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삼보(三步).
일보(一步)를 대딛자,
타다다다닥.
그를 발견한 경비가 재빨리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또 다시 발을 떼어 이보(二步)째를 이어갈 때.
"헉..헉...헉. 보고..올립니다."
"왜 그러느냐?"
"그..천마니..천마가 나타났습니다."
정문 경비를 서고 있던 자의 다급한 전갈을 받은 사람들은 그 즉시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맹주를 바라보았다.
"짜증나."
맹주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
마지막 삼보(三步)째.
천마는 무림맹 정문에 다다라 있었다.
"아, 떨린다."
한때 무림 전체를 공포와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선대 천마의 제자이자 80년전 갑자기 무림이란 곳으로 날아와 버린 현 마교주 천마 최천아는 110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말투가 조금은 경박해 보였다.
타다다다닥.
휘잉~.
홀로 뒷짐을 진 채 언제 나올까 기다리던 현 무림맹주 제갈소령이 엄청난 기세로 달려와 천아 앞에 멈춰섰다.
"감히 여기가 어디인줄 알고 찾아온 거야?"
무시무시한 그녀의 눈빛에 천아는 흙바닥에 무릎을 털썩하고 꿇으며 뒷짐을 지고 있던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소령아, 내 마음이야. 꼭 받아줬으면 좋겠다."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로만 꺽어왔는지, 여러 종류로 이루어진 화사한 꽃다발이 천아의 손에 들려있었다.
"...이...미친..."
"왜? 자그만치 80년이야. 이렇게 긴 세월동안 너밖에 보지 않았단 말이야. 그러니 이젠 그만 빼고 우리 죽을 때까지 함께 살자. 날 닮은 남자아이 한명 널 닮은 여자아이 한명도 낳고 행복하...커억."
제갈소령은 천아보다 12살이 어린 나이였다.
"그렇게 내가 매달릴 땐 돌아보지도 않던 사람이 이제와서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을 하고 있냐고?"
천아의 영향을 받은 탓일까?
소령 또한 나이에 걸맞지 않게 꽤나 젊은 말투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마교주와 맹주의 위엄을 보일 땐 전혀 다른 말투로 바뀌긴 했지만 이렇게 서로를 향해 대화를 나눌때면 그 어떤 위엄도 모두 벗어던지고 80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땐...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단 말이야."
"또 말도 안되는 헛소리."
"아니야, 진짜야. 그리고 그땐 내가 돌아가게 되면 널 데려갈 수 있을지 그런 의문도 들었고.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소령이 네가 갑자기 사라지면 너의 가족들이 널 찾아다니지 않을까하는 걱정때문에. 그래서 널 받아줄 수 없었던거라고."
발로 걷어차인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억울한 표정으로 저리 말하는 천아를 보고 있자니 소령은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으이그, 이 인간아. 언제 철 들래?"
"소령이 네가 날 받아주면. 그때 철 들거야."
마치 어린 아이가 떼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을 풍기는 천마 천아를, 뒤늦게 소령의 뒤를 따라온 부맹주와 여러 장로들이 한심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왜 저런 자에게 패배했는지 모르겠다는 자괴감에 빠져든 모습과도 흡사했다. 그리고 그것은 천아의 오십보 뒤에 멍하니 서있는 그의 수하들 또한 똑같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속터져 죽겠다, 내가."
"그러니까 죽기 전에 같이 살자고오~."
마교와 무림맹.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집단은 오늘도 이렇게 평화롭지만, 얼굴이 시뻘개지는 상황을 겪어야만 했다.
[제발 그냥 두 사람 모두 그 자리에서 물러나주면 안됩니까?]
라는 생각까지. 서로에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손 놔."
"왜?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좋은데. 그러니까 놓으라고 하지마."
"좀 놓으라니까아."
"싫어."
두 사람은 말로만 티격태격거렸지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꽁냥꽁냥거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젠 제발 승낙하고. 혼인을 치르고. 같이 시골에 내려가서 사시라고요, 좀. 벌써 이 짓도 20년입니다, 20년.]
무림맹 입구는 오늘도 남녀의 꽁냥거림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한숨 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천마 천아는 110세이고 맹주 제갈소령은 98세이다.
- 우르르, 콰아앙.
"응? 마른 하늘에 천둥이 왜 치는거야?"
"그러게. 날씨가 왜 이래?"
천아와 소령은 갑작스런 천둥 소리에 깜짝 놀란 듯, 어느 새 서로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 번쩍.
난생처음 보는 엄청난 번개가 순식간에 천아와 소령이 서 있던 곳으로 떨어졌고, 그런 모습에 깜짝 놀란 마교와 무림맹의 무인들이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이게..무슨 일이란 말인가?"
"말도 안돼. 두 분 모두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날, 천마 천아와 무림맹주 제갈소령은 무림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