 성실로 큰 건설회사 벌써 4년째.

  카톡으로 하루가 멀다시피 사진 보내고, 손수 만든 글씨 보내고, 캐릭터 이모티콘을 보낸다. 회사 차량이 스틱이라 그 공사차를 손수 못 몰아서, 고철 나면 나를 찾는다. 일요일 6시쯤 시간을 맞춘다.

  방배역으로 해서 우회전하면 바로 남부순환로 교육개발원 아래편으로 고물상이 많다.

  한 차 처리하고, 소주 한 잔.

  “올해 끝나요?”

  “끝나지. 거의 다 했어. 원래 반포에서 방배역까지 하기로 했잖아. 지장물도 많고, 거대 지하 우수관 공사라 오래 되고, 예산도 깎였지. 내년이 선거잖아. 그러면 우면산에서 내방역까진데 여기서 덮어버리고 빗물 모은다는 게 말 안되지. 다음에 다시 할 걸.”

  “사위는 미국 있어요?”

  “둘째는 쿠웨이트 갔어. 거 1조 공사라나. 내 맏사위가 여기 함지박에 사무실 있잖아. 글마가 s댄데, 사회성은 꽝이지만 진짜 천재야. 지 회사에 s대 박사만 26명이든가.”

  “확실히 천재가 있어요. 제가 갈킬 때도 일마들이 안 배운 걸 어떻게 그걸 다 아냐? 그 참. 괘상했죠. 누구는 대학원 석사에 직접 가르치면서 수십 년 공부한 셈인데, 이미 어느 선 이상 가는 애들은 선생보다 낫죠. 그냥 못 말려요. 이번 대선에 나온 분들도 전국 100등 이내 천재 중에 천재들이었지요.”

  땅굴 파는 우수관 공사에 매일 붙어서 일한다. 인근 모텔에 숙소가 있다. 매식에 찌든다. 허리가 좋지 않다. 한 달에 한 번이나 쉬나. 임시 사무실 콘테이너 박스에서 침을 놓는다.

  “우리 딸이 h대 나오고 h사 있을 때 연애했는데, 사는 건 지 남편 맨날 뭔 기계나 들고, 지질 조사라나 뭐라나, 맨날 출장에, 세계를 돌아다니니, 집에 뭔 신경 쓸 줄을 아나, ‘에구구에구그’ 그래. 지가 그 때 애인도 있었는데 명문대에 확실하니까 꼬셔서 결혼했지.”

  “그 머리 안 되는 우리는 그냥 몸으로 때워야 되요. 남 못하는 거 해야죠. 일단 노가다의 근본은 곰빵인데, 세멘 50포 계단타고 5층에 갔다 놔야 돼요.”

 “나는 그거는 못해, 그거하고 폼 있잖아, 그 600폼 그거 질색이야.”

 “석고도 8장 지는데, 보통은 4장 지죠. 꼼짝 마라지 뭐. 3,40년 기술자들은 문화가 없잖아요, 제일 약한 금속만 이번에 몸으로 때우면 다시 건축으로 돌아가지 뭐.”

  “내가 언 늠이 통장을 압류해서 못 써. 누군지 알지. 그 때 이사하다가 5억 연대보증 섰어. 우체국 통장 내면 되나?”

  “아, 그래요? 돈도 못 쓰고 빚만 졌네요. 저도 건보료 체납으로 압류 당해 봐서 알지요. 우체국은 2금융이라 될걸요. 새마을금고나, 신용금고가 좋은데. 거기도 주소지에서 해야 되요. 카카오뱅크도 안 깔았지요? 보이스피싱 때문에 신분증도 2개 필요하고요.”

  “월급 받아야 돼서 그래. 내일 해 보지.”

 

  옥상 데크 작업.

  찬 겨울바람과 함께 스카이로 공구통, 카터기, 용접기, 파이프가 올라온다.

  방수가 바닥에 이미 돼 있어서 철근 박고 파이프를 깔 수 없다. 앙카 박고 윗단 다대를 벽면으로 빙 두른다. 중간 단을 잡고 가로, 세로 든든하게 파이프를 용접해 넣는다. 불티 방지포를 깔고, 지져 붙인다. 밑단을 이어서 두른다.

  서로 오래된 동료도 되는 듯한데, 좀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장과 이 기사는 만나면 욕부터 하고, 사사건건 시끄럽다.

  “니가 꼼곰하게는 하는데, 말 좀 들어라. 이놈아!” 하면 “파이프도 제대로 못 자르시나? 기공이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하시나?” 빈정대며, 욕을욕을 해대는 식이다.

  70X70에 6메타 파이프를 사장이 나서서 직접 카터기로, 정교하게 잘라도 마음만 바빠서 그런지, 갖다 대보면 커서 안 들어간다. 3미리 넘게 어긋난다.

  틀에 안 들어가니, 용접하는 이 기사는 두 번 세 번 손흥민 슛처럼 하나하나 정교하게 글라인더질을 해야 한다. 호박 같은 인상에, 화난 얼굴에 짜증이 퍼진다. 금방 돌상놈 욕이 퍼진다. 용접해서 발 세워 오늘 이내로 빨리 끝내야 되는 사장과, 기술적으로 옳게 해야 하는 이 기사는 둘이서 서로 잘났다고 애들처럼 다툰다.

  먹줄 대 주고, 자질 도와주고, 용접기 하나 더 갖다 주고, 글라인더 하나 더 갖다 주고, 빠루 갖다 주고 별놈의 심부름에 공구차까지 열 번은 5층을 오르내린다. 파이프 잘라주고, 날라 주고, 용접봉 더 가져 오고, 문지방하는 알루미늄판 갖다 주고, 카터기 날을 갈아 끼운다.

  그 잘난 불똥이 당연히 나에게도 튄다.

  “뻔히 서 있지 말고 움직여!”

  “거 튀어 나온 앞대가리는 막돌로 갈아!”

  밥벌이 기술이란 해보고 틀리고, 또 해 보고 그래도 틀려서 욕먹어야 비로소 터득한다. 비로소 몸에 익는다. 안 틀려도 억울한 욕먹기 일쑤다. 기술은 간 곳 없고 쓸데없는 잔심부름이나 하기 일쑤다.

  초보운전 딱지 뜯기듯 실수 연발에, 기어코 사고 내서 보험료 왕창 올라가 보아야 그제야 온전한 운전사가 된다. 직접 겪어야 터득하는 기술이다. 남이 보면 사소한 기술도 내가 직접 해 보면 뭔가 이상하고, 뭔 탈이라도 난다. 그 시간 끄는 훈련의, 그런 좋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작업선 하나를 더 깔아야 한다.

  ‘어이!’, ‘조씨!’, ‘조씨 아저씨!’ 해 쌓다가 ‘조 기사’로 엄연히 업그레이드되었지만, 정식 기사 작위를 받으려면 십 리는 더 가야한다.

  농경시대 경제 안정으로 자급자족을 이루었고 바야흐로 철기시대에 든다. 평화는 총을 만들줄 알았고, 금속을 다룰 줄 알았다.

  추운 하늘에 끽해야 하루해가 오지게, 찰지게도 붙어 있다.

 

  소장

 

  반가운 전화야. 엘엠 건설 구의동 윤 소장.

  거기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빌라 지을 때, 그 때 만나 반장 한 지 일 년 넘었지. 그동안 통 연락이 없다가 온 전화라. 회사도 자기도 바쁘나 보다.

  그렇게 다시 만나, 신월동 공수부대 공사를, 그 PX 마감 공사를, 땀범벅으로 보름이나 했나, 서로 통하니 공기 맞춰 잘 끝난다.

  압구정동 소장자리가 났다고 했다. 뭔 전화를 받더니 방이동에서도 구한다고 했다. 메뚜기 한 철이라, 여름이면 자리도 많지만, 그래도 그래, 복이 희귀하게 따블로 오기도 한다.

  지원 서류 한 보따리나, 지원 이메일이나, 지리한 면접 심문도 없다. 일사천리로 해변 백사장에 백조가 앉는다.

  이지적이고, 곱슬머리에 키도 크구나. 유명 공대에 한 30년 경력 된다는 장 이사는 시원시원하지만 빈틈없어 보인다.

  고향, 경력 그리고 가족 관계만 물어 보고 통장, 주민등록 초본만 해 오라 한다. 출세라는 게 쉽기도 하다. 내일부터 바로 나오라 한다.

  건축 잡부 경력에 반장 경력, 그리고 추천을 바탕으로 현장소장이 된다. 4층 올라가는 중에 있는 신축빌라. 누가 떠난 자리의 땜빵 소장이 되었다.

  “틀리지, 보통 오도리 방에서 그 부채꼴로 계단이 올라가지. 그러나 여긴 아니야. 5층과 6층이 복층이 되니 그래요, 도면 봐! 도면.”

  오야지 박 목수는 레미콘 부을 때 혹시 어디 터지나 해서 나왔겠지만, 이미 형틀이 잘못 되었다. 철근까지 깔리던 계단을 오후에라도 공그리 부으려면 뜯어내고 다시 고쳐야한다. 오늘 취소되면 공그리 값 다 변상해야한다.

  경험은 많아도 여기서 실수한 적이 이미 많다고 들었다.

  목수 밑에 설비 있지, 철근 있지, 전기 있지, 공그리 있지. 키 크고, 비직 깡마른 체구에 선해 보이지만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데도, 시도 때도 없이 막걸리나 좋아하는 타입이다. 전화는 하지만 메시지는 읽기만하고, 카톡도 안 하는 타입이다.

  “그걸 안 봤네. 도면을 보고 하는 건데. 그래도 요새 누가 계단으로 다녀. 그냥 비상계단이지, 이렇게 해도 되는데---.”

  궁시렁거렸지만 나는 도면을 다시 내밀었다.

  목수에 철근 그리고 설비도, 금속도, 징크도 그리고 미장조적과 폐기물까지도 이사의 성남 친구들이다. 서로 이름 부르는 오랜 친구들이 거미줄 같은 거대 조직이야. 시스템이지.

  골조, 방수, 미장공사가 무리 없이 계획대로 진행 되었다.

  틈틈이 퇴근 후 캐릭터 이모티콘을 만든다. ‘오우. 멋져, 고마워, 감사, 감사감사’ 먼저 글씨를 쓰고 찍은 사진을 효과로 편집한다. 선의의 맞장구를 쳐 주는 내용이므로, 언제나 누구에게나 보내도 환심을 사는 작품이다. 누구에게 보내도 좋은 내 작품이 된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이어쓰기 한글인 필기체를 고안했다. 향상된 내 글씨로 만들고 다듬는다. 입체형 캐릭터는 자모음 조합 형태로, 스치로폼, 스폰지, 철제 나사, 50X50 파이프, 목제를 재료로 만든다. 우선 사진으로 찍어 카톡에서 주로 사용한다. 흘러간 옛 노래나 좋아하는 시를 작품으로 만든다.

  내 방은 이미 오만잡동사니 굴러다니는 폐기물 처리장이 된다. 현장에서 주워 모아 재료를 구한다. 퇴근 후 주머니에는 새 작품 재료가 나온다. 손이 과부화라 고급제작은 엄두도 못 내고, 우선은 남이 만들어 놓은 걸로 해서, 잘 이용해서, 잘 만들어 내야 한다.

  이번 공모전은 착실히 준비한 셈이다. 둥글게 한글을 풀어서 이어 쓰고, 그리고 초중종성이 합해 글자를 만드는 작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부분부분 움직여서 각각 돌려서 맞추면 4의 3승 숫자로 한글이 생산된다. 채색을 했다.

  사진 편집술도 중요하다. 잘 찍어야 하지만, 다듬기도 해 본만큼 뽐낼 수 있다.

  저저번은 한 리어카나 되는 서류를 악착같이 갖춰 봤지만 뭐가 하나 없다고, 그 한 가지 미비로 탈락했고, 저번은 출품 중에 정권이 바뀌어서 그런지, 공모전이라는 게 기간이 연장 되더니, 통 연락이 없다가 어이없게도 미처 내지도 못한 탈락 작품 가져가라고 문자가 왔다.

  그러나, 나는 해가 갈수록 매년 내 작품도 향상되고 훨씬 업그레이드된다는 것을 겪어 보아서 안다. 대법원 판결도 나기 전에 일정한 수준을 넘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일요일 기다려 편하게 쉬는 것 외에는 험하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 5시까지 점심 시간 휴식 시간도 없이 빡세게 일하는 날이 많다.

  예측 불가능을 가능하게 카톡으로 초등동창방에 들락거리는 게 점점 재미있다.

  전부해서 36명이 있고, 8명 정도 매일같이 활발하니 옛정이 새롭다.

  서로 아는 주제도 많아 공감이 쉽고, 무엇보다 편해서 좋다. 아예 흉허물 없어 좋다. 드물게 타이틀이 있으면 와글와글하기도 한다. 뻔한 소통이 오히려 잡스러운 재미가 있다. 내가 사는 새로운 더 넓은 공간으로 확장된다.

  출근할 때마다 찍은 ‘롯데’와 ‘평화의 문’ 사진 두 장을 날마다 보냈다. 우리나라 제일 높은 빌딩의 위용으로 내가 무슨 평화의 수호신이 된다.

  ‘안녕’, ‘안녕하세요.’ 하던 인사가 기계가 이룬 다른 세상에서 휴대폰으로 만나 ‘웃으면 복이 와요’와 그 비슷비슷한 카톡 전용 사진으로 발전되었다. 말이 필요 없다. 번거로움도 없다.

  누가 만들까? 다들 감동해 마지않는 퍼 나르는 사진이 오고, 이렇게 저렇게 하자는 동영상이 온다. 카톡! 어른 되기를 포기하고 초딩이 되어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되어서 그게 그거인 찌든 우리네 삶에 자자브리한 소통이 오간다. 대면 없이 서로 만난다.

  그래도 그런게 아무리 편해도, 조금만 이상한 말 올라오면 바로 삐져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애나 어른이나 하는 짓이 같아진 시대라 허구헌날 좋은 말, 좋은 소리, 그리고 먼저 배려 해야하는 부담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후퇴해야 한다. 내가 남을 섬기지 않으면 그걸로 마감이 된다, 오직 남들을 존중하고 좋은 말로만 공감하며 통해야 한다. ‘뭐라 났더라.’ ‘뭐라 하더라’에 동조해야 한다. 소문에 적응도 빨라야 하고, 더더욱 뉴스에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정치에도 같은 패가 되어 관심 가져야 한다.

  날마다 업데이트하기도 힘들다. 휙휙 지나가는 카톡도 그렇고, 블로그 이웃이 200명 가까워도, 내 손 안 가고 되는 일은 없다. 꿈적거려야 한다. 먼저 찾아가서 공감해 주지 않으면 바로 깡통이 된다. 건전지 다 닳아서 멎어버린 시계가 된다.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한다고, 공해에 시달린다고, 나는 좀 다르다고 무음에 무진동으로 하다가는 빈 공터로 나가떨어진다.

  앞전에는 100세 시대의 인간관계, 배우는 이유, 낙천적으로 사는 법, 천천히 늙으며 오래오래 친구로, 나의 인생 스스로 찾아서 살자, 7080가을 노래 모음, 이런 저런 동영상이 떴다.

  이런 걸 올리면 각자 나의 생각이 부담 없이 붙고, 그러면 거기서 이야기가 되고, 남의 생각도 나오고, 어울려 한마당 편하게 소통한다. 자기가 만들어 올린 게 아니니 부담이 없다. 내 생각이 빗나가도 예의만 간당간당 지키면 된다. 우리네 살림살이 말이 많아진다. 길이 열리고 소통이야.

  울적해서 아무 소리나 마구잡이로 올려놓고, 아무나 흉 봐 놓고 몇 번이나 나가기 해서 빠져 보았지만 누군가의 기계 작동이라 다시 달려 들어가 있다. 그래도 내가 있어야 되나 봐. 나는 별나지도 않나 봐.

  카톡도 뿌린 만큼 거둔다. 개인방에서는 열 명에게 보내보면 겨우 한 명 건지는 수준이다.

  집단 떼거리가 된 초등동창방을 빼면 이 회장 카톡방과 한 달에 한 번쯤 통하고, 열리는 개인별 카톡방이 8개쯤.

  무슨 반가운 전환가 해 봐야 보험권유나 대출권유 아니면 차 빼라는 소리다.

  갑자기 업무용 전화가 많아졌다. 새벽부터 휴대폰이다. 잘 때까지 기계적으로 휴대폰을 확인 해 본다. 출세에 따른 고비용이다.

  공사가 진행 될수록 더 많은 전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메시지나 카톡 문자로 하면 확실하고, 생각도 더 해 보고, 근거도 남고, 이래저래 다 좋지만 대부분 바로 통해야 하는 일이라 상대는 그럴 일이 없다. 혼이 나간다.

  카톡! 메뚜기 뛰는 경쾌한 소리다. 뭔가 복이 오는 소리 같다.

  내가 쓴 글이나, 내가 찍어서 만든 사진, 직접 만든 캐릭터형 이모티콘을 보낸다. 원칙을 세우고 남의 걸 내가 크게 감동했다고 그걸 다시 남들에게 보내지 않는다.

  돌이 붙고 드라이비트와 징크로 외벽이 당당한 모양을 갖춘다.

  사고다.

  징크가 옥상에서 파이프 다발을 잘못 풀었다. 오장창 소리가 원폭 실험할 때처럼 퍼졌다. 좌 벽면과 아시바 틀 사이로 3개가 쏱아져 내렸다. 오야지가 방방 뛰었다. 내가 안전! 안전!을 소리소리 외치기도 전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놓친 파이프 하나가 순식간에 부직포를 뚫고 이웃 빌라의 3층 유리창을 때렸다.

  난리가 났다. 다행히 사람 다치지는 않았다. 원성. 악담. 아우성. 책임.

  인사 잘 하고, 항상 이웃 주민들과 웃으면서 대한 효과도 있다. 최종 결론은 “소장 용꿈 꿨다.” 의 용꿈이었다. 2,3층 유리창과 블라인드를 새로 갈아 주는 선에서 잘 마무리 되었다.

  5층과 6층 다락방에 경사진 창은 비닐로 일일이 비 단도리하고, 주차장 설비 자재를 건물 뒤로 옮겼다.

  시멘트 나르고 타일을 나른다. 석고를 등에 지고 본드 통을 든다, 쓰레기를 모으고 폐기물차에 싣는다. 철거해서 싣는다. 자재를 받는다. 각 층, 각 방으로 분배한다. 험하고, 더럽고, 위험한 3D 노동이다. 기계가 못하고 폼 나지 못해서 청년도 여자들도 없는 현장에 일용직이 맡는다.

  새벽 5:35 알람. 식사 후 출근, 6:55 현장도착. 컴퓨터가 휴대폰 시대를 거쳐 인간 세상 위에서 막강한 존재를 드러내는 AI시대. cctv가 모든 사실을 찍고 있다.

  ‘무단횡단 사고 다발 구간입니다.’ 빅 데이터가 내리는 지시대로,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차를 몰아야 한다. 멘트 나오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방송이나 여론조사에도 신경 써야 한다.

  아침마다 카톡 보내는 이회장은 세상과 소통하는 게 오직 카톡이라. 같이 공감하자는 그 카톡이라는 지극정성이 기계적이다.

  남의 선의를 알아내는 것은 내가 남에게 선을 베푸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어차피 어려운 일만 많은 데, 내가 먼저 담을 쌓아 온 걸 안다. 당하고 살아 보면서, 모질게 겪어 보면서 이제야 확실히 안다.

  남이 만든 뭐 가을이 왔네, 건강에 좋은 습관, 낙천적으로 살기, 뭐 10계명 등등등인데 대부분 보지도 않지만 그러든 말든 또 날아 온다.

  진동으로 바꾼다. 그러다가 아예 무음으로 해 놓아 본다.

  d대 대학원 경영학과. 거 대학 안 나와도 되는데 나왔다고 했다. 직원 60명 두고, 샤시 회사를 했는데, IMF에 억억 부도나고 이혼하고, 망했다.

  그 때, 용역할 때 같이 일도 나갔는데, 절뚝절뚝 다리를 전다.

  “거 침이랑 쑥뜸으로 자기가 고쳐야 한다니까. 나는 배우는데 그렇게 고생했는데, 가르쳐 준다는데도 왜 안 해. 의사가 지가 아픈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아이구 나 못해, 못해. 못해.”

  사당역 복개천 벤치에서 뜸을 뜬다.

  “처음 정형외과에 갔을 때 거기서 MRI 찍고 주사 맞았는데 낫기는커녕 더한 거야. 주사 한 방에 20만원 넘어. 돈도 없는데. 그래도 나아야지 도독늠 시키들. 안 나아. 더 해. 다른 정형 외과 갔다니 거기도 또 사진찍자 수술하자 해서 안 한다고 했더니, 영세민으로 해서 한의원 가 보라 해서, 그래 거기서 침 맞았는데도 효과가 없어.”

  “처음에 잘 못 잡은 거 같아.”

  그의 왼쪽 다리에 두 방이라도 당장 물집 생기고, 기절할 수준으로 수직 쑥뜸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증상이 나에게도 온다. 되로 주면 말로 받는다. 남에게 그 하찮고, 조그마하고, 한 줌 사소한 덕이라도 베풀면 나에게 많은 복이 돌아온다. 기계적 공식보다 엄청난 이득이 난다.

  갑작스런 경련, 타박상, 결림에 노동은 과로로 연속이 된다. 결국 자기도 모르는 새에 중노동 속에 서 있게 된다. 그들에게 침과 뜸으로 돌보았다. 그들 덕분에 나는 내 몸이 말하면 바로 알아듣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나를 위하는 게 남을 위하는 길이었다.

  쑥뜸으로 흉터 자국이 생긴다. 수도 없이 침을 꽂는다. 어께, 허리, 다리, 발, 손으로 이어진다. 같은 자리에도 반복 된다.

  그러면 옥상에 올린 그 시멘트 20포대가 문제로 삐긋했나? 처음에 확실하게 뭔가 보이는 기분으로 덜렁 들어다 놓았지. 관계자들은 천하장사라 하기는 했지. 5층부터 나무 사다리 타고 지붕까지 올렸는데 그 때 발의 균형이 어긋났나?

  이번에는 벌써 며칠이야, 지금까지 쌓여 온 찌꺼기도 있었나 보지. 이번은 막강한 강적인 것 같다. 언젠가는 닥칠 강적이야. 쑥뜸으로도 50% 간당간당, 안 빠져 나간다. 일 하는 중에 통증이 온 다리를 남 모르게 하는 하루도 있다. 일요일마다 빼먹지 않고 찜질방에서 3시간 넘게 지져도 싹 다 빠지지 않는다. 이래 본 적은 없는데. 이러다 나도 다리 저는 거나 아닐까? 이상하게 오른쪽 무릎은 경혈에 집중 침을 꽂아도 뿌리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오래 지속된 통증이 다 끌어 모인 경우다. 장기전이다. 매일 조금씩 빼야 한다.

  담배는 사고, 피고, 버리는 과정이 일사분란하고 기계적이다. 게임도, 카톡도,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도 다 중독이다. 플렛폼이 깔린 중독이다.

  중독은 과정 전체가 매뉴얼대로 돌아가기에, 인간으로서는 조정할 능력이 떨어진다. 나와 DNA를 분리 시켜야 가능하다. 거대 기업이, 정부가 중독 시킨다.

  면도할 때 보면 원숭이의 그 유전자 분포 내력을 바로 알 수 있다. 원숭이에서 발전을 거듭했지만 인간이란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

  로봇이 된다면 가능하다.

  바지 오른 쪽 주머니에 자동차 키와 집 키 묶음, 지갑을 넣는다. 왼쪽 주머니에는 휴대폰이다, 작업 중에도 확인 한다. 자동차 키는 예비용이 없어져서, 잃어버리면 그냥 절벽이다. 새로 하는데 40만원이 넘게 든다. 집 키를 잃으면 사다리 타고 창문을 넘거나, 퇴근이 일정치 않은 식구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려야 한다. 카드로 채워진 지갑을 잃으면 교통카드야 새로 사면 그만이고, 현금이야 그렇다 치고도 주민센타네 경찰서네 여기저기 한 달 가까이 다녀야 한다. 기계는 화내지도 않는다.

  휴대폰 잃어버리고 거의 일 년을 그까짓 거 없이 살아 봤지만 나만 손해다. 세금도 아닌 돈 터배기나 하고 새로 장만해야 한다.

  이 안 좋은, 쓰라리게 당해본 모든 걸 로봇이 되어 기계적인 방식을 채용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되는 것이다. 편하다. 근심 걱정이 없어진다.

  쑥뜸은 경기도 산중 법원리에서 기숙사 재수생학원 강사 할 때 윤리 선생한테 배웠다. 그게 벌써 몇 년이야. 우연히 배운 기술이 참으로 고마웠다.

  차 사고가 나서 일어서지도 못했을 때도 보험이 재깍 해결해 주지 않고, 뭔 트집이나 잡고 질질 끌었지만, 몇 며칠 쑥뜸으로 완전 다 나았다.

  파주 박물관 공사 할 때도 쑥뜸 덕을 제대로 보았다.

  말벌에 쏘였다. 붕글붕글 독이 부풀어 오르던 손가락이 쑥뜸 한 방에 금방 가라앉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병원에 실려 가지 않는 방법이라며 다 놀랐다.

  침은 조선족에게서 배웠다. 나는 중국 가서 배워왔다고도 하지만 실은 공사장에서 같이 일하던 동포가 가르쳐 주었다. 막상 배우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내던 침이었다. 문화 혁명하던 모뗏동 시절 중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배웠다는 그 침술이었다.

  침의 종류, 절대 찌르면 안 되는 곳, 경혈, 침의 찌르는 깊이, 효과, 사고, 침 놓는 환경 등등의 수많은 문제를 바로 해결해 나갔다.

  그들은 놀랍게도 아무 대가 없이 쉽게쉽게 가르쳐 주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의 범위 안에서는 얼마든지 다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도 배우는구나. 기뻤다.

  막강한 효과와 경제성을 갖고 있음에도 쑥뜸만으로는 문제가 있었다.

  불 붙은 쑥의 열기가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고통, 그 흉터, 그 찌꺼기 처리에 더해서 보관과 휴대하는 문제까지 있었다. 간편 쑥뜸으로 발전했지만 한복처럼 고급이 되지 못하고 옛날 방식에 구닥다리가 된다.

  속발복에 간편한 휴대. 침은 쑥의 약점을 제대로 보완한다.

  날이면 날마다 눈 뜨면 노동이라면, 생로병사라. ‘아이구 다리야’ ‘허리야’ 하다가 자칫 다리 끌고 다니게 된다. 뇌졸중에 노출 된다.

  내가 내 몸을 지키고, 병이 오는 길을 알기에, 스스로 내 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치료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운동장 한 바퀴 돌면서 건강을 저축하는 부류의 그런 호사가 아니다.

  동대문 전철역 의료기기 가게에서 뼈침, 중침, 장침, 사혈 침, 금침을 한 보따리 샀다.

  처음 찌를 때만 이를 앙다물고 억지로 참아 내어 몸서리 낫지만 그 다음 부터는 이미 버린 몸이라 생각보다 훨씬 쉬웠다. 내 몸에 침을 꽂으면서 하나하나 경혈을 찾았다. 상한 곳이 많아 그만큼 경혈 찾기도 쉬웠다. 책을 구해서 확인 해 보았다.

  비누 샴푸 금지.

  화공약품처럼 보여 싫고, 뒤치다꺼리도 한참 더 걸린다.

  맹물로 하면 된다. 퇴근 후 샤워하면서, 먼지에 쩔은 옷을 발로 대충 밟아가면서 빨래까지 하는 이중효과를 볼 수 있다. 하루에 붙은 먼지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욕조에 척 걸쳐 놓았다가 저녁 먹고 마당에다 내다 걸어 놓으면 빨래 끝. 매일매일 기계적 동일 동작까지 가능하다. 지속 가능한 편한 방식이 된다.

  노동하는 사람들은 보통은 한 가방 가득 작업복, 안전화, 모자, 자질구레한 기타 등등을 넣고, 등산객처럼 메고 다닌다.

  나는 작업복 그대로 입고 다닌다. 대신 매일 갈아 입는다. 그들의 그 거무튀튀한 색에 페인트, 폼, 실리콘, 먼지에 쩔은 작업복이 아니다. 안전화를 그대로 신고 다닌다.

  무슨 의식 같이 아침마다 벌어지는 현장의 그 옷 갈아입는 시간을 근본적으로 차단한다. 몽고군이 말고기 말린 육포만으로, 그 빠른 속도로 세계를 정복한 방식을 찾아 봐야 한다.

  용케도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못났다는 걸 알아내었다.

  나보다 못한 사람 하나 없고, 내가 제일 못 났다. 참으로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러자 그 남들 속에 묻혀 있던 새 세상이 보였다. 하고 싶은 일 모든 걸 다 해 보는 자유가 생겨났다. 그렇지. 이게 바로 내가 한 일이 다 이루어지는 세상이야. 남보다 나을 일도 없으니, 남이야 잘 나면 되었다.

  기본을 갖추고, 기준을 지키면 자급자족이 이루어진다. 기계화 영농으로 향한다.

  “마누라가 돈 빼 간 거야.”

  쓰레기 상차 때면 듣는 소리다.

  스포츠 머리에 당당한 체구. 2.5톤 건자재 차 몰고 김 사장이 일찍 왔네. 이사의 막역지우로 자재 내려놓고 그 차에 현장의 쓰레기를 처리한다. 나야 김 사장이라 하면 되지만 저는 날 보고 ‘아저씨’ 하다가 ‘소장님’ 하다가 멋대로 하는 나이롱뻥이다.

  “이 차에 5톤까지 싣는데 아직 새 차 잖아. 트럭을 사도 장치하는데 5백은 들어. 그래야 3층에서 왈가닥 막 던져도 차가 견디지. 이렇게 단단하게 치장 안하면 몇 년 못가요. 금방 고물 돼. 승용차보다 트럭이 돈 많이 들어.”

  “그러니 쓰레기 한 대 60정도 받아 봐야 얼마 안 남겠네요?”

  “그래도 내가 직접 뛰니까 돼요. 성남서 두리건재라고 하면 다 알아. 마누라가 나 몰래 돈 쓴 거야. 마누라가 7억을 썼어. 나중에 보니까 야금야금 이자를 갚데, 거의 10억이지. 재작년 에 죽었나. 재혼했지. 그 빚 다 갚고, 작년에 마지막 2천 갚고 대출은 좀 끼지만, 용인으로 이사해. 참 대출이 어떻게 되지. 야는 왜 안 오는 거야. 저도 20분에 출발한대서 빨리 왔는데. 오늘 대출 서류해야 되는데. 얘는 하도 꼼꼼해서 하자가 없어. 얘가 집 지어 놓은데 가보면 탈이 안 나.”

 

  두 세상

 

  중 동기모임에서 이정순 만났다,

  날씬하드라. 니 전화번호 알려 달랫는데 이져뿌리고 그냥왔다.

  여학생들 잘 놀드라.

 

  이게 뭐야!

  나는 월요일 출근해서 창문마다 비닐로 비 단도리 하고 각 층 정리 해 놓고 나서야 상선 기관장하던 인규의 카톡을 보았다. 어제 밤에 왔네.

  대번에 훵하니 정신이 나갔다.

  먼저 나를 찾는다? 이제 여기까지 왔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혹은 고심고심해서? 혹은 그냥 지나가는 식으로? 그녀가 먼저 어떻게 내 전번을 친구들에게 물었을까?

  아니 땐 아궁이에서 연기 안 나는 굴뚝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 어떻게 그 먼 시절 나와 그녀와의 관계를 알지. 시골 중학교 이야기니 이미 다 알았던가, 아니, 그냥 넘겨 집는 수준이지. 아닌가. 보통일이 아냐.

  어정쩡한 카톡을 보냈다. 아무렇지도 않은 소식인 것처럼 하루 지나고 답을 보냈다.

  내가 만든 이모티콘 글자사진 전송

  ‘감사합니다.’

  그리고 3일 뒤 목요일에 결단을 했다. 진짜 그녀가 동창회서 만난 그 옛날 내 친구에게, 내 전번 알아내고, 자기가 먼저 전화할 리야 없지. 내가 해야지.

  ‘걔 전번 좀 알려 주시게. 진원이 한테 물어 봐도 알거야.’

  터줏대감 진원이는 군청 다니다 퇴직했나, 매년 간곡하게 중학교 동창회 참석을 메시지로 권해왔다. 매번 고맙다는 인사만 해 왔다.

  아, 진짜 전번이 왔네.

  ‘고마워 나중에 소주 사 줄게. 나도 막걸리에서 소주로 바꾸었네.’

  상대는 이미 내가 제정신 아닌 줄 알든지 말든지, 그래도 끝까지 세밀하고 치밀하게 위장해야 한다. 그리고 일상적인 생활 어조로 묻는다.

  ‘어디 외국으로 나가시는가?’

  ‘할배가 돼서리 아직 이빨 맨들고 있다.’

  ‘거 돈도 마이 들고 엄청 아프고 번거로운데.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옛 애인 만나 황홀하겠다. 학창시절보다 훨씬 예쁘더라.’

  이럴 줄 알았다. 젠장, 젠장, 이게 뭐야, 이 위기부터 넘어서야 한다. 시간을 좀 끌다가 맹렬하게 공격적으로 답한다.

  ‘옛 애인 아냐. 카톡 프로필 사진 보니 돼지같은 할매구먼. 자네도 늙었나. 그 동생이 나를 좋아했네. 이제와서도 엉망이지. 해결하려네.’

  ‘왜?’

  ‘그냥 해 본 소리네. 호강이 넘치네.’

  가식도 핑계도 부질없이 다 혼란이다. 할 일 안한 내가 자초한 혼란.

  즉각 전화했을 때 처음에는 받지 않다가 낯선 전화로 처리하는 듯하다가, 메시지까지 보내자. 고대하던 전화가 왔다.

  억양이 좀 이상해도 그 옛날 음성을 찾을 수 있네.

  어디 대구 산다고 나는 서울. 퇴직. 나는 아직 현역. 그래, 교장 하는 줄 알았다. 평교사, 올 해 정년.

  엘리베이터 바닥 고정 작업으로 몰탈 치다가 전화가 잘 안 되니 다시 한다고 끊었다.

  1층 빈 방에서 더 나은 방식으로 다시 한 번 전화한다.

  이번 일요일에 어디 대전쯤서 만나자. 대뜸 단숨에 제안 했다. 시골 초등동창회 간다고 했다.

  카톡이 생성 된다.

  메인에 예쁘게 웃는 사진 올려놓았네.

  애틋하나 애절하나 험난한 혼란이다. 이 멍한 난관도 넘어서야 하나. 그냥 지나칠 순 없었나,

 

  ‘머 하니.’

  파주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 순희를 불러 본다.

  ‘밥 한다.’

  나는 또 내가 만든 사진을 친절한 척 보내 준다.

  ‘야, 이번 화요일 향우회에서 설악산 간다. 같이 가자.’

  이느마는 편해 망고에 별 가릴 일 없고. 조심할 일 없어 좋다.

  ‘나 맨날 근무잖아 토요일까지.’

  ‘니는 돈돈돈만 해대는데, 밥 한번 사라. 내 한양 나갈 때.’

  ‘맨날천날 오후 5시 퇴근.’

  늘 이런 식이지만 야는 자기 식으로, 지가 멀리 살아서 그런데도, 지가 시간 없으면서, 안 맞추면서, 내 보고 퍼대고는, 그 밥 안 산다고 난리치다가 끝난다. 지가 제깍제깍 답하지도 않으니 카톡도 되다 말다 하지.

  퇴근하고 카톡을 시작하자. 처음 개설된 방이다.

  엉뚱하거나 말거나, 폭을 넓게 잡거나 말거나, 부품하게 하거나 말거나, 내용이야 뭐든지 시작할 때야말로 단디단디 용기가 필요하다.

 

  건축 현장 근무 사진

  난 열심 살았어도 나보다 못한 사람 없더 라. 미안 쏘리.

 

 

  옛날 모습 있구나.

  잘 살고 열심히 살았네--^^

 

  나는 그저 미안한 마음

  죄송 삼송

 

  별 말씀을 죄송할 일은 없어요--^^

 

 

  그대도 내 그 옛 모습 보았네.

  나도 더 도망가지 않네.

  난 너무 미안해.

 

  다 열린다.

  끊길 듯 말 듯, 닫아 버릴 듯한 불안도 있지만 마안하다는 최선의 언어를 골라 본다. 써 놓으면 볼품없고 형편없어 보여도 창이 계속 열리네.

  하느님이 있나 봐. 이런 복이 있을까. 이런 게 호강인가. 나에게도 그 사랑이 있다니, 돌아오다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네.

  ‘가고 있어요.’ 카톡이 온다.

  같이 일하러 내 차로 장비 싣고 다니던 입주, 준공청소 여자 팀장.

  거의 전국적으로 일하러 다닌 게, 그것도 3년 가까이 되나. 아직 젊어 보이고 선한 웃음이 많지만, 용산 임대 아파트에 힘들게 산다는 50대 중반. 5식구 가장.

  오늘 와야 된다고, 이사가 까다롭다고 해도, 나를 믿으니 믿는 구석 있어 미적미적하더니 그래도 오는구나.

  견적을 뽑는다.

  15품. 150에 바깥 창문까지, 그리고 세금 계산서. 세금 계산서 끊으면 한 20 더 받아야 되는데, 바깥 창문은 보통 안 하는데, 견적 조건이란 갑의 일방적인 경우가 많지. 장 이사가 이런 일일수록 을에게 쪼잔한 걸 봐와서 코치해 주고 통과. 일단은 성사된 걸로 한다.

  밥이라도 같이 먹고 가야지. 주변 식당으로 가지.

  “여 계셨어요? 한 3달 되나. 그래서 연락이 안 되었구나, 일본 갔나 했지요.”

  “애기는 제대 했나요?”

  “예, 벌써 했어요. 그런데 외벽 타는 사람도 알아 달라는데요.”

  “거 외벽은 돌쟁이들이 다 닦아서 붙였는데 뭘 괜히 깐죽거리는 거여. 내 결재가 아니니 그 래요. 이 건물이 뭐 별나다고 뭔 밧줄 타고 닦아.”

  나는 지금이 이런 내 수준이란 상당한 업적을 쌓은 자리라는 우쭐한 과시욕도 생겼다. 남과 비교해야 한다.

  “대방동 김 소장은 그래 악써쌓더니 죽었잖아. 육십 안 돼서. 그렇게 남 못살게 소리 빽빽 지르면서, 갑질이나 해대더만 어디 남들에게 대우한 번 못 받아 보고 산 사람 같았어.”

  “자기가 죽을 줄 알았지요. 지게차에 다친 이빨도 안 고치고 그랬잖아요.”

  그 때 거기서 반장이랍시고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600폼 한 묶음 28단으로, 금방 다 쌓아 올려도 지겟발이 들어가느니 안 들어가느니 노다지 흉만 보았다. 찌주구리하게 남의 흉만 수집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나타나고 저기서 나타났다.

  밥도 잘 먹지 않고 밤이고 낮이고 소주만 퍼마셔 검게 얼굴이 탔다. 손을 떨었다. 작은 체구에 오직 소리소리 질러 대는 그 빛나는 위엄으로 일상하는 반말이야 그렇다 쳐도, 너무 앞서 가네. 시키는 일이나 하지. 말귀를 못 알아듣네, 왜 엉뚱한 일을 해. 아, 그 삽 쓰지 말고 막삽 쓰라고! 여 놓지, 저 놓았냐? 빈정대었다.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누구든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특공대 조교처럼 눈을 부라리며 왜정시대 노가다처럼 아랫사람을 부렸다.

  “그래도 막상 사람이 그럴까. 몇 년이면 몰라도 그렇지. 나도 반장 한 달하고 쫒겨 나다시 피 떠났잖아.”

  “나도 수도 없이 잘렸어요. 입만 벙긋하면 그만 두라 하고, 그래도 죽고 나니 입주청소는 아예 거래 끝났어요. 소장 바뀌니 끝이죠.”

  장황하게 대충대충 짜임새도 없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말하면 안 하는 것보다 나아서 미리 펼쳐서 보일 때가 있다. 남들이 나를 다 안다면 숨이 막힐 것이다.

  “일본에 이달 말쯤 또 갈 거야.”

  “거 자주 가시네. 그러고 보니 소장님이 생긴 것도 일본 사람 같아. 우리도 데리고 가요.”

  “한 번 가면 6명 데리고 가는데, 한 400은 버는데, 조직적인 일이라 상당히 위험해요. 된다 면 해 봐야지. 이번에 가면 거 살까봐, 안 오려고 해요.”

  전에도 한 말이다. 조그마한 진실을 바탕으로 아무래도 허풍에 부품하게 하는 말이다. 반복된다.

  다시 월요일이 왔다.

 

  내가 만든 ‘감사합니다.’ 이모티콘

  잘 다녀오셨나.

  어제는 한자 책 낼 거 수정하고, 다른 회사 도와주고 술 얻어먹었네.

  유도 건설 이반장과 술 마시는 사진

 

  인생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허물 덮어 주고---.‘

  붉은 단풍 배경의 카톡 전용 사진 왔구나.

 

  도-모 아리가또

 

  안녕.

  학자타입 그대로네요--

 

  웬 건축 현장직이 학자로? 공사 중인 현장 사진 보내고, 코스를 바로 잡아 본다.

 

  도배하는 공사 진행 사진

  속 실리콘 밖 본드

  도배 공사 감독 중

  공사판 현장 소장. 왕 무식.

 

  그래, 내가 결정해야 한다. 만나야 한다. 어색하지만 쑥스럽지만 내가 해야 해. 안 한 일을 이제는 내가 해야 마땅하지.

 

  운전하시지. 오는 일요일 문경새재서 만나 면 어떨지.

 

  일단 뭔가 주도적으로 해야 된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서슴없이 한 용기에 놀라고, 이것 참 말이란 또 무섭구나 할 때, 혹시 예스 하면 더 어색할 듯하기도 할 때 답이 왔네. 몇 시간 뒤 오래된 질문에 답이 왔네.

 

  어쩌나 또 잔치가 있네--

 

  ‘오우’ 이모티콘 사진

  이벤트의 연속이네.

 

  그러네요~~^^

 

  페인트가 왔다.

  “우리가 우씨 4형젠데, 대가 끊기게 생겼어요. 그렇다니까. 형이 아들 하나, 딸 하나, 내가 아들 하나, 딸 하난데, 아들들은 장가갔지만, 딸만 낳았지. 요새 하나 낳잖아요. 하나지.”

  “맞아요. 우리 예비군 훈련가면 수술했잖아. 그게 잘못이지. 아 더 놓지 말라고, 그게 언젠 데.”

  어제는 3명이 온 사방에 다 칠하더니, 오늘은 사장 혼자 계단과 벽을 칠한다. 커피 한 잔 타다 주면 그게 정이라. 그 뜨끈함으로 서로 말이 많아지고, 협조 상생 관계가 이룩된다.

  “국회이원이고 뭐고, 대통령이고 뭐고, 다 나쁜 늠들이지. 이건 멸종으로 가요. 그렇게 노력 한 거야.”

  “맞아요. 젊은 애들이 시집 장가 못 가고 애 못 낳는다는 게 말이나 되요. 아, 그거는 하고 그 다음에 잘 사네, 못 사네 해야지. 뭘 하는 거야. 누가 이래 될 줄 알았나?”

  “노인네들 다 아들딸이 먹여 살리는 거지. 뭔 나라가 그걸 한다고 세금 걷어. 뭐, 적자 난다 고?”

  “일본에 뭐 안 좋은 거 있으면 우리나라는 따따블로 나타나. 뭐야 이게. 왜 우리가 70까지 일해.”

  “그럼요, 옛날이 좋지. 이럴 바에야, 그 때는 60만 되어도 에헴하고 살았잖아요. 백 살은 뭔 백 살, 그냥 일찍 죽는 게 낫지. 나아.”

  노란색으로 주차 라인을 긋는다. 냄새가 진동한다. 이 고약한 냄새 때문에 일찍 간 친구가 둘이나 된다고 한다.

  그 흔한 노가다 모자도 안 쓰고, 얌얌하게 생긴, 뱅끼 묻은 흰옷 작업복에 동글동글한 할배다.

  “나야 건강하지. 예편네가 분당 c병원 다니는데 당뇨라나, 고지혈증이라나 뭐라나 매달 가는 데 낫지도 않아. 무슨 용한 의사 온다고 가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돈만 갖다 주지 그게 그거야.”

  사장이나 회장이나 그 늠이 그 늠, 다 노가다지. 거기 잘 나가던 태건설에서 3천을 못 받았다는데, 페인트가 그 정도면 엄청 큰데, 맨 나중 공사라 돈 받는 게 제일 어렵다고 한다. 노동부로 가 봐야 노임이 아니니, 서로 좋도록 타협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그 늠이 조금씩이라도 갚는다고 하면 별 수 없고, 그냥 뜯긴다고 한다. 술 안 마시고 담배 안 피고 눈만 뜨면 스타렉스 몰고 돈만 벌러 다니는 타입이라 야무지고 단단하네.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요일은 왔다.

 

  서울역 건설노동자집회 사진

  오하요고자이마스

  오겡끼데스까

 

  안뇽

  잘 잤는가

  무슨 궐기대회인가요?

 

  어느 날 갑자기 옛날이 들이닥쳐, 가슴으로 와서, 연기처럼 안개처럼 피어나 머리로까지 멍한 기운이 피어오르면서 오래오래 중추 신경을 여지없이 마비시킨다. 우쭐우쭐 바람에 흐물거리는 허수아비가 된다.

  또 어떻게, 이러고 나서 어떻게, 만나면 다시 어떻게 해서 만나고 만나다고 해도 그러고 나면 또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지. 그래도 분명한 건 이럴 때 내가 해야 한다는 확실한 결론이다. 매듭짓는 건 아니라도 안 움직인 결과는 항상 참혹해. 안 한 일은 나중에 보면 끔찍하지. 어떻게 하든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말은 하고 나면 부질없고, 문자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한다. 아닌 것만 많고, 못할 일만 많다. 그러나 해야 한다.

  그렇지 이젠 대구로 간다. 내가 가지.

  대전서 만나자고 힘차게 제안한 첫 주는 시골 동창회 있다고 했지. 까짓 거 우리 문경세재서 만나면 어떨까 그렇게 고심 제안한 둘 째 주는 잔치 있다고 했다.

  내가 가면 되지 머. 처음부터 다시 해 보자.

  대구로 간다.

 

  어제는 서울역 건설노조집회에 갔었네

  내가 대구로 이번 일요일 가려는데 점심 같이 하실려

  ‘산 넘어 남촌에는’ 시 노래를 내 필기체 글씨로 만든 사진

 

  일요일 점심 가능해요.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겠네요~~^^

 

  생큐 써 파인 앤 나이스

 

  okay!

 

  애가 감동적 글자들고 선, 자주 본 듯한 이모티콘이 왔다.

 

 

  ‘감사감사’ 내 이모티콘 사진

 

 

  횡설수설하고 싶은 게, 헛소리라도 해 보고 싶은 게, 마음에 드는 새 옷 입는 기분. 전번보다 레벨이 한 계단 오른 새 차를 처음 타는 기분, 빚 없이 새 집 장만하고 이삿날 기다리는 기분이다.

 

 

  글씨 창조자답게 멋있게 쓰셨디요~~^^

 

  웃! 아니지, 바꾸자. 겨우 통로란 실선 같은데, 이렇게 가다가는 뚝 끊어질까 두렵고, 막힐 일 있다. 이왕 나선 김에 대로를 트고, 더 넓은 길로 가자.

 

  팔 경혈 그림 사진

 

  수지침 혈 자리인가?

  골고루 하시네~~^^

 

  수지침은 피부침. 저는 5센티 진짜 침

  으쓱으쓱

 

  일욜 갖고 와요~~^^

 

  두발-자유

  복장-자유

  지참물-침

  1주일 곱게 다듬고, 꾸미고 그리고 침 착하려네.

 

  네 좋아용~~ㅋㅋ

 

  콧노래 절로 나온다. 만난다. 늘 하는 일이 오늘은 더 흥겹다. 남에게 무슨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 아프던 다리도 거의 완쾌 되어 간다. 드디어 내가 그녀를 만난다.

  보이스톡이네. 문래동 은숙.

  “야, 잘 있나. 오늘도 일하니?”

  일상 난 그랬으니 저도 이미 다 아는 당연한 걸 묻지.

  문래역 공원 앞에서 식당 할 때, 보통은 한 블록 골목으로 들어가면 싸고 푸짐해서, 그리로 어디로 가다가 들어간 풍년식당인가, 저는 주인이고 나는 손님으로 만났지.

  뭔 여자가 넓적한 얼굴에 화장도 안하고 바지만 입는데, 자세히 보면 속은 서울 깍쟁이다. 신용불량이라서 같이 횟집하자. 같이 일본 가자. 만날수록 흉허물은 없어도, 뜬금없이 요구하는 게 많다.

  그런데 서로 통할 수 있는 친구 있으면 좋잖아? 하고, 해서, 몇 번 만나니 노래방도 가고 해서, 그것도 몇 년이 되나. 그저 그렇게, 혹은 연인 비슷하게 해 보자고 해 본다.

  “일본은 갔다 왔나?”

  “갔다 온 지 열흘 되었다. 아유유 뭘 해야 하는데. 너처럼 일하는 것도 아니고, 맨날 방구석이야. 남들은 단풍 구경도 잘 다니드라마는.”

  “내 5시 퇴근하면 같이 단풍 보러가지 머”

  “하하하. 청소 대행업체나 해 볼까,”

  “해 봐.”

  “일본에 다시 가서 거기서 식당 일할까?”

  “가. 내가 혹시 일찍 마치는 날 니한테 전화 할게.”

  오늘은 내 주도적으로 거침이 없다. 할 말 못할 말 구분이 없다,.

 

  블랙박스

 

  동대구터미널 am11.10 도착.

  “거기 횡단보도 건너 검은색 차 있어. 1층으로 내려와서 글로 건너 와.”

  저기 있네. 하얀 얼굴, 맞네.

  “횟집 갈까?”

  “팔공산으로 가자. 좋지? 일찍 도착했네.”

  “내가 고속버스기사한테 빨리 가자고 했지. 빨간 불에도 그냥 가자했어.”

  작아졌네. 운전하는 모습이 옛날 모습에서 나이 들어 보이고, 좀은 더 작아 보이네. 운전하느라 앞만 보는 데, 자세히 보이는 손이 가늘다.

  “일요일 멋진 드라이브네.”

  웃는다. 웃는 모습이 곱다.

  대구는 동서남북에 정류장 있고 둥근 분지 도시라. 하루에 바짝 걸으면 만난 사람 또 만난다던 그 옛날 나는 여기서 대학을 나왔지. 팔공산이 멀지나 않나. 하기야 우리 헤어진 앞산공원으로야 갈 일이 없지.

 “내 너 집에 가서 잔 적 있지.”

  맨 처음부터 제대로 된 그녀의 질문에 나는 너무 부담스럽다.

  “그래.”

 

 “무슨 동이었지?”

 “대명동.”

  검문하는 형사 같다. 나는 이런 대화는 안 하기로 고심했다. 입에 손가락을 대면서, 금지 표시를 했다.

 “옛날 일 묻지 말기, 이야기 하지 말기. 헌법 1조.”

 “그럼 뭔 말 하나?”

 “거 뭐 앞으로 150년을 살 것인가? 이런 걸로.”

  안동 말씨다. 이 억양은 내 사촌 안동 계수씨 말씨와 같아. 엄숙하고, 투박하고 형수 같은 어조다. 익숙한 고향 말씨도 아니다. 안동에서 고등학교와 교대를 나와서 그런가.

  차는 늦가을 낙엽 많은 도로에서 신호를 받는다.

  환하게 얼굴을 돌려 나를 찬찬히 쳐다 본다. 나도 바로 본다.

  예전 얼굴에서 아무래도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한 세월이 흐른 흔적이 보인다. 세월이야 흘렀지. 흐르고말고. 우리네 그런저런 감정보다야 지구가 항상 빨리 돌지.

  “15만 키로면, 보자, 9년 된 차네.”

  “맞아. 어떻게 맞추었어?”

  “그냥 대충해서. 맞으면 다행이고.”

  “학교만 왔다 갔다 해서 얼마 안 뛰었어.”

  “그런데 유상근은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며?”

  그건 전번 국회의원 때 이야긴데, 한참 지난 일을 지금처럼 말하네. 아마 중학교 동창회 가서 상근이는 그런 식으로 굳었나.

  “걔도 대학 안 나왔어.”

  “나왔다던데. 서울서 나왔다던데.”

  나는 실제로는 지역구 큰 교회 사람들 힘으로, 국회의원 사모님 보좌관 정도 한 걸로 안다. 걔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정순이 전번을 내게 알려 주고, 내가 전화하게 되서 이렇게 만나게 된 연유를 묻는구나. 사실은 상근이 아니라 인규가 전해 주었지.

  “여기가 제일모직 자리야.”

  “아, 생각나네, 내 여기 있을 때도 있었어.”

  “저기 우리 아파트야”

  “아, 그래.”

  “좋은 뉴스가 있어. 하느님이 영양 출신이래”

  그렇게 좋은 소식은 아닌가 보다. 쓱 웃고 만다. 나는 아무래도 내일이 있는 현실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

  “교장할 때쯤 된 줄 알았네.”

  “평교사로 퇴직했어. 올해 정년.”

  처음 전화할 때 이미 한 소리도 다시 오간다. 꼭 맞는, 알맞은 말이 많아야 좋다. 그래도 안 된면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한다.

  “좋았던 일은? 교사 생활에 안 좋았던 일은?”

  “부모 전화 올 때.”

  “갈킨 늠 중에 선물 한 보따리 싸 오는 늠 있나?”

  “없어. 6학년을 주로 가르쳐야 해. 그럴려면.”

  “나는 학원 강사할 때, 내가 갈킨 늠 중에 춘천서 교수하는 늠 있는데, 매년 고구마 한 박스 보내 와. 뭐 값나가는 거 보내주지 말이야.”

  “집 사람이 고구마 좋아 하니?”

  이제는 말투가 조용하면서, 그 경상도 그 이상한 억양도 없다.

  나는 또 입을 가리는 표시를 했다. 사생활 묻기 없기. 헌법 2조.

  “그러면 뭔 말을 하나?”

  산길로 들어선다. 둘만 탄 차가 한적하고 조용한 산길로 천천히 들어선다.

  팔공산도 크네. 전경이 전부 봉우리 겹겹이다. 멀리 큰 산과 산 뒤에 우렁찬 산맥이다. 맨 뒤에 선 가장 큰 능선이 하늘을 만든다. 수묵 산수화처럼 보인다. 온 우주에 아무도 없는데, 우리만 있는 일요일이야.

  아스팔트가 산으로 기어오르네.

  “메기 매운탕 좋아하지?”

  “그래 좋아.”

  매운탕집이 시골풍에 단층으로 보이는데, 일요일이라 손님 별로 없는 듯 한가하다. 주차장에 차도 거의 없다. 깔끔하다. 평범하게 생긴 주인아주머니가 방으로 안내한다.

  “곱네, 예뻐.”

  할 수 있다면, 더 많이 말하고 싶다.

  얼굴 붉히며 웃는다. 더 예쁘다.

  “소주 한 잔하지.”

  저는 못 마신다며 권한다. 나야말로 막걸리나 좀 마시던 주량인데, 반 병이나 마시나. 씩씩한 소주 주량도 이런저런 자리에는 반드시 필요하지.

  “그래도 열심 일만 하던 사람이 막상 퇴직하면, 특히 교사나 군인이나 평생 시스템에 있던 사람들이라 힘들텐데?”

  이런 말은 자꾸 하면 안 되는데, 이상하다.

  “연금 받아. 시원섭섭하지 뭐”

  맛난 식사. 술.

  “스포츠는 뭘 하나?”

  하도 헌법을 들먹여서인지 그걸 피해서 이상한 질문 하네.

  “나? 당구, 바둑 2단, 북한산, 도봉산 등산 뭐, 이런 꼼지락꼼지락 하는 거. 그런데 참, 정순 이는?”

  “골프.”

  “아, TV에 나오겠네. 그거 좀 갈쳐 줘라.”

  “채 사야 돼. 우리는 같이 팀이 있어서.”

  우리만의 이야기가 이어지니, 더 이상 그 억양도 없다. 서울 말씨로 된다.

  “서울이 어딘데. 대구까지 와 주고, 서울서 어떻게 살아? 번거롭고--.”

  “한 눈 팔면, 코 베 가지. 내 코도 많이 뜯겼잖아. 이게 쑥뜸이야.”

  쑥뜸 한 통 꺼내서 사용법을 알려 준다.

  약효, 뜨거움 정도, 무흔지 사용법, 침보다 나은 점, 침과의 연관성을 짧게, 되도록 간단하게 가르친다. 이런 걸 다 배우다니 다행이야. 미니 뜸 한 통만 해도 2년은 쓰지.

  침통을 꺼낸다. 침은 딱 두 가지. 하나, 심장 쪽에 찌르지 말 것. 둘, 목 뒤로 해서 뇌로 올라가는 혈은 찌르지 말 것, 벙어리 되는 수가 있어, 그리고 성장판이 열려 있는 애들 찌르지 말 것.

  혈은 여기가 엄지 손가락 손톱 옆의 소상혈. 하면서, 밥상 넘어 그녀의 오른 팔을 잡는다. 혈을 짚었다. 여기는, 여기가 어제혈, 손목에 태연혈 여기는 상당히 아파요. 곡지혈

작가의 말
 

  지나간 사랑과 새로 만나본그 사랑은 같다 .앞으로만 가야 하는 주인공의 현재를 당당하게 내세우나 사계절이 인간보다 빠르게 변한다.

  서로 소통하고 어울리는 삶을 그려 보았고, 서로 엮고 섞어 보았고 모든 사람들 속에서 우주가 존재함을 느껴 본다.

  말로는 고독에 익숙하지만 우리는 항상 더 많은 익숙한 사연이 있다. 솔잎처럼 항상 푸른 색에 서로 의지하고 사는 근본이 중요하다. 내가 먼저 다가가면 다 되는 일이다. 다 되는 게 두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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