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스튜어트 피어스는 ‘선수로서는 성공해도 지도자로서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예로 자주 거론되는 감독이었다.
선수로서는 EPL과 챔피언십 경기에 700경기 이상 출전하여 82골이나 넣고 A매치에도 7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잉글랜드 역사상 손꼽을 정도로 적었다. 말 그대로 레전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경력이다.
하지만 감독으로선 우승은커녕 강등의 기록만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형편없는 성적을 거둔 이가 또 스튜어트 피어스였다.
물론 맨체스터 시티 감독으로서 심판 판정에 절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신사적인 모습을 보이고 유소년 육성과 발굴에도 나름 성과를 거둬 영국 축구 협회(FA)의 신임을 얻어 잉글랜드 U-21 팀의 감독과 대표팀 코치도 역임하면서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2월 파비오 카펠로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하자 잠시 감독을 맡아 네덜란드와 친선전을 치뤘는데 3-2로 패했고, 그때 대표팀 주장이었던 리버풀의 스타 플레이어 스티브 제라드 대신, 스콧 파커를 대표팀 주장으로 선임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조금 문제가 되는 것이 하필 화장실로 제라드를 데려가서 고작 10초 만에 주장직 해임한 것이다. 이 이야기가 물의를 일으키면서 대표팀 감독과의 인연이 덩달아 멀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012 런던 올림픽 영국 단일팀 감독을 맡아 8강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한 것이 그의 커리어에 결정적인 오점이 된다.
이후 U-21팀 감독으로 돌아가서도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유럽 U-21 챔피언십 조별 예선에서 이스라엘에게 밀려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한 후 대표팀을 떠났다.
그렇게 감독으로서 형편없는 실적을 거둔 이를 팀의 레전드였다는 이유로 강등권 싸움을 하고 있는 팀의 감독으로 임명하다니 노팅엄 포레스트 임원진들의 눈도 형편없다고, 아니 사장인 알 하샤위의 사람 보는 눈이 참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U-21팀 감독으로 임명한 것도 그들이었으니 비판을 그만두기로 했다.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의 기자회견이 끝난 다음 날, 나와 마이크는 미팅룸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U-21팀의 코칭스태프로서 레귤러 팀의 감독과 면답을 하기 위해서였다.
“똑똑.”
“들어오십시오.”
노크를 하자 미팅룸 안에서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금발에 트레이닝 복 차림을 한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이 우리를 맞았다.
“반갑네. 스튜어트 피어스일세.”
“이호영입니다. 이쪽은 코치로 저를 돕고 있는 마이크입니다.”
상호 간에 인사가 끝나고 나는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의 능력치를 제대로 확인해 보았다.
수비력 훈련 17, 기강유지 16, 승부욕 20 등 특정 부분은 꽤 높았다. 하지만 전술이해도와 적응력이 모두 8로 매우 낮은 편이었다. 즉 감독으로서 전술 구사 능력이 떨어지고 임기응변도 미숙하다는 뜻이었다.
그가 감독으로서 능력이 부족한 것은 이미 지난 올림픽에서 확인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100포인트를 써서 숨은 능력치를 봤다.
선수가 아닌 스태프의 경우 크게 선수 훈련 능력과 정신적인 능력치가 있고, 숨겨진 능력치로는 전술적 능력과 비전술력 능력, 성격이 있어서 축구전문가로서의 능력 파악이 가능했다.
또 구단주일 경우 상술, 간섭, 인내심, 지원의 4가지 능력치가 있었다.
스튜어트 피어스의 경우 전술의 유연성 5에 공격적 성향은 5, 수비 치중도는 16으로 지루한 수비 축구로 일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수비에 치중하다가 카운터를 노리거나 무승부로 승점 1점을 얻는 축구를 할 게 뻔했다.
그나마 지키는 축구도 하지 못하던 전임 감독에 비하면 낫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치열한 강등권 싸움을 하고 있는데 홈에서 시원하게 이기지 못한다면 강등권 싸움에서 앞설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사람도 곧 짤리지 않았나?’
회귀하기 전 나는 과거에도 이직을 고려하던 클럽이었기에 노팅엄 포레스트의 동향에 종종 관심을 갖곤 했다.
당시 빌리 데이비스 감독이 잘린 후 스튜어트 피어스가 감독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가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고 사임 후 또 다른 감독이 임시 감독으로 선수단을 관리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도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해 결국 노팅엄 포레스트는 3부 리그인 리그1로 구단 역사상 3번째 강등을 당했고, 그 결과 마이크도 실업자 신세가 됐었다.
당시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영국에 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었는데, 지금이 딱 그 시점이었다.
어쨌든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이 직속 상관이 된 셈이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한국에서 왔으면 런던 올림픽 8강전을 봤겠군?”
역시나 그는 내가 한국인인 걸 의식하고 있었다.
“그럼요. 그 경기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가 아닙니까? 관계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은 잠시 쓴웃음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그 경기를 본 소감이 어땠나? 나의 경기 운영이라든지, 선수 선발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점은 없었나?”
‘이거 낚신가?’
나는 일순 긴장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선수 선발은 신구가 잘 조화된 라인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내용도 나쁘지 않았고요. 주동원 선수에게 선취골을 빼앗겼지만 침착하게 공격을 전개하여 동점골을 얻은 것도 괜찮은 흐름이었습니다. 다만...”
“다만?”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있고, 선수 개개인의 역량도 영국팀이 몇 수 위였던 만큼 좀 더 공격적인 운영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군.”
“무엇보다도 상대 감독이 수비적인 성향이 강할뿐더러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수비수로 명성을 날린 이었다는 점을 고려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 감독이 유명한 수비수였다고?”
“그렇습니다. 10년 전 월드컵 브론즈 슈까지 받을 정도로 대한민국 대표팀에서는 독보적인 수비수였습니다. 그래서 수비 조직을 촘촘하게 만드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감독입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올림픽을 대비해 팀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렇군. 그런 건 몰랐군. 이호형 감독을 일찍 만났으면 그 경기에서 승부차기로 지지는 않았을 텐데…. 상대를 너무 모르고 경기를 했군.”
‘승부차기에서 지지 않고 결승골을 먹고 졌을지도 모르지.’
“별말씀을요. 제가 미리 정보를 드렸어도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은 예선전에서 단 한 골만 실점했거든요.”
“하긴 그랬지.”
“그리고 그때 영국 대표팀이 이겼으면 우리는 여기 없겠죠.”
“하하, 그 말도 맞는 말이군. 어쨌든 이제 한 배를 탄 운명이니 서로 협력해서 노팅엄 포레스트가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 하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세.”
“네. 당연한 말씀입니다.”
“자네도 U-21팀을 맡은 지 얼마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네만.”
“그렇죠. 저도 며칠 전에 임시 감독으로 임명됐습니다. 이안 맥파랜드 감독님이 지병을 이유로 자진사퇴하시면서 저를 후임으로 추천하셨거든요.”
“그 이야기는 들었네.
그래서 묻는 말일세.
자네가 U-21 코치로 일하면서, 또는 감독이 되어서 가장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언가?”
나와 마이크는 올 게 왔다 싶어서 서로 눈을 마주쳤다.
마이크의 눈빛엔 재촉하는 뜻이 들어 있었다.
‘그래, 이야기해야겠군.’
나는 결심하고 말을 꺼냈다.
“지금 1군에는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벤치에만 앉아 있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전임 감독께서는 그들 중 이적 명단에 오른 몇 명을 제외하고는 U-21팀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기를 뛰지 않는 비주전 선수들의 실전 감각이 떨어져서 막상 경기에 선발이든 교체로든 투입되면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부진한 경기를 펼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감독님께서는 비주전 선수들 U-21팀 경기 출전을 적극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
나의 건의를 들은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오래지 않아 말했다.
“자네가 말하고자 하는 뜻은 잘 알겠네. 레귤러 팀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선수들은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U-21팀 경기라도 뛰는 게 좋겠지. 자네도 알겠지만 나도 맨체스터시티의 U-21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네. 물론 그전에 이 팀의 임시감독으로서 선수와 감독직을 같이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부분은 적극 검토해 보겠네.”
미팅은 한 시간가량 계속됐다.
스튜어트 피어스는 예상보다 훨씬 신사적이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함께 구단의 문제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고, 그는 내 이야기에 공감을 표하며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나 나나 임시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이 회귀 전처럼 또 사임하는 경우가 온다면, 그때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일 거고, 나의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어찌됐든 그의 성공을 빌어주며 나는 레귤러 선수 중 실전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는 선수들을 호출했다. 내가 노팅엄에 와서 제일 먼저 관심을 둔 미드필더이자 좌우 날개로 활용이 가능한 제이미 패터슨과 중앙 미디필더 헨리 란스버리였다. 둘은 나란히 만으로 20살, 21살로 U-21팀 소속이지만 1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의 부름을 받은 두 사람이 찾아왔다.
나는 그들에게 새로 부임한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과 레귤러팀, U-21팀 간에 선수 이동을 자유롭게 하며 훈련받게 할 것을 약속했다고 전하고 곧 두 사람을 U-21팀으로 부르겠다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미 U-21팀의 과학적인 훈련방식에 대한 소문을 들은 두 사람은 오히려 기쁨을 표하며 훈련을 기대하겠다고 했다.
레귤러 팀이 어찌되든 간에 U-21팀은 선수들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고, 또 선수들 또한 기량 향상을 통해 보다 좋은 팀, 보다 큰 리그로 가려는 꿈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두 선수와 함께 창의적인 미드필드 플레이를 기획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U-21팀 훈련장으로 향했다.
연습구장에 정렬해 서 있는 선수들과 함께 이제는 U-21팀 감독으로서 첫 훈련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나는 늘어선 선수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 훈련은 코치의 일방적인 지도와 반복이 아니라 너희들의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진행할 것이다. 물론 수비는 정확하고 단순하며 빠르게 공을 처리해야 할 것이지만 그 외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은 유기적인 압박과 패스로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방안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나의 일장연설을 끝으로 노팅엄 포레스트 U-21팀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기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