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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삐삐삑.
요란한 알림이 울려대는 거대한 건물 내부.
"어디야?"
"제 3 폐허도시 입니다."
모니터를 확인한 부하직원의 말에 상사로 보이는 남자가 짜증나는 표정을 한 채 머리를 박박 긁어댔다.
"또 거기냐? 짜증날 정도로 많이 나타나내, 시발."
"응? 어어..이거,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열렸나 봅니다."
"뭐라고? 아, 시발. 꼭 내가 야근할 때마다 왜 이 지랄을 떠냐고."
"확인결과 두 개 모두 7등급 게이트입니다. 팀장님, 누구에게 요청을 할까요?"
부하직원의 물음에 팀장은 인상을 구기며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짧은 놈이 막 1을 가리키고 있는, 새벽 1시 3분이었다.
"이 시간에 달려올 새끼들이 누가 있다고..."
능력자 협회 본부, 줄여서 능협(농협이 아님)이라 불리는 이곳은 능력자들을 관리감독하면서 그와 동시에 위성으로 24시간 전국을 감시하며 게이트가 발생하는 장소, 게이트의 등급 그리고 대강적인 몬스터의 모습까지 실시간 체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기존의 인공위성들은 게이트의 영향으로 인해 모두 망가졌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몬스터의 눈으로 불리는 위성을 만들어 날려보낼 수가 있었다.
선명한 화질이 아닌 탓에, 이런 빌어먹을 세상에서도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위성에서 보내온 적외선 화면에는 크고 작은 몬스터들이 게이트 안에서 부터 튀어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7등급 몬스터들이 게이트 외부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보스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7등급이라...아, 그 놈들이 있었지."
"5등급으로 올라가기 전에 조치를 취하셔야 합니다."
느긋해 보이는 팀장과 금방이라도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은 부하직원의 모습은 너무나도 상반되어 보였다.
"헤어스타일 길드에 연락해. 그들은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돈 되는 일이라면 다 하는 길드니까."
"아, 알겠습니다."
부하직원도 알고는 있었다. 이 시간에 7등급 게이트를 닫으러 달려올 솔로 능력자나 길드들은 없을 것이란 사실을. 그렇기에 조급한 마음에 직속 상사인 팀장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지만, 팀장은 차분하게 생각하고 최고의 결과를 그에게 알려주었다.
"팀장님, 바로 출발하겠답니다."
"그래? 그럼, 전국의 모니터는 돌아가면서 계속 감시하고 제 3 폐허도시 모니터도 놓치지마."
"네, 팀장님. 그리고..."
"응? 야야야..하지마. 하지말라고 이 새끼야."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파악한 팀장이 윽박을 질러보았지만 부하직원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양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높이 들어보이는 그의 행동에 야근을 하던 다른 직원들이 키득거렸다. 경력이 2년 밖에 안된 자신의 부하직원이 계속해서 저런 식으로 표현을 해대는 바람에 남남커플이 아닌가라는 오해가 본부 내에 쫙 퍼진 상태였다.
"...일이나 해, 이 새끼야."
예전 같았으면 화가 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좋은 여닫이 문이 달려져 있었겠지만, 지금은 전부 자동문인지라 쾅하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이런 짜증나는 일을 겪는다해도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갑자기 담배가 땡기네."
팀장은 문이 열리자마자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옥상으로 향했다.
*
"응? 여긴 어디지?"
"...당신이 한 짓이야?"
갑작스런 일에 당황한 것은 천아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소령은 자신을 이런 낯선 곳으로 데려온 것이 전부 천아의 짓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야. 나도 모른다고. 여기가 어딘지 나도 모른...응?"
"왜? 왜 그러는데?"
변명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천아의 눈에 너무나도 그리워했었던 풍경이 들어왔다. 그렇기에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자신에게 왜라고 물어보는 소령의 물음에 말 대신 그녀의 몸을 살짝 돌려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응? 왜? 뭐라도 있는거야?"
소령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리의 풍경이었다.
주변이 어둡기는 했지만, 중간중간 아주 밝은 가로등 불빛이 들어와 있었기에 모습을 확인하는 일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저, 저게 뭐야?"
그녀 입장에서 본다면, 거대한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은 물론이고 길거리엔 흙먼지가 날리지 않게 무언가로 덮어놓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거리였다.
"말했잖아. 내가 살던 곳은 무림과는 비교가 안되게 멋진 곳이라고."
"그, 그 말이 사실이었어?"
다시 몸을 돌려 천아를 바라본 소령은 그의 말이 거짓부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이런 어둠 속에서 붉고 푸른 눈빛을 가진 요상하게 생긴 자들이 그의 등 뒤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라워했다.
"당신, 이 세상에서 미남이었구나."
"응?"
소령의 말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천아가 아까 전부터 살기를 풍겨오는 놈들을 확인해 보았다. 결코, 자신이 이곳에서 미남에 속하던 부류가 아니었기 때문에 왜 저런 말을 했는지 확인해보기 위함이었다.
- 크르르르.
개같이 생긴 놈.
- 끼에에엑.
득음한 놈.
- 켁켁켁.
사래들린 놈까지.
몬스터들을 처음 본 천아는 저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수백 마리에 달하는 몬스터떼가 저마다의 원시적인 무기를 들고서 계속해서 다가오는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저것들은 뭐야?"
"응? 이곳에 사는 사람들 아니야?"
"응, 아니야. 처음보는 것들인데..."
"난 또. 당신 환영해주는 인파인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자신에겐 친구도 몇 명 없었다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아내는 천아였다. 거리를 보면 자신이 살던 곳이 맞는데, 요상하게 생긴 몬스터들을 보니 또 다시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된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함을 가진 채 그가 몬스터들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환영은 아닌 것 같고. 살기를 드러낸 걸보니 우릴 죽이려는 것 같은데, 내가 금방 처리하지."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이 요상한 곳에 대해 좀 알아봐요, 우리."
소령이 내심 불안할 때 가끔씩 튀어나오는 존댓말이 붙어있는 걸 듣고서 천아는 3할이나 되는 힘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원래 그는 1할의 힘만 사용하려고 했었지만 소령이 저리나오니 마음이 급해진 탓이었다.
- 펄럭.
다리를 덮고 있던 옷자락을 잠깐 정리하려고 손으로 잡고 바람을 풍기며 다리 뒤쪽으로 옮긴 것 뿐이었다.
- 끼에..
- 크르..
- 켁..
그런데 수백의 몬스터가 동시에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요상한 빛을 내뿜는 최하급 마석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먼지가 되어 사라져갔다.
".....끝?"
".....끝."
두 사람은 너무나도 어이없는 이 상황에 멋쩍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요상한 수백의 빛이 주위를 밝혀대고 있었기에.
"응? 당신...삼십년은 젊어보이네?"
"그러고보니 소령이 너도 젊어보여."
30년의 시간을 역행한 듯한 모습에 천아와 소령은 더욱 간절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소령아, 정말 아름답구나."
"바보."
참고로 삼십년 젊어졌다해도 천아의 나이는 80 이요, 소령은 그보다 12살 어린 68이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의 로맨스는 그 어떤 연인들보다 불타오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무림에서 보낸 80년의 세월동안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왔었지만, 넘을 수 없었던 벽 앞에서 천아와 소령은 입맞춤 한번 한 적이 없었다.
다가가는 천아와 눈을 감는 소령. 둘의 심장은 젊어진만큼 세차게 쿵쾅거리며 서로를 느끼고 알고 싶어했다.
"저기서 빛이 난거 맞지?"
"네, 맞습니다. 길드장님."
갑작스럽게 들려온 사내들에 의해 산통이 깨지기 전까진 최고의 분위기였었다.
"....계속 할래?"
"....사람인 것 같으니까 일단 피해."
소령은 아직도 이곳이 무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다가오는 그 누군가가 무림맹에서 보낸 자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몰래 숨어 그들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응? 기, 길드장님 여기에 마석이 떨어져 있습니다."
"뭐라고? 우리한테만 연락한 거 아니었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눈앞에 벌어져 있었기에 그들은 어리둥절해 하는 것 같아보였다.
"마석을 그냥 두고 간 걸 보니, 상위 능력자가 화풀이 하거나 심심풀이로 잡은 모양인데요?"
"그럴 지도 모르지. 그럼 일단 마석들부터 전부 챙기고 게이트 안으로 함께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요상한 빛을 내뿜는 마석들을 챙기기 시작하는 이들은 바로 능협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헤어스타일 길드였다.
"밝다, 밝아."
버려진 고층 아파트 옥상에 선 채 그들을 바라보던 천아의 감상이었다.
"소림사에서 보낸 자들인가?"
이건, 천아와 똑같은 모습을 바라보던 소령의 감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