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가 그 미모의 여성을 가리켰다.
"혹시 티비에서 못 봤니? 삼년 전 미스 코리아인데......"
영희는 이때서야 누군지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이제 생각나요. 이현주. 가까이서 뵈니 정말 예쁘세요!"
연주는 천진난만하게 미소지으며 손뼉치는 영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보기엔 영희 니가 더 예쁜 것 같은데......"
"언니, 농담도 잘 하세요."
영희는 연주의 칭찬에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이때 연주가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사실, 미스 코리아도 별거 아닌 것 같아. 화장 안 한 모습보면......"
"그거야, 언니가 예쁘니까 그렇게 생각이 드시는 거겠죠."
"나, 정말 예쁜 것 같아?"
연주의 말은 이현주보다 예쁘냐는 말이었다.
'내가 보기엔 연주 언니가 이현주보다 더 예쁘신 것 같아.'
연주의 말뜻을 알아챈 영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니는 정말 예쁘세요."
"고마워."
"언니는 정말 예쁘세요. 전 언니가 너무 부러운걸요."
연주는 정말 예쁘다는 영희의 말에 신이 났다.
"너도 화장하면 지금보다 훨씬 예쁠 거야. 나중에 내가 화장 예쁘게 하는 거 가르쳐 줄게."
"정말요? 듣기만 해도 너무 감사해요."
바로 이때였다.
"뭘 그렇게 재미있게 이야기하니? 나도 좀 끼여줄래?"
이현주가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둘이 앉은 테이블에 다가왔다.
"앉아. 현주야, 얘는 영희야. 영희는 앞으로 내 대학 후배가 될 거야."
연주가 자기 멋대로 한 말에 현주는 정말 영희가 줄리아드 음대에 원서라도 낸 줄 알았다.
"나는 이현주야. 만나서 반가워."
"저도 정말 반가워요. 이렇게 가까이서 뵈니 너무 아름다우세요."
"고마워. 근데, 영희, 넌 화장도 안 했는데, 나보다 더 예쁜데...... 미스 코리아 나가봐라. 내가 밀어줄게."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말씀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철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찬사를 받은 영희는 미스 코리아 앞에서도 기죽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감 넘치는 영희의 눈빛은 미스 코리아인 현주를 앞도할 정도였다.
연주는 영희에게 질투심을 느낄 정도였다.
'영희 얘는 수줍은 듯 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질투심날 정도로 너무 예쁘네!'
영희는 이런 기분이었다.
'티비에서만 보던 미스 코리아와 식사하니 갑자기 유명인사가 된 기분이야!'
이때 현주가 갑자기 연주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혹시 니 오빠 영희랑 만나는 거 아니지?"
연주도 현주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오빠가 영희 두 번 만났는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하냐?"
연주와 현주 둘이서 귀속말을 주고 받는 동안, 영희는 파티장을 둘러 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보지 못했는데, 파티장 앞쪽에 무대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마이크 옆에 피아노가 있었는데, 영희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피아노 완전 명품이잖아!'
영희의 집이나 학교 피아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났다.
현주와의 귓속말을 끝낸 연주가 영희에게 물었다.
"영희야, 뭘 그렇게 쳐다보니?"
"피아노가 정말 좋아 보여서요. 근데, 저 피아노는 여기 왜 있어요?"
연주는 깜박 했다는 듯 손뼉을 쳤다.
"맞다! 내 정신 좀 봐. 저 피아노 치워야 하는데......"
현주가 끼어들었다.
"왜? 저거 스타인웨이 피아노던데? 저 비싼 피아노를 호텔까지 가져온 이유가 있을 텐데......"
연주가 속상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내 대학 후배인 유명 피아니스트를 초청했는데...... 오늘 못 온대...... 근데, 저걸 치울 생각을 못했네."
연주가 아쉬운 듯 말하자 현주는 미소를 지었다.
"니가 한번 폼이라도 잡아보지 그러냐. 일억짜리 피아노 소리가 어떤지 좀 들어보게."
영희는 1억짜리 피아노란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억이요?"
"몰랐니? 저 피아노 못해도 일억은 될 걸?"
'우와, 일억이면 우리 집값 거의 절반 가격이네. 난 언제쯤이나 저런 피아노 쳐볼 기회가 생길까?'
영희가 한번 쳐보고 싶은 듯 피아노를 쳐다보자 연주는 문득 영희의 피아노 실력을 보고 싶어졌다.
"영희야, 너 피아노 잘치지? 한번 쳐봐."
"아니예요. 사람들 앞에서 칠 정도는 안 되어요."
"대학에서 시험본다는 생각으로 한번 쳐봐."
연주는 영희의 손을 끌고 피아노 쪽으로 다가갔다.
파티장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은 연주가 영희의 손을 끌고 피아노 쪽으로 가자 호기심 어린 얼굴로 쳐다보았다.
'쟤는 여고생처럼 보이는데 연주가 뭐하려는 거지?'
모두가 이런 생각일 때 영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언니, 저 피아노 잘 못쳐요."
"내 말대로 해. 알겠어?"
어릴 때부터 공주처럼 자란 연주는 자신도 모르게 명령조로 말했다.
영희는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연주 언니가 시키니 어쩔 수 없지, 뭐.'
연주가 마이크를 잡자 파티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연주를 응시했다.
"얘들아, 잠깐만 주목해줘. 얘는 이영희라고 내가 아끼는 동생인데...... 아직 학생이라서 부족한 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장래성은 충분히 있으니 앞으로 지켜봐줘. 자, 미래에 피아니스트가 될 영희에게 격려의 박수를!"
연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200여 명의 청중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게 된 영희는 처음에는 긴장이 되었지만, 어디선가 솟아나는 자신감으로 점차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영희는 피아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응시했다.
피부가 하얀 영희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어 피부가 평소보다 더 하얗게 보였다.
마치 흰옷을 입은 천사를 연상시켰다.
'영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야.'
철수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 영희는 어디선가 솟구치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때 연주가 피아노를 막 치려는 영희에게 물었다.
"뭘 칠거니?"
영희는 열 손가락과 한 손가락을 번갈아 펴보이며 말했다.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십일번이요."
"악보 안 보고 칠 수 있어?"
"네."
연주에게 건투를 빌어달라는 듯 살짝 쳐다본 영희는 얼굴에 미소를 띠운 채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영희는 검은 피아노와 매칭되어 눈처럼 하얗게 보였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영희가 검은 피아노를 치니 영희의 흰 피부는 더 희게 보였고 피아노는 더 검게 보였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를 치는 영희의 모습은 마치 백조가 아름답고 우아하게 날개짓하는 것 같았다.
'와! 천사처럼 예쁘다!'
'너무 예쁘니까 질투심이 나네.'
남자들은 고혹적인 자태로 피아노를 치는 영희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여자들은 영희를 질투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침내 영희가 피아노 연주를 마치자 우레같은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앵콜!"
"브라보!"
"원더풀!"
"따봉!"
"원 모어!"
파티장은 함성과 박수 소리로 떠나갈 듯 했다.
영희는 어쩔 줄 몰라 자신도 모르게 연주를 쳐다보게 되었다.
연주는 손가락으로 하나 더 연주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고개를 끄덕인 영희는 정신을 집중하며 파티장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연주가 조용해 달라는 사인을 보내자 파티장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파티장이 조용해지자 영희는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영희는 마치 피아니스트가 된 양 침착하게 피아노를 쳤다.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영희의 모습은 마치 백의의 천사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청중들 앞에서 침착하게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이유는 영희가 어렸을 때부터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쳐왔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희의 뛰어난 피아노 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피아노 소리가 멈추자 파티장은 박수와 환호성 소리로 가득했다.
영희는 박수와 환호성 소리에 어쩔 줄 몰라 연주를 쳐다보았다.
연주는 영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 후 박수를 쳤다.
영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청중들은 앵콜을 외치면서 박수를 쳤다.
청중들의 놀라운 반응에 당황한 영희가 연주를 다시 쳐다보니 한 곡 더 치라는 사인을 보냈다.
영희는 한곡 더 치기 위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영희가 자리에 앉자 청중들은 숨을 죽이며 피아노 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영희는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치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는 영희의 손길은 쉴새없이 바빴다.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피아노를 치는 영희는 청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마침내 영희가 세번째 연주를 마치자 파티장은 다시 한번 박수와 환호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영희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청중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 순간, 청중들은 약속이나 한듯 자리에서 일어나 영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영희는 자신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는 청중들을 보자 어쩔 줄 몰라 당황하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때 연주가 다가와 영희의 손을 잡았다.
"영희야, 너무 잘했어. 너 완전 유명 피아니스트 같았어."
"감사합니다."
"수고했다.“
연주는 영희의 손을 잡고서 영희를 다시 테이블로 데려왔다.
영희가 자리에 돌아오자 현주가 말했다.
"영희야, 나 완전 감동먹었어. 어쩌면 그렇게 피아노를 잘 치니? 완전 프로같더라."
"뭘요......"
현주의 칭찬에 영희는 쑥스러워져서 말을 있지 못했다.
파티장이 들떠있을 때, 현철이 마이크를 잡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이영희 씨의 연주 잘 감상하셨나요? 이제 피아노 연주가 끝났으니 다시 이전처럼 친구분들과 이야기 나누시면서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현철의 말에 사람들은 잠시 중단했던 대화를 다시 시작했고, 파티장은 이전처럼 다시 산만하고 소란스럽게 되었다.
영희의 테이블로 다가온 현철은 마침 영희의 옆자리가 비어 있어 앉았다.
영희는 오늘의 멋진 경험은 모두 현철 덕분이라는 생각에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현철 오빠......"
"영희, 오늘 아주 완벽했어. 유명 피아니스트라 소개했어도 믿을 정도였는 걸."
"감사해요."
현철과 마주보는 자리에 앉은 현주가 영희와 현철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빠가 영희를 잘 키워주세요."
현철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연주가 웃으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호호호... 네가 말하지 않아도 영희는 내가 돌봐줄 테니 걱정마."
"모두 정말 감사드려요."
영희는 현철, 연주, 현주에게 한꺼번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오늘 영희에게 벌어진 모든 일은 마치 꿈만 같았다.
놀라운 규모의 화려한 파티, 청중들 앞에서 펼친 피아노 연주, 청중들의 우레같은 환호성과 박수.
모두 영희에겐 꿈속에서 벌어진 일처럼 믿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테이블에 아버지 회사 회장님의 남매와 미스 코리아가 앉아 있다는 사실도 꿈만 같았다.
영희는 문득 철수를 만난 후 행복해졌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수를 만난 후 찾아온 행복과 자신감이 오늘의 꿈만 같은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
영희는 철수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철수야, 난 이제 너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 네가 나를 아껴주고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선가 행복이 밀려오는 느낌이 들어. 나를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워.'
영희는 갑자기 철수가 보고 싶어졌다.
'철수야, 보고 싶어. 널 보려면 개학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내 입으로 말했으니 어쩔 수 없지, 뭐.'
영희는 철수에게 방학 끝난 후에 보자 말한 것이 후회되었다.
연주는 영희가 딴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웃으면서 말했다.
"호호호... 영희야, 무슨 생각해?"
영희가 부끄러운 듯 말을 못하자 연주가 말을 바꿨다.
"힘들지? 이제 좀 편한 마음으로 쉬어."
현철은 영희의 테이블에 음식이 없는 것을 보자 영희에게 말했다.
"나, 음식 가져오려는데,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봐."
이때 연주가 나섰다.
"모두 같이 가자."
영희의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과 음료수가 있는 쪽으로 갔다.
사람들은 영희의 일행을 보자 연주에게 말을 걸었다.
모두 영희에 대한 질문이었다.
영희는 오늘 파티의 스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