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성원의 표정이 흐트러졌다고 생각했다. 어느 쪽으로 흐트러진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집요하게 그를 쳐다보는 것으로 답을 요구하는데, 갑자기 새로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역시 여기 있었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듯 웅웅거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시선이 닿은 곳에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내 시야에 들어온 모습에 난 인상을 찌푸렸다.
창문 밖 너머, 깜깜해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사람 머리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우리 집 12층인데 창 밖에 사람 머리라니.
그는 씩 웃더니 빠른 속도로 날아 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성원처럼 걷지 않고 허공에 몸을 띄운 채 공중에서 롤러코스터가 돌 듯 한 번 돌아보인 그는, 성원의 앞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아니, 애초에 발을 디디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 착지했다는 말은 옳지 않겠지만.
내가 생각보다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성원은 명백히 당황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여긴 웬 일이야, 형.”
형? 난 그 말에 미간을 좁히며 내 앞에 서 있는 남자를 한 번 훑었다.
아무리 봐도 앳되어 보이는 그 모습은 초등학교는 졸업한 건가하는 의심을 들게 했고, 키는 좀 작아서 내 어깨까지밖에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형이라니.
티 없이 맑은 피부를 가진 그가 어울리지 않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왜긴. 요 며칠 새 네가 통 안 보이길래 찾으러 온 건데. 역시-”
“-그래도 뭐 하러 여기까지 와.”
성원이 웃는 낯으로 그 말을 툭 끊었다.
그 말에 의문의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굴렸고, 나와 시선이 정확하게 마주쳐 버리고 말았다.
내가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자 그는 고개를 슬그머니 왼쪽으로 뺐다. 그 모습을 조용히 눈으로 쫓으니 그는 또 오른쪽으로 고개를 뺐다. 그것마저 내가 눈으로 따라가니 그가 얼굴을 내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난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뭐하시는 거죠.”
“으아아아-?”
남자가 비명과 함께 뒤쪽으로 쭉 빠르게 날아갔다. 베란다 창문을 지나 무려 12층 창문 밖으로 끊임없이 멀어지는 그를 황망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날아갔던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그가 다시 돌아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12층 높이의 상공에서 벽과 창문을 뚫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다시 나와 성원의 앞에 도착한 그가 말을 쏟아냈다.
“대체 뭐야! 이 아가씨 나 보여? 왜 보이지! 아가씨 사람이잖아! 아니야?”
초등학생 같은 외모로 나보고 ‘아가씨’라는 단어를 남발하고 있는 그를 보니 이질감이 들었다.
성원을 슬쩍 쳐다보자 그가 애매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람 맞는데. 음, 형이 보이는 것도 맞지만.”
남자가 얼이 빠진 듯 입을 떡 벌린 채 나와 성원을 번갈아보았다. 성원이 어깨를 으쓱이기에 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최근 들어 유령을 보게 된 사람……정도로 해두면 되나요.”
“그러니까 왜 보이냐고!”
남자가 빽 소리쳤다. 변성기를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밝고 명랑한 소리였다.
내가 놀라서 몸을 움찔하자 성원이 대신 대답했다.
“우리도 그건 잘 몰라.”
“와, 진짜. 내 유령인생 15년 중에 처음 보는 일이다. 사람이 유령을 봐? 아, 혹시 아가씨 무당이야?”
“아닌데요.”
대답하면서 난 다른 쪽에 주목했다. 유령인생 15년이라니, 그럼 나이가 대체.
내가 골똘히 그를 바라보자 성원이 조금 급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둘이 인사도 제대로 안 했네. 형, 이쪽은 윤시아. 나이는 스물둘이라 나랑 동갑이고.”
“뭐, 다 아는-”
“-그리고 시아야. 이쪽은 어, 음. 내 지인이야. 서주혁 형.”
아까부터 계속 성원이 말을 잘라먹고 있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난 슬쩍 ‘서주혁’이라고 소개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 역시 성원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시아야’라니. 안지 얼마나 됐다고 저렇게 친근하게.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뭐. 반갑다면 반가운 상황인가.”
생각을 비집고 주혁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씩 웃었다.
“서주혁이야. 나이는……. 음. 너 이 아가씨한테 소개할 때 뭐라고 했냐.”
주혁이 말하다말고 성원을 쳐다보았다. 성원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스무 살. 죽지 않았다면 스물둘?”
“아. 그럼 난 열다섯. 죽지 않았다면 서른이겠네.”
난 조용히 입을 벌리다가 이상한 데서 감탄했다. 초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열다섯이라니.
열다섯이라는 나이도 충분히 어리지만 그 와중에 동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키도 어리게 보이는 데 한 몫 하긴 하지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생각도 불쑥 치고 들어왔다.
어쩌다가 열다섯 살에. 난 애써 그 생각을 털어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열다섯 살 남자아이에게 존대하고 그 남자아이가 내게 반말을 쓰는 느낌이라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익숙해지겠지, 생각하며 그를 보는데 그가 날 유심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의 시선을 눈으로 쫓다 물었다.
“왜요?”
“아니, 그냥. 아까도 말했지만 신기해서. 원래는 유령을 보지 않았잖아?”
“그렇죠. 아니, 어떻게 알아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묻자 주혁이 성원을 한 번 슥 쳐다보았다.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린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그냥 느낌?”
“흐음.”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지만 그는 그저 성원에게 한 번 더 눈길을 준 다음 말을 이었다.
“근데 아가씨.”
“아가씨라는 호칭은 좀 바꾸면 안 될까요?”
간신히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묻자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되물었다.
“왜?”
왜냐니. 난 그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겨우 삼켰다.
주혁은 평범한 남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은 곱슬인지-중학생이 파마를 했을 리는 없으니까-조금 붕 떠서 자연스레 물결을 이루고 있었고, 까만 눈동자는 빛을 받아 반짝였다.
더불어 중학생 2학년인 걸 고려해도 키가 작은 편이라, 뭐랄까. 완벽하게 귀여운 이미지였다.
그런데 그 입에서 자꾸 아가씨, 아가씨.
그렇다고 주혁에게 ‘귀여운 중학생이 저한테 아가씨라고 부르는 게 이상해서요. 아무리 안은 아저씨라고 해도.’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난 입을 다물었다.
내가 말이 없자 주혁이 말했다.
“아가씨는 아가씨인걸.”
“아, 뭐. 알아서 하세요.”
내가 손을 내젓자 주혁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다시 말했다.
“근데 아가씨. 그럼 다 알고 있겠네?”
“뭘요?”
“유령에 대한 것들 말이야.”
난 눈동자를 굴리다가 성원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는 어째서인지 불안한 표정으로 주혁을 쳐다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어보였다.
난 고개를 갸웃하고는 대답했다.
“뭐……. 접촉할 수 없다는 거, 그래서 걸을 수도 없는 것 정도만 알죠.”
“그 외에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유령을 본 지가 얼마 안 되어서요. 보는 데 시간적 제약이 있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는 감도 못 잡고 있고-”
“-시간적 제약이 있어?”
주혁이 놀란 듯 되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는 안 보이고 밤에만 보이는 것 같아요.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지만.”
“그건 또 처음 듣네.”
주혁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거 말고는?”
“모르겠다니까요. 유령을 본 지 얼마 안 되어서-”
“-아니, 그거랑 그거랑은 다르지.”
대체 뭐가? 내가 고개를 기울이자 주혁이 말을 이었다.
“그건 유령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거잖아. 유령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냐고, 내 말은.”
“음…….”
유령에 대한 정보. 접촉할 수 없고 따라서 걸어 다닐 수도 없고, 또…….
아, 그러고보니. 난 죽은 지 15년이나 되었다는 주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유령의 겉모습은 죽었을 때 그 나이 그대로인 건가요?”
실제 나이는 서른인데 외모는 열다섯 살의 모습을 띠고 있는 주혁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성원은 죽은 후로 시간이 별로 흐르지 않아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순수하게 의문이 들어 던진 질문이었는데, 주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성원을 쳐다봤다.
“뭐야. 너 그것도 안 알려준 거야?”
“아, 그게…….”
성원이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가 내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그동안 정신이 좀 없어서.”
그 반응에 주혁은 살짝 인상을 썼다가, 한숨을 쉬며 나를 보았다.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야. 유령은 죽었을 때의 그 나이 모습 그대로 남게 돼. 내가 실제 나이는 서른 살인데도 성원이보다도 어려보이는 이유야.”
난 납득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성원은 스무 살 때의 모습이겠구나. 난 새삼 그를 바라보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에 다시 물었다.
“아, 그럼 옷도…….”
“맞아. 죽었을 때 입고 있었던 옷을 계속 입고 있는 거지. 아, 나 옷 많았는데. 매일매일 새로운 옷으로 바꿔 입던 그 날이 그립네.”
주혁이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초록색 글씨가 가슴팍에 쓰여있는 흰색 긴팔 티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성원도 항상 하늘색 셔츠에 청바지였구나.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데 주혁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그러면 너 그것도 모르겠네?”
“뭘요?”
“한 달에-”
삑-
“6450원입니다.”
난 마지막으로 컵라면의 바코드를 찍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손님이 지갑을 꺼내는 걸 보며 물었다.
“봉투 필요하신가요?”
“아뇨.”
대답을 들으며 가만히 기다리다가 카드를 받아 결제를 진행했다. 결제 승인이 뜬 걸 확인하고 손님에게 카드를 돌려주자 손님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물건들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안녕히 가세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손님이 저 멀리 걸어가는 걸 유리문을 통해 쳐다보다가 깍지를 껴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몸이 찌뿌둥했다. 개강을 하고 학교에 나온 걸로도 모자라 바로 학내에 있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계를 확인하니 9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때쯤이었나. 성원이 모습을 드러내던 게. 성원에게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럽게 어제의 일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그러면 너 그것도 모르겠네?
유령의 겉모습에 대해 처음 안 나를 보며 주혁이 물었었고, 나는 되물었었다.
-뭘요?
-한 달에-
-형.
성원이 불쑥 주혁을 불렀다.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어제 성원이 그의 말을 자른 게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주혁이 티 나게 인상을 찌푸렸다. 더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이 그가 성원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너 대체-
-나가자. 미안, 나중에 얘기해.
성원은 나와 눈을 맞추지도 않고 그렇게 말한 다음 주혁의 팔을 붙들고 방문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주혁은 성원을 강하게 쏘아보며 끌려가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었다.
-미안해, 아가씨. 나중에 또 봐!
그가 해맑은 미소로 손을 흔들기에 나도 얼떨결에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었다.
마치 문에 스며드는 것처럼 그들이 모습을 감추는 걸 본 게 어제 내가 그들과 함께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덕분에 몇 시까지 유령을 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덕분에 유령끼리는 접촉할 수 있다는 걸 깨닫기는 했다.
하지만 방에서 조심성 없이 떠드는 바람에 부모님께 무슨 통화를 밤늦게까지 하냐는 핀잔도 들어야 했다. 다음부터는 주의해야지.
난 조용히 시계를 보다가 슬며시 미간을 좁혔다.
-한 달에-
주혁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한 달에, 한 달에 뭐? 어쩐지 성원을 만난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가 내게서 지키고 있는 비밀 또한 늘어나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내 눈 바로 앞에 보이는 것들이 작게 일렁였다. 난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을 마쳤다. 어쩌면, 그가 지키고 있는 비밀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난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일렁이던 곳에서 나타난 것은 예상한 대로 성원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와 나의 거리에 있었다.
그의 얼굴이 내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고개를 숙이면 닿을 위치에 있었다. 서로의 코가 맞닿기 직전이었다.
물론 그는 유령이니, 내가 움직여도 닿지는 않겠지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눈을 깜빡이자 성원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