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1위와의 힘겨운 원정 경기 이후에 노팅엄 포레스트의 다음 경기는 리그 4위를 하고 있는 입스위치 타운과의 경기였다.
입스위치 타운 역시 리그 4위를 달리고 있는 강팀으로 당시 챔피언십 리그는 레딩과 찰튼이 1, 2위를 다투고, 위건, 입스위치, Q.P.R, 번리가 3위에서 6위를 다투는 상황이었다.
레딩과 찰튼은 승점 71점 동점인데 골득실로 레딩이 1위, 찰튼이 2위였고 이 두 팀은 다음 시즌 프리미어 리그 승격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었다.
나머지 프리미어 리그 승격 티켓 한 장을 두고 3위부터 6위까지의 팀이 플레이오프 토너먼트를 벌여 최후의 승자가 되는 팀이 프리미어 리그에 승격되는데, 위건, 입스위치는 승점 64점, Q.P.R이 63점, 번리가 62점이었고, 레스터시티도 62점이지만 골득실에서 밀려 7위, 브라이튼이 60점으로 8위였다.
리그 마지막 경기인 46라운드까지 8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위한 티켓 한 장을 두고 이 여섯 팀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인데, 노팅엄 포레스트는 이 여섯 팀 중 입스위치, Q.P.R, 레스터시티, 본머스, 번리까지 다섯 팀과의 경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후아, 정말 토 나오는 일정이네. 산 넘어 산이라고 이 무슨….’
더욱 큰 문제는 이 다섯 팀 중 레스터시티와 번리는 노팅엄 포레스트와 함께 잉글랜드 중부지방 팀으로서 오랫동안 더비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팀이라는 것.
안 그래도 프리미어 리그 승격이 걸려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비 라이벌 관계까지 더해지니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간에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힘들겠지만 홈에서 벌어지는 4위 입스위치 타운과의 경기를 반드시 승리하지 않으면 리그 잔류는 더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챔피언십 리그 4위를 달리고 있는 입스위치 타운은 1878년에 설립된 팀으로 4-5-1과 4-4-2를 혼용했다. 2001/02 시즌에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된 후 계속 챔피언십에 중상위권에 머물고 있는 팀으로 이번 시즌 들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노리는 중이었다.
감독은 아일랜드 출신의 마이클 맥카시 감독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아일랜드를 지휘하여 16강에 진출시킨 바 있었고 선더랜드와 울브스를 맡아 2차례 챔피언십을 우승하여 승격시킨 바가 있는 승격 해결사였다.
역시 아일랜드 출신인 대릴 머피가 최다골은 리그에서 15골을 넣고, 스티븐 헌트가 9개의 도움을 기록 중이었다.
레딩과의 원정 경기에서 패배함으로써 탈 꼴지 찬스를 놓친 노팅엄 포레스트로선 반드시 입스위치 타운을 잡아야만 했다.
리그 4위로 38경기에서 53골을 넣고 있으니 공격력만 치면 그리 강하지 않은 편, 대릴 머피를 잘 막으면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상위권 팀보다는 덜 까다로운 상대이지 않아?”
나는 마이크에게 의견을 물었다.
“내 생각도 그래. 당연히 쉽지는 않지만 이기는 게 불가능하진 않아.”
알고도 당하는 레딩과는 달리 입스위치 타운의 공격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2002년도에 아일랜드는 대한민국에서 스페인과의 16강전을 했는데, 그때 아일랜드는 막판까지 스페인을 추격해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끈끈한 축구를 했지만 단순하고 투박한 축구였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그런 축구가 챔피언십에서 가장 잘 통하는 축구인 것도 사실이었다. 문제는 프리미어 리그에 올라가서 강팀과 상대할 때는 잘 통하지 않아 다시 강등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5일 안으로 다가오는 입스위치 타운과의 경기는 여러모로 중요한 경기였다.
만반의 준비를 해 맞서 싸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자유계약 선수 말야.”
“맞다, 자유계약과 임대 이적 마감 시한이 이번 주 금요일까지군.”
“여기저기 물색을 해보고 에이전시도 접촉해 봤는데 문제는 이사진에서 예산을 편성해 줄 수 없다고 하더군.”
“뭐라고? 당장 전력 보강을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는데…. 무슨 소리야?”
“이사진이 보기엔 어차피 강등당할 거 뭐 하러 돈을 쓰냐는 거야.
최소 2년은 계약해야 할 텐데 괜히 주급이랑 계약금이 나가는 것도 부담이 된다는 거지.”
“이런 소심쟁이들. 어휴 답답해. 근데 계약할 만한 선수는 있어?”
“그게 말이지.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괜찮은 선수들은 죄다 계약을 했고, 은퇴를 앞두고 1, 2년 더 뛰겠다는 선수들을 데려오려면 실전 감각 회복시키는 데도 몇 달은 걸릴 거란 거지. 계약을 안 하느니만 못해.”
“결국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금 선수들 가지고 싸워야 한단 얘기군.
알았어.”
하늘에서 엄청난 선수가 떨어져서 공짜로 계약을 하는 일 따윈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최소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두고서 꾸준히 관찰하고 성장 가능성을 분석하여 계약할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고 소속 구단이 희망하는 액수를 정확히 캐치하여 이적료를 제시해야 하는데 지금의 노팅엄 포레스트엔 그런 역량과 비전을 가지고 움직이는 스카우터가 없었다.
그저 윗선의 지시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한 선수를 알아보는 수준이었다.
‘이 팀은 모두 싹 다 바꿔야 해.’
팀을 다 뜯어고쳐야겠다고 결의를 다졌지만 생존에 성공하지 못하면 쇄신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어쨌든 반드시 강등 전쟁에서 살아남아 승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직위 앞에 붙은 ‘임시’란 단어가 떨어질 것이고, 그건 곧 그럴 듯한 새로운 감독이 온다는 말이 된다. 즉 내가 다음 기회를 잡기 위해서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의미.
이번 기회를 살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나에게도 미래가 있을 터였다.
나는 다시금 전의를 다졌다.
5일 후 시티 그라운드에서 벌어진 입스위치와의 경기는 입스위치가 경기를 주도하는 가운데 노팅엄 포레스트가 역습을 노리는 형태로 전개됐다.
입스위치가 주도권을 쥐고는 있지만 그들 입장에서도 잘 풀리는 경기가 아니었다. 전반 종료까지 유효 슈팅이 2개에 그칠 정도로 실속 없는 공격만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전반이 끝나고 하프 타임 때 나는 선수들에게 말했다.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지금은 수비를 단단히 하다가 찬스가 나면 반드시 해결하도록 해!”
그리고 나의 예언대로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
상대 진영에서 입스위치의 공을 인터셉트한 크리스 코헨이 바로 덱스터 블랙스톡에게 20미터 스루 패스를 보냈고, 쇄도한 블랙스톤이 공을 잡아 골키퍼와 1 대 1을 만들려는 순간 입스위치 타운의 수비수 토미 스미스가 백 테클을 가했다.
패널티 박스 바로 바깥에서 벌어진 파울이라 PK 대신 프리킥이 주어졌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의 백테클이었기 때문에 주심은 가차없이 레드 카드를 꺼냈다.
이어 속행된 경기에서 크리스 코헨의 프리킥은 골대 위로 날아갔지만, 선수가 한 명 부족해진 입스위치는 수비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기회가 왔다.
후반 40분, 입스위치 타운의 왼쪽 구석에서 얻은 코너킥을 마쿠스 투가이가 차자 공격에 가담한 대니 콜린스가 강하게 머리로 받아 넣어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만들어 버렸다.
“골, 골입니다! 전후반 내내 밀리기만 했던 노팅엄,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기어이 잡아 채는군요.”
해설자들의 열광적 목소리!
탈꼴지를 바라며 경기장을 찾은 16,000명의 팬들을 열광하도록 만든 골이었다.
이후 선수가 한 명 부족해 체력이 떨어진 입스위치 타운은 제대로 된 공격을 전개하지 못했고
노팅엄 포레스트 또한 한 골을 지키기 위해 수비적으로 운영하면서 경기는 그대로 1 대 0으로 끝났다.
다른 경기장에선 22위 미들스부르의 패배 소식이 전해졌다. 미들스부르는 홈에서 브라이튼에게 패하면서 승점 38점에 머무르며 24위로 떨어졌다.
또 23위 여빌도 원정에서 레스터 시티에게 패하며 노팅엄 포레스트와 승점이 같아졌다.
하지만 –15로, -16의 어빌에게 골득실에서 앞선 노팅엄 포레스트가 22위에 올랐다.
내가 팀을 맡고서 3경기 만에 탈꼴지를 했을 뿐 아니라 승격권인 21위 셰필드와는 2점 차가 되었다. 레스터 시트와의 원정 경기 다음에 벌어지는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원정 경기가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역시 눈앞에 닥친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를 승리하는 것도 중요했다.
레스터 시티는 노팅엄 포레스트의 지역 라이벌 팀 중 하나로 1884년에 설립된 팀이었다.
프리미어 리그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던 레스터 시티는 마틴 오닐 감독이 팀을 맡았던 1990~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구가하여 리그컵을 2차례 우승하며 UEFA컵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후 다시 침체에 빠지면서 레스터 시티는 3부 리그로 강등당하고 재정난으로 벌점을 받기까지 했으나 태국 면세점 재벌인 위차이 시왓다나쁘라파가 팀을 인수한 이후 안정을 되찾고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내가 경험한 미래에서 레스터 시티는 다음 시즌인 2013-14시즌에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여 프리미어 리그에 승격하고 2015-16 시즌 명장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을 선임하여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하는 기적을 만든다. 그리고 2018년 10월 27일 구단주 위차이 시왓다나쁘라파가 홈경기 직후 헬리콥터로 경기장을 떠나다가 추락사고로 구단직원, 조종사가 함께 숨지는 참극을 겪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내가 노팅엄 포레스트에 오기 전 이야기로 내가 온 이상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레스터 시티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승리하여 리그 잔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현재 레스터 시티엔 2015-16 시즌 우승의 주역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물론이고 은골로 캉테도 없었다. 그래도 카스퍼 슈마이켈과 다니엘 드링크워터, 리야드 마레즈, 제이미 바디 등 우승의 주역들이 팀에 합류해 있었다.
이 중 특히 제이미 바디를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제이미 바디는 셰필드 웬즈데이의 유스 선수였으나 16세 때 계약이 종료된 후 지역팀이자 8부리그 팀인 스톡스브릿지 파크 스틸즈로 옮겨 리저브 팀에서 뛰기 시작해 2007년 1군에 데뷔했다.
이 당시 바디가 받은 주급은 겨우 30파운드(5만 원가량)로, 너무나도 낮은 수입 때문에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했고, 일을 마친 저녁 시간에만 축구를 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시절이었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폭행 사건으로 전자발찌까지 차고 있어서, 오후 6시까지만 활동을 해야만 했었기에 전반전만 뛰고 귀가해야 했다고 한다. 이 폭행 사건은 2007년 자신의 청각장애인 친구를 괴롭히던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어 그들을 때려 눕혔던 것으로 6개월 전자발찌 착용과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 통행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 결과 셰필드 웬즈데이에서 쫓겨났고 8부 리그 팀에서 데뷔해야만 했다고 한다.
이후 뛰어난 활약으로 여러 팀의 관심을 받다가 2010년 FC 할리팩스 타운으로 이적하였고 이때부터 주급이 상승해 공장 일을 그만두고 축구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2010-11시즌 27골을 득점해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고,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가 되었다.
팀도 우승을 해서 승격했는데 2011-12 시즌엔 5부 리그에 해당하는 컨퍼런스 프리미어의 플리트우드 타운에 이적하여 팀 우승에 공헌하고 2012년 레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제이미 바디는 178cm의 키에 75kg의 평범한 체격의 선수로 테크닉과 몸싸움이 뛰어나지 않고, 제공권 장악도 별로다. 하지만 순간 침투 속도가 엄청나서 오프 사이드 라인을 깨는 데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또한 엄청난 활동량으로 상대 수비진과 미드필더를 압박하여 빌드업을 방해하거나 공을 빼앗아 역습 상황을 만들어내는 선수다.
하지만 이번 시즌 제이미 바디는 리그에서 5골밖에 못 넣는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몇 년 후 그가 써내려가는 전설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될 정도의 부진이었다.
서포터들의 엄청난 비난에 휩싸여 본인이 이적 명단에 올려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도 들었다.
“이 선수 어때?”
나는 레스터시티 출전 예상 선수 중에서 제이미 바디의 이름을 가리키며 물었다.
“글세, 체구와 테크닉은 평범하지만 순간 스피드와 활동량은 좋던데…. 하지만 골 결정력이 별로여서 스트라이커로선 위협적이지 않아.”
“이번 경기는 몰라도 앞으로 대성할 선수야. 만약 이적 리스트에 오른다면 반드시 데려와야 해.”
“정말? 그 정도 잠재력은 안 보이던데…. 그런데 지역 라이벌인 우리에게 레스터시티가 팔려고 할까?”
“설득해 봐야지.”
모든 프로 스포츠가 그러하듯이, 더비 라이벌끼리는 선수 거래를 거의 하지 않는 전통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선수를 팔았다가 라이벌 팀에서 잘나가면 그만큼 팬들에게 욕을 먹기 때문이었다.
제이미 바디를 데려오려면 레스터시티에서 그의 잠재력을 잘 알지 못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면 더비 경기인 이번 경기에서 제이미 바디가 죽을 써서 서포터들에게 더 큰 비난을 받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레스터시티와의 경기를 대비한 훈련은 제이미 바디의 견제에 초점을 맞췄다. 제이미 바디에 대한 레스터 시티 니겔 피어슨 감독의 신뢰도 대단히 컸다고 들었기 때문에 반드시 선발로 내보낼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수비 선수들에게 하프라인부터 적극적으로 마크하라고 지시했다. 또 그에게 투입되는 공을 조기에 커트하도록 미드필더진부터 강력한 압박을 가하라고 명령했다.
5월 3일 토요일, 레스터시티가의 홈구장인 워커스 스타디움은 만원 관중으로 꽉 찼다.
레스터시티 팬들이 제일 싫어하는 구단으로 노팅엄 포레스트를 꼽을 만큼 두 팀 간에 라이벌 의식은 치열했고 여기에 같은 지역 팀인 더비 카운티까지 해서 세 팀 간에 벌어지는 경기를 이스트 미들랜드 더비라고 불렀다.
레스터시티 팬들로서는 제일 꼴뵈기 싫은 팀을 강등시키고 레스터시티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하는 일석이조를 바라고 왔을 것이다.
그래서 엄청난 함성을 퍼부으며 “노팅엄을 죽여라!”를 외쳐댔다.
예상대로 레스터시티는 4-4-2 전형에 제이미 바디를 투 톱 중 하나로 내세웠다. 키 188cm에 몸무게 90kg에 달하는 거구 크리스 우드와 제이미 바디를 빅 앤 스몰 조합으로 출전시켜 크리스 우드가 공중볼을 장악한 후 제이미 바디의 빠른 발을 이용해 골을 노리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어웨이팀인데도 적극적으로 압박에 나선 노팅엄 포레스트 선수들에 밀려 제이미 바디는 제 위력을 발하지 못했다.
오히려 전반 15분 라픽 제부르의 크로스를 사이먼 콕스가 받아넣으면서 원정팀인 노팅엄 포레스트가 한 골 앞서 나가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리고 그 리드는 전반 내내 이어졌고 레스터시티 관중석에서 짜증과 분노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후반 들어 제이미 바디는 전반처럼 전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방까지 내려와 적극적으로 함께 압박하고 미드필더들의 침투를 도왔다. 수비수들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진 제이미 바디는 63분경 노팅엄 포레스트의 골 에어리어로 침투하는 미드필더 안소니 누카트에게 결정적인 로빙 패스를 날렸고, 누카트가 골대 왼쪽 구서리를 향해 가볍게 툭 차자 칼 다로우의 다이빙도 소용없이 골이 들어갔다.
“무승부는 소용 없어! 적극적으로 골을 노리라고!”
나는 다시 선수들에게 강력한 압박을 가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3분 뒤 데이비드 본이 프리 상태로 있는 제이미 패터슨을 보고 내준 공을 제이미 패터슨이 받아서 레스터시티 골대 오른쪽을 향해 강하게 찼다.
철썩! 그물을 출렁이며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관중들의 함성이 일시에 잠잠해졌다.
레스터시티 선수들은 다시 필사적으로 동점골을 노렸지만 칼 다로우의 선방에 번번이 막혔다. 내가 부여한 능력 ‘거미손’이 번번이 빛을 발했다.
특히 제이미 바디는 킬 패스를 날리다 답답했는지 본인이 직접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경기 후반 막판, 본인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패스를 안 하고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다가 공을 빼앗기며 공격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레시터시티 관객들은 들끓기 시작했다.
사방 여기저기서 제이미 바디를 욕하는 욕설과 조롱이 난무했다.
제이미 바디도 패닉에 빠졌는지 머리를 쥐어짜며 고통스러워했다.
경기가 끝난 후 나는 제이미 바디에게 다가가 위로했다.
그를 노팅엄 포레스트로 데려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좋은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었다.
“좋은 경기였네. 자네의 활약 잘 봤어. 마지막 찬스 아까웠지만 내 생각엔 자네 판단이 맞았던 것 같네. 다음에 또 보세.”
제이미 바디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의 말을 듣더니 인사하고 대꾸 없이 락커룸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반드시 우리 팀에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