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덜컹.
밤하늘에 있는 별이 아름답게 다리를 놓은 밤.
잘 정돈되어 있는 숲길을 새하얀 눈이 연상되는 마차가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마차 안에는 밤처럼 어둡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머리를 예쁘게 반묶음을 하고 연꽃이 연상되는 연분홍 드레스를 입은 천사가 내려온 것 같은 여자와 수수한 갈색머리 여자가 타고 있었다.
"역시 아가씨, 너무 예뻐요! 황태자님도 반하실껄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마리아. 무도회장은 언제 도착해?"
"곧 있으면 도착할꺼예요."
마리아라고 불린 갈색머리 여자는 들뜸을 감추지 못해 어쩔줄 몰라했다.
"드디어 아가씨가 약혼이라니. 그것도 황태자님이라니!"
"마리아. 아무리 나만 있다고 해도 그런말을 함부로 해선 안돼."
카르리딘 공작영애, 이사벨라는 마차의 창문으로 풍경을 보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자신의 시녀,마리아를 쳐다보았다.
마리아는 진심으로 기뻐보였다.
자신의 아가씨인 카르리딘 이사벨라 아가씨는 황태자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래동안 모셔온 아가씨가 훌륭한 사람과 약혼한다면 누가 좋아하지 않으리.
'내가 황태자님을 사랑하지만 그분에게는 나는 ..'
오늘밤, 달의 여신 세헤나가 어둠의 밤을 환하게 비춰주는 태양의 달 축제이자 카르리딘 공작영애와 황태자와의 약혼발표식이다.
비록 귀족들 사이에서의 정략결혼이지만..
-끼익.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말을 멈춰세운 마부는 우리에게 도착을 알렸다.
마차에서 내리니 크리스탈로 장식된 거대한 성에서 노래가 흘러나왔고 그 주위로 정원사들이 공들인 정원이 둘러싸고 있었다.
"11시에 카르리딘 공작가로 갈 것이니 그때에 맞춰서 와줘."
"네."
마부는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말을 몰았다.
"아가씨. 들어가요."
"응."
우리는 정원을 가로질러 거대한 성의 입구로 향했다.
들어갈려고 하니 경비원들은 우리를 막아세웠다.
"신분을 밝혀 주십시오."
"저는 카르리딘 이사벨라이고 옆은 제 시녀입니다."
설명과 함께 황금색 초대장을 내밀었다.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제국의 작은 달을 뵙습니다."
"세헤나 여신의 축복이 있기를."
기사들은 허리를 숙이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에 맞추어 나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지금 들어가시겠습니까?"
"황태자님이 오시면 같이 들어가려고 합니다만."
그 말에 기사들은 일제히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 그게 황태자님께서 중요한 용무가 생겨서 조금 늦게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들어가시라고.."
기사들은 당황한 듯 했지만 별 신경을 쓰진 않았다.
"네. 그럼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기사들은 문지기에게 문을 열라고 했다.
"미래의 달, 카르리딘 이사벨라 공작영애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문지기는 우렁찬 목소리로 나의 도착을 알리고 문을 열었다.
"마리아. 가서 쉬고있어."
"네."
마리아는 홀의 옆 복도로 향했다.
하지만 언제 시녀가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시녀들은 주인과 가까운 곳에 항상 대기해 있는다.
나는 옷을 잘 정돈하고 홀 안으로 들어갔다.
-덜컹. 끼이이.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여러가지 음식들과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어머. 저분이.."
"예쁘시네요. 저 붉은 눈동자색좀 보세요. 보석같아요."
"호호호. 말 한번 걸어볼까요?"
"그렇지만 소문에 의하면..."
홀 안으로 들어오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많은 시선들이 부담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황비들이 있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의 중턱정도에서 멈춰 고개를 숙이고 치마 자락을 가볍게 들었다 놓으며 무릎을 살짝 숙였다 폈다.
"위대한 제국의 태양과 달을 카르리딘 이사벨라가 뵙습니다."
"고개를 들어도 좋소. 세헤나 여신의 축복을."
황제는 인자하게 웃으시며 나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황제와 황후, 황비들은 모두 위압감과 아름다운 정원을 장식하는 예쁜 꽃같았다.
"오느라 수고했네. 영애가 왔으니 본격적으로 연회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은 영애와 황태자의 약혼식 공표일이니."
황제의 옆에 있던 황후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황태자는 어디에 있는가?"
"먼저 들어가시라는..."
나팔소리와 함께 문지기가 도착을 알리는 말에 의해 끝마치지 못하고 말이 끊겼다.
"제국의 떠오르는 태양, 히스트리안 제나드 루그리드 황태자 저하와 티에른 에밀리 백작영애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문지기의 말에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문쪽을 바라보았다.
-끼이이익.
이내 문이 열리고, 진한 남색머리의 신이 평생을 걸쳐 만들어낸 역작인지 조각같은 얼굴에 모든걸 꿰뚤어 보는 것만 같은 심해의 눈 색을 가지고 있는 황태자와 새하얀 은발과 보라색 눈을 가진 아름다운 티에른 영애가 들어왔다.
티에른 영애는 황태자에게 에스코트를 받으며 홀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둘은 누구나 선남선녀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울렸다.
"황제폐하와 황후폐하를 뵙습니다."
"위대하신 황제폐하와 황후폐하를 티에른 백작가의 차녀, 티에른 에밀리가 뵙습니다."
그와 그녀는 홀 중앙을 걸어와 황제와 황후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에 귀족들은 수근거렸다.
약혼녀를 내버려 두고 다른 영애와 들어온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고 그것은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이게 뭐하는 짓이지?"
연회장에 울려퍼지던 아름다운 악기소리는 어느샌가 사라졌다.
황제는 눈을 매섭게 치켜뜨며 황태자를 보았다. 그리고 황제의 옆에 있던 황후도 입을 열었다.
"내 아들이지만 이렇게 사리분별이 없을 줄이야."
"약혼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애를 데려온 것도 모자라 귀족들에게 황족의 위신을 깎아내리다니."
황후는 황태자에게 실망했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황태자는 그에 내색하지 않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약혼식은 어짜피 황족의 입지를 다지려는 정략결혼을 위한 것 아닙니까."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러는 것이냐."
"전 따를 생각이 없습니다."
-쾅!
황제는 앞에있는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오늘 나는 이만 나가겠네. 황태자는 이 곳이 정리되는 대로 집무실로 오거라."
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미련없이 자리에 일어서 연회장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를 따라 황후, 황비들이 자리에 일어나 연회장을 나갔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죠?"
"티에른 영애는 황태자님이랑 관련이?"
그녀들이 나가자 연회장 안에 있던 귀족들은 웅성거리며 나와 티에른 영애 중에서 누구에게 붙어야 할지 생각했다.
"나와 함께 추겠나?"
"네."
황태자는 티에른 영애에게 첫 춤을 권했고 아름다운 악기소리는 다시 울려퍼졌다.
둘은 홀 중앙에 서서 춤을 추었다. 황태자는 티에른 영애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와 그녀가 이미 연인사이라는 것은 제국 전체에 소문이 퍼져있었다.
언젠가는 이런 상황이 올 줄은 알았지만 역시 실제로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짓눌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생각해보면 입구에서의 기사들의 태도도 지금 상황이랑 연결한다면 맞아 떨어져..'
둘을 보고 있으니 목이 타는 것 같았다. 황태자를 사랑하기에 더욱 사랑을 응원할 수 있다고 다짐했는데...
"어머. 카르리딘 영애."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고 티에른 영애의 추종자라고 소문난 뮈젤란 바이올렛 영애였다.
"왜 그러시죠. 뮈젤란 바이올렛 영애."
"황태자 전하와 티에른 영애는 역시 어울리죠? 누구와는 다르게요."
"그건 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설마요, 제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자자하시잖아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바이올렛의 표정은 나를 깔보는 듯한 표정이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황태자와 티에른 영애가 춤추는 것을 보았다.
'어..?'
보고만 있던 나에게 잠시나마 황태자 전하의 시선이 머물렀다.
이내 금방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기분탓인가..'
기분이 침울해졌다.
어느샌가 바이올렛은 없고 테이블 위에 음료수가 놓여 있었다.
나는 음료수를 마셨다.
"어..?"
갑지기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흐려졌다.
.
.
.
"꺄아아악!!!"
"사람이 찔렸어!"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누군가의 비명소리에 눈을 떳다.
"이...이게.."
어느순간 나는 홀 중앙에 서 있었고 내 앞에는 황태자 전하가 복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몇몇 영애들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있었고 귀족들은 모두 경악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황태자 전하!!"
티에른 영애는 눈물을 글썽이며 황태자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카르리딘 영애! 어째서 황태자 전하를 찌르셨죠?"
"그게 무슨소리..."
어느순간 바이올렛이 나타났다.
"지금 당신의 손에 증거가 있는데 발뺌할 건가요?"
나는 그 말에 내 손을 보았다.
내 손에는 작은 단검이 들려있었으며 그 단검에는 검붉은 액체가 묻어있었고 드레스는 피가 튀어져 있었다.
-챙그랑!
손에 있던 단검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손이 덜덜 떨렸다.
"내...내가 아니.."
-짝!
티에른 영애는 나의 뺨을 쳤다.
"어쩜 그렇게 뻔뻔하세요! 황태자님... 흐흑.."
뺨이 얼얼했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단지 음료수를 먹었더니 머리가 어지럽고 일어나니 이런 상황이라면.
"으윽..."
황태자가 복부를 잡고 일어섰다. 상태가 안 좋은지 누가봐도 심각해 보였다.
"황태자님...제가..."
"루드! 일어났어요? 지금 당장 의원을.."
나는 황태자에게 뭐라고 말할려 했지만 티에른 영애가 황태자에게 다가갔다.
입구에서 부터 쇠가 붙이치는 소리가 나더니 기사들이 내게 다가왔다.
"카르리딘 아사벨라. 당신을 황족시해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
.
.
.
기사들은 내가 반항하지 못하게 손을 묶고 데려간 곳은 지하감옥이였다.
-철컹.
"사형식은 태양의 달 축제가 끝난 다음날이다."
거의 감옥에 내평겨치듯이 들어갔다.
"황태자... 황태자님은 괜찮으십니까?!"
"네년이 그래놓고 할 소리인가?"
기사들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나가버렸다.
-털썩.
다리가 풀려 감옥바닥에 주저 앉았다.
감옥의 바닥은 습기가 차서 축축했고 빛도 거의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다.
"흐흐흑....."
감옥 안에는 서럽게 우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
.
.
-끼익.
울다가 지쳐 잠든 나는 쇠소리에 눈을 떳다.
"카르리딘 이사벨라 영애."
나를 부른 사람은 나도 잘 아는 사람이였다.
"티에른... 에밀리 영애..."
그녀는 그 말에 기쁜듯이 입고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