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영국으로
다음날 나는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영국에 다시 가는 것은 4년 만이었다.
사실 그동안 해외에 나가본 건 구단 전지 훈련이 다였기에, 살짝 혼자만의 해외 여행 느낌이 나서 기분이 잠깐 좋았다. 하지만 중간에 경유지 포함 10시간 동안 이코노미 석에 앉아 장시간 비행을 하니 진이 다 빠졌다. 가까스로 영국에 도착해서도 스케줄상 관광은커녕 런던 하이드라 공항에서 바로 노팅엄으로 가야 했다.
런던 외곽에 있는 하이드라 공항에서 내셔널 익스프레스, 우리 말로 시외버스라고 하는 코치를 타고 한 번에 노팅엄에 갈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비행기 시간에 맞춰 버스를 이미 예매해둔 나는 중간 경유지인 아브다비에서 이것저것 검색을 해가며 막연히 알고 있던 노팅엄 포레스트 구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봤다.
노팅엄은 영국 중부에 있는 소도시. 런던에서 기차나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로빈 후드 전설로 유명한 곳이며 인구는 30만 명 정도로 그중 1/5이 대학생인 교육 도시이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1889년 창단됐고, EFL 현재 2부리그인 챔피언십 리그 소속이다. 팀 이름에 포레스트(forrest)인 이유는 그곳에 로빈 후드가 활약했던 셔우드 숲이 있었기 때문이다.
홈 구장은 더 시티 그라운드로 30,602명을 수용할 수 있고 현재 감독은 빌리 데이비즈다. 리그 우승은 전설적인 명장 브라이언 클러프의 지휘하에 1978-1979 시즌에 지금의 EPL의 전신인 풋볼 리그 디비전 1에서 42게임 무패의 기록을 세우며 승격하자마자 우승했고, 1980-1981 시즌과 1981-1982 시즌에 지금의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을 2연속 우승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후 몰락하여 2부 리그로 떨어져서 2000년대에는 한번도 EPL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4-2005시즌엔 3부리그에 떨어지기까지 했다. 참고로 챔피언스 리그와 유러피언 컵 우승 팀 중에 2부 리그에 있는 팀은 노팅엄 포레스트가 유일했다.
라이벌 구단은 옆 동네 구단인 더비(두 팀 간의 경기를 이스트 미드랜드 더비라고 한다), 셰필드 유나이티드, 레스터 시티 등이 있었고, 함께 노팅엄을 연고지로 하고 있는 노츠 카운티와는 노팅엄 더비를 벌이는 사이였다.
현재 구단주는 쿠웨이트의 갑부인 파사즈 알 하샤위. 마이크에 따르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성적이 나오지 않아 고민이 많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팀의 애칭이 ‘The Reds’라는 것이었다. ‘붉은 악마(Red Devils)’라는 애칭이 붙은 팀은 대한민국 대표팀뿐만 아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벨기에 등이 있지만 약칭으로 ‘The Reds’를 쓰는 팀은 리버풀과 대한민국, 노팅엄 포레스트가 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선수로 붉은 악마의 응원을 받았던 내가 이제는 ‘The Reds’라고 불리는 팀의 코치로 가다니 재미있는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시간 동안 예습을 하다 보니 비행기 출발 시간이 다되었다.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나에게는 두 가지 특수한 능력이 있었다.
하나는 다른 이들의 축구와 관련된 능력을 볼 수 있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축구 관련해서 특수한 기술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축구와 관련된 능력 중 일반적인 능력 말고 숨겨진 능력치와 성격을 보려고 하면 포인트를 사용해야 했다. 포인트는 내가 축구 관련 활동을 하여 얻을 수 있는 듯했다. 선수를 육성한다든지 클럽의 감독으로서 거두는 성적에 따라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의 활동으로 얻은 포인트가 13,500점이었고 김정훈의 비밀 능력치를 보고, 그에게 무회전 슛 능력을 부여하느라 400포인트를 썼다.
그리고 한 가지, 김정훈의 능력치 창을 보다가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 있는데, 부여한 특수 능력을 회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능력치 창에 회수라는 메뉴가 있었기 때문이다.
400포인트가 아깝긴 했지만 차마 회수하진 못했다. 무회전 킥으로 이제 특기 하나가 생겼는데, 그걸 어떻게 회수한단 말인가. 앞으로 그와의 인연이 이어질지도 모르니 계속 발전시켜 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어쨌건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능력인 데다가 나는 앞으로 5년 후 미래를 살다 왔기 때문에 추후 어떻게 축구계가 흘러가고, 어떤 전술이 유행하며, 어떤 선수가 잘나가는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다른 코치는 물론이고 감독들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국제 축구계에서 후진국에 가까운 대한민국이라는 국적과 지도자로서 특별한 성과를 만들지 못한 나의 커리어 때문에 당장은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EPL 코치 4급 자격증이 있어도 말이다.
결국은 마이크가 마련해 준 기회를 최대한 살려서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성과를 만들어야 했다. 제2의 브라이언 클러프가 될지 말지는 나중 문제였다.
노트북으로 미리 저장해 둔 노팅엄 포레스트의 그 시절 다큐멘터리를 보니 브라이언 클러프의 다혈질적인 모습이 보였다. 훈련 중 선수들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는 그 모습을 보니 하프 타임 때 라커룸에서 데이비드 베컴의 면상을 향해 축구화를 차 날렸던 퍼거슨 경이 떠올랐다. 명장이란 때론 저런 모습도 보여줘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성질을 부릴 만한 실력이 없으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성과를 보여주는 것.
감독으로서 뛰어난 성적을 거둬야 선수들이 믿고 따라오지 성적도 나쁜데 성질만 부리면 화풀이밖에 될 수 없는 일이다.
기내 서비스로 나오는 와인을 여러 잔 마신 후,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기대 쪽잠을 자다가 일어나보니 영국 상공이었다.
공항 도착 시각은 오후 2시 30분. 예약해둔 버스 출발 시간은 3시 30분이다.
수하물을 찾고 길게 줄을 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니 제법 시간이 흘렀다.
공항 밖으로 나와 버스 플랫폼까지 헐레벌떡 뛰어가서야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비와 안개의 나라 영국답게 줄창 부슬비가 내려 버스 안도 눅눅했다.
그러는 새 버스는 벌써 노팅엄 대학에 도착했다.
버스 도착할 시간을 미리 알려준 덕에 마이크가 정류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헤이 브라더!”
4년 만에 만나는 마이크가 진짜 형제라도 만난 양 눈물을 글썽이며 반가워했다.
순간 녀석의 능력치가 눈 안에 들어왔다.
다른 능력치는 평범했지만 선수의 현재 능력 판단 능력과 성장 가능성 판단 능력이
18, 19로 엄청 높았다.
‘이 녀석 코치보다 스카우터를 해야 하는 거 아냐?’
마이크는 나를 자신의 경차에 태우고 구장으로 데려갔다. 내가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도 타고 다니던 차였다.
‘이 녀석 진짜 이 차처럼 변한 게 없군.’
차 밖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전형적인 영국 겨울 날씨였다.
차 안에서 마이크가 물었다.
“호영 브라더, 그런데 아직 싱글이야?”
갑자기 약점을 찔린 나는 헛기침을 했다.
“헛헛.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여전히 싱글인 거 같아서 하는 소리지. 결혼은커녕 여자 사귄다는 얘기도 못 들었고….”
“뭔 소리야?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데? 나한테 목매는 여자가 수두룩했다고!”
“뻥치지 말고. 내가 브라더 호영을 하루 이틀 겪어봤어? 영국에서도 인기가 없었는데 한국에서라고 무슨 인기가 있었겠어?”
아니 이 녀석이 7년 만에 만났는데 뼈 때리네?
“뭐… 뭔 소리야? 내가 여자들한테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
“정말? 그런데 왜 여태 결혼을 못 했어?”
“그거야 아직 사랑할 만한 사람을 못 만나서지. 여자들이 나한테 달려들어도 다 내 스타일 아니라고 거절하고 안 만났어.”
“쯧쯧쯧…. 또 뻥치는군. 자기 옛날에도 여자한테 딱지 맞고 와서 연애 한 번도 못해봤다고 술 마시고 울어놓고선 지금도 그 버릇 개 줬으려고?”
‘이 녀석 왜 이렇게 기억력이 좋지?’
“아…. 아냐. 그건 옛날 얘기고 그동안 여자 많이 사귀었다고! 내가 그 시절 애숭이인 줄 알아?”
“하하하…. 브라더 호영~ 자긴 나를 속일 수 없어~. 너 여전히 버진이라고 하하하.”
마이크의 놀림을 받으면서도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아 나이 35살을 넘어서도 이 모냥 이 꼴이라니…. 그런데 뭐라 할 말이 없다.
마이크는 나를 노팅엄 포레스트의 홈 구장인 시티 그라운드에 데려갔다.
강가에 세워진 시티 그라운드는 노팅엄 성에서 차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은 지 오래된 경기장이라 그런지 곳곳에 녹이 슬어 있었다. 그래도 3만 명을 넘게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라 매우 컸다.
경기장을 돌아가는 데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의 이름을 딴 스탠드가 있는 것이 보였다. 입구에 그의 초상화가 중앙 위에 걸려 있고 밑에는 ‘THE BRIAN CLOUGH STAND Executive Suite Entrance’란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구단 중역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란 이야기다.
“브라더 호영~! 알겠지만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은 이 도시와 구단에서뿐만 아니라, 영국 전체에서도 특별한 감독이야. 2부 리그 하위권 팀을 이끌고 두 번이나 리그 우승을 했을 뿐 아니라 유러피언 리그 우승도 2번 이상 우승했어. 그 이상의 실적을 올린 감독은 퍼거슨과 밥 페이즐리(리버풀의 전설적인 명장, 1974년부터 83년까지 9년 동안 리그 우승을 6회 하고, 유러피언 리그 3회 우승, 유로파 리그 1회 우승을 함)밖에 없어. 덕분에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 중 하나로 꼽히지. 문제는 그의 후임들은 항상 그와 비교가 되기 때문에 웬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경질된다고. 그러다 보니 항상 팀이 불안정하고 좋은 성적이 나오질 못해. 알겠지?”
나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하군. 구단주고 팬이고 다들 그 시절의 영광에 취해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얘기잖아.”
“맞아. 그런데 나는 호형 브라더가 이 구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 그리고 그 시절의 영광을 재현할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내가? 무슨 근거로?”
“브라더 호영은 옛날부터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술을 잘 세웠잖아. 깜짝 놀랄 만한 결과도 여러 번 만들어냈고...”
“하하. 그거야 유소년 축구 선수들 데리고 실습하는 정도였지.”
“아니야. 나는 그 속에서 천재성을 봤어. 그래서 호영을 브라더로 삼은 거야.”
나는 놀랐다. 이 녀석이 나를 이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니…?
“그래서 호영 브라더더러 다시 오라고 계속 연락한 거고, 둘이 함께 일하길 꿈꿨던 거지.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졌어.”
마이크는 나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
“그거 알아?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에겐 피터 테일러라는 훌륭한 조력자가 있었어. 피터 테일러가 영국 곳곳에서 뛰어난 선수들을 싼 가격에 데려오면 브라이언 클러프가 최고의 전술로 우승을 시킨 거지. 제2의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이 될 이호영에겐 나 마이크 모건이 있지.”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난 전에 조금 전 100포인트를 써서 봤던 성격과 숨겨진 능력치를 떠올렸다.
그의 성격 중 야망은 20, 비전술적 능력 중 선수영입능력은 20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