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무실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두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인사했다.
“굿모닝 보스.”
‘보스’라고?
그 전까지 나에게 코치라고 부르지도 않고, 미스터 리 하던 이들이 갑자기 보스라고 하는 것이다.
‘이 녀석들, 어제 승리 이후로 나를 인정하기로 했구나.’
하지만 나는 태연히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그들을 맞았다.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인가?”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며 동시에 말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보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
“잘못했다니 뭘 잘못했다는 거야?”
매트 더비셔가 먼저 말했다.
“고액 연봉자라고 훈련에 불성실하게 임하고, 태업했던 거 아시잖아요.”
스테픈 맥라우리가 그 말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을 선발 멤버는 물론이고 벤치에도 안 앉히신 거 아닌가요?”
“….”
세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소를 띤 채 두 사람을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을 빼고 경기를 치렀지.
두 사람 없이도 리저브 팀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그리고 경기 내용이야 어쨌든 주전 멤버들이 뛴 쉐필드 유나이티드를 이겼네.”
두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는 열심히 훈련하고 내 말을 따를 각오가 됐나?”
그러자 두 사람 모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어깨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나보다 10센티미터 이상 컸지만 내 팔에 양 어깨를 제압당했다.
나는 두 사람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누가 진짜 보스인 줄 알았군. 그럼 앞으로 기대하겠어.”
“예스, 보스.”
두 사람은 인사하고 나갔다.
사무실에 들어오던 마이크가 두 사람과 마주쳤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가던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마이크가 혀를 차며 들어왔다.
“어제 승리의 효과가 직빵이네.”
“후후. 그렇지. 나더러 보스라고 하더군.”
“어쨌든 두 사람이 다시 주전으로 뛰면 경기력은 훨씬 좋아지겠군.”
“그래, 둘 다 U-21 팀에선 최고의 실력자들이니 큰 도움이 될 거야.”
“다행이군. 훈련장 분위기도 많이 좋아지겠어.”
마이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그런데 레귤러 팀 분위기는 개판인가 보더군.”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지만 예상보다 빨리 왔다는 생각에 놀라긴 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데?”
“주축 선수들이 부상과 질환을 핑계로 훈련에 불참하는 일이 잦다는 거야. 안 그래도 분위기가 안 좋은데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의 지시를 대놓고 무시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군.”
“그래?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군.”
노팅엄 포레스트 레귤러 팀의 팀 구성 자체는 챔피언십에서도 꽤 좋은 편이었다.
구단주인 알 하샤위가 팀을 인수하면서 공격적으로 선수를 영입했고 기존 노팅엄 포레스트에 있는 선수들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특수 능력으로 살펴봐도 괜찮은 선수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이고, 그 꿰어야 하는 감독이 시원치 않으면 아무리 좋은 선수들이 있어도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물며 그 감독이 성공 못한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의 대명사인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이니….
감독 경질 빨로 연승을 거둬도 모자랄 판에, 레귤러 팀은 이기던 게임은 비기고, 비기던 게임은 지는 악순환을 계속했다. 그것은 런던 올림픽에서 EPL 스타들로 구성된 영국 연합 팀을 이끌고 대한민국 팀에게 승부차기로 패배했을 정도로 소극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 탓이 컸다.
홈에서조차 소극적인 지키기 위주의 전술을 펴니 좋은 성적이 나올 리 만무했고, 무승부와 패배가 이어지는 가운데 관중들도 떠나갔고, 선수들의 신망도 잃었다.
하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만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언론조차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조롱하기 일쑤였다.
결국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은 고립되었고, 그 누구의 지지도 얻지 못한 채 그저 감독석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 팀 성적은 곤두박칠쳐서 어느새 최하위가 눈앞이었다.
“어떤 선수들이 그렇게 항명하지?”
“글세, 누구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순 없고 상당수가 태업 중인가 봐.”
“그래도 적극적인 선수들이 있을 거 아냐?”
“으이구! 내가 레귤러 팀 코치야? 리저브 팀 코치지. 내가 그쪽 사정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
정 궁금하면 브라더가 알아봐!”
“아니 감독의 명령에 항명하는 거야?”
“항명이고 뭐고 알아야 얘기를 해주지? 나도 전해 들은 거란 말야.”
마이크 말도 맞았다. 우리 팀 선수들도 아닌데 마이크가 잘 알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서 레귤러 팀의 사정에 대해 들었다.
알아보니 레귤러 팀은 기존의 노팅엄 포레스트 선수들과 이번 시즌 새로 이적해 온 선수들 간에 파벌이 나뉘어 있었다.
문제는 주장인 크리스 코헨 빼고는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이 이번 시즌에 새로 영입해 온 선수들이었고, 노팅엄 포레스트에 2년 이상 머문 선수들은 후보 명단에 들어서 1군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낸 셈이니 당연히 기존 선수들의 불만은 커지고 그에 따라 기존 선수들과 새로 영입된 선수들 간에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구단을 인수한 구단주가 너무 의욕적으로 팀 전력 향상을 꾀하면서 수많은 선수 이적을 진행하다 보니 일어난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대처해야 할 1군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인해 당장의 성적에 급급해서 팀 케미스트리는 돌보지 않고 승부에만 집착하다가 콩가루 구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후임 감독인 스튜어트 피어스도 그 문제를 돌보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여서 결국 팀 성적은 팀 성적대로 망치고 주전 선수와 후보 선수들 간 불화의 골도 깊어지고 있었다.
결국 이번 훈련 항명 사태도 후보 선수들이 주동이 되어 부상과 신병 들을 핑계로 훈련에 불참하면서 불거진 거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팀원들 간에 불화가 커지면 아무리 좋은 선수들을 모아놓아도 팀웍이 좋은 약체 팀에게도 질 수 있는 게 축구였다.
‘문제의 원인은 해결하지 않고서 강등권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만 집중하니 당연히 성적이 곤두박질칠 수밖에…. 그런데 문제가 있는지 알고 있는지부터 궁금하긴 하군. 한 번 만나러 가볼까?’
나는 더 시티 크라운드에 있는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의 사무실로 갔다.
똑똑.
“들어오시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임 때에 비해 초췌해진 얼굴의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이 앉아 있었다.
“미스터 리군. 무슨 일인가?”
“요새 몇몇 선수들이 1군 훈련에 불참한다는 소식을 듣고 감독님께서 괜찮으신지 뵈러 왔습니다.”
“후보 선수 몇 명쯤 부상과 질병으로 빠질 수도 있지.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나?”
“하지만 그들은 이 구단에서 몇 년째 뛰어온 선수들입니다. 좀 더 신경 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팀 상황이 어떤지 아나? 이제 한 경기만 더 지면 우리는 리그 꼴지가 된다고. 8년 만에 3부 리그로 내려가게 생겼다고.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판국에 후보 선수 몇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신경 쓰란 말인가? 자네는 성적이 좋아서 그런 한가한 걱정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당장 다음 경기를 지면 경질당하게 생겼단 말이야!”
“네?”
그것은 나로선 놀라운 이야기였다.
성적이 안 좋아 레귤러 팀의 감독을 경질했다가 그 후 선임한 감독이 시원치 않자 또 자르는 경우가 유럽 축구에선 드물지 않았지만 한국에선 드문 일이었다.
하긴 성적이 적당히 안 좋았어야지. 3무 3패로 승리는 단 한 번도 없었고, 6게임 동안 고작 승점 3점을 따낸 사이에 강등권 팀들이 치고 올라와 이제는 최하위 팀과 같은 승점이 되었다.
즉 11게임을 남겨둔 현재 노팅엄 포레스트는 승점 34점으로 미들즈브러, 밀월과 함께 공동 22위였다. 챔피언십은 모두 24개 팀으로 홈 앤드 어웨이로 46경기를 해서 그중 1, 2위가 프리미어 리그로 직행, 3~6위가 플레이오프를 거쳐 마지막으로 승격하는 데 반해, 22위부터 24위까지가 바로 3부 리그인 리그 1로 강등되는 시스템이었다.
생존권인 리즈, 여빌과는 승점 3점 차로 두 팀은 승점 37점이었다.
노팅엄 포레스트가 강등되지 않으려면 같은 승점을 기록하고 있는 미들즈브러, 밀월을 제끼는 것은 물론이고 생존권 팀 중 하나보다 더 많은 승점을 올려야 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태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은 이미 리더십을 상실했고 팀은 사분오열됐으며 강등권에서 헤매는 것도 모자라 리그 꼴지로 떨어지게 생겼다.
더 이상 레귤러 팀에 대해 이야기하면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이 진짜 화를 낼 것 같아서 나는 어물쩍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말 그대로 최후 통첩을 받은 스튜어트 피어스. 과연 그가 다음 경기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다음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다음 라운드 상대팀은 챔피언십 6위를 달리고 있는 블랙풀이었다.
블랙풀은 2010-2011 시즌에 프리미어 리그에 승격했다가 바로 강등당한 팀으로 다음 시즌인 2011-2012 시즌에도 리그 5위로 플레이오프에 나갔던 팀이었다. 즉 20년 넘게 프리미어 리그 승격은 물론이고 플레이오프에도 못 나가고 있는 노팅엄 포레스트와는 확연한 실력차가 있는 팀이었고 당연히 순위도 비교가 안 됐다.
게다가 상대방 팀의 홈 경기.
노팅엄 홈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데 어웨이 경기라니 무승부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임시의 임시 감독이 또 오는 건가?’
그가 누구일지 몰라도 퍼거슨이나 무리뉴, 펩 과르디올라 같은 명장이어도 힘든 미션 임파서블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강등인 건가? 나도 다른 일자리 알아봐야겠지?’
이틀 후 2월 7일 오후 3시, 블랙풀의 홈구장인 블룸필드 로드에서는 블랙풀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경기가 열렸다.
노팅엄 포레스트로서는 리그 최하위로 떨어지느냐 마느냐가 달린 일전으로 만약 이 경기를 지고 다른 공동 꼴지 팀들이 이기거나 비기면 노팅엄 포레스트는 단독 꼴지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잔류팀들과의 격차도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나와 마이크는 마이크의 차를 타고 블룸필드 로드로 향했다. 영국 특유의 겨울 날씨답게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면서 을씨년시러운 풍경을 자아냈지만 경기장으로 향하는 영국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입장권을 사서 경기장에 들어서자 경기장을 꽉 채운 홈팀 관중들이 일방적으로 블랙풀을 응원하고 있었다. 수용인원 15,000명을 꽉 채운 경기장에 노팅엄 포레스트를 응원하는 이들은 어웨이 응원석의 소수의 서포터즈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