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성내관이 왕에게 원자의 탄생을 전했을 터인데, 산실청에 내려앉은 밤 그림자가 쉬이 물러갈 것 같지 않았다. 소윤의 손길에 잠에 빠져든 원자를 바라보는 것인지 도무녀의 백색으로 뒤덮인 눈동자를 움직였다.
“내가 태어난 지 열 번의 해가 지나던 날, 네가 우리 집을 찾았었지. 그래.. 그땐 네 눈은 멀쩡했었어.”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소윤이 슬쩍 도무녀를 보았다. 등잔불이 켜져 있기는 하였지만 달조차 뜨지 않은 밤엔 불빛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도무녀의 모습은 더욱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땐 제가 비천한 무녀였을 때였지요. 마마의 운을 점치기 위해.. 제 운명이 흐르는 곳으로 움직였습니다.”
“훗. 제 운명을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니더냐. 내게 그 눈이 빼앗기게 될!!”
“그 당시도 제 눈은 오직 사물의 존재 유무를 판단하기 위한 것 일뿐. 눈의 기능 따위는 제겐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그래. 그 당시 분명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내 운명은 신에게 사랑받아 세상의 가장 귀한 존재로서 빛이 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다고. 그때고 지금이고 네가 날 꿰뚫듯 응시하는 그 눈빛이 참을 수 없었다. 네년 따위가! 감히!”
소윤은 자신도 모르게 원자를 안은 소윤의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자 원자가 뒤척이기 시작했다. 소윤은 머리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원자의 가는 목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이대로 손에 힘을 준다면 복수가 완성될 것인가.
“마마. 그것은 원하시는 것이 아니지 않사옵니다.”
도무녀는 담담한 어조로 소윤을 응시했다. 자신의 행동에 놀란 소윤이 갑갑한 심정을 숨기려는 듯 뒤척이듯 몸을 움직이는 원자를 끌어안았다. 제 눈을 벤 나를 원망하지 않다는 듯 나를 따라 궁으로 들어온 이 여인은 늘 그러했다. 이 여인한테만은 꽁꽁 숨겨놓았던 소윤 자신을 늘 들키고 말았다. 여인의 눈을 베었을때도, 회임하고 널 찾았을 때도, 지금도 소윤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 밖에 없을 터. 왕의 오랜 벗이자 이제는 좌찬성이 된 ‘장도원’.
“마마, 소인의 신력은 이제 서서히 사라져갈 것이옵니다.”
“.....”
“그날 소인은 소인의 하찮은 신력으로 원자마마의 저주를 없애고자 하였사옵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지요. 결국 소인은 내일 출궁하옵니다. 어디에 있건 원자마마를 위해 기도할 것이옵니다.”
“지 애비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사자(使者)로 태어난 아이가 그리 불쌍하더냐.”
“아니옵니다. 이것도 제 운명인 것을.”
도무녀는 소윤과 원자에게 예를 다하고 자리에 일어나 서서히 소윤에게서 멀어져갔다. 소윤은 눈길도 두지 않은 채 밤 그림자에 자라져버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무녀의 모습이 온전히 사라지자 소윤은 무거운 입을 떼었다.
“마지막까지 한 가지의 물음에 대답을 못하는 것이냐. 나는 정녕 가질 수 없는 것이더냐. 그 분을.”
도무녀는 홀로이 밤 그림자를 밟으며 산실청을 소리 없이 빠져나왔다. 모든 것이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감이라도 하듯. 도무녀는 무겁게 짓눌린 공기를 느끼며 교태전을 향해 몸을 굽혔다.
“마마. 당신만이 원자마마의 운명을.. 그 분의 삶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인과율을 끊으실 수 있사옵니다. 중전마마. 만수무강을 비옵니다.”
그렇게 도무녀가 궁에서 떠나는 모습을 멀찍이에서 성 내관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