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사라진 저주의 예언서
1장 괴상한 산의 전설
“비가 억수같이 내렸더랬지. 번쩍하고 번개가 내리치고, 쾅하며 천둥소리도 울려 대고, 날씨도 참 괴팍했었지. 비를 뚫고 술 취한 선비가 비틀비틀하며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던 게야.”
하늘은 시꺼먼 구름을 뿌려 달을 가려버렸다. 달은 산을 에워싼 어둠을 거두어 내지 못했다. 하늘은 간간이 몇 줄기 번개를 뿌려 산의 형체를 탐하려 한다. 산은 노여움에 하늘을 뚫어버릴 기세로 고함을 질러 응대한다. 빗소리, 바람 소리,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소리 그리고 천둥소리. 산은 자신의 모습을 감춘 체 오직 소리로써 자신의 존재함을 증명한다.
이 어둠 속 난장을 뚫고 어디선가 미약한 소리가 들려온다. 가만 들어보면 노랫가락이고 더 자세히 들어보면 울부짖음이다. 소리의 크기로는 비할 못되지만 그 안에 느껴지는 처절함과 원통함은 산의 그것보다 더욱 강한 기세를 가지고 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번개가 번쩍이더니 이윽고 처절한 모습의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비바람에 반쯤 풀린 상투에서 삐져나온 머리카락, 뒤로 젖혀져 등짝에 걸려 널브러진 갓, 젖을 대로 젖어 맥없이 철렁 거리는 푸른 비단옷. 어둠 속에 드러나는 형체는 비참해 보이긴 하여도 분명 젊은 선비의 모습이었다.
선비는 왼손엔 술병을, 오른손엔 칼을 쥐고 있다. 산으로 향하는 외길을 아슬아슬 걷고 있다. 가끔 술을 왈칵 들이마시고 노랫가락도 흥얼거린다. 이내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취기가 많이 올랐는지 걸음걸이는 일정치 않다. 가끔 비에 젖은 땅에 풀싹 고꾸라지더니 날아오는 빗줄기를 향해 칼을 마구 휘저으며 일어난다. 선비는 그렇게 위태롭게 산을 오른다.
“네 이놈들! 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까! 사람이든 귀신이든 내 너희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테야!”
절규는 빗줄기를 뚫고 온 산으로 울려 퍼진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그의 굵은 눈물방울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산은 말이 없다. 그리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기세에 눌린 건지 처절함을 측은히 여기는지는 모르겠으나 선비는 홀로 울부짖으며 어느 바위 앞에 당도한다.
그는 들고 있던 술병을 차분히 내려놓는다. 취기는 사라지고 구슬픈 표정이 드러난다. 그리곤 잠시 바위를 애타게 바라본다. 선비는 고개를 숙인 체 땅에 풀썩 주저앉는다. 굵은 눈물은 더 애잔히 흘러내리고 퍼붓는 비는 머리카락을 타고 눈물과 함께 흘러내린다.
한참을 통곡하던 선비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 눈물을 닦아낸다. 그리고 술병의 남은 술을 모조리 입속으로 털어낸다. 자신의 신발을 고이 벗어 바위 아래 가지런히 놓아둔다.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땅에 처박고 바위로 올라간다.
바위 밑은 까마득한 어둠뿐이다. 멀게 느껴지는 빗물의 소리만이 그 깊이를 가늠케 한다. 선비는 눈을 크게 뜨더니 먼산을 바라본다. 눈망울은 비에 흠뻑 젖은 체 떨리고 있다. 큰 한숨과 함께 두 어금니를 꽉 깨문다. 그리곤 천천히 눈을 감는다.
“아주, 천……천……히”
이야기꾼의 말에 누군가가 끼어든다.
“아이 거 참나, 깨작깨작 허지 말고 빨랑빨랑 얘기 좀 해봐!”
주막엔 비를 피하는 행상들로 북적북적하다. 장사를 망쳤는지 곳곳에선 탄식도 들려온다. 기왕지사 이리된 걸 술이나 즐기려는 사람들로 상은 가득 차 있다. 상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그 중 유독 한 이야기꾼에게 사람들이 몰려있다. 이야기꾼은 김샜다는 듯 이야기를 대충 마무리 지으려 한다.
“거 참, 급하기는. 참 뭔 감칠맛을 몰러. 얘기 허는데 산통 다 깨고 뭔 지랄이던가.”
산통을 깬 상인에게 주변 상인들이 눈치를 준다.
“미안하네, 거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자 입술도 말랐을 터인데 막걸리 한잔 쭉 허고 다시 시작하게나.”
이야기꾼은 막걸리를 받아 목안으로 훌쩍 털어놓더니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따, 그니깐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버리자면, 저 먼 이북에서…….”
그의 얘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먼 옛날. 언제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먼 옛날이라 한다. 북녘 사리원에서 아주 어여쁜 처자가 한양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처자는 한양으로 오는 길에 개성을 지나왔다. 개성을 지나는 중 괴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산을 보게 되었다. 그 산의 절경에 반해 언젠가 다시 꼭 들르리라 마음을 먹었다한다.
처자는 한양에 도착하여 젊은 선비와 혼례를 올렸다. 부부의 금술이 매우 좋아 선비는 과거에 급제했고 높은 관직에도 오르게 되었다. 부인의 내조는 선비를 감탄시켜 둘은 아주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부부는 한양에서 제일가는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한다.
어느 날 부인은 처가에 볼일이 생겨 남편과 잠시 떨어져야 했다. 남편은 공무 탓에 같이 할 수 없음에 거의 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철없는 꼬마 신랑의 모습 같았다한다. 부인은 남편을 겨우 달래어 사리원으로 갈 수 있었다. 남편은 부인에게 믿을 만한 곤륜노들은 붙여 그녀를 고향으로 보내 주었다.
부인은 개성을 지날 무렵 다시 그 산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괴이함에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을 유지한 산의 절경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하지만 그 괴이한 아름다움이 문제였다. 그들은 점점 산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려 길을 찾았을 때 그들은 이미 산속에 있었다. 해는 이미 저물고 있었다. 산은 보기와 달리 험준하진 않았다. 그들을 이끄는 산길도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차피 원래 가던 길은 산을 돌아가는 것이기에 이대로 산을 넘는다면, 일정을 줄일 수 있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외길을 따라 산을 넘기로 하였다.
“워메, 그러니깐 그 곤륜노들도 몰랐던 모양이구만!”
성격급한 상인이 다시 이야기의 흐름을 끊었지만, 이야기 꾼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라제! 그 무식한 놈들이 어찌 알겠나, 알았으면 절대 못 들어가지!”
해가 지고 어둠 가득한 산은 그들에게 아름답지 못했다. 그들은 산에서 아주 기괴한 일들을 겪었다. 산짐승을 보았다느니 도깨비를 보았다느니, 그런 평범한 이야깃거리보다 더욱 기괴한 일이다. 이야깃꾼의 말대로라면 산자체가 귀신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귀신. 결국, 산에게 쫒기던 부인은 결국 한 바위절벽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곤륜노들 중 한 명이 겨우 살아 돌아와 이 사실을 고하였다.
그 산이‘괴상뫼’라 불리는 산이었다는 그렇고 그런 얘기였다.
“남편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괴상뫼를 혼자 찾아갔던 게지. 솔직히 좀 겁이 났는지 술도 만취해서 들어간 모양이야. 뭐, 슬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아무튼, 부인이 떨어진 절벽의 바위에서 남편도 몸을 던졌는데, 그 때부터 그 바위는 자살바위라고 불린다지.”
이야기꾼의 주위를 둘러싼 상인들은 이 뻔한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웅성거리고 있다. 아마 자기들도 그 산에 대해 뭔가 안다는 그런 얘기들을 하는 것 같다.
그때 건너편 탁자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네가 한마디 거둔다.
“그 얘긴 그래도 요즘 얘기지, 더 먼 옛날이야기가 있어.”
노인의 거드름에 이야기꾼 주위에 몰려있던 행상들은 모두 주인에게 먹이를 바라는 개떼들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상뫼의 자살바위는 먼 옛날‘달 동생’이라고도 불렸지. 아주 먼 옛날이여. 호랭이가 담배 필적이니깐.”
노인네의 얘기는 또 이렇다.
먼 옛날. 참으로 머어언 옛날. 달에게는 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달이 동생과 함께 그 기괴하고 아름다운 산을 넘어가려는데 철없고 호기심 많은 동생은 산의 경치에 빠져 잠시 산으로 내려갔다 한다. 그런데 다시 올라오려고 하니 그만 절벽에 걸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 달은 매일 떠올라 동생을 바라만 보고만 있다는 뻔한 얘기였다.
하지만 행상들은 그 뻔하디 뻔한 얘기들에 빠져 진지하게 대화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괴상뫼에는 수많은 전설이 전해져 왔다. 이는 사람들이 그 산을 얼마나 영험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지금 그곳은 옛날의 괴이하며 아름다웠던 경치는 사라졌다. 오로지 괴이함만이 남아있다. 사람들은 그곳에 밤마다 귀신들이 출몰하며 산을 덮은 귀기로 산이 점점 괴이해져 가는 것이라 믿고 있다. 그를 뒷받침 하듯 조정에서도 그곳의 출입을 엄하게 제한할 정도로 사고도 잦고, 사건도 많은, 말 그대로 괴상한 산이었다. 그 두려움과 호기심은 계속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오늘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좋은 안줏거리가 되고 있다.
주막은 시끌벅적하다. 한 쪽에서 조용히 행상들의 이야기를 듣던 한 남자가 서둘러 자리를 뜬다. 황급히 어딘가로 향하던 남자가 도착한 곳. 그곳은 프랑스 군의 야영지였다.
그렇다. 병인년, 조선의 관문엔 프랑스 함대가 들어 와있다. 그들은 원정을 마무리하려한다. 약탈한 보물은 모두 본국으로 가져가기 위해 배에 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고민거리가 생겼다. 보물 중 가장 특별해 보이는 한 책자. 그것이 그들을 고민에 빠트렸다.
수소문 끝 보물의 내용도 알게 되었다. 충격적 내용의 예언서였다. 왕실을 압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첩자들을 보내어 발길이 드문 안전한 곳을 알아보았다. 첩자 중 하나가 주막에서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괴상뫼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프랑스 함선의 선장 로즈제독은 괴상뫼에 그 예언서를 숨길 것을 명령하였다. 지리를 아는 조선인을 수소문 해보았지만 모두 치를 떨며 마다하였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곳이야 말로 보물을 숨길 최적의 장소라는 증거였다. 겨우 한 노비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반드시 해가 지기 전 나온다는 조건과 두둑한 포상을 요구하였다. 이를 받아드린 로즈제독은 부하인 미슈앙을 동승하게 하였다. 그렇게 이른 아침 그들은 보물과 함께 괴상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