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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선택 개정판
작가 :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8.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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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이의 고백
작성일 : 18-03-13     조회 : 570     추천 : 0     분량 : 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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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사이에 오늘 중 가장 긴 침묵이 흘렸다.

  영희는 몹시 혼란스러웠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을 열었다.

  "희성아, 너의 진심을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난...... 남자친구가 있잖아......"

  희성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나도 알아. 그냥...... 내 진심을 말하고 싶었어."

  "알겠어."

  희성은 혜정이 때문에 할 말이 있다고 영희를 불러놓고 딴소리를 한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켰다.

  영희는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는 희성의 모습이 안쓰러워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영희는 손목시계를 쳐다본 후 말했다.

  "근데...... 희성아, 나, 늦어서...... 지금 가봐야 될 거 같은데......"

  늦어서 지금 가봐야 된다는 영희의 말에 희성이 손목시계를 보니 9시였다.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영희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희성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성아, 잘 있어. 나중에 또 보자."

  영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커피숍 밖으로 나갔지만, 희성이가 어느새 쫓아와 영희의 손을 붙잡았다.

  "영희야, 잠깐만 기다려봐. 아직 할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영희는 희성이한테 손이 붙잡히자 두 뺨이 빨갛게 물들었다.

  "알았어."

  희성은 빨갛게 물든 영희의 뺨을 보자 잡았던 영희의 손을 놓았다.

  "희성아, 너 먼저 들어가 있어. 집에 전화 좀 하고 들어갈게."

  희성은 고개를 끄덕인 후 힘없는 발걸음으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영희는 힘없이 걸어가는 희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안쓰러웠다.

  '희성아, 제발 기운 좀 내!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말고......'

  영희는 문득 6년 전 희성이 처음으로 자신의 손을 잡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에 등산할 때 희성이 가파른 산길에서 처음으로 영희의 손을 잡았었다.

  그때 영희는 두근거리며 설레이는 가슴으로 희성의 손을 잡았지만, 방금 전 희성이 영희의 손을 잡았을 때는 예전만큼은 두근거리거나 설레이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희성이에 대한 내 마음이 변한걸까? 나도 잘 모르겠어.'

  이때 이미 영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영희는 전화를 하려 한 것이 아니라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희성에게 먼저 커피숍으로 들어가라 한 것이다.

  영희는 눈물을 닦은 후 커피숍으로 들어가 다시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 말이 뭔데?"

  희성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영희야, 혜정이는 지금 유학을 포기할까 고민 중이야. 넌 이미 유학가기로 결심했으니, 혜정이를 격려해 준다면 큰 힘이 될거야. 니가 혜정이를 만나서 유학가는 것을 격려해 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나도 혜정이를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싶어."

  희성은 영희가 승락하자 몹시 기뻐했다.

  "정말 고마워. 니가 도와준다니까 안심이야."

  영희는 자신이 혜정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고맙긴...... 나도 혜정이를 이해해. 유학간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 최소한 사년을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고... 친구들도......"

  "그래, 유학생활이라는게, 정말 힘든 것 같아. 아무튼 정말 고마워. 혜정이에게 니가 큰 힘이 될거야."

  영희는 별안간 당분간 자주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혜정의 말이 생각나 말했다.

  "고맙긴...... 근데, 실은...... 오늘 혜정이가 당분간 날 안 만날 거처럼 말하던데......"

  희성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정말?"

  "응, 정말이야."

  긴 한숨을 내쉰 희성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혜정이가...... 나와 너 사이에서 힘들어 해서, 아마 그래서 그런 걸거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다행이야. 나, 아까부터 혜정이를 당분간 못보게 될까봐 걱정했는데......"

  희성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마. 이 오빠가 있잖아."

  영희는 희성의 미소를 보자 호응하듯 같이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쳤다.

  "오빠 좋아하네. 동갑인데, 무슨 오빠야?"

  "내가 너보다 다섯달이나 오빠잖아."

  "그래, 오빠. 내가 오빠라 불러 주면, 내 오빠 해줄래?"

  영희는 생일이 1월이라 생일이 7월인 희성보다 1살이 적었다.

  정확하게는 5개월이 적었다.

  그래서 희성이 예전에 영희에게 '날 오빠라 불러'라는 농담을 자주 했고, 영희도 농담삼아 희성이를 '오빠'라고 자주 불렀었다.

  희성이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내가 원래 니 오빠잖아."

  무슨 생각인지 희성이 별안간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 좀 빌려줄래?"

  희성은 혜정이를 불러낼 참이었다.

  영희가 손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건네주자 희성이 전화했다.

  "혜정아, 나, 여기 우리 상가 커피숍인데,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와. 응, 알았어. 끊을게."

  희성이 핸드폰을 돌려주자 영희가 물었다.

  "혜정이 나오라 했니?"

  "응, 지금 나오라고 했어."

  "나온데?"

  "응, 곧 올거야."

  영희는 희성이 혜정이를 부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희성이가 나와 혜정이가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하는 거겠지?'

  영희가 희성을 보니 표정이 밝아진 게 울적한 표정을 짓던 조금 전과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희성이 손목시계를 쳐다본 후 영희에게 물었다.

  "근데, 너 지금 시간있니?"

  영희는 9시 30분을 가리키는 손목시계를 쳐다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시간있어."

  "시간 내 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집까지 바래다 줄게."

  영희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였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집이 요 앞인데, 뭐."

  영희가 희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혜정이 커피숍에 들어왔다.

  희성의 옆자리에 앉은 혜정이 호기심어린 얼굴로 영희에게 물었다.

  "언니, 오빠랑 여기서 뭐하고 계셨어요?"

  영희는 갑작스러운 혜정의 질문에 당황했다.

  혜정은 오늘 희성이 영희에게 진심을 고백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냥......"

  영희가 말문이 막히자 희성이 영희를 대신해 대답했다.

  "우리, 니 얘기하고 있었어."

  "내 얘기?"

  "응, 니 얘기."

  혜정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영희와 희성을 번갈아 쳐다본 후 희성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했는데?"

  희성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우리 시원한 팥빙수나 먹자. 오빠가 살게."

  희성은 카운터로 가서 팥빙수를 주문했다.

  혜정은 희성이 카운터로 간 사이에 추궁하듯 물었다.

  "언니,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오빠랑 무슨 얘기했어요?"

  혜정은 오빠가 영희에게 고백했는지 묻고 있었다.

  영희가 얼버무렸다.

  "그냥...... 이런저런 얘기했어. 나 유학가는 얘기, 너 유학가는 얘기, 수능 얘기도 하고......"

  혜정이 의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것 뿐이예요?"

  희성이 카운터에서 보니, 혜정이 영희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는 것 같아 재빨리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희성이 장난스럽게 영희와 혜정에게 물었다.

  "아가씨들, 더 먹고 싶은거 없으신가요? 뭐든 말해보세요."

  혜정이 고개를 흔들었다.

  "난 팥빙수 하나면 돼."

  영희는 조금 전 희성이와 얘기할 때 신경을 많이 써 몹시 갈증이 났지만, 희성에게 얻어 먹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아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팥빙수 하나면 돼."

  주문한 팥빙수가 나오자 희성이 카운터로 갔다.

  혜정은 희성이 자리를 비우자 기다렸다는 듯 영희에게 물었다.

  "언니, 오빠랑 얘기한게 정말 그것 뿐이예요?"

  "뭐, 특별한 얘기는 없었어. 왜?

  "아니예요. 전 오빠가......"

  혜정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희성이 팥빙수 한 사발을 들고 돌아왔다.

  희성이 팥빙수 한 사발을 세 사람 사이에 놓은 후 말했다.

  "너희들, 기억나니? 우리,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피아노 레슨이 끝나면 여기서 팥빙수 먹곤 했잖아.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립네."

  영희에게도 희성에게도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희성과 영희는 팥빙수를 맛있게 먹었지만, 혜정은 숫가락조차 잡지 않은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영희가 어쩐지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미소를 지었다.

  "혜정아, 넌 왜 안 먹니? 같이 먹자."

  "언니, 전 속이 안 좋아서요......"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의 혜정은 속이 좋지 않은 게 아니라 마음이 좋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희성이 혜정에게 메뉴판을 보이며 물었다.

  "그럼, 시원한 쥬스라도 마실래? 생과일 쥬스 어때?"

  혜정이 고개를 흔들었다.

  "됐거든!"

  "차가운 게 싫으면 따뜻한 차라도 마실래? 혜정아, 먹고 싶은게 있으면 뭐든 말해봐. 오빠가 다 사줄게."

  "됐어, 오빠. 나도 팥빙수 좀 먹을게."

  혜정이 숫가락을 들어 팥빙수를 몇 숫가락 떠먹었지만, 마지못해 먹는 것처럼 보였다.

  희성이 뭔가 떠오른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려. 빵 좀 사올게. 아까 저녁을 조금 먹었더니 배가 고프네."

  "오빠, 난 괜찮으니까 내 껀 사지마."

  "알았어."

  희성이 빵을 주문하기 위해 카운터로 가자 이번에도 혜정이 기다렸다는듯 영희에게 물었다.

  "언니, 오빠가 오늘 언니한테 무슨 얘기 했어요?"

  이번에도 혜정은 희성이 고백했는지 물은 것이지만, 영희는 시치미를 뗐다.

  "별로 특별한 얘기는 없었어. 왜?"

  "아니예요. 전......"

  혜정이 영희에게 뭔가 말하려다가 말았다.

  영희는 혜정이 말을 하려다가 말자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왜 그래? 오늘 오빠랑 무슨 일 있었어?"

  혜정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언니...... 저, 언니한테 할 말 있어요. 잠깐만, 저 좀 따라오실래요?"

  "지금?"

  "네, 잠깐이면 되요."

  "알았어."

  혜정이 카운터에 있는 희성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빠, 우리 화장실 좀 다녀올게."

  희성은 혜정이 영희에게 뭔가를 물어보려 한다는 걸 알았지만, 모르는 척했다.

  "알았어. 근데, 팥빙수 녹기 전에는 와야 한다."

  "응, 알았어."

  영희와 혜정이는 커피숍 밖의 한적한 장소로 이동했다.

  "할 말이 뭐니?"

  혜정이 슬픈 눈빛으로 영희를 바라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저, 언니한테... 정말 잘못한 거 있어요......"

  영희는 혜정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입가에 미소를 띈 채 물었다.

  "나한테? 뭔데?"

  "언니, 사실은요......"

  혜정이 말을 잇지 못하자 영희가 혜정의 손을 잡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혜정아, 뭐든 괜찮으니까 말해봐. 사실대로만 말하면 뭐든 용서해 줄게. 우린 특별한 사이잖아."

  혜정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다.

  "언니, 모두 제 잘못이예요. 저 때문에 오빠랑 언니랑 어긋장난 거예요."

  영희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니?"

  혜정이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은 후 당장이라도 울음보를 터뜨릴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언니가 오빠한테 연락해 달라고 한 거...... 그 전화 제가 받았는데, 오빠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정말 죄송해요......"

  영희는 혜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혜정이 울먹이며 말했다.

  "철수 오빠 전화...... 제가 받았어요....."

  혜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마침내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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