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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하루에 세 시간
작가 : 제이미르
작품등록일 : 201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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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거미줄 같은 인생(1)
작성일 : 18-02-24     조회 : 279     추천 : 1     분량 : 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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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눈 깜빡할 사이 성원은 모습을 감췄고, 당황한 난 방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밖에 있는 가족들이 신경 쓰여 소리도 못내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그랬었단 말이지.

 난 어제의 일을 잠시 머릿속에서 돌려보다가 눈앞에 벌어진 기막힌 상황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흘끗 눈을 돌려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오후 9시였다.

 난 조용히 물었다.

 

 “어디 갔었어?”

 “어……. 그게.”

 

 성원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시선을 내리꽂았다. 죄라도 지은 것처럼 두 손은 맞잡은 채였다. 뻣뻣하게 서 있는 그의 앞에서 난 편하게 의자에 앉아있었다.

 어제 그가 그렇게 말을 스스로 잘라먹고 사라진 뒤, 난 그가 또 언제 나타날까 싶어 오늘 하루 종일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날이 저물어가도록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내가 정말 그간의 일을 다 꿈으로 쳐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쯤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말 그대로 갑자기. 어제 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던 것처럼, 내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을 때 정확히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몸이 나타나고 나와 눈을 마주친 게 아니라, 마치 그 전부터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성원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입술을 잘근 깨물고 갑자기 검지를 세웠다.

 

 “내가 어제 했었던 말 있잖아.”

 “어제?”

 

 난 잠시 어제의 기억을 되짚다가 물었다.

 

 “뭐……. 너 유령인 거?”

 

 그가 고개를 젓기에 난 다시 물었다.

 

 “네가 물체에 접촉할 수 없다는 거?”

 

 성원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다시 기억을 되돌아보느라 말이 없으니 그가 말을 꺼냈다.

 

 “네가 날 보는데 제약이 있는 것 같다는 거.”

 

 생뚱맞은 그의 대답에 난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미간을 좁혔다.

 

 “그런 말 안 했는데.”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내가 어제 들은 거라고는 유령에 대한 간단한 설명, 그리고 성원의 이름과 나이 정도였다.

 정작 말을 뱉은 그는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그가 말했다.

 

 “역시 그때부터 못 들은 거구나.”

 “그게 무슨…….”

 “혹시 내가 어제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는지 기억해?”

 

 마지막으로 한 말. 난 곰곰이 어제를 되짚었다.

 부모님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 뒤 방으로 들어와서 난 그에게 오래 기다렸냐고 물었고, 그는,

 

 “할 말이 있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난 간신히 대답했다. 정확히 그 부분에서 그의 말이 끊겼었다.

 내 대답을 들은 성원은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중얼거렸다.

 

 “어쩐지 나 혼자 떠든다 싶더라.”

 “뭐?”

 “어제 어디 갔었던 게 아니야.”

 

 성원이 날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영문을 몰라 그를 빤히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계속 네 앞에 있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 분명-”

 “-내가 사라졌겠지. 맞아?”

 

 그가 약간 초조한 기색으로 묻기에 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어제 말하려던 건 그거였어. 네가 날 보는 데 제약이 있는 것 같다고. 그 말 직전에 네가 날 못 보게 된 것 같은데.”

 “…….”

 “사실, 아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말할게.”

 

 조금 빠른 템포로 말을 잇던 그가 한 번 크게 숨을 내쉬었다. 잠깐 내 눈치를 살피는 듯 싶던 그가 말했다.

 

 “사실 어제 하루 종일 너를 쫓아다녔어.”

 “……낮에도?”

 “어.”

 “…….”

 “아……. 물론 너 옷 갈아입을 때나 화장실 갈 때는 안 따라가기는 했는데-”

 “-스토커야?”

 

 주저 없이 나간 대답에 그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그 말 들을까봐 말 안 했던 건데.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당연히 네가 날 볼 줄 알았거든.”

 

 난 전혀 몰랐던 사실에 인상을 썼다.

 나도 모르는 새 나를 누군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이 굉장히 꺼림칙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의 사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라서, 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해봐.”

 “분명히 그저께 네가 쓰러지기 전에 날 봤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네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는데, 네가 날 못 보는 거야.”

 “…….”

 “눈 바로 앞에다가 손을 흔들어도 보고, 옆에서 소리도 지르고 별 짓을 다 해봤는데도 넌 내 쪽은 쳐다도 안 보더라.”

 

 성원이 허탈하다는 듯이 웃었다. 난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 내가 착각한 건가, 보이지도 않는데 그렇게 두 번씩이나 정확히 눈이 마주치는 게 가능하기는 한가.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

 “네가 계속 다른 곳만 보는데도 포기가 안돼서 옆에 있었어.”

 

 난 그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는 그 부분을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진짜 포기해야 하나 싶었을 때, 네가 갑자기 먼저 날 찾아온 거야. 손에 칼까지 들고.”

 

 성원이 피식 웃으며 내 손을 가리켰다. 어제의 일이 떠오르자 괜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물체에 접촉할 수도 없는 귀신, 아니 유령 앞에서 칼부림이라니. 성원 입장에서 그게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는 하지만.

 성원이 말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됐어. 어쩌면 네가 유령을 보는 데는 제약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

 “어제 그거 말해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네 표정이 굳더니 눈에 초점이 엇나가더라고. 그래서 설마 했는데, 나중에는 대답도 안 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난 그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보는 데는 확실히 어떤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쫓아다녔네.”

 

 내가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아, 근데 진짜 너 옷 갈아입을 때랑 화장실 갈 때는 안 따라갔어. 진짜야!”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난 담담하게 대꾸하고 턱을 괴었다.

 제약이라. 난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 말고 그에게 물었다.

 

 “네 생각엔 무슨 제약일 것 같은데?”

 “글쎄. 네가 밤마다 나를 보는 것 같기는 한데.”

 

 밤마다. 그러고보니 성원을 본 건 항상 날이 어두워진 후였다.

 난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시간인가…….”

 

 내가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는데 그가 불쑥 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괜찮아?”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들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아팠잖아.”

 “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잘 아픈 편이 아니다. 가끔 아프기는 하는데 그것도 빨리 낫는 편이라 그저께부터 아팠던 것도 금방 나아서 오늘은 멀쩡히 돌아다녔다.

 날 물끄러미 보던 그가 살짝 웃었다.

 

 “다행이다.”

 

 그의 표정에 지나칠 정도로 안도감이 스며있어서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그러고보면 그는 내가 칼을 들고 있었을 때도 나를 과하게 걱정했다. 따지고보면 우리는 안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아까 그가 내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네가 계속 다른 곳만 보는데도 포기가 안돼서 옆에 있었어.

 포기가 안돼서. 대체 왜? 난 어차피 인간일 뿐이고 그는 유령이다.

 처음엔 그저 인간이 유령을 본다는 게 신기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유령을 보는 인간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난 입을 뗐다.

 

 “너.”

 

 내가 목소리를 내고 성원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는 그때였다. 도어락 소리가 나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부모님이 돌아오신 모양이었다.

 난 한숨을 내쉰 후에 성원에게 손짓했다.

 

 “금방 올게. 잠깐 기다리고 있어봐.”

 “어제도 들었던 말 같은데.”

 

 그가 싱긋 웃길래 잠깐 눈을 흘겨주고 말았다.

 방문을 잘 닫고 거실로 나오자 이제 막 신발장을 벗어나는 부모님이 보였다. 오늘도 동생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같이 차를 타고 왔는지 동생도 함께였다.

 인사를 하자 아빠는 식탁에 큰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내려놓는 소리가 묵직한 게 안에 든 게 많은 모양이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시아야, 고기 구워먹을 거니까 상추 좀 씻어놓고. 깻잎이랑.”

 “네에.”

 

 난 말끝을 일부러 늘이며 대답했다. 난 상추 안 먹는데, 라는 장난식의 투정이라도 부렸다간 당장 아빠가 눈에 불을 키고 혼내려 들 게 뻔하니 뒷말은 잇지 않았다.

 장바구니를 뒤적이다가 그 중에서 채소들을 꺼내 싱크대로 옮겼다. 부스럭거리며 채소들을 꺼내고, 은색 양푼에 담은 뒤 수도꼭지에 손을 가져다대는 그 때였다.

 

 “내 생각엔 오늘도 얘기를 딱히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귀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리기에 난 기겁해서 황급히 등을 돌렸다. 급하게 도느라 미처 손에서 털어내지 못한 물기가 허공에 튀었다.

 내 뒤에 바짝 붙어 서 있던 성원이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올려 얼굴을 막았다. 하지만 물방울들은 허무하게도 그의 몸을 뚫고 그 뒤에 떨어졌다.

 난 그의 뒤쪽으로 떨어진 물방울들을 쳐다보다가, 말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급한 대로 싱크대를 손으로 잡고 기대 선 나보다도 그가 더 놀란 표정이었다.

 그가 말했다.

 

 “어……. 미안. 그게 그러니까, 그렇게 놀랄 줄 모르고…….”

 “내가,”

 

 난 입을 열었다가 얼른 가족들 쪽을 돌아보았다. 가족들은 거실에서 불판을 올린 채 고기를 굽느라 다행히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난 그를 조용히 노려보다가 간신히 손을 들어 앞뒤로 흔들었다.

 내가 그냥 몸을 일으킨다고 해도 그와 닿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그의 몸을 스치는 건 좀 꺼려졌다.

 내가 새삼스레 느낄 섬뜩함은 둘째 치더라도, 그가 느낄 감정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난 뒤로 천천히 한 발자국 멀어지는 성원을 올려다보았다. 말없이 다시 그에게서 등을 돌려 채소를 씻으면서, 난 생각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원이 그 스스로가 유령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귀신이 아니라 유령이라고 불러달라며 당부하던 그. 물체에 접촉할 수 없는데도 다른 유령들과는 달리 굳이 걷는 척하는 것을 고집하는 그.

 물론, 한때 인간이었을 텐데 어떤 유령이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싶겠냐마는, 성원은 그게 좀 더 심하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었다.

 그런 그에게 내가 스치기라도 한다면, 그가 적어도 기뻐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를 성원은 옆에서 조잘대기 바빴다.

 

 “근데 무슨 고기를 이 밤중에 먹어?”

 

 우리집은 부모님이 카페를 하시는 탓에 가족끼리 밥을 먹을 기회가 없었다.

 카페를 시작한 후로 외식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식탁에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건 명절이 전부였다. 그래서 종종 카페 마감 후에 야식 먹듯이 밥을 먹고는 했다.

 내가 대놓고 대답하지 못할 걸 분명히 알 텐데 그는 자꾸 내 주변을 알짱거렸다.

 난 한숨만을 내뱉었다. 유령이 보이기에 그가 내는 소리까지 들려서인지, 물체에 접촉하지도 못하는 그의 인기척이 자꾸만 뒤에서 느껴졌다.

 내가 괜히 채소가 찢어질 정도로 세게 씻기 시작할 때였다.

 

 “근데 왜 항상 채소는 네가 씻어? 동생도 있는데.”

 

 그의 목소리가 내 손을 붙잡았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것도 어제까지 아팠던 앤데. 너무하네.”

 

 난 참지 못하고 다시 뒤를 돌았다. 성원은 내가 아니라 가족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내 표정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단번에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방으로 들어갔다.

 

 “쟤는 상추 씻다말고 어디 가?”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예상대로 성원은 나를 따라왔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난 문을 닫았다.

 조용한 방 안에 그와 단 둘이 남자마자, 난 물었다.

 

 “너 뭐야. 뭔데 자꾸 나를 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성원은 말이 없었다. 그의 표정이라도 읽어보려 했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를 알아?”

작가의 말
 

 사실...아..아임유어파더...!!!.......죄송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내용 쓰는 것보다 제목 짓는 게 더 어렵네요. 소제목 고민으로 고생하고 있는 요즘입니다ㅠㅠ 많이 부족한 글인데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행복하네요ㅠㅠ 선호작 등록해주시고 추천 눌러주신 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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