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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달
작가 : 소나무가푸른밤
작품등록일 : 20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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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
작성일 : 18-11-09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3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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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릉...콰쾅!

 

  용이 울음을 터트리는 듯한, 굉음이 사방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요란스런 천둥이 내리치는 가운데 빗줄기의 위세는 더욱 세차지고 있었다.

 

  “어? 어이쿠!”

 

  수령이 100년은 넘어 보이는 적송 옆을 지나칠 때 잠시 속도를 줄여야 했다. 빗물을 머금은 솔잎위로 급하게 발을 놀리던 사누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사누의 몸은 경사가 급한 산길을 따라 미친 듯이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이내 구르기 시작했다. 순간 등에 맨 봇짐이, 그 안에 있는 부신과 나팔이 떠올랐지만 몸을 돌릴 수도, 쏜 살같이 옆으로 지나가는 나무 둥치를 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외마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커다란 바위가 벌떡 몸을 일으켜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사누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더벅머리에 큰 보따리를 둘러메고 땅바닥을 헤집는 남자 아이가 있었다. 노명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이제 겨우 13살이었다.

 

  노명은 어디선가 다급한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소리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급하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사누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왔다. 바로 밑에 커다란 바위가 솟아 있었으니, 잘못하다간 순식간에 사달이 나도 크게 날 것 같았다.

 

  사누의 몸이 바위에 부딪히는 찰나에 어디선가 커다란 보따리 하나가 사누의 몸보다 앞서 허공을 갈랐다.

 

  “어, 어엌!”

 

  엄청난 크기의 바위가 눈앞을 가득 채우며 달려드는 순간, 사누는 저도 모르게 숨죽인 비명을 터트렸다.

 

  ‘퍼어엌’

 

  사누가 바위에 내동댕이쳐지듯, 들러붙는 순간 둔탁한 마찰음이 일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싶어 두 눈을 질끈 감았던 사누가 정신을 차린 것은 잠시 뒤의 일이었다.

 

  “야... 야야! 정신 좀 차려봐!”

  “...!”

 

  사누의 눈에 노명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더벅머리에 얼굴이 검은, 눈이 튀어나온 모습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누구냐 넌?”

  “어? 이 자식 봐라 기껏 살려놨더니...”

 

  노명은 손등으로 코를 한 번 스윽 닦아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제서야 사누는 조금 전 긴박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급하게 몸을 일으키던 사누의 오른 쪽 어깨로 참기 힘든 통증이 느껴졌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사누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사누의 등 뒤에는 제법 묵직하게 배가 부른 보따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보따리의 주둥이는 터져버렸고 바위에는 다양한 색체의 흙들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만약에 보따리가 없었다면 사누의 몸은 아마도 저렇게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된거야?”

  “뭐가 어떻게 돼 인마! 내가 너를 구해 준거지 그나저나 큰일이네 이를 어쩐다!”

 

  노명이 설레발을 치며 보따리의 주둥이를 잡아 바로 세우며 말했다.

 

  “이런 다 터져 버렸네, 겨우겨우 찾아 담았는데 빗물에 다 쓸려 내려갔어!”

 

  노명이 크게 실망한 듯, 망연자실 바위 밑을 쳐다 보고 있었다.

  사노는 자기 또래로 보이는, 노명이 왜 저렇나 싶어 같이 바위 밑을 쳐다 보았다. 바위 밑으로 여러 색깔을 띄고 있는 흙이 빗물과 섞여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노명이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서둘러 양손을 이용해 흘러가는 흙을 주워 보따리 안으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사노는 노명을 따라 급하게 손을 놀려 노명의 손을 덜어주었다.

 

  “자식! 눈치는 있어 가지고”

  “누구냐 넌?”

 

  사노가 아까와 같이 똑같은 말로 자신에게 물어오자 노명은 비죽비죽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넌 누구냐?”

  “난 사노다 누구냐 넌?”

  “이자식이 정신이 나갔나 왜 자꾸 똑같은 말로 묻고 지랄이야!”

 

  사노가 거칠게 몸을 일으키며 사노를 향해 꽤 진중한 눈빛으로 쏘아 보았다.

 

  순간, 사노는 자신에게 있었던 급박했던 상황과, 서둘러 봉화가 올랐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 하나뿐인 동생의 명줄이 경각에 달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누구냐 넌?”

 

  하지만 이상하게 자꾸 똑같은 말이 튀어 나왔다.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순간, 노명이 사누의 머리위로 공중제비를 하듯 튀어 올랐다. 사누는 급작스레 벌어지는 일에 잔뜩 긴장을 하면서도 은연중에 나름 방어 자세를 취하려 하였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있었다.

  노명은 허공에 뜬 자세에서 품안에 있던 백자 호리병을 꺼내 사누의 정수리 부위를 훔치듯 낚아채면서 사누의 등 뒤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재빠른 영(靈)이군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어”

 

  노명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사누는 자신의 백회혈에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정신이 드는 듯 했다.

 

  “누구냐 넌?”

  “어라? 아직도 나가지 않았었나?”

 

  노명이 깜짝 놀라 서둘러 오른손을 뻗어 사누의 정수리 위를 덮으려하는 순간, 사누는 슬쩍 고개를 돌려 피하면서 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아니 이제 괜찮아 그러니 네가 누군지 알려줘야지”

  “그래?! 이제 정신이 조금 드는 모양이구나”

  “그래! 아까 말했듯이 나는 사누라고 한다. 너는?”

  “나는 노명이다.”

 

  노명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사누는 반갑게 손을 맞잡으며 웃음을 지었다.

  사위는 아직도 거센 빗줄기가 퍼붓고 있었다. 그제야 둘은 비를 피해 잠시 바위 옆 비스듬히 생긴 공간으로 몸을 피했다. 둘이 바짝 붙어서니 겨우 빗줄기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틈이었다.

 

  “대체 이런 날씨에 어딜 그렇게 가는 거냐?”

  “실은...”

  사누는 처음 보는 노명이라는 아이에게 사실을 얘기하는게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다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열기로 하였다.

  “아버지가 봉수군인데 지금 급박하게 전해야 할 상황이 생겼어, 그래서 정신없이 뛰어가는 중이야 그런데 너는 지금 뭐 하는 거냐? 색깔이 여러 가지던데 그 흙은 대체 어디서 난거고?”

 

  노명은 조금 전에 자신의 손길을 쉽게 피하는 것도 그렇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흙의 색깔까지 보고 있는 사누의 기운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조금전 꽤 빠른 손놀림으로 봉인하려던 그 영이 왜 사누의 몸에 잠깐 스며들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말하자면 길어 그나저나 다음 봉수대까지는 아직 한참인데 어떻게 가려고 그려냐?”

  “서둘러야지 아무튼 구해줘서 고맙다 나중에 꼭 보답 할 께!”

  “그건 그때 가봐야 알고, 잠깐 있어봐 내가 친구 하나 불러줄게”

  “지금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내가 꼭 갚는다니까!”

  사누가 정색을 하고 급하게 앞으로 튀어 나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물체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한마디로 엄청난 크기의 산군, 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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