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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선택 개정판
작가 :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8.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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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크리스마스 카드
작성일 : 18-02-11     조회 : 629     추천 : 2     분량 : 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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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 뺨치는 미모의 영희는 캐럴송을 들으며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를 흔들면서 흥얼거리고 있었다.

  "징글벨, 징글벨, 징글벨 락! 징글벨 락! 오 징글벨 락......"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기 위해 거실에서 징글벨 락을 듣고 있던 영희의 귀에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소영이겠지!"

  전화벨 소리를 듣자마자 중얼거린 영희는 재빨리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영희야, 나 소영이야! 메리 크리스마스! 아니, 메리 화이트 크리스마스! 밖을 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어! 이럴 땐 남자친구랑 강남역으로 가야하는데! 우린 예비 고삼이라 완전 망했어!"

  영희의 단짝 소영이였다.

  "우와! 정말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소심한 성격의 영희는 이제껏 한번도 크리스마스를 남자친구와 함께 보낸 적이 없었다.

  항상 크리스마스가 되면 다정하게 손잡고 가는 연인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크리스마스인 이날따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닌가!

  5년 만에 찾아온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소영아, 지금 강남역에서 보자!"

  영희는 소영이와 함께 강남역 거리를 나돌아다니다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철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훨친한 키, 날씬한 몸매, 잘생긴 얼굴의 철수는 훈남이라 하면 딱 어울렸다.

  '보나마나 또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려 온 거겠지.'

  영희는 철수가 왜 왔는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웬일이니?"

  "너한테 주려고......"

  철수는 영희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봉투채 주고 나서 떠났다.

  영희가 봉투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꺼내는 순간, 뭔가가 땅에 떨어졌다.

  편지였다.

  "뭘 이렇게 많이 썼지?"

  한마디 중얼거린 영희는 편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영희야, 혹시 알고 있니? 이번이 나의 6번 째 크리스마스 카드라는 것.

  6학년 음악 시간에 선생님을 대신해 네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봤을 때, 나는 너를 좋아하게 되었어.

  너의 아름다운 반주처럼 너의 마음씨도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면 내가 그 이전부터 너를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식 날, 네가 나와 같은 학교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기뻤지.

  선생님은 먼저 나의 학교를 불러 주셨고, 너의 차례가 되자 가슴이 조마조마 했었어.

  혹시 초등학교 입학 추첨에서 떨어졌을 때의 실망이 다시 재현되면 어쩌나 싶었지.

  하지만, 너도 나와 같은 학교임을 아는 순간 마치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었어.

  이제 어느 덧 5년이 흘렀구나.

  너의 피아노 실력은 5년 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향상되었지만, 나는 아무 것도 발전한 것이 없는 것 같아.

  하지만 넌 모를거야. 너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끔 꿈에서 너를 보고 기뻐하다 깨어나면 공허한 느낌이 들었는데, 내년에 니가 유학을 떠난다면 마치 꿈속에서 너를 만나서 놀다가 깨어났을 때처럼 공허할 것 같아.

  졸업하고 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까지 드는구나.

  유학가면 5년이상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었지.

  5년동안 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가끔은 우울한 생각도 들지만 그동안 나도 열심히 살아서 네가 돌아오기 전에 완전히 변한 사람이 되어 반가운 모습으로 너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영희야, 나, 생각했어. 5년 후엔 반드시 변한 사람이 되야겠다고.

  유학가면 나에게 편지해 준다고 했지?

  난 네가 약속을 지킬 거라 믿어.

  이런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네가 떠나도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편지에 쓰여진 구절 하나 하나가 마음에 와닿았다.

  문득 철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영희는 편의점에 가서 카드를 사와 글을 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말이 없어 한참만에 겨우 한 줄을 적었을 뿐이었다.

  '철수야, 예쁜 카드 잘 받았어.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영희는 전화기를 들었다.

  "철수니? 나야, 영희."

  철수는 놀랍고도 반가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 영희구나. 크리스마스, 잘 보냈니?"

  "응, 난 소영이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어. 너도 크리스마스 잘 보냈니?"

  "어, 그래, 잘 보냈어...... 게다가 니, 니가 전화해줘서......"

  철수는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말을 더듬었다.

  영희는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너, 지금 시간있니?"

  '만세!'

  속으로 만세를 부른 철수는 재빨리 대답했다.

  "당연 있지, 어디서 만날까?"

  "글쎄......"

  영희는 집 근처에서 철수를 만나고 싶었지만, 말하기가 미안해 '글쎄'하고 넌지시 떠봤다.

  "너희 집, 건너편에 있는 커피숍 어때?"

  "좋아, 거기서 봐."

  영희는 책상 위에 있는 초미니 피아노를 집어 들어 호주머니에 넣고 외투를 걸쳐 입고 현관문을 나서면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잠깐 다녀올게."

  커피숍에 먼저 도착한 영희는 철수가 오기 기다리며 무슨 말을 할지 곰곰히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할까? 만나면 생각나겠지......'

  영희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철수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많이 기다렸니?"

  "아니."

  영희의 집과 철수의 집은 도보로 5분 거리였고 전화를 끊고 바로 왔으니 많이 기다렸을 리가 없지만, 철수는 다른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영희도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둘 사이에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너한테 줄께 있어."

  영희는 철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었다.

  철수는 너무 기뻐 입이 찢어질 듯 함박 미소를 지었다.

  "정말 고마워. 읽어봐도 돼?"

  영희는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철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카드를 펼쳤다.

  '철수야, 예쁜 카드 잘 받았어.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별 내용이 없어 철수는 조금 실망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영희야,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철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희가 크리스마스에 보자고 한 것이 단순히 카드를 주기 위해서만은 아닐 텐데......'

  "철수,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너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기 바래."

  "내 소원은 벌써 이루어졌는걸. 니 소원도 이루어지기 바래."

  영희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소원이 뭐였는데?"

  "너와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거......"

  영희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철수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급히 와서 그런지 목이 조금 마르네. 뭐 하나 시켜 마시자. 오렌지 쥬스 마실래? 내가 살께."

  긴장되서 목마른 것이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마워."

  철수는 오렌지 쥬스 두 잔을 시킨 후 말했다.

  "많이 춥지?"

  영희는 치마에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오늘처럼 추운 날에 스타킹을 신으면 춥지 않을까?'

  철수는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다.

  "아니,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추위를 느낄 시간도 없었어."

  커피숍 아가씨가 쥬스 두 잔을 가져오자 철수는 쥬스를 마시며 생각했다.

  '영희에게 고백할까? 그래, 오늘 고백하자. 영희는 내년에 유학을 떠나니 오늘이 고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몰라.'

  철수가 고백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영희가 호주머니에서 초미니 피아노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밀었다.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초미니 피아노에서 대단히 귀에 익은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와, 정말 고마워. 미니 피아노에서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나오네. 이거 전에 너희 집에 갔을 때 본 적이 있어. 무늬만 피아노인 줄 알았는데, 진짜 피아노 소리가 나네. 정말 고마워. 근데, 난 선물을 준비 못했는데......"

  "괜찮아, 난 여러 번 생일 선물 받았잖아. 난 한번도 네 생일 선물을 준 적이 없는데......"

  철수는 한번도 영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적이 없었지만 항상 영희를 따로 만나 생일 선물을 주었다.

  철수를 초대하고 싶어도 친구들 눈치 때문에 그럴 수 없었는데, 영희는 이 점을 미안하게 생각해왔다.

  철수가 말했다.

  "선물 정말 고마워. 대신 내가 저녁 살께. 혹시 저녁 먹었니?"

  "아니, 너는?"

  "나도... 그럼, 우리 저녁 먹으러 가자."

  철수는 저녁을 먹었지만 영희와 저녁을 먹고 싶어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희도 소영이와 저녁을 먹었지만, 크리스마스인 이날따라 철수와 저녁을 먹고 싶었다.

  영희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철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근처에 좋은 데가 있어. 갈래?"

  "그래."

  철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영희도 따라 일어났다.

  철수와 영희는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에서 틀어주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자 영희는 기분이 날아갈듯 좋아졌다.

  '철수를 만니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 내가 그동안 우울했던 것은 남친이 없기 때문일까?'

  철수가 영희에게 물었다.

  "뭐 먹을래?"

  "난 아무거나 좋으니까 니가 알아서 시켜."

  철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아무거나 좋은데, 뭘 시킬까?"

  영희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알아서 하셔."

  철수는 종업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한 후 영희에게 말했다.

  "오늘 기분 좋은 일있니? 기분 좋은 일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영희는 마치 동심의 세계로 돌아온 듯 공주가 된 기분이었다.

  영희가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었다.

  "크리스마스잖아. 그래서 기분이 좋나봐."

  "일년이 크리스마스가 된다면 항상 행복하겠네. 그럼 일년을 항상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해봐."

  영희는 곰곰히 생각했다.

  '크리스마스가 일년 내내 계속되도 남친이 없으면 이런 기분이 나지 않을 것 같아. 그래서 여자는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는걸까?'

  영희는 손뼉치며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일년 내내 라면 별 느낌이 들지 않을지 몰라."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예전에 티비에서 봤는데, 어떤 사람이 매일 아침마다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야.'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사니 정말 행복할 수 있었데. 너도 아침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다 생각해봐. 그럼 기분이 좋아질거야."

  "그 말도 일리가 있네."

  "내가 너라면 항상 행복하겠어."

  "어째서?"

  "넌 정말 예쁘잖아. 내가 너라면 거울만 봐도 행복해질거야."

  영희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게 말이되? 그럼 미스코리아들은 항상 행복해야 될거 아니야?"

  "아니야, 미스코리아가 되면 욕심이 많이 생겨서 행복하기 쉽지 않지."

  "너, 철학자처럼 말하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철학자가 된데. 왠지 알아?"

  "몰라. 넌 알아?"

  "그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머리를 계속 쓰다보면 머리가 기가 막히게 빨리 돌아가기 때문이지."

  영희는 킥하고 웃으며 물었다.

  "그럼 너, 사랑에 빠졌니?"

  순간 영희는 자신의 말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6년간 철수가 자신을 짝사랑해왔으니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철수가 당황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농담이야. 사실, 사랑에 빠지면 철학자가 되는 이유는...... 아마......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되기 때문일거야."

  영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짱구를 쳤다.

  "맞는 말 같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도 철학자가 될 거 같아."

  이때 종업원 아가씨가 음식을 가져왔다.

  철수가 영희에게 수저를 주었다.

  "식기전에 먹자."

  "그래."

  철수는 식사를 하면서 영희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다 영희와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철수는 영희에게 고백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고백해도 괜찮을까? 거절당하면 어쩌지? 어색한 사이가 될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번이 내 생애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영희가 떠나면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지 몰라. 그래, 고백하자. 영희가 싫다면 계속 친구로 지내자고 하면 될 거야.'

  먼저 식사를 마친 철수는 영희가 식사를 마칠 무렵, 조심스럽게 말했다.

  "영희야, 우리, 만날래? 네가 유학떠날 때까지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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