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조금 전 나는 심장 부근의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몇 년 전 심장마비로 쓰러진 후로 그렇게 조심을 하며 술 한 잔, 담배 한 대도 입에 안 댔지만, 축구감독으로서 겪는 스트레스에 기어이 심장이 항복을 하고 만 것이다.
‘이게 끝인 건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난 건가 생각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몸 관리 따위 하지 말고 실컷 놀면서 되는 대로 사는 건데….’
의미 없는 후회가 몰려오는 그 순간 나는 몸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양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것처럼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더니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 혼은 내 몸을 빠져나왔다.
몸을 빠져나온 내 의식은 조금 전까지 머물고 있던 육체를 내려다 봤다.
허공에서 바닥에 고개를 푹 처박고 쓰러진 내 모습을 보니 한심하면서도 불쌍하기 짝이 없다.
‘아이고, 이 화상아... 축구에 미쳐서 술도 안 마시고, 여자도 안 만나고...,(실은 못 만나고)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산 보답이 고작 이거냐…. 한심한 인간….’
의미 없는 자책을 백 번 천 번 해도 이미 죽은 목숨 소용 있을 리가 없다.
애꿎은 시체를 앞에 두고 혀를 쯧쯧 차고 있는데 갑자기 내 혼이 어디론가 알 수 없는 힘에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측정할 수 없는 속도로 하늘 위로 올라갔다.
구름 위를 넘어 대기권을 돌파한 나의 몸은 수많은 별을 지나 얼마나 갔는지 알 수 없는 공간에 떨어졌다.
‘아이고, 이게 뭐야? 정신 못 차리겠네. 이게 사후 세계란 건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청 나게 큰 광장에 나는 서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나처럼 어리둥절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과 외모와 옷차림의 수많은 사람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젠장, 다들 죽고 바로 이리로 왔나 보구만.’
주위를 둘러보니 환자복을 입은 노인, 피칠갑을 한 중년 남성, 벌거벗은 채 염색한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 등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나처럼 죽자마자 온 거로군,’
그런데 내 옆에 인천 FC의 레플리카를 입고 서 있던 뚱보가 나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는 체를 한다.
“어, 혹시 이호영 감독님 아니십니까?”
이곳 저승에서도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니... 놀랄 노자다.
“내가 누군지 알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이호영 선수, 아니 감독님을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청소년 대표, 올림픽 대표, 월드컵 대표까지 최연소 기록을 모두 깨며 한국 축구의 기대주로 각광받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래. 진짜 한국 축구 팬이라면 나를 잊을 수 없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넘의 대표팀 무단 이탈 때문에….”
‘아, 이 친구가 내 아픈 상처를 건드리네….’
20년 전 나는 나를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는 국가대표팀 감독에 반발해 대표팀을 무단 이탈했고, 그 일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그 대가로 국가대표 선수 자격을 영구 박탈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K리그 선수 자격도 2년이나 박탈당하면서 나는 실전 감각을 다 잃어버렸다.
결국 나는 2년 후 복귀해 선수 생활을 계속했지만 이미 감각과 실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라 그저 그런 선수로 K리그 팀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0살이 되던 해 은퇴 후 구단의 배려로 영국 유학을 갔고 거기서 유럽의 프로팀 코치를 맡을 수 있는 4급 코치 자격까지 딴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코치로 많은 경험을 쌓은 후에 K리그의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 인천 F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감독님, 이 인천 FC 감독으로 왔을 땐 참 기뻤죠. 그리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하셨는데…. 경남 유나이티드가 너무 강했어요.”
그랬다. 어젯밤 내가 이끄는 인천 FC와 경남 유나이티드의 일전이 있었다.
경남 유나이티드에 승점 2점 차로 2위를 달리는 우리 팀이 경남을 이기면 K리그 다이렉트 승격을 하는 리그 1위가 될 수 있었는데…. 상대방이 너무 강했다.
결국 우리 팀은 홈에서 3대 0으로 참패했고, 인천 FC의 1부 리그 다이렉트 승격은 그대로 무산됐다.
그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나의 심장은 마비를 일으켜 결국 나는 이곳에 왔다.
“그런데 자기는 왜?”
나야 심장마비로 급사했다지만, 이 친구는 왜 여기 왔는지 궁금했다.
“저는 어제 경기 끝나고 술 마시러 갔는데 하필이면 옆자리에 경남 유나이티드 서포터들이 있어서 시비가 붙었거든요.
자기네들 승격한다고 우리를 자꾸 놀리는 거에요.
근데 전 별로 싸울 생각이 없었는데 말리다가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에이고, 그러니까 평소에 운동 좀 하지….’
이 친구도 나처럼 심장마비로 급사한 셈이었다.
다만 나와는 달리 운동부족이 원인이었다.
댕~
그때 커다란 징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소리가 터져나왔다.
“망자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가시오!”
그러고 보니 광장 앞에 커다란 대문이 서 있었다.
문 위에는 ‘生死門’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었다.
‘이곳을 지나면 죽음이 확정되는 건가?’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주변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검은 옷의 사나이들 때문에 차마 무리를 벗어나 도망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가고 싶지 않아도 계속 앞으로 밀려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들어간 이들은 모두 줄지어 서 있었다.
줄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자들이 생사부(生死簿)라고 쓰여 있는 명부와 얼굴을 대조하며 확인하고 있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이름이 뭡니까?”
“이호영이요.”
그런데 내 얼굴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이상했다.
무언가 잘못됐는지 계속 명부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1980년 5월 20일 생 맞아요?”
“네. 맞는데요?”
그는 다른 이들에게 손짓했다.
다른 검은 옷 입은 이들이 모여들더니 한참을 상의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했다.
“이호형 씨, 잠깐 우리와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나는 그들의 안내를 받아 밀실로 들어갔다.
왠지 범죄자가 되어 형사 취조라도 받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죄송합니다. 우리의 불찰입니다.
시스템 오류로 엉뚱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그들의 말인즉 나와 똑같은 날짜, 비슷한 시각에 태어난 이호영이란 사람을 데려온다는 것이 좌표를 잘못 찍어 나를 데려왔다는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사망하기 전 시각으로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억은 모두 삭제하겠습니다.”
“뭐라고요?”
이 인간(?)들이 누굴 호구로 아나?
멀쩡한 사람 죽였다 살렸으면 손해 보상을 해야지.
“아니 무고한 사람 죽였다 살리고 사과만 하면 그만입니까?”
어이가 없어진 나는 벌러덩 쓰러져 바닥을 굴렀다.
“못 가! 절대 못 가! 이대론 못 가!”
멀쩡한 사람 죽였다 살리는 법이 있냐고 떼를 썼다.
어차피 살아날 거 이렇게 떼를 쓰면 뭐라도 하나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검은 양복들은 다시 모여서 의논을 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몇 분 후 역시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신사가 들어왔다.
“이호영 씨,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물었다!’
대어가 걸려들었다고 생각한 나는 요구 조건을 내놓았다.
“첫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나 본데, 내가 원하는 시간으로 돌려주세요.”
그들은 난처한 얼굴이 되어 서로 얼굴을 보더니 중년 신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니, 그것은 안 됩니다. 지상의 질서를 어지럽힐 수가 있어요.”
“안 되긴 뭐가 안 됩니까?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다 당신들 마음 아닙니까?
그러니 내가 돌아가고 싶은 시간으로 나를 돌아가게 해주세요.
그때로 안 돌려 보내면 여기서 콱 죽어(?) 버릴 거에요!”
저승에 와서 죽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억지라도 쓰지 않으면 전혀 들어주지 않을 거 같았다.
중년 신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호영 씨, 우리가 과거에 당신을 다시 돌아가게 할 수는 있지만, 정확한 시간을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과거로 돌아가게만 해줄 수 있을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그전까지 얻었던 경험과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언제로 갈지 알 수 없다고?’
그의 말에 겁이 덜컥 났지만 언제로 태어나든 지금보단 더 나을 거 같았다.
단순히 대한민국 2부 리그 축구팀의 감독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동안 살면서, 또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서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아니 하다 못해 갓난 아이로 태어나서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 해도 지금보다 더 잘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을 굳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나의 말을 들은 그는 굳어진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강력한 기도에 눌려버린 나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나의 이마에 손을 대자 강렬한 빛이 나를 감쌌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