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코치가 되어서 나에겐 버릇이 하나 생겼다.
잘나가던 선수 시절엔 훈련 시간에 맞춰 훈련장에 나갔지만, 코치가 되어선 최소 한 시간 이상 먼저 훈련장에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훈련장 상태는 어떤지 미리 점검을 했다.
그것은 K리그에서 임시 감독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고, 잉글랜드에 오고 나서도 역시였다. 물론 리저브 팀 감독 대행이 되어서는 더욱 많이 신경 쓸 게 많았다.
잔디의 길이를 살펴보고 잔디에 물을 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정해야 했다. 공, 콘, 이동식 골문 등 훈련에 필요한 장비들도 요청했다. 팀의 의료진을 만나 선수들의 몸상태에 대한 의견도 들었다. 누가 훈련이 가능한지, 누구는 할 수 있는지, 누구는 제한된 훈련을 시켜야 하는지 등을 체크해서 그에 따라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어쨌든 팀의 상황을 손바닥 보듯 보고 있어야 효율적인 팀 운영이 가능했다.
그리고 경기 전에 상대팀에 대한 분석 자료를 팀원들에게 나누어줬다.
그것은 상대방의 축구 관련 능력치를 볼 수 있는 나의 특수한 능력 덕도 있었지만 마이크가 혼을 갈아넣으며 함께 고생해 준 덕도 컸다.
물론 U-21팀 수준에서 그 정도 분석과 대비까지는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간단한 작전만으로도 쉽게 이길 수도 있는 게 상대팀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했다. 팀의 모든 것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어서 보관했고, 모든 직원들에게 일일 보고서와 추후 관리 보고서를 요구하였다. 물론 당연히 반발이 있었다.
테리는 20년 넘게 노팅엄 포레스트 구단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이었다. 니겔 노티 아카데미 연습장의 잔디 관리를 맡고 있는 그는 아카데미에 몇 포기의 잔디가 심어져 있고 각 잔디의 상태를 알고 있을 정도로 니겔 노티 아카데미의 잔디를 잘 알고 있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워드 작업을 전혀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컴퓨터를 전혀 다룰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의 보고서 제출 요구를 받은 그는 다짜고짜 나를 찾아왔다.
“미스터 리! 보고서를 매일 쓰라니 뭔 소립니까!”
“잔디 상태에 대해 정확한 파악이 필요해서입니다. 간단하게 작성해서 제출하시면 됩니다.”
“아니, 1군 팀도 아니고 리저브팀에서 이런 요구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1군 감독님과 협의는 하신 건가요?”“리저브팀이 요구하면 안 됩니까? 리저브팀 감독은 감독이 아니에요?”
“그건 아니지만 팀의 방침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걸 통일해서 운영하면 좋지 않겠어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면 좋겠지만 1군 감독님께선 그런 부분에 관심이 없어요. 지금 당장 눈앞에 다가온 강등권 싸움 탈출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래도 생각해야 하는 리저브팀의 감독으로서 저는 그 부분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제가 당신의 상사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런 보고서 쓰기가 좀….”
“PC 활용이 능숙하지 않으시다는 거죠?”
“좀 창피하지만, 그렇습니다. 잔디 관리엔 PC가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수기로 적어주세요.”
“정말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는지 눈을 반짝였다.
“물론이죠. 기록을 남기는 게 중요하니까요. 제가 양식을 만들어 드릴 테니 매일매일 기록을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기록을 계속 해두시면 추후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1년, 2년 쌓이면 엄청난 데이터가 될 테니까요.”
그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을 나갔다.
대개 이런 식이었다.
누구든 일이 늘어나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다.
처음에 이런 요구를 받으면 반발하고 화를 내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1군 감독도 아닌 리저브팀 감독, 게다가 임시 감독이며 축구를 잘하지도 못하는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온 무명 감독이 이런 요구를 하면 더욱 반발하고 무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엔 구단 직원 대부분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하나 만나서 이야기하고 조리에 맞게 설득하면 그들은 결국 나의 의견을 따랐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나하나 기록을 남기는 게 당장은 귀찮고 짜증 나도 멀리 보면 그들의 업무 연속성과 효율성을 높여주며 구단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 구단 직원이면서 또한 구단의 팬이었다.
구단이 잘되는 일이라는데 안 할 사람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구단의 성적이 올라갈수록 자신의 일자리도 안정되고, 급료도 늘어날 터이니 이런 업무의 기록화와 문건화는 결국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부분을 잘 설명하고 또 내가 본인의 상사임을 은근히 강조하면 어떤 이든 결국 나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나의 방침을 전해들은 구단주가 찬성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해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1군 감독인 스튜어트 피어스가 요청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는 이런 세세한 일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2부 리그 잔류를 위해 골머리를 썩일 뿐이었고 내가 이런 일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내부 반발을 성공적으로 잠재우고 모든 데이터의 문서화를 시작하면서 노팅엄 포레스트 구단은 좀 더 체계화된 관리가 가능해졌다.
물론 나부터가 솔선수범하여 모든 규칙을 앞장서서 지킴은 물론이고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모습이 선행되지 않았으면 다른 이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저항은 리저브팀 내부에서도 있었다.
나의 타이트한 스케줄 관리와 식단 관리 등에 레귤러 팀에서 내려온 일부 선수들은 매우 크게 반발했다.
비록 그들이 주전 경쟁에서 밀려 리저브 팀에 내려와 있지만 받는 주급은 똑같았고, U-21팀 선수들과는 적게는 10배, 크게는 수십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당연히 리저브 팀 선수들을 무시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선수들도 있었고, 내가 정한 규율을 지키지 않다가 벌금을 무는 선수들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훈련 방식인 축구 주기화에 따르지 않는 이들이었다.
기존 구단에서 행하던 웨이트 트레이닝과 부분별 운동을 20년 가까이 해오던 그들에게 나의 훈련 방식은 생소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기만의 루틴과 컨디션 조절 방법이 있는데 나의 방식은 그런 것은 무시하고 90분간 공과 함께 훈련을 하는 것뿐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기존의 체력적인 훈련, 정신적인 훈련, 전술적인 훈련으로 나누어서 하던 축구 훈련을 하나로 합쳤고 이를 운용주의라고 불렀다.
이는 또한 그가 통역관으로 일했고 이후 평생의 숙적이 된 FC 바르셀로나의 훈련 방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명장 무리뉴 감독과 FC 바르셀로나의 훈련방식을 잉글랜드 2부 리그 팀인 노팅엄 포레스트, 그것도 레귤러팀도 아닌 리저브팀에 도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미숙하고 부족하다고 해도 U-21팀 선수들은 10년 이상 기존 훈련 방식으로 훈련을 해왔고, 레귤러팀에서 내려온 선수들은 훨씬 더 오랫동안 기존 방식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몇몇 베테랑 선수들은 훈련 시간에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뛰지 않거나 일부러 실수를 하는 식으로 자신의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이미 벌금을 받은 바 있는 매트 더비셔와 스테픈 맥라우린이었다. 주전 스트라이커와 핵심 미드필더가 반기를 든 것이다.
나와 마이크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함께 상의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저들이 팀 캐미스트리를 망치고 있어.”
“글쎄, 따로 불러서 경고하는 건 어때?”
“말보다는 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해.”
“그럼 벌금?”
“주급을 몇 주 안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가혹하기도 하고 내게는 없는 권한이야. 1군 감독만이 지시할 수 있는 징계지.”
“그럼 어떻게 하려고?”
“경기에서 빼겠어.”
“뭐라고? 그들이 없으면 경기 운영에 큰 타격을 받을 텐데?”
“괜찮아. 그 정도 선수들 없이도 이길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잖아. 방법을 찾으면 될 거야.”
“걱정되는데….”
“걱정하지 마. 까짓거 한번쯤 지면 어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는 나로서는 핵심 선수 몇 명 뺐다고 상대 리저브팀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같은 챔피언십 팀인 셰필드 웬즈데이 리저브팀과의 수요일 어웨이 경기를 앞두고 경기 전날 나는 선발 명단을 훈련장 입구에 붙였다.
매트 더비셔와 스테픈 맥라우린은 선발 명단은커녕 벤치 명단에도 없었다.
두 사람은 나의 선수 명단 발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경기 대비 훈련 내내 저조한 모습을 보였고 그런 플레이는 내가 두 사람을 소집 명단에서 제외한 것을 정당화시켜주었다.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어웨이 경기는 쉽지 않았다.
상대팀엔 레귤러 팀에서 뛰던 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셰필드 웬즈데이에서 전략적으로 키우는 선수도 몇 명 뛰었다.
우선 중앙미드필더로 출전한 25세의 키에런 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스 출신으로 촉망을 받았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해서 방출된 선수였다. 비록 챔피언십, 그것도 리저브팀에서 뛰고 있지만 심한 부상 후에 재활 차원에서 리저브 팀에서 컨디션 조절차 뛰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투 톱인 개리 매다인과 베닉 아포브도 신체적인 능력치와 기술적인 능력치가 나름 뛰어난 유망주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적 명단에 오른 33세 스페인의 베테랑 수비수 미구엘 리에라도 중앙 수비수로 출전했다. 비록 나이가 들어서 민첩성은 떨어졌지만 기술적, 정신적 능력치는 매우 높은 선수였다.
그에 반해 차포는 물론이고 마상도 뗀 노팅엄 포레스트 리저브팀이 쉐필드 웬즈데이 리저브팀을 상대로 그것도 어웨이에서 경기를 리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전날 선수들에게 수비를 튼튼히 하면서 세트 플레이를 통한 골을 노리라고 주문했다.
물론 비장의 세트 플레이 전술도 여러 가지 준비해둔 것이 있었다
경기는 예상대로 쉐필드 유나이티드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열광적인 홈 관중의 응원을 뒤에 업은 쉐필드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일방적으로 노팅엄 포레스트 선수들을 몰아부쳤다.
하지만 버스 두 대에다가 택시까지 골대 앞에 세워둔 노팅엄 포레스트의 골문은 그들에게 득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특별히 키에런 리를 집중마크하도록 했다.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 안 된 그는 부상의 재발을 우려해서인지 매우 조심스럽게 플레이했고 우리 팀의 거친 파울에 넘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전반을 0 대 0으로 마친 후 쉐필드 유나이티드에서는 선수 보호차 키에렌 리를 교체했다.
공격의 키를 잃은 쉐필드 유나이티드는 패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삐걱대었다.
이제는 흐름이 바뀌어서 노팅엄 포레스트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몇 번의 슈팅 후 얻은 코너킥에서 우리의 세트 플레이 전술이 빛을 발했다.
188cm의 중앙수비수 로렌스 고만이 뜨자 쉐필드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집중마크했고 그 틈을 노려 페널티 박스 바깥에 있던 170cm의 단신 미드필더 조지 그랜트에게 코너킥이 연결되어 자유로운 상태에서 그는 강한 중거리 슛을 날렸다. 그의 중거리 슛 능력치는 12로 다른 선수들보다 꽤 높은 수준이었다.
그의 발끝을 떠난 골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골대 모서리에 박혔다.
노팅엄 포레스트 선수들은 다시금 전원 수비에 나섰고 끝까지 1:0 리드를 지켰다.
벌써 5연승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의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있었다.
훈련 시간에 태업을 했던 매트 더비셔와 스테픈 맥라우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