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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선택 개정판
작가 :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8.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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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화이트데이
작성일 : 18-02-16     조회 : 604     추천 : 2     분량 : 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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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수를 못 본지 백만년은 된 것 같아. 모레가 화이트데이니, 철수한테 전화해야지.'

  영희가 철수를 만난 지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었다.

  영희는 지난 한 달간 철수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새학기가 되자 수능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는 영희는 보충수업에 빠져 철수와 등하교 시간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전화도 발렌타인데이 저녁에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영희는 전화기를 들었지만, 막상 전화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일 전화할까?'

  그동안 몇 번이나 전화기를 들어 철수에게 전화하려다가 전화기를 내려 놓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가슴이 왜 뛰는 거지?'

  영희는 전화기를 들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는데, 그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발렌타인데이 전날에 있었던 일 때문일까?'

  어쩌면 발렌타인데이 하루 전에 있었던 일이 아직도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때 철수가 키스한 줄 알고 깜짝 놀랬었잖아.'

  영희는 잠시 생각해보자 다른 이유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냐,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결혼 이야기도 있었고...... 키스, 결혼 생각 때문에 내 가슴이 셀레이는 걸까? 아무튼 설레여서 나쁠 건 없지, 뭐.'

  키스, 결혼, 셀레임.

  모두 영희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영희는 중고등학교 5년 동안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장 희성을 좋아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중학교 이후로는 좀처럼 학교에서 마음이 끌리는 남학생을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철수에게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설레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철수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내가 정말 사랑에 빠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이 설레임은 뭐지?'

  영희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는지 아니면 일시적인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철수한테 전화걸자. 학창시절 마지막 화이트데이일지 모르는데.'

  이때 철수는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혹시 내가 발렌타인데이 전날 장난친 거 때문에 영희가 연락 안 하는 걸까?'

  철수는 발렌타인데이 전날 영희에게 장난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철수는 생각 끝에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 때문은 아닐꺼야. 발렌타인데이 당일에도 영희를 만났잖아.'

  바로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철수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그동안 잘지냈니?"

  철수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영희의 목소리였다.

  "덕분에."

  "덕분에? 내 덕분에 잘 지낸 거야?"

  "응, 니 전화를 기다리다 보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잘 지냈어. 암튼 전화해줘서 고마워."

  철수는 농담조로 영희가 그간 전화하지 않은 것을 나무라고 있었다.

  영희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그간 전화 못해 미안해. 근데, 철수야, 내일 일곱시 삼십분에 시간있어?"

  "당연하지. 지난번 레스토랑에서 만날래?"

  "좋아. 그럼, 내일 봐. 안녕."

  "내일 보자."

  전화를 마친 영희는 잠시 누웠다 일어나 공부하려 했는데, 그러다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얘가 불켜 놓고 자네."

  간식을 주려고 방에 온 영희의 어머니는 영희가 최근에 열심히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잠든 것이라고 생각해 편하게 잘 수 있게 불을 껐다.

  실제로 영희는 새학기가 시작한 이후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다.

  열심히 공부해야 화이트데이에 편안한 마음으로 철수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저녁 7시.

  영희는 레스토랑에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약속이 있을 때마다 20분 일찍 도착했던 철수를 생각하면 늦어도 7시 10분에는 도착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네."

  20여 분이 지나자 영희가 중얼거린 것이다.

  바로 이때 철수가 헐레벌떡거리며 나타났다.

  영희는 철수를 보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너 뛰어왔니?"

  "미안해. 기다렸지? 서두르긴 서둘렀는데......"

  영희가 손목 시계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긴. 임마누엘 칸트처럼 딱 일곱시 삼십 분에 왔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길을 지나가는 시간이 언제나 1분의 오차도 없이 똑같아 그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고 하는데, 예전에 철수가 해준 이야기였다.

  철수가 손목시계를 보니 정확히 7시 30분이었다.

  "일분이라도 늦을 수 없어 달려왔어."

  "그럴 필요없는데. 앞으로는 약속시간 그런 식으로 지키지 않아도 돼."

  "하지만 오늘은...... 화이트데이잖아."

  철수는 오늘이 마지막 화이트데이라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철수로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오늘이 둘이 보내는 마지막 화이트데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영희가 유학을 떠나면 5년 후에나 돌아올 예정이었다.

  5년이란 시간은 청춘의 연인들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인데다 그때가 되도 영희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 어때, 그래도 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잖아!'

  철수는 지난 5년간 화이트데이 때마다 영희에게 사탕을 선물했지만, 짝사랑했던 그때와 연인이 된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생각에 걱정보다는 행복한 마음이 더 들었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뛰어온 철수가 숨을 헐떡거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종업원 아가씨가 음식을 가져왔다.

  "철수야, 내가 음식을 미리 시켰어. 괜찮지?"

  영희는 철수가 늦어도 7시 30분에는 오리라 생각하고 미리 주문했다.

  "잘했어.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파서 니가 음식을 미리 주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 텔레파시 통했나 보다."

  영희는 철수의 재치있는 말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네. 어서 먹자."

  영희가 수저를 철수의 테이블 앞에 놓는 순간, 철수가 예쁘게 포장된 선물과 카드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선물이야. 화이트데이 선물. 이건 카드고."

  "읽어봐도 되지?"

  "물론이야."

  영희가 카드 봉투를 열자 편지 하나가 손에 잡혔다.

 

  '오늘은 내가 태어난 이래 가장 기쁜 날이야. 크리스마스는 너무 경황이 없었고, 네 생일은 우리가 연인이 되었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고, 발렌타인데이는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해서 후회되었어.

  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연인이 된 것을 기념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비록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그래, 카르페 디엠! 우리가 잡을 것은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오늘의 행복이야.

  카르페 디엠은 오늘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잡으라는 뜻이지.

  그래, 난 발렌타인데이 이후에 확실히 깨달았어.

  우리가 지금 행복할 수 있다면 미래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오늘 하루 너의 연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고 큰 행복인지 깨달았어.

  불확실한 미래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현재의 행복을 마음껏 만끽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란 걸 깨달았어.

  영희야,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로 난 정말 행복했어.

  너도 나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제 난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어.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지켜주는 것.

  특별히 너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어. 할 수 있다면,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원히, 너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어.'

 

  -너의 연인이자 영원한 친구 철수가-

 

  영희는 철수의 편지가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에 와 닿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현재의 행복을 마음껏 만끽하자는 철수의 글은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명대사보다 더 명언인 것 같았다.

  "잠깐 손 좀 씻고 올께. 너 먼저 식사하고 있어."

  철수의 편지에 감동이 된 영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내가 예뻐서 철수가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내가 십년 후에도 지금처럼 예쁠 수 있을까? 그럼 십오년 후에는? 이십년 쯤 지나면 나도 확실히 지금처럼 예쁘지 않을 거야. 철수야, 너의 말이 진심인 줄 알지만, 내가 예쁘지 않고 내 머리가 백발이 되어도 네가 지금처럼 나를 사랑할 것이라곤 믿어지지 않아.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지는 좀 더 지켜보고 싶어. 이런 내 마음... 이해해주길 바래.'

  영희는 마음을 진정시킨 후 자리에 돌아왔다.

  철수와 이별할 것을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울적해진 영희는 의식적으로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배고프다면서 왜 안 먹고 있어? 너 먼저 먹지. 자, 식기전에 어서 먹자."

  철수는 영희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먹는 모습을 보자 기분이 좋아져 먹기 시작했다.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먹었니?"

  영희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질문한 것이다.

  철수가 대답하지 못하자 영희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 내년에 왠만하면 발렌타인데이는 보내고 갈 거야. 그러니 다 먹어. 내년에 또 줄게."

  철수도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왠만하면? 뭐, 확실한 것도 아니네. 만약 내년에 받으면 먹을게."

  "그럼, 먹지 않았니?"

  "내년에 먹으려고...... 만약 내년에 못받으면 그때 먹으려고 냉동실에......"

  철수가 자신이 준 초콜릿을 냉동실에 넣었다는 말에 영희는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내년에 꼭 주고 갈 테니 걱정마. 나 약속 잘지키는 거 몰라?"

  "알지만...... 그래도......"

  "약속 지킬게. 게다가, 만약 내가 일찍 떠나게 되면 우리만의 발렌타인데이를 만들면 되잖아. 그러니까 아끼지 마시고 드세요."

  우리만의 발렌타인데이.

  이 말에 철수는 입이 찢어질 정도로 기뻐했다.

  "좋은 생각인데? 그럼 화이트데이도 우리만의 화이트데이를 만들자."

  영희는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글쎄...... 너 하는 거 봐서."

  "그게 무슨 뜻이지?"

  "너, 공부...... 알았지?"

  "알았어."

  바로 이때 교복을 입은 두 남녀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영희의 눈에 뜨였다.

  '어머! 희성이랑 혜정이잖아!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쟤네들이랑 마주치다니!'

  영희는 급히 철수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철수야, 희성이랑 혜정이가 왔어. 나 먼저 나갈게. 넌 좀 있다 나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영희는 희성과 혜정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얼굴을 돌린 채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버렸다.

빌리이브 18-02-16 13:50
 
크리스마스도, 설날도 다 좋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조정우 18-02-16 17:42
 
미국은 오늘이 설날이겠네요. 빌리이브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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