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분원리 소메골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던 것은 사누가 12살이 되던 1757년 영조 33년 이었다.
“얘들아 저기, 소메골에 아이를 잡아먹는 귀신이 나온데...”
정수라고 불리는 아이가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옆에 있던 계집아이가 맞장구를 친다.
“그래! 나도 들었는데 벌써 10명도 넘었데...”
“그렇다니까, 그런데 그 아이들이 밤마다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또 나오곤 하는데, 그제도 아이들 소리가 나서 조심조심 가 봤더니 갑자기 파란 불꽃들이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백자 항아리로 들어가지 뭐야! ...”
정수가 으스대면서 자신을 향해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는 아이들을 쳐다보더니, 잔뜩 기가 올라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 자시에 여기 모였다가 한 번, 가보는 게 어때?”
“...?!”
“...?!”
정수의 호기스런 제안에 다른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이따 꼭 나와, 나랑 같이 가자!”
사누가 비장한 표정으로 정수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순간, 정수의 얼굴에 잠깐 놀라는 기색이 비치다가 이내 사라지고 있었다. 정수는 사누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확인이나 하려는 듯 힘주어 흔들어댔다.
그러자 한 곳으로 모인 아이들이 사누의 얼굴에 비친 비장한 기운에 힘을 얻는 듯 했다. 한번 해보자는 무언의 다짐을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는 것으로 약속을 대신하고 있는 듯하였다.
아이들은 사누가 왜 저리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말은 다 안 해도 안다는 표정들이었다. 그것은 얼마 전 사누의 동생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그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누의 아비 자운은 봉수대에 봉화를 올리는 봉수군이었다. 그 날은 눈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찬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사누의 동생인 사천은 자운이 삼고 있던 짚신 꾸러미들 너머 한쪽 벽을 보고 누워 있었다. 두 평도 되지 않는 방안엔 그 흔한 반닫이 장도 보이지 않았다. 방구들은 언제 깔았는지도 모를 한지 장판이었는데, 여기저기 색 바랜 황토구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으으음...으!”
사천의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나오면서 급하게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자운은 연신 수건에 물을 묻혀 사천의 이마에 오른 열을 식히려 애쓰고 있었다.
“...아, 아버지 우웈!”
애타게 아버지를 부르던 사천이 갑자기 속을 비워내려는 듯 헛구역질을 하였지만, 신물만 넘어올 뿐이었다. 아무래도 아침에 먹었던 수제비가 잘못 된 것 같았다. 이틀 전에 저녁으로 먹었던 수제비가 오늘 까지 남아 있었던 것 자체가 잘못 된 일이었다. 아니, 어제 조금만 더 달라고 칭얼대던 사천과 사누의 배를 채워주기나 하였으면 오늘까지 상한 수제비가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해 보았지만, 시어터진 수제비로 인해 이런 사단이 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연신 헛구역질을 하는 사천의 이마는 점점 불덩이가 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간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의원을 데려와야 하는 데 30리 너머에 위치한 의원을 어떻게 데려온단 말인가.
자운은 사천을 들쳐 업었다. 옆에 있던 사누도 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자운!...자운!”
사립문 밖에서 자운을 찾는 천가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천가는 이웃한 여분리 봉수군이었다.
“...천가?!”
사천의 생사가 갈리는 마당에 불청객도 이만저만한 불청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시 봉수와 관련하여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였다.
문을 열어젖히고 문지방을 넘던 자운의 눈에 봉두난발에 온 몸이 비에 젖은 천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봉화가 올랐단 말이네! 봉화가 그것도 세 개나... 서두르게 어서!”
사색이 된 천가의 표정을 잠시 넋 놓고 바라보던 자운은 등에 업힌 사천의 숨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 자네 지금 내 처지가 말이 아니네, 지금 내 아이의 숨이 넘어가게 생겼네...”
“이, 이보게 지금 내 꼬라지를 보고도 그, 그런 말이 나오는가?”
자운의 등에 업혀 정신 줄을 놓아가는 사천을 슬쩍슬쩍 곁눈으로 쳐다보던 천가가 애써 시선을 외면하면서 고개를 돌려 말했다. 하긴 천가의 모양새가 가관이었다. 빗물에 흠뻑 젖은 것도 모자라 몸 여기저기엔 이름 모를 잡초들의 진액은 물론, 누렇고 검붉은 흙물 자국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어디서 심하게 굴렀는지, 왼 쪽 무르팍엔 진홍색 핏물이 빗물과 함께 베어 나오고 있었다.
망연자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서있는 자운을 바라보던 사누가 자신이 갔다 오겠다고 나서자 자운은 물론 천가의 두 눈이 한없이 커졌다.
“아버지 지금 이렇고 계시면 안 되잖아요. 어서요, 사천이 죽어요!”
“그 그래, 그래 내 아들! 사천이 죽으면 안 되지! 사누야!”
“그럼요, 까짓 거 냅다 달려갔다 오면 되죠 뭐!”
사누는 자운의 두 눈을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허허 이런, 아 자운 이 사람아!”
천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운과 사누의 얼굴을 살폈다. 설령 제시간에 봉화가 올랐다는 사실을 몇 번의 봉우리를 넘어 다음 봉수군에게 알린다 하더라도 분명 나중에 치도곤을 당할 것이 분명하려니와 봉수군으로 이골이 난 자신이 달려온 40리 길보다 더 먼 50리나 되는 길을 죽을힘을 다해 뛴다 하더라도 제 시간에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이웃한 봉수대 봉화 수대로만 쉽게 불을 지펴 봉화만 올리면 되었다. 하지만 오늘같이 장대비가 내리는 날에는 몸으로 내달려 알려주는 방법 즉, 치고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더욱이 가까운 거리라면 나팔을 불어 위급상황을 알릴 수도 있으련만 오늘은 50리나 먼 산길과 물길을 오로니 몸뚱이 하나로 내달려야 한다. 그것도 비바람에 천둥이 내리치는 지금으로서는 죽을 것을 각오하고 뛰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자운이 세차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정신을 차리는 모습이었다.
“그래 사누야 그럼 부신(표식) 챙기고, 그래 나팔도 챙겨라 힘에 부치면 근처에서라도 나팔을 불어 알려야 한다. 알았지!”
“네! 아버지 아버지도 조심하셔야 되요 내 동생 사천이 꼭 살려야 되요!”
“그래 그래...!”
자운에게서 부신과 나팔을 받아 등 뒤, 보쌈에 쟁여 넣은 사누가 냅다 사립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
쏟아지는 장대비 사이로 쏜살같이 내달리는 사누를 한번 더 뒤돌아 보면서 자운도 의원이 살고 있는 마을을 향해 미친듯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