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다음 날 나를 기다리는 것은 팀의 주력 선수 헨리 란스버리, 제이미 패터슨, 자말 라스셀레스의 콜업이었다.
세 선수가 전날 경기를 통해 공수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이자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이 다시 1군 훈련에 콜업한 것이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어쨌든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을 만나러 갔다.
“올 줄 알고 있었네.”
스튜어트 피어스는 나의 항의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내려보냈던 선수들을 2주도 지나지 않아 다시 콜업을 하다니 스스로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왜 온지도 아시겠군요.”
“그래. 이 감독이 불만 가질 만하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야. 우리 팀이 3부 리그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지. 어린 선수들이 U21팀에서 기량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쓸 수 있는 자원은 모두 써서 어떻게든 팀의 강등만은 막아야지.”
“그렇지만 선수들을 기용하지도 않으면서 콜업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걱정 말게. 레귤러 팀 스쿼드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할 테니…. 누구보다도 헨리 란스베리는 등번호가 10번일세. 팀의 에이스로서 활약해야 하는 선수지. 세 선수뿐 아니라 그 어떤 선수든 팀의 전력을 높이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선 콜업하고 경기에 투입하는 게 레귤러 팀의 철칙 아닌가?”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1군 감독이 실전 멤버로 활용하겠다고 하니 U21 팀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감독실에서 물러 나와서 U21 팀의 운용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기로 했다.
이젠 몇몇 키플레이어에 의존한 축구가 아니라 팀 구성원 전체의 실력을 높이고 또 팀으로서 승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축구 감독엔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다.
하나는 선수단의 스타일은 무시하고 선수들을 자기 스타일에 맞추는 감독이 있고, 다른 하나는 선수단의 스타일에 자신의 스타일을 맞추는 감독이 있다.
전자에 속하는 감독 중 대표적인 감독이 과르디올라와 무리뉴이고, 후자에 속하는 감독으론 안첼로티가 있다.
나는 후자를 지향하는 편이었다.
전자의 경우 자신의 스타일이 왜 맞고 왜 이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선수들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 전자의 방식을 택하려면 선수들에 원하는 방식과 자신이 원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하여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수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그리고 감독이 원하는 바가 100이면 선수들이 당장 100에 도달하기를 바라지 말고 서서히 팀의 수준을 올려야 한다.
후자의 경우 선수단에 자기의 스타일을 맞추기 때문에 부작용은 적지만 자칫 매너리즘과 루즈함에 빠질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큰 틀은 유지하되 나만의 스타일로 팀이 점점 나아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했다.
가장 무엇보다 이 팀에 가장 필요한 건 규율이었다. 선수들은 제각각이었고 하나의 팀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우선 나는 선수들의 식단과 휴식시간 및 회복시간을 통제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구단에서 제공하는 점심 식사 말고는 각자 알아서 아침과 저녁을 먹던 선수들에게 어떤 식사를 하는지 사진을 찍어 보내고 그를 통해서 각자의 식단을 모니터링한 후에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했다. 구단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야채와 감자, 생선, 삶은 닭 등으로 구성됐다. 이전처럼 튀기거나 볶은 요리는 철저히 배제했다.
물론 그 전에 인바디를 통해서 각자의 체지방과 근육량 등을 먼저 체크한 것은 물론이다.
식단 조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탄수화물이다. 일반인들은 지방이 몸을 비만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탄수화물이 몸을 살찌고 잘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인바디로 선수들의 몸 상태를 파악한 나는 선수들이 탄수화물 대신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도록 권장하면서 그와 함께 비타민과 무기질도 꾸준히 섭취하도록 했다. 몸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였다.
‘PT 트레이너가 된 기분이군.’
영국 사람들은 설탕과 고기를 너무 많이 먹는다. 무엇보다도 차와 커피에 우유를 넣어 마시고 케이크까지 먹는다. 스포츠 선수들이 먹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설탕이 들어간 음식들인데 U21팀 선수들은 무분별하게 먹고 있었다.
나는 선수들에게 그런 것들을 먹으면 벌금을 물리겠다고 경고했다.
몇몇 선수들은 내 경고를 무시하는 얼굴이었으나 인바디 측정으로 무분별한 식사를 한 것이 드러나자 진짜 벌금을 내야 했다.
스테픈 맥라울린과 매트 더비셔가 바로 걸렸다. 두 선수는 23세와 27세의 베테랑으로 1군에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U21팀에 내려와 있는 선수들이었다. 두 선수는 나보다 훨씬 많은 주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 팀에선 내가 감독이었다. 그 사실을 분명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인바디를 측정한 후 팀 미팅 때 두 선수를 앞으로 불렀다.
“맥라울린, 매트 더비셔 두 선수는 나의 지시를 어기고 먹지 말라는 음식을 먹었다. 이에 경고한 대로 벌금 400파운드(한화로 60만 원 정도)를 물리겠다.”
두 사람 다 얼굴이 붉어졌다.
매트 더비셔가 항의했다.
“감독님, 며칠 전 와이프 생일이어서 외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정도는 봐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외식을 가서도 샐러드를 먹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자네가 보낸 사진은 내가 권장하는 음식만 먹은 걸로 사진을 보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 자네는 지침을 어긴 것도 어긴 거지만 거짓말을 했어. 그게 더 나쁘네.”
사실 매트 더비셔 같은 경우 주급으로 7,000파운드(한화로 1,050만 원 정도)를 받는 고액 주급자였다. 그에게 400파운드쯤은 얼마 안 되는 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어쨌든 난데 없이 돈이 사라지는 거니까.
이렇게 두 선수를 시범 케이스로 벌금을 물리고 나니 선수들의 자세는 확 바뀌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적은 주급을 받는 U21팀 선수들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벌금 액수였기 때문이다. 본인이 주급으로 받는 액수보다 벌금 액수가 더 큰 선수들도 많았다. 물론 레귤러 팀에서 밀려난 선수들과 U21팀 선수들의 벌금 액수를 동일하게 매기진 않았다. 대략 레귤러 팀 선수들의 1/10 수준의 액수를 U21팀 선수들에게 물렸다. 그 정도는 U21 선수들도 부담할 수 있는 액수였다.
그렇지만 규정이 점점 다양하게 추가되었다.
나는 우선 훈련장과 팀 버스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또 훈련에 지각한 선수들에게 5만 원 정도의 벌금을 물리고, 밤 12시 이후에는 외출을 하지 못하게 했다. 물론 이 규정은 레귤러팀 선수들은 예외를 주기도 했다. 성인들은 성인들만의 문화가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U21팀 선수들이 외출 금지 규정을 어기면 처음엔 20만 원, 두 번째는 50만 원, 세 번째는 팀에서 퇴출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벌금 액수도 벌금 액수지만 팀에서 퇴출된다는 것은 선수 생활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선수들은 나의 규정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방종한 생활이 자신의 선수 생활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을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EPPP 정책을 나부터라도 따르기 위해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촬영하여 분석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줬다. 나도 나지만 마이크가 많은 고생을 했다. 두 사람이 여러 역할을 나눠서 함께하다 보니 몸이 수십 개여도 부족할 상황이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부르는 게 아닌데…”
마이크는 둘이서 밤늦게까지 분석 작업을 할 때면 계속 투덜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다른 팀으로 옮기면 되잖아.”
“나보고 팀을 옮기라고? 아주 배가 불렀구만. 어디서 나만 한 인재를 이런 싼 주급에 구할 수 있을 거 같아?”
그 말이 맞았다.
마이크의 현재 선수 능력치를 판단하는 능력치는 18, 미래의 능력치를 판단하는 능력치는 19였고, 선수 영입 능력은 20이었다. 이런 스태프는 빅클럽 코칭 스태프 중에서도 드문 뛰어난 능력치였다. 그래도 나는 그가 다른 팀으로 갈 리가 없다고 확신했기에 이런 농담을 던지는 것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어련하시려고. 그럼 내일은 다음 상대인 로치데일 팀 분석 자료 좀 만들어와.”
“아니 이렇게 부려먹는 걸로도 부족해서 또 다른 일을 시키는 거야?”
“그럼 감독인 내가 하리?”
“필요하면 해야지!”
“물론 필요하면 내가 할 건데, 우선은 자기가 먼저 만들어 오면 내가 그걸 보충할게. 그리고 다음부터는 경기도 보러 가고. 내일은 훈련 지도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마이크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놀고 있는 게 아니니까.
다음 날 오후 마이크는 밤새 만든 자료를 내게 건네줬다. 나는 필요한 부분을 정리하고 수정, 보완한 후 선수들과 함께 봤다. 선수들은 그 자료를 통해 상대방에 대해 준비하고 더 나아가 자신이 개선해야 할 사항을 인식하면서 다음 경기에 대비했다.
그렇게 21일 벌어질 다음 경기에 준비를 착착해나가는 가운데 일요일이 됐다.
그날은 레귤러 팀의 홈 경기이자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의 데뷔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었다. 나와 마이크는 함께 시티 그라운드로 향했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승점 43점으로 챔피언십에서 강등권인 22위에 올라 있었다. 잔류권인 21위와는 승점 2점 차로 차이가 크지 않았고,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을 새로 선임한 만큼 분위기 반전을 통해 다시 잔류권으로 올라가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팀의 레전드였던 스튜어트 피어스를 감독으로 선임한 만큼 홈 관중들은 그의 데뷔전을 환영했다. 하지만 15년 전 노팅엄 포레스트를 1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강등시킨 이가 바로 스튜어트 피어스인 것을 떠올리며 불안해 하는 이들도 많았다. 9년 만의 3부 리그 강등도 그의 손에서 벌어진다면 그는 팀을 두 번이나 강등으로 이끈 불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은 노팅엄 포레스트는 상대팀 번리를 일방적으로 몰아부쳤다.
번리는 챔피언십 리그 2위를 달리는 강팀인데도 노팅엄 포레스트의 공세에 시달렸다.
하지만 골 결정력 부족으로 노팅엄 포레스트는 번번이 찬스를 놓쳤다.
계속 공격을 가하던 후반 들어 노팅엄 포레스트의 공격수들과 미드필더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이 말하던 대로라면 U21팀에서 콜업한 제이미 패터슨과 헨리 란스베리를 교체 멤버로 활용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은 두 선수 대신 미드필더 앤드 로이드와 왼쪽 수비수 대니 콜린스를 넣었다. 위험을 무릅 쓰고 공격을 하느니 수비를 강화해서 승점 1점이라도 따겠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리그 2위를 달리는 팀답게 번리는 얄밉게도 후반 막판 단 한 번의 찬스에서 골을 넣어 노팅엄 포레스트 선수들뿐만 아니라 팬들까지 절망에 빠뜨렸다.
후반 42분,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수 미카엘 더프가 헤딩 슛을 넣은 것이다.
순간 죽음과도 같은 적막이 경기장에 흘렀다.
결국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은 데뷔전을 패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후반에 무승부를 노리며 수비 위주의 교체를 한 것이 패인이었다.
그 순간 휴대폰 어플로 스코어보드를 보니 21위 크리스탈 팰리스가 승리를 하여 승점차는 5점 차로 벌어졌다.
노팅엄 포레스트의 강등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