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리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승점 3점을 추가한 노팅엄 포레스트는 승점 49점으로 20위를 지켰다. 던캐스트에게 패배한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승점차는 4점차로 벌어졌고 강등권팀들인 22위 여빌, 23위 밀월, 24위 미들즈브러와의 승점차이도 벌렸다. 더비의 홈에서 원정 경기를 가진 여빌은 2 대 0으로 패했고 밀월도 왓포드 원정 경기에서 3 대 4로 패했으며 미들즈브러는 레스터와 홈에서 0 대 0으로 비겼다.
강등권 팀들과의 격차를 크게 벌림으로써 잔류 안정권에 들겠다는 계획은 속속 맞아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라운드가 정말 중요했다.
다음 라운드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는 홈으로 23위 밀월을 불러들이는 반면, 22위 여빌과 24위 미들즈브러는 여빌의 홈에서 맞붙는다.
만약 우리 팀이 밀월을 이기고 여빌과 미들즈브러가 비기거나 미들즈브러가 이기면 노팅엄 포레스트의 잔류는 거의 100%에 가까워진다. 강등권 싸움은 우리 팀이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쟁팀들이 얼마나 못하느냐도 중요했다. 물론 전승하여 상대팀의 성적과는 관계없이 승점을 팍팍 올리면 좋겠지만 축구는 절대 그런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승점을 벌고 상대는 못 벌기를 바라야 했다.
팀 미팅에서 나는 이런 점을 알리면서 다가올 여빌 전에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팀의 노고를 치하하며 반드시 잔류하자고 말하고 구단주가 보너스를 제안한 사실을 밝혔다.
“와!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선수들은 모두 환호하며 다음 경기에서도 반드시 이길 것을 자신했다.
‘음, 승리를 자신하는 건 별로 안 좋은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에이, 그럴 리가. 잘 준비하면 반드시 이길 거야.’
1885년 설립된 밀월 구단은 4-2-3-1 전형을 사용했다. 1989-90시즌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강등된 후 한번도 프리미어 리그에 못 올라간 밀월은 3부 리그인 리그1과 챔피언십 사이를 오르내리는 팀이었다. 이번 시즌 전 예상은 19위였는데 그보다 더 저조한 성적을 거둬 강등이 유력해진 상황이었다. 감독은 브리스톨 로버스, Q.P.R, 플리머스, 레스터시티, 블랙풀, 크리스탈 팰리스까지 리그 1팀과 챔피언십 팀을 전전한 이안 할로웨이였고 캐나다 국가대표 포워드 시미언 잭슨이 19골로 팀의 공격을 이끌고 있었다.
‘약팀이지만 시미언 잭슨만은 조심해야겠는데?’
173cm의 단신 포워드 시미언 잭슨은 순간 속도 15, 주력 17인 선수로 빠른 발을 이용해 라인 브레이킹을 즐겨하는 선수였다.
방심해서 맹공을 가하다 불의의 일격을 맞으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절대 방심하지 말고 시미언 잭슨을 조심해.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를 잃지 말라고.”
그렇게 주의를 환기하며 경기에 임했지만 생각보다 밀월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노팅엄 포레스트를 상대로 라인을 내리지 않고 계속 맞서 싸우며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마침내 전반 종료 전 노팅엄 포레스트는 한 방 세게 얻어맞았다.
밀월의 미드필더 마틴 울포드가 시미언 잭슨과 켈빈고미스 앞에 공을 톡 밀어줬고 순간 가속도를 붙인 시미언 잭슨은 켈빈고미스를 저만치 떨궈놓고 질주해 공을 자기 것으로 만든 후
달려드는 골키퍼 칼 드로우의 겨드랑이 사이로 공을 찼다.
축구의 유명한 격언 ‘시작하고 5분 후, 끝나기 5분 전을 가장 조심하라’란 말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1대 0으로 이기고 있어도 불안할 판에 전반전 끝나기 전에 먼저 한 골을 먹었으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하지만 절대 흥분해서는 안 됐다.
하프 타임 라커룸에서 나는 선수들에게 말했다.
“절대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하나씩 만들어나간다고 생각해. 상대팀은 분명히 우리보다 약하고 여기는 우리 홈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기회가 올 거고 그때 한 골씩만 넣으면 분명히 우리가 이길 거야.”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밀월은 또 매서운 공격력을 보여줬다.
이번에도 시미언 잭슨이었다.
센터서클 부근에서 마틴 울포드에게 공을 건네받은 시미언 잭슨은 수비 뒷공간으로 돌아나가는 미드필더 리 마틴을 보고 정확하게 찍어 차 줬다. 그 패스를 받은 리 마틴은 본인을 향해 달려드는 골키퍼 칼 드로우를 보고 침착하게 로빙 슛을 날렸고, 칼 드로우의 손질은 허공을 저을 뿐이었다.
2 대 0.
정말 혹 떼려다 혹 붙이게 생겼다. 이대로 이 경기를 지면 5점 차였던 밀월과의 격차는 단숨에 2점 차로 좁혀진다. 그리고 혹여 여빌이 미들즈브러를 이기기라도 한다면 여빌과의 격차도 1점 차가 된다.
나는 라도슬라프 마예브스키를 투입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할 수 있으니까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공을 차!”
그리고 주문대로 침착한 플레이를 펼치다 보니 기회가 왔다.
70분경 밀월의 왼쪽 사이드를 파고 들던 라픽 제부르가 사이먼 콕스에게 크로스를 날렸는데 사이먼 콕스의 발리 슛이 밀월 수비수를 맞고 나왔다. 골대 오른쪽에서 흘러나온 공을 받은 주장 크리스 코헨이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도 밀월의 골키퍼 데이비드 포드 왼쪽으로 강한 슛을 날려 기어이 골을 성공시켰다.
2 대 1.
최소한 비기기만이라도 하면 승점 차는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동점골을 노리라고 외쳤다.
그리고 3분 후 골키퍼 칼 다로우의 긴 골킥이 사이드 라인 바깥으로 나가려는 것을 크리스 코헨이 헤딩으로 안으로 우겨넣었고, 그 공을 사이먼 콕스가 쇄도하며 받아서 골키퍼까지 제끼고 골대 안으로 꽂아넣었다.
순식간에 동점을 만든 노팅엄 포레스트 선수들은 3 대 2로 역전을 노렸지만 그 정도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경기는 두 팀 다 못 마땅한 스코어인 2 대 2로 끝이났다.
경기가 끝나고 나는 밀월과의 격차를 벌이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반대로 우리 안에 있는 자만감과 방심이 경기를 망칠 뻔했음을 인정했다.
우리보다 하위팀이라고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덤볐다가 큰 타격을 입을 뻔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
나는 1골 1어시스트를 하며 수훈 선수가 된 크리스 코헨을 칭찬했다.
“수고했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했어.”
“별 말씀을요. 팀원들이 함께 노력한 덕분입니다.”
후에 들어온 소식으론 미들스브로와 여빌이 0:0으로 비겨서 격차가 그대로 유지됐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며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로 했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여전히 챔피언십 19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22위 여빌과는 승점 5점 차로 여유가 있었지만 연패를 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앞으로 남은 세 경기는 볼튼과 Q.P.R, 본머스.
볼튼은 리그 14위지만 어웨이 경기였고, Q.P.R은 리그 4위에 어웨이, 최종전 상대인 본머스가 리그 3위인데 홈경기였다.
레딩이 승점 77점으로 1위, 찰튼이 75점으로 2위, 본머스가 74점, Q.P.R이 70점이었다.
본머스의 경우 프리미어 리그 직행인 2위와는 승점 1점 차이인데다가 골득실에서 찰튼에 앞서기 때문에 절박한 상황이었고, Q.P.R은 7위 번리와의 승점차가 3점밖에 안 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승점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 뻔했다.
만약 볼튼 전에 패배한다면 다시 잔류라는 신호등에 노란불이 들어올 수 있었다.
최소 무승부를 해 승점 1점은 얻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볼튼 전을 준비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이청용의 소속팀으로 잘 알려진 볼튼은 에이스인 이청용이 톰 밀러에게 부상을 당하면서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강등당하고 말았다.
부상에서 회복된 이청용은 이번 시즌 12골 10어시스트의 대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19억 원에 달하는 연봉이 부담스러웠던 볼튼은 시즌 종료 후 이청용을 방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청용을 제외하고도 산미 오델루시, 마크 데이비스, 미들스브루에서 임대해 온 루카스 유트키에비치 등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볼튼의 공격진은 위협적이었다.
2013년 4월 20일 월요일 19시 45분, 볼튼의 리복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볼튼과의 경기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는 볼튼의 20살 스트라이커 산미 오델루시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산미 오델루시는 전반에만 선제골을 어시스트하고, 그후 한 골을 넣으며 공격을 주도했고, 노팅엄 포레스트 공격진은 볼튼에게 한 골 허용할 때마다 바로바로 추격에 나서 2 대 2 동점을 만들었지만, 전반 종료 직전 루카스 유트키에비치에게 한 골을 허용하며 전반을 끝마쳤다.
후반 들어서도 오델루시의 원맨 쇼는 계속되어 후반 11분 오델루시는 루카스 유트키에비치의 패스를 받아서 절묘하게 오프 사이드 트랩을 깨뜨리며 결승골을 넣었다.
이후 이청용이 투입되어 굳히기엔 나선 볼튼은 수많은 찬스를 만들어냈지만 골을 넣지는 못했다. 4골만 허용한 게 다행일 정도로 볼튼의 공격진에게 농락을 당한 노팅엄 포레스트는 후반 15분경 라픽 제라르가 덱스터 블랙스톤의 스루 패스를 받아 한 골을 만회하는 데 그쳤다.
다행히도 여빌이 홈에서 허더스필드에게 지고 밀월도 리즈에게 홈에서 3 대 1로 패하면서 격차가 유지됐지만 여빌과는 아직 가시권인 5점 차였다.
만약 노팅엄 포레스트가 남은 2경기를 모두 지고, 여빌이 두 경기를 모두 이긴다면 노팅엄 포레스트가 강등당하고 여빌이 잔류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코칭 박스를 나온 나는 이청용 선수를 만나러 갔다.
이적 명단에 오르면서 스타팅 멤버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진 이청용은 어두운 얼굴이었으나 애써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았다.
“감독님, 오늘 우리 팀이 이겨서 어려워지신 거 아니에요?”
“그러게. 자살골이라도 넣어주지 그랬어? 하하.”
“저도 제 코가 석자라서요. 하하.”
“그래, 이적 추진 중이라고 들었는데 좋은 팀 가서 잘 풀리면 좋겠네.”
이후 크리스탈 팰리스로 이적한 이청용의 선수 생활이 어떻게 풀렸는지 나는 알고 있지만 차마 그 팀에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볼튼은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져 3부리그인 리그로 강등됐기에 더욱 이청용을 보유할 수 없게 됐다.
우리 팀이 강등되지 않으면 이청용의 영입을 한번 추진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우선은 잔류하는 게 먼저였다.
남은 두 게임, 최소 한 경기는 무승부를 거둬야 자력으로 잔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지만 매우 어려운 미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