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그땐 나의 새벽이었다.
작가 : 마멜
작품등록일 : 20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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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돌아섰던 날들
작성일 : 18-11-18     조회 : 194     추천 : 0     분량 : 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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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가 바뀐 건 3년 전. 우리가 그렇게 헤어진건 4년전. 1년동안 무수히 기다렸다. 가을 밤 공기가 찬 탓인지, 기다렸지만 힘든 만남 덕분이 였는지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서하다.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며 곱씹어본다. 4년 전의 나는 뭐하나 안정적이지 않은

 삶이었다. 취직도, 연애도. 5년의 연애가 끝나고 허덕일 때 쯤 우연찮은 여행으로 유럽을 오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도시가 프라하였다.

 

 ‘누나 번호 궁금하니까 알려주고가.’

 

 윤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도는 서하다. 4년전 프라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일주일 전 윤이 했던 말과 씁쓸하게도 비슷하다.

 

 ‘누나 번호 궁금해요.’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그 때 당시 자신보다 4살이나 어린 윤이에게 흔들리는 데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했고 꽤나 많이 흔들렸던 서하다. 어린 윤이 이해하기엔 본인의 삶이 벅차다고 생각했지만 강렬하게 끌렸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 세상이 무너질 것 처럼 자존감이 무너졌다.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행동했던 윤과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웠던 자신은 애초부터 달랐다. 그래도 그리웠다. 사랑 받았던 본인의 모습도 그립고 본인을 사랑해줬던 윤의 모습도 그리웠다.

 

  집 앞에 다다른 서하가 자전거를 세우며 집에 들어간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헤드에 머리를 기대어본다. 자신도 왜 거기서 도망치듯 오게되었는지 모르겠다. 왜 여기 있냐는 질문에 치부를 들킨 것 마냥 마음이 울렁거렸다. 손에 들고 있던 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뭐한다고 이렇게 연락이 없냐 너 요즘

 “그냥..”

 

 

  한국에 있는 지율의 전화다. ‘너 안자?’ 조금 피곤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자려고 누웠는데 거긴 10월의 마지막 밤 아니냐. 너 청승떨고 있을까봐~

 

  아무것도 모르는 지율의 너스레에 소파에 기대어 있던 몸을 똑바로 하고 창문 너머 달을 쳐다본다. 너 내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면 깜짝 놀랄텐데. 서하는 말을 삼키며 웃어보인다.

 

 

 “뭐 특별한 날이라고. 그냥 나이드는 날이지.”

 

 

  지율아 사실 있잖아. 늘 10월의 마지막 밤에 와인을 기울이던 엄마를 보면서 의아했는데. 나도 그래야 할 이유가 오늘 생겼다. 속에 있는 얘기는 담아두고 시덥잖은 얘기를 주고 받다가 이내 통화가 끝나고 적막이 찾아왔다.

 

 ‘나는 엄마가 10월 마지막 밤이 되면 늘 감성적이게 되서 뭔가 나도 늘 10월의 마지막은 좀 센치해-‘

 

  4년 전 이 맘 때쯤 기울어져가는 달을 보며 윤과 얘기했었다. 그때는 지금 보다는 덜 추웠던 거 같고, 더 쓸쓸 했던 거 같다. ‘그럼 그 날을 행복한 날로 만들면 되잖아요.’ 멍하니 달을 보며 얘기하는 나를 보며 너는 그렇게 얘기했었지. 그래 그때는 행복한 날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지. 괜스레 4년 전이 떠오른다.

 

 

 -4년 전 프라하-

 

  이제 막 추워지기 시작한 프라하에도 여전히 배낭여행객들이 붐빈다. 캐리어를 질질 끌며 민박집을 찾아다니던 서하는 지쳤는지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돌린다. 구글 맵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서하는 다시 캐리어를 끌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비슷하게 생긴 골목을 여러차례 돌았을까. 드디어 원하던 민박집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산한 민박집 프론트에 스탭이 앉아 맞아준다. ‘어서오세요. 성함이?’ 반가운 마음에 한 걸음에 프론트로 간 서하가 이것저것 체크인에 필요한 정보를 적어준다. 체크인이 끝나고 방 안내를 받으러 2층으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가 없나봐요..?’ 캐리어를 들고 씨름하느라 머리가 헝크러진 서하는 녹초가 된 목소리로 물어온다. 스탭이 그 모습을 보더니 서하를 도와 캐리어를 같이 들어준다.

 

 

 “엄청 힘드시죠.. 일단 엘리베이터는 없고 지금은 다 나가서 사람들이 없는데 남자손님들 들어오시고 하면 보통 체크아웃 하실 땐 도와주시더라구요-“

 

 

  방에 들어와 짐을 풀며 시계를 보니 오후 5시다. 씻고 나가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힘이 나질 않는 서하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공용 거실에서 맥주를 딴다. 크- TV 화면에서 나오는 한국 예능에 잠시 이 곳이 프라하인지 서울인지 헷갈릴 때 쯤 누군가 2층으로 올라오는 소리에 서하가 계단 쪽을 쳐다본다.

 

 

 “안녕하세요.”

 

 

  앳된 얼굴에서는 상상이 안되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2층에 울려퍼진다. 아..네 안녕하세요. 서하도 어색하지만 인사를 해본다. 고개를 까딱 거리고 인사를 한

 남자는 서하의 옆 방으로 들어간다.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서하 쪽으로 스탭이 다가온다. 그러곤 아까 그 옆방으로 들어간 남자가 나오자 이쪽으로 오라며 손 짓한다.

 

 

 “여긴 남 윤. 여긴 김서하. 이번에는 혼자 오신 분 들이 꽤 있으니까 친하게 지내면 좋을 거 같아서요.“

 

 

 스탭의 말에 다시 한 번 목례를 하는 윤과 서하다.

 ‘오늘 금요일이니깐 시간 있으신 분들은 저녁에 삼겹살 같이 먹어요.’ 할 말을 마친 스탭은 다시 1층으로 내려가고 2층엔 윤과 서하만 남았다. 어색해하던 윤은 서하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TV 화면을 보다가 이내 맥주를 홀짝 거리고 있는 서하를 힐끗 쳐다본다.

 

 

 “혼자 오셨나봐요.”

 “아 네네..”

 “대단하시다. 여자분 혼자 온거 저 처음봐요.”

 “아...네.”

 

 

 흠흠. 서하의 어색한 짧은 대답에 윤은 조금 민망해졌는지 폰을 만지작 거리다 이내 2층으로 올라오는 무리에 얼굴이 환해지며 인사를 한다.

 

 

 “형. 잘 다녀왔어?”

 

 

  윤과 아는 척을 하던 손님들이 서하를 보곤 입모양으로 누구냐며 물어온다.

 

 “아, 오늘 여기 체크인 하셨데. 김..서아?”

 “아 서하요. 안녕하세요~”

 

 가볍게 목례를 한 다른 여행객들도 아까 윤이 들어간 방으로 들어가며 또 둘만 남았다. 목이 타들어가는지 맥주를 연거푸 마시던 서하는 방에 들어가기 위해 일어나자 윤의 시선이 따라간다. ‘되게 하얗네.’ 혼잣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흠칫 놀라며 입을 막는다. 다행히 서하는 못 들은 눈치다.

 

 

 

 *

 

 

  밤새 뒤척이던 윤은 오후가 되서야 눈을 떴다. 머리 맡에 놓여있던 폰을 일어나자마자 잽싸게 보지만 허탈한 듯 다시 폰을 내려놓는다. ‘연락 안오네.’ 이불을 머리 끝 까지 썼다가 내리길 여러 번. 답답한지 이내 벌떡 침대에 앉는다.

 

 “아니 왜..”

 

  어제 밤 일이 혹시 꿈인가 싶은 윤이다. 먼저 발견한 건 본인이면서 더 얼어있는 서하의 모습이 자꾸 이상할 정도로 매치가 되지 않는다. 나를 기다렸던 거 같은데, 고개를 갸우뚱 거린 윤은 이내 복잡한 듯 머리를 긁으며 샤워 할 준비를 한다. 수건을 걸치고 들어가려다 잽싸게 돌아와 침대에 있는 폰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연락오면 어떡해.

 

  양치를 하면서도 세수를 하면서도, 머리를 감으면서도 온통 핸드폰에 신경이 곤두선다. 어젯 밤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였지만, 4년전과 똑같은 말이 서하에게 서 돌아왔다. ‘니 번호를 줘. 내가 연락할게.’ 그 말을 들은 윤은 묘하게 4년 전의 서하와 겹쳐보이는 듯 한 착각에 마음이 울령거렸었다.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윤은 서하의 폰에 자신의 번호를 찍어주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이다. 씻고 나와서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윤은 계속해서 폰을 놓지 않는다. 이내 짜증이 난 듯 소파에 폰을 던지면서도 시선은 거두질 못한다.

 

 

 “어제 따라갔어야 했나..”

 

 

  턱을 어루만지며 폰을 빤히 보다가 이내 백팩을 챙겨맨다. 그래봤자 프라하 안이지 뭐. 운동화를 신고 빠르게 집을 빠져나간다. 11월 1일. 오늘은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는다. 그러다 어제 발견한 꽃집을 지나가다 걸음을 멈춘다. 멀리서 볼 때 마다 생각보다 꽃 종류도 많고 생화 향기에 자연스럽게 발길이 머문다. 가게 입구에서 구경하는 윤을 보고 주인이 밖으로 나온다.

 

 “여행 오셨나봐요~”

 “어? 한국분이 하는 가게인가봐요.”

 

 

 윤은 가게 주인인 정아를 보며 싱긋 웃는다.

 

 “여기서 장사한지 한 10년은 된 거 같은데요?”

 “정말요? 여행왔던 적 있었는데 그 땐 못 본거 같아서요. 신기해요. 남 윤입니다.”

 “반가워요. 윤정아에요.”

 

  저는 저기- 하며 윤이 맞은 편 3층을 가리킨다. ‘저기서 묵어요.’ 꽃을 이것저것 보던 윤은 자리를 뜨며 목례한다. 오늘은 어딜가서 찾아볼까. 카메라로 프라하를 담으며 걸어가던 윤은 어느 가게 앞에서 멈춰선다.

 

 “찾았다.”

 

 

  유명화가 그림이 새겨진 우산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한 우산에 손길이 멈춘다. 우와 똑같이 있네. 이내 흡족한 미소로 우산을 구입한 가게를 나오며 싱긋 웃는다. 그리곤 맑은 하늘에 우산을 피고 이리저리 우산을 살펴본다.

 

 “아이 러브 프라하.”

 ‘아이 러브 프라하..라고 적혀있더라구 부끄러.’

 

 

 우산에 새겨진 글귀를 읽어보는 윤. 서하의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한참을 우산을 보던 윤은 가방에 집어넣으며 한번 더 폰을 본다. 기다리지 않은 연락 알람이 떠있을 뿐 서하의 연락은 없다.

 

 

 “내가 많이 잘 못했나보네..”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어제 사먹었던 샌드위치를 사먹으며 계단에 앉는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걸 보니 또 어제의 일이 떠오른다. 찰나의 순간 울렁이던 마음. 그리웠던 얼굴이었다. 보고싶다라기 보단 한 번 만나보고싶었다. 그 때와 지금의 나는 너무 다른데, 한 번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4년 전의 못난 나를 잊지 않고 있던 서하가 신기하면서 찡했다. 폰 화면을 껐다 켰다 하던 윤은 이어폰을 꼽아 노래를 틀어본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처음 이 노래를 서하가 들려주었을 땐 낯설었다. 지금은 노래 가사룰 툭 치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이해해보려는 윤의 노력이었다. 추천해준 책도, 들려준 노래도. 멍하게 노래를 듣고 있던 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집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사진을 찍으며 돌아가던 윤은 카메라 앵글로 아까 지나왔던 꽃집을 보다가 셔터를 누르던 손을 멈춘다. 자신의 하얀피부와 반대인 검은 앞치마를 입고 햇빛이 내리쬐는 테이블에 앉아 꽃을 다듬고 있는 서하. 자리에 멈춰선 윤이 계속해서 카메라 앵글로 서하를 바라본다. ‘되게 하얗네.’ 꽃을 다듬고 있던 서하를 카메라에 담아본다. 눈치 채지 못한 서하는 정아와 얘기를 나누며 꽃을 다듬는다. 몇 장을 더 찍던 카메라를 내린다. 이대로 꽃집을 들어갈까 말까 하다가 흘러나오는 노래를 반복재생한다. ‘기다려야지.’ 한참 서하를 바라보던 윤이 꽃집 앞을 후다닥 지나가 집 앞 벤치에 앉아 서하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애태우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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