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그땐 나의 새벽이었다.
작가 : 마멜
작품등록일 : 20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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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여전히 하얗다.
작성일 : 18-11-20     조회 : 247     추천 : 0     분량 : 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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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매번 들어도 새로운 양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아를 본다. ‘뭐가 그래서야~’ 꽃가지를 치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정아.

 

 “말해주세요 또. 계속 듣고 싶어서 그러죠~”

 “참나 , 그러고 걘 그대로 결혼하고 나는 이렇게 된거지. 내 남편하면 이렇게 꽃장사하면서 살아아할텐데. 그럴 그릇이 아니였어 걘~”

 

 덤덤한 척 말해주는 정아의 모습에 서하가 코끝을 찡그린다. ’인연이 따로 있는 걸까요?' 테이블에 놓인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하가 물어오자 정아는 어깨를 으쓱인다. 글쎄, 너 보다 10년을 더 살아온 나도 잘 모르겠네 그건. 서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신문지에 꽃을 싸서 일어난다. 또 올게요- 손을 흔들며 앞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에 짐을 싣고 천천히 끌고 간다. 날이 또 금새 추워졌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춥게 느껴져 서하는 허공에 호- 하며 입김을 불어본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 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기분이다.

 

  집에 들어가기 전 다니엘 가게 앞에 멈춰서 요리조리 안을 들여다보자 다니엘이 반가운듯 문을 열고 나온다. ‘왜 안들어오고?’ 다니엘이 가게 안쪽으로 들어오라며 문을 열고 기다린다.

 

 “알리오 올리오 해줄게.”

 “오늘은 괜찮아~ 꽃 물 잘주고 있지?”

 “안 그럼 너한테 얼마나 구박을 받으려고..”

 

 다니엘의 농담에 서하가 웃는다. ‘집에서 글만 마무리 하고 저녁먹으러 갈게.’ 집으로 꽃을 들고 올라가던 서하는 잠시 뒤를 돌아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다시 집으로 올라간다. 연락을 해볼까.말까. 수없이 고민이 된다. 연락을 하면 뭐? 어깨를 으쓱이며 달라질게 없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 번 더 보고싶다. 윤을 생각할 때 마다 일렁거리는 마음이 보고싶어서 인지, 그리워서 인지, 맘에 아직도 품어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집에 들어와 화병에 꽃을 꽂아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서하가 창문을 열다 멈칫한다.

 

  윤이다.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진 서하를 본 윤이 싱긋 웃어보이며 입모양으로 ‘우연히.’ 하며 어깨를 으쓱인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흔들어보인다. ‘궁금하면 전화해.’ 윤의 입모양을 읽은 서하는 짧은 한숨을 내쉰다. 그러곤 한참을 빤히 윤이를 내려다본다. 네가 무뎌지기를 내가 얼마나 바랬는데. 그 날 내가 그 카를교 카페를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널 부르는게 아니었는데. 덤덤할 줄 알았는데 윤을 보자마자 무뎌지려 했던 숱한 날들이 무색해졌다.

 

 -언제 연락하려고했어?

 

 

  서하의 전화를 받자마자 윤이 물어온다.

 

 

 “응..?”

 -내려오면 안 될까?

 

  마주치는 눈빛이 서로 떨려온다. ‘응?’ 서하가 전화를 든 채 가만히 보고잇자 윤이 한번 더 물어온다.

 '나 얘기하고싶어.' 창문에 서서 전화를 하는 서하를 보는 윤은 애가 닳는다. 뭐가 저리도 어려울까. 늘 잡힐듯 말듯 애닳게 만드는 사람. 한참을 고민하던 서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는다.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지난 밤 자신이 카페 앞에서 서있엇던 모습으로 윤이 빤히 내려오는 서하를 보고있다.

 

 "카를교 카페로 가자."

 

  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가는 윤을 따라나선다. 자신보다 한 발자국 정도 앞에서 걸어가는 윤의 뒷모습을 보며 서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확실히 4년전 21살때 윤 보다는 어깨도 넓어졌고 골격이 커졌다. 좀 더 남자다워진 윤을 새삼스레 바라보며 서하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아본다.

 

 "어때?"

 

  앞서 가던 윤이 뒤를 돌며 물어본다.

 

 "뭐가?"

 "나 말이야. 남자다워졌지."

 "..응?"

 "다 알아. 내 뒷모습 감상했잖아. 모를 줄 알고?"

 

 

 서하가 당황하자 윤이 웃어보이며 다시 뒤돈다. '장난이야, 긴장한 거 같아서.' 발걸음을 천천히 걷더니 이내 서하와 나란히 걷는다. 4년전과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프라하의 전경을 같이 바라보며 걷는 이 시간이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하루도 안 지났는데."

 

 

 서하와 발맞춰 나란히 걸으며 윤이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서하가 말없이 윤을 쳐다보자

 쑥스러운 듯 웃으며 ' 애닳았었어,나.' 해온다.

 

 

 *

 

 

  꽃집에서 나오는 서하를 발견한 윤은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서하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꽃을 들고 이리저리 걷는 서하의 뒷모습을 보며 더욱 예뻐졌다고 생각했다. 4년 전 보다 더 여리여리하고 더 하얘진 서하를 보며 윤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나는 왜 이리 저 여자에게 애닳을까. 천천히 잘 잊고 살다가도 왜 문득 생각나는 잔상에 프라하까지 마음을 이동하게끔 만들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서하가 한 키친 앞에서 기웃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잠깐 멈춰섰다.

 

  조금 추워진 날씨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키친에서 파란 눈의 남성이 서하를 보며 웃으며 나온다. 윤은 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등장에 표정을 잠시 찌푸리며 둘을 쳐다본다. 어쭈, 웃기도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생각이 순간 없어졌다. 인사 후 옆 계단으로 올라가는 서하를 눈으로 따라가본다. 십여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2층 창문이 열리며 서하의 얼굴이 보인다. 윤을 발견한 서하가 순간 언 표정으로 밑을 내려다본다. 내려오면 안되냐는 윤의 말에 고민의 기색이 역력하지만 못 이기는 척 나오는 서하를 윤이 계속해서 응시한다.

 

  서하를 뒤에 두고 걷는 윤은 과연 서하가 지금 어떤 마음과 표정으로 따라 올 지 궁금하다. 어색하게 뒤를 따라오는 서하를 생각하니 아까 서하의 뒤를 천천히 걸었던 자신의 마음을 떠올린다. 그러다 어색한 얼굴이라고 보고 싶다는 생각에 속도를 늦춰 나란히 걷는다.

 

 "하루도 안 지났는데, 애닳았었어 나."

 

  서하가 발걸음을 멈춘다. 윤의 목소리에 순간 아찔해지는 서하다. 여전히 나를 일렁거리게 만든다, 미울 정도로.

 

 "왜?"

 

  예상치 못한 서하의 물음에 윤도 멈춰서 서하를 빤히 쳐다본다. '왜라니?' 서하의 질문이 오히려 더 이해가지 않는 듯한 얼굴로 서하를 쳐다본다.

 

 "반가웠어. 좋았어. 근데 당황했었어 이건 맞아. 근데 우리..지금은 그럴 사이 아니잖아."

 

  다소 흥분한 듯한 서하의 목소리에 윤이 당황한 듯 서하를 쳐다본다. 순간 멍해진다.

 

 "누나."

 "물론 나 거기서 너 기다린거 맞아. 네 생각이 나는 것도 맞아. 근데 난 지금 니 말과 행동들이 너무 당황스러워. 그날 내가 널 기다렸고 우리가 다시 봤다고 해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는게 아니잖아."

 

  쏘아붙이는 서하의 말에 윤은 할 말을 잃었다. 왜 애가 닳느냐라.. 사실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윤에게 서하는 일상에는 없지만 늘 마음 속에 돌덩이처럼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목적 없이 이끌려 온 프라하도 사실은 마음 속에 서하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걸 스탑하고 올 수 있었다. 웃진 못했지만 서하 역시 프라하에 있는 것을 보고 어쩌면 나랑 같아서, 내지는 우리가 운명이라서 이렇게 만난 건 아닐까 생각했다. 보고싶었다, 한 번 더. 자신을 보고 놀란 토끼 눈이 된 모습도. 당황스럽다며 홍조 띈 얼굴로 달아나던 모습도. 하루가 채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프라하 곳곳에서 서하를 발견하는 자신의 모습도. 자신의 마음 같지 않게 많이 당황해하는 서하의 모습도. 그냥 모든 것이 다 애가 탔다.

 

 

 "나 이해안가. 왜 기다렸는데 피해? 생각나면서 왜 날 안 봐?"

 "그건.."

 "왜. 또 내가 이해를 못 하는거야?"

 

  윤의 말에 4년 전부터 시작 된 싸움이 다시금 시작된 느낌이다. 예전에도 그랬다. 밀어내려는 서하와 다가가려는 윤. 밀어내려고 하면서도 끌리는 본인의 모습이 싫은 서하. 그런 그녀를 이해 못 하는 윤.

 '누나..' 고개를 숙이며 서하의 팔을 잡는다. 차갑게 부는 바람에 코끝이 빨개진다. 서하는 윤에게 팔이 붙잡힌 채로 가만히 서있는다. 자신도 이해가 안가는 마음을 윤이 이해가 될 리가 없다는걸 알면서도 야속하게도 마음 깊숙히 있는 마음을 건드리는 윤이 여전히 아리다.

 

 "나도 누나 그 날 보고 너무 반가웠어. 그래서 얘기해보고 싶었어..성급했다면 미안해."

 

 

 

 *

 -4년 전 프라하-

 

 "오늘 어디 가세요?"

 

  빵을 집어 먹으며 나갈 준비를 하는 서하를 보며 윤이 식탁 정리를 하면서 물어온다. '체스키크롬로프 가려구요.' 서하의 말에 윤이 눈이 동그래지며 놀란다.

 

 "어, 저도 오늘 거기 가요. 어떻게 가세요?"

 "아 저는 기차타고 버스타려구요."

 

  대답을 한 서하가 2층으로 올라가자 윤도 따라올라온다. '같이 움직이실래요?' 뒤에서 들려오는 윤의 말에 서하가 뒤를 돌며 본다. 당황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서하를 보며 윤이 더 당황한 듯이 손사래를 친다.

 

 

 "아, 아니 불편하시면 같이 안가셔두 되요."

 "30분 뒤에 출발할거니깐.. 현관에서 뵈요."

 

 

 시간을 말해주고 후다닥 방에 들어가는 서하를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는 윤이다. 우와 저렇게 얼굴에 다 나타날 수도 있구나. 방에 들어간 윤도 이리저리 옷을 꺼내어 입고 카메라를 꺼내든다. 준비 후 현관을 내려가자 하얀 코트에 머리를 뒤로 땋은 서하가 기다리고 서있다. 하얗다. 또 순간 입 밖으로 나올 뻔한 걸 참은 윤이 목례를 하며 주머니에서 따뜻한 캔커피를 꺼낸다.

 "아까 주방에서 데웠어요. 추울테니깐 이거 들고계세요."

 

  윤이 건네는 캔을 받아든 서하가 고마움의 표시로 목례를 하고는 먼저 문 밖으로 나선다. 그 뒤를 따라나가는 윤이 밖에 날씨를 보며 카메라를 들어 이곳저곳 찍는다. 앞서 나간던 서하가 셔터소리에 돌아보며 기다린다. 기다리는 서하를 보며 윤이 사진 찍는 것을 멈추자 서하는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 찍어라는 제스쳐를 하며 지도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자신을 기다려주는 서하의 모습에 윤은 살짝 웃으며 프라하의 이곳저곳을 찍다가 문득 카메라 프레임안으로 들어온 서하를 바라본다.

 

  아담한 키에 하얀 얼굴. 땋은 머리 옆으로 흘러내리는 잔머리. 추운지 손에 입김을 부는 모습.

 프레임으로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카메라를 거두며 발걸음을 옮긴다. 기차를 타는 곳에 도착한 두 사람이

 어색하게 아무말 없이 기차를 기다린다. 어색한지 발장난을 치는 서하를 보며 윤이 물어온다.

 

 "제가 괜히 따라온거죠?"

 "아, 아니에요."

 "혼자 다니시는거 좋아하세요?"

 "네, 아 아니 아뇨!"

 

  자신도 모르게 혼자 다니는게 좋다고 말한 서하가 놀란 듯 입을 막으며 윤을 쳐다본다. 그 모습에 윤이 소리내서 웃는다. 윤의 웃음에 볼이 빨개지는 것을 느낀 서하가 황급히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딴 짓을 한다. 이내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서하가 먼저 올라탄다. 빈자리를 찾던 서하가 창가자리에 앉자 뒤따라 오던 윤이 서하의 뒷자리 창가자리에 앉는다. 내심 옆에 타면 어떡하지 걱정했던 서하는 한시름 놓으며 편하게 기대어 앉는다. 그리고 이내 생각난듯 뒤돌아 윤의 자리를 보며 말한다.

 

 "아, 맞다. 이거 기차는 4시간 정도 이동해야해요."

 

  창가에 턱을 괴고 있던 윤이 서하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4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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