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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하루에 세 시간
작가 : 제이미르
작품등록일 : 201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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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나만 보이는 남자(3)
작성일 : 18-02-23     조회 : 280     추천 : 1     분량 : 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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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이 흘렀다.

 그는 내가 가만히 있는 게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두 발자국 더 거리를 벌렸다. 덕분에 그와 나 사이에는 다섯 발자국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여전히 두 손은 머리 높이로 든 채였다. 난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사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나도 그래.”

 

 지금 이런 걸 신경 쓸 처지가 아니라는 건 아는데, 그의 표정에서 난처함이 읽혔다.

 난 결국 가슴 높이에서 들고 있던 칼을 허리 높이까지 내리며 칼끝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그의 표정이 밝아지기에 난 얼른 말했다.

 

 “여기까지야. 칼을 놓지는 않아.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우리 집에서 처음 보는 남자랑 둘밖에 없는데 칼을 놓는 건 너무 위험한 짓이라…….”

 

 난 말끝을 흐렸다. 내가 도대체 왜 저 남자에게 변명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말했다.

 

 “알았어. 그 대신, 아 진짜 불안하긴 한데, 그거 진짜 꽉 쥐고 있어. 알았지?”

 

 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머리 높이로 올리고 있던 두 손 중 하나를 내렸다. 긴장한 채 그를 쳐다보는데, 그가 말했다.

 

 “너는 안 믿고 있지만 난 유령이야. 그래서 물체에 접촉할 수 없어. 봐.”

 

 그가 아래로 내린 손을 옆에 놓인 화장대로 가져갔다.

 난 칼을 더 꽉 쥐었다. 그가 화장품을 집어서 내게 던지려는 수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난 그 순간 호흡을 멈추며 칼을 잡은 손의 힘을 조금 풀었다.

 그의 손이 보이지 않았다. 화장대 표면 위로 그의 손목 윗부분만이 드러나 있었다. 마치 그의 손이 화장대를 뚫은 것만 같았다.

 흘끗 내 손을 내려다본 그가 서둘러 화장대에서 손을 뺐다.

 

 “칼 제대로 잡아! 너 진짜 다쳐.”

 

 나도 모르는 새 칼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난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칼을 바로잡았다.

 그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어째 내가 다치는 것에 대해 나보다도 더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됐지? 보여줬으니까 이제-”

 “-더 확실하게 보여줘 봐.”

 

 그의 말을 가로채고 내가 요구하자 그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난 꿋꿋이 그를 응시했고,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걸음을 옮겼다.

 그는 침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가다가 침대에 부딪히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막힘없이 침대의 중간까지 걸어갔다. 발은 여전히 방바닥에 붙어있는지, 침대 위로 그의 무릎과 상체만이 드러났다.

 그가 물었다.

 

 “이제 됐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제 낯선 남자가 우리 집에 있었던 것도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벌어진 일은 그때보다 더 꿈같았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그는 손을 다시 내 쪽으로 뻗었다.

 

 “봤으니까 이제 제발 칼 좀 내려놔. 난 물체에 접촉할 수 없어.”

 “…….”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근데 난 널 해칠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제발. 내가 불안해서 그래.”

 

 믿을 수 없었지만 그의 말은 논리적이었다. 난 들고 있던 칼을 옆에 있는 화장대 위에 내려놓았다.

 내가 느린 동작으로 칼에서 손을 떼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결국 난 손에 아무것도 없이 무방비하게 그를 마주보았다.

 그는 여전히 침대의 한 가운데에서, 마치 무릎 아래 부분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그와 침대 사이의 경계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그가 갑자기 침대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와 아까 서 있었던 자리로 돌아갔다.

 멀쩡하게 방바닥 위에 발을 딛고 서니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난 넋을 놓고 그를 쳐다보았다. 손에서 칼을 놓고 나서야 그의 생김새가 찬찬히 보였다.

 하늘색 반팔 셔츠와 긴 청바지를 입은 그는 조금 마른 체형이었고 키는 나보다 커서, 내가 그를 조금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키가 165인 것을 감안하면 175정도 되어 보이는 키였다.

 내 시선이 그의 머리끝에서 머물렀다. 부드러운 초코색 머리카락 아래로 자리 잡은 두 눈은 그에 어울리는 고동색이었다. 찰나였지만 참 크고 맑은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다가, 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더 자세히 설명해 봐.”

 “…….”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그가 지금까지 그러했듯 내게 모든 일을 유창하게 설명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섣불리 말을 시작하지 못했다.

 한참을 망설이는 기색만을 보이다가, 그가 말문을 열었다.

 

 “사실, 나도 왜 이렇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어서.”

 “무슨 소리야?”

 “너 반응 보니까 원래 유령을 보는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맞아?”

 

 난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살아있는 사람이 나를 보는 경우는 처음이야.”

 

 결국엔 양쪽 다 아는 게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말없이 그를 쳐다보기만 하는데 그가 갑자기 침대를 가리켰다.

 

 “앉아서 들어.”

 “왜?”

 “피곤하지 않아?”

 

 그의 말을 듣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면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병원 갔다 와서는 잠만 잤는데 지금까지 멀쩡히 서 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긴장이 조금 풀리자 빠르게 피로가 몰려왔다.

 그가 다시 말했다.

 

 “이젠 알겠지만 난 너를 해치지 못해. 그러니까 경계하지 않아도 돼.”

 

 난 망설이다가 결국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의 말대로 완전히 경계를 푼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계속 서 있다가는 또 쓰러질 판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던 그가 말했다.

 

 “혹시 최근에 특별한 일은 없었어?”

 “특별한 일?”

 “그게 네가 지금 갑자기 유령을 보는 거랑 관련이 있나 싶어서.”

 

 사실, 최근에 일어난 일이고 뭐고 난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만도 벅찼다. 우리 집에 무단침입한 줄로만 알았던 남자가 알고보니 귀신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난 별 생각 없이 고개를 저으려다 멈칫했다.

 

 “아, 그러고보니.”

 

 난 반사적으로 말을 꺼냈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순간적으로 어제의 수업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악몽과 귀신, 둘 중에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던 그 시간에 내가 했던 선택.

 하지만, 그게 지금 이 일과 관련이 있을까? 난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단순히 말 한 마디였을 뿐이다.

 일단은 그에게까지 말하지는 않기로 결정하고 난 말을 마저 이었다.

 

 “없었어. 특별한 일.”

 

 내 대답을 끝으로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집주인과 무단침입자의 관계에서 한순간에 사람과 귀신의 관계로 변하니 참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칼부림까지 하고 있었으니.

 서로 눈치만 보다가,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네. 뭐 궁금한 건 없어?”

 

 궁금한 거라. 사실 이 상황자체가 궁금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이 말 같지도 않은 상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겠네’라고 말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난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

 

 “이름이 뭐야?”

 

 갑자기 귀신을 보게 되었다. 그 말은 즉, 그와 마주칠 일이 앞으로 많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언제까지고 그를 ‘당신’이라고 지칭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가 대답했다.

 

 “최성원.”

 

 성원. 난 그 이름을 입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윤시아야.”

 “……그래.”

 

 어쩐지 성원의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통성명하는데 반응이 늦을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서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니만큼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다시 침묵이 흐를 것 같아서, 난 머리를 굴리다가 다른 걸 물었다.

 

 “나이는?”

 “죽었을 당시에는 스물. 죽지 않았다면 지금은 스물둘이겠지.”

 

 죽지 않았다면.

 그 말이 유독 도드라져 그가 나와는 다른 존재임을 인식시켰다. 새삼 내가 귀신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그럼 나랑 동갑이네. 나도 스물둘이거든.”

 “알고 있어.”

 

 그의 대답이 나지막하게 떨어졌다.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에 고개를 들자 그가 옅게 웃었다.

 

 “그렇게 보이거든.”

 

 뭔가 이상한데.

 석연치 않은 느낌은 있었지만 난 그냥 넘기기로 했다. 그런 것까지 따지기엔 오늘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난 무심코 말을 이었다.

 

 “근데 귀신은-”

 “-귀신 아니고 유령.”

 

 내 말을 끊은 그가 정정했다. 난 고개를 갸웃했다.

 

 “귀신이랑 유령이랑 달라?”

 “다르지는 않은데, 뭔가, 귀신이라고 하면 피로 범벅되서는 머리카락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생각나서. 근데 유령이라고 하면 별로 그런 느낌 안 들잖아.”

 “개인 취향인가?”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스스로 단어선택이 적절치 못하다고 느꼈지만 그는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다른 유령들은 딱히 신경 안 써. 그냥 내 고집이지.”

 

 다른 유령들이라. 난 다시 물었다.

 

 “너 말고 알고 지내는 귀신, 아니 유령들이 있어?”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렇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난 또다시 떠오른 의문점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유령들끼리는 유령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해? 겉으로 보기엔 똑같잖아.”

 

 그건 내가 성원을 보자마자 유령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내 질문을 듣고 애매하게 웃었다.

 

 “사실 유령들끼리 알아보는 건 쉬워. 다 나처럼 다니는 건 아니거든.”

 

 나처럼?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쳐다만 보자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유령은 기본적으로 물체에 접촉할 수 없어. 그 말은,”

 

 그가 말을 하다 말고 앞으로 두 발자국, 뒤로 두 발자국 움직였다.

 

 “걷지도 못한다는 뜻이야.”

 

 난 나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렸다. 그렇다고 치기엔 성원이 지금 내 눈앞에서 너무나 멀쩡히 걸어보였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냥 걷는 척만 하는 거야. 그래서 다른 유령들은 내가 유령인 걸 쉽게 알아보지 못해. 대신 내가 다른 유령들을 알아보는 편이지.”

 

 그쯤에서 또 다른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다. 난 물었다.

 

 “그럼 다른 유령들은……. 어……. 떠다니나……?”

 

 다소 황당한 질문에 그가 잠깐 웃었다.

 

 “보고 싶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웃더니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난 놀란 티를 감추기 위해 숨을 삼켜야 했다.

 그의 발이, 방바닥에서 10센티 정도 위로 떠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몸이 앞으로 스르륵 1미터 정도 움직였다가 다시 1미터 뒤로 움직였다.

 너무 티 나게 놀라면 실례일 것 같아 감탄을 억누르다가, 놀란 걸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질문을 꺼냈다.

 

 “근데 넌 왜 걸어다녀? 힘들지 않아?”

 “아, 그건…….”

 

 그의 표정에 잠깐 난처함이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말을 맺었다.

 

 “그냥 그게 더 편해서.”

 

 그의 대답에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갑자기 현관문 도어락 소리가 들려왔다. 난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손짓했다.

 

 “잠깐 있어봐. 금방 나갔다 올게.”

 

 정말 잠깐만 나갔다가 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 동생이 어쩐 일로 한꺼번에 들어와서는 날 보자마자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아직도 옷 안 갈아입고 뭐하고 있냐느니, 아프면서 밥도 안 먹고 뭐하냐는 둥.

 아빠는 날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았고 엄마는 억지로라도 먹고 약 먹으라며 매우 늦은 저녁을 차려주었다.

 덕분에 난 씻은 후에 저녁까지 먹고 나서야 다시 성원을 찾을 수 있었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꽤 시간이 많이 흘러있었다. 안방문을 열자 다행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성원이 보였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내가 말하자 성원은 별안간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 위로 가져갔다.

 

 “내가 말하는 건 밖에 안 들리겠지만 네가 말하는 건 아니야. 가족들이 오해할 수도 있잖아.”

 

 말을 마친 그가 싱긋 웃었다.

 아, 그러네. 난 괜히 내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성원이 불현 듯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아, 말할 게 있는데,”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뚝 끊겨버린 것이다.

 분명히 방금까지 내 앞에 있던 그의 모습이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작가의 말
 

 여러분 꼭 귀신이라고 하지 말고 유령이라고 해주세요. 성원이가 많이 슬퍼하거든요(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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