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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선택 개정판
작가 :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8.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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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
작성일 : 18-02-15     조회 : 641     추천 : 2     분량 : 5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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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페 디엠? 그거, 영화에 나온 말 아니야? 영화 제목이 뭐더라......"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말이야. 근데, 실은 난 영화와 다른 뜻으로 말했어. 다른 뜻도 있는데 말이지......"

  철수가 말끝을 흐리자 영희는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뭔데?"

  "오늘 우리 한번 즐겨보자. 뭐, 그런 뜻도 있데. 옛날 영국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키스같은 거 하려고 작업할 때 써먹었던 말이래."

  '철수가 갑자기 왜 이런 소리를 하지?'

  영희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책에서 봤어."

  "그런 뜻도 있었구나."

  철수는 갑자기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영희는 철수의 미묘한 미소를 보자 덜컥 걱정이 되었다.

  '설마, 나한테 키스하려는 건 아니겠지?'

  바로 그 순간 철수는 레스토랑 문쪽을 가리켰다.

  "소영이 아니야?"

  영희는 반사적으로 레스토랑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르페 디엠!"

  영희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철수는 손으로 영희의 뺨을 살짝 만졌다.

  영희는 갑자기 뺨에 철수의 손이 닿자 화들짝 놀라 외마디 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맛!"

  철수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속았지?"

  영희는 철수의 손이 뺨에 닿자 철수가 키스한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새빨개진 영희는 철수를 꼬집는 시늉을 하였다.

  "뭐야."

  영희는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만 갈게."

  "화난 거니?"

  "글쎄......"

  "미안...... 잘못했어. 앉아. 오늘이 발렌타인데 전날인데, 벌써 갈 거야?"

  영희는 마지못하는 척하며 자리에 앉았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영희의 두뺨은 여전히 새빨갛게 물든 채로 있었다.

  영희는 계속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철수야, 그만 가봐야 겠어. 벌써 아홉시 반이야. 열시까지 돌아가야 돼."

  "내가 바래다 줄까?"

  "아니, 그러다 애들 눈에 뜨이게? 고맙지만 사양하겠어."

  "언제 다시 볼 수 있니?"

  "글쎄, 아마 한 달 후에. 연락할게. 잘 있어."

  "그래, 다음에 보자."

  영희는 철수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한 후 홀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난 언제 키스하고, 언제 결혼하게 될까?'

  영희의 뺨은 아직도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키스도 결혼도 언젠가는 하겠지, 뭐......'

  영희는 마음속으로 카르페 디엠을 외쳐보았다.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자!'

  영희는 이렇게 다짐하고서 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연인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발렌타인데이 새벽.

  영희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로맨틱한 무드에 가슴이 설레었다.

  동화속에 나오는 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새벽에 잠이 깬 영희는 그간 철수에게 받았던 6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책상 위에 한군데 모아 놓고 읽었다.

  읽고 또 읽고 또 다시 읽다보니, 어느새 탁상 시계가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영희는 문득 산책하고 싶어졌다.

  창문을 열어보니 매서운 추위를 느낄 수 있어 영희는 두터운 코트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이때 영희의 어머니는 영희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밖이 추우니 옷을 두텁게 입으라고 말해주려 현관으로 갔지만 영희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어머니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깨워야 일어나는 애가 왠일로 일찍 일어났지? 설마 이른 아침에 남학생 만나러 나간 건 아니겠지?'

  요즘 영희를 보면 너무 행복해 보여 수상쩍은 생각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년 후면 끝을 알 수 없는 4년 이상의 유학길을 떠나야 되는 딸이 만나는 남학생이 있다고 해도 못 만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분간 지켜봐야지 뭐......"

  아침 산책에 나선 영희는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지저귀는 새소리, 아침 산책하는 사람들, 날듯이 달리는 신문 배달부, 수레를 끌고 배달하는 야쿠르트 아줌마, 아침 일찍부터 출근하는 사람들.

  '너무 아름다워! 아침 정경이 이토록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어!'

  영희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아침 정경에 가슴이 뭉클해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토록 세상이 아름다운 걸, 왜 미처 몰랐을까?'

  영희는 눈을 감은 채 신선하고 향긋한 아침 기운을 만끽했다.

  살며시 부는 2월의 아침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영희는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철수를 생각했다.

  '수능 끝나면 철수랑 아침산책하면 정말 좋겠다.'

  영희는 온통 철수 생각이었다.

  철수를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철수를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유학을 결심하지 않았을 텐데......'

  철수를 두고 미국으로 떠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유학 준비하느라 수능 준비를 하지 않아 진로를 바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영희는 답답한 마음에 중얼거렸다.

  "재수할까? 앞으로 사년이나 철수를 못 볼 걸 생각하면 눈 딱감고 재수하는게 좋을 거 같아."

  이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신문을 한아름 안고서 영희의 옆을 스치며 뛰어갔다.

  "신문이요!"

  순간 영희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철수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영희의 창문을 두드려 영희를 깨웠다.

  잠에서 깨어난 영희는 눈을 비벼가며 세수한 후 밖으로 나갔는데, 철수는 수줍어하며 영희에게 예쁜 카드를 주었다.

  카드에는 'I will always love you'라고 써 있었다.

  영희는 그런 철수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반장 희성이가 영희의 백마탄 왕자였기 때문이었다.

  얼마전에서야 영희는 희성이에 대한 미련을 버렸고, 그래서 철수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6년간 일편단심으로 자신만 좋아한 철수의 마음을 좀 더 일찍 받아주지 못한 것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몹시 후회스럽다.

  내년 이맘 때 쯤 영희는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유학 예정기간인 4년동안 철수를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순간 울적해졌다.

  그것도 잠시, 신기하게도 발렌타인데이라서 그런지 어디선가 밀려오는 설레임으로 울적한 마음이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순간 뇌리에 '카르페 디엠'이 떠오른 영희는 갑자기 손뼉을 쳤다.

  '카르페 디엠! 그래,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던 현재를 즐기자. 그게 나와 철수를 위해 최선일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니 영희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산책한 영희는 학교에 갈 시간이 되자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선 영희에게 어머니가 물었다.

  "어디 갔었니?“

  "산책. 엄마, 오늘 일찍 학교 가야돼. 소영이한테 할 말이 있어."

  영희는 철수를 잠깐이라도 보고 싶었다.

  '발렌타인데이에 철수를 안 볼 수 없지.'

  서둘러 집을 나선 영희는 등교 길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철수를 기다렸지만, 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린지 한참만에 소영이가 나타났다.

  "소영아!"

  "영희야!"

  소영이는 영희가 앉아 있는 벤치로 다가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어제 어떻게 됐니?"

  "뭐가?"

  "뭐긴 뭐야? 알면서 시치미떼기는......"

  "아......"

  영희는 이제서야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영희는 어제 피아노 학원에 오지 않았기에 소영이는 영희가 철수를 만났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뭐, 특별한 거 없었니?"

  "특별한 거? 뭐?"

  소영이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벤트 같은 거."

  영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녁만 먹고 헤어졌어."

  '어제 철수 때문에 엄청 당황했었는데......'

  영희는 어제 일어난 일을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 하긴, 뭐, 고삼이 이벤트 할 정신이......"

  영희는 화제를 돌리려 소영이의 말을 잘랐다.

  "근데, 철수에게 할 말이 있는데, 난 보충수업 안 받아서...... 니가 좀 전해줄래?"

  "뭔데?"

  "오늘 아홉시에 전화할거라 전해줘."

  "알았어."

  "고마워, 소영아, 이따 보자."

  정확히 9시가 되자 영희는 철수에게 전화했다.

  9시 정각인 이때 영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9시 뉴스를 보느라 안방에 있어 거실에서 전화한 것이다.

  소영이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철수는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물었다.

  "영희야?"

  "그래, 나야, 지금 잠깐 볼래?"

  한달 후인 화이트데이 쯤에나 영희를 다시 만날 줄 알았던 철수로서는 횡재한 기분이었다.

  "좋아! 어디서?"

  "어디겠니? 우리가 만나는 장소지."

  영희 집 근처의 커피숍을 말하는 것이다.

  "알았어! 일초만에 그리로 갈게."

  "십분 후에 만나!"

  먼저 커피숍에 들어와 자리에 앉은 영희는 카드에다 '카르페 디엠!'이라 썼다.

  바로 이때 커피숍으로 들어온 철수는 영희가 카드에 뭔가 쓰는 것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난, 카드 준비 안 했는데...... 잠깐만 기다려줄래?"

  철수가 카드를 사오려 하자 영희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발렌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한테 주는 날이니, 니 카드는 화이트데이에 주면 되잖아. 나 곧 가야하니까 어서 앉기나 해."

  철수가 자리에 앉자 영희가 카드를 건네주었다.

  철수가 펼쳐보니 카드엔 '카르페 디엠!'이라고만 써 있었다.

  '카르페 디엠? 내가 어제 써먹었던 말이잖아!'

  어리둥절해하는 철수에게 영희는 하이파이브를 건네며 말했다.

  "카르페 디엠!"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철수야,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일년 동안 카르페 디엠하며 살자!"

  철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먹을 불끈 쥐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좋아, 이제부터 카르페 디엠하며 살기다!"

  영희와 철수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하이파이브를 했다.

  영희는 이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우리 앞으로 카르페 디엠하며 살기로 약속하자."

  영희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철수도 얼떨결에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

  영희의 새끼손가락이 맞닿는 순간, 철수는 마치 영희의 손을 잡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희 역시 철수와 마찬가지였다.

  영희와 철수는 아직 서로 손을 잡아본 적이 없어 새끼손가락이 맞닿는 순간 기분이 야릇했다.

  공연한 일을 벌인 것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영희는 도망치듯 이 한마디만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먼저 갈게."

  영희가 뭐에 쫓기듯 커피숍 문을 열어젖히고 나가자 철수가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인사했다.

  "잘 가!"

  영희는 커피숍을 나간 후에서야 철수를 불러놓고 커피도 사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철수야, 미안해. 커피는 나중에 사줄게.'

  영희는 어쩐 일인지 철수와 첫키스라도 한 것처럼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허겁지겁 걸어 집으로 향했다.

빌리이브 18-02-15 13:27
 
오늘은 미국 발렌타인 데인데, 글과 뭔가 느낌이 맞습니다~.
  ┖
조정우 18-02-15 16:11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발렌타인데이 당일에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Happy Valentine's day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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