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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음
작가 : 칩칩
작품등록일 : 201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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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여행기 기역
작성일 : 16-08-25     조회 : 479     추천 : 0     분량 : 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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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초에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목적은 엄청나게 비효율적으로 지내다 오는 거였다. 가기 전에 이것저것을 조금 적어봤는데 이랬다.

 1. 모르는 동네에 이상한 시간대에 떨어지기.

 2. 개피곤한 상태로 짜증내기, 상쾌하게 일어나서 맛있는 거 먹기.

 3. 쓸쓸한 거 버티지 말고 다 느끼기.

 4. 사진찍고 싶은데서 사진 안 찍기.

 5. 엄청나게 조바심 내기.

 6. 세상 시간이 다 나한테로 몰려 온 거처럼 늘어지게 다니기.

 7. 눈 앞에서 일부러 차 놓쳐보기.

 8. 하루 종일 아무하고도 연락 안 해 보기.

 9. 뭐 하나 숨겨 놓고 오기.

 10. 그냥 꽂히는 대로 다니기.

 11. 낮술 먹고 다니기.

 12. 소리 들어 보기.

 13. 아무하고도 연락 안 하는 동안 무슨 생각 누구 생각 나는지 써 보기

 14. 안하던 짓 해보기, 불안한 짓 해보기.

 15. 다시 돌아가면 뭐 하고 싶은지 느껴지는 거.

 16. 다른 곳에서 해 뜨는 거 보기, 다른 곳에서 해 지는 거 보기.

 17. 레파토리 연습 동영상 하나 찍어 보기.

 18. 책 한권 들고 가기, 어린왕자 부분.

 19. 완전 비합리적이게 싸돌아다니기 아예 효율이라고는 생각하지를 말기.

 

 그리고 실제로, 만일 누군가 함께 왔더라면 화를 내게 할 정도로 그냥 돌아다녔다. 완당같았다. 완당은 엄지 손톱만큼 만두 속이 들어있고 나머지는 팔랑팔랑한데 그걸 완당집에서는 구름 한 그릇 먹는다고 하지만 만두의 시각에서 볼때는 알맹이가 없는 거다. 암튼 그랬다.

 

 순천만 습지를 예전부터 보고 싶었으므로 첫번째 목적지는 일단 순천으로 정했다. 숙소나 먹을거리도 가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노포동 버스터미널로 가서 표 끊고 차를 탔다. 그 전에 월세를 잊어버린 적이 두번인가 있어서 먼저 은행에 들러 자동이체 신청을 했다. 그날은 흐렸고 사실 이미 비도 좀 오고 있었다. 갈아입을 옷은 챙기지 않았고 빤스도 빨아입기로 하고 여분을 챙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삼단 우산을 챙겨야한다는 사실이 조금 억울했지만 가방이 그렇게까지는 무겁지 않아서 그럭저럭 불만을 우겨넣었다.

 

 이번 여행에서 될 수 있는대로 몇 번 좌석 주세요라는 말을 안하기로 했다. 일종의 복권 사는 심정이었다. 베팅하는 느낌이 들었다. 십오번 좌석이 걸렸다. 난 뒷자리를 좋아하지만 표 파는 분이 배려해주신 것 같았다. 앞자리 아저씨도 좌석을 뒤로 넘길 때 뒷 사람 생각하는 배려심 있는 양반 같았다. 앞으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안만날지 궁금했다. 버스가 가는 동안 인생엔 유명한 게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전주에선 비빔밥이고 부산에선 돼지국밥인 것처럼, 최소 그렇게 생각되는 것 처럼, 거기 가서 그걸 안 먹고왔나! 하는 것처럼, 인생에선 유명한게 뭐가 있을까.

 

 가방에 막걸리를 사서 들고 다니려고 했는데 잊어버렸다. 혹시나 사고가 났는데 구조될 가능성이 없으면 막걸리나 빨아먹고 몽롱하게 있다가 죽고 싶었기 때문이다. 죽는 건 내 선택대로 못 되더라도 그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좌석에 앉아서 버스 통로쪽으로 보고 있었다. 아까 올라탄 분이 검표원 아주머닌 줄 알았는데 어쩐지 뒷좌석 쪽으로 걸어가셨다가 다시는 앞으로 돌아오지 않으시길래 내리시는 걸 내가 못봤나 했었다. 버스가 이미 고속도로 진입했는데 아주머니가 갑자기 앞자리로 오셨다. 정장을 입은 아주머니셨던 거였다. 만일 정말로 검표원이었다면, 달리는 버스에서 내린대도 아무렇지도 않게 노포동 터미널에서 바로 내리는 것처럼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전라남도 광양시에 들어와 섬진강 휴게소에 도착했다. 나는 전주가 경상북도인 줄알았다는 망언을 서슴없이 하고 다녔는데 가능하다면 백날 지리 수업을 듣느니 한번 이끌고 돌아다니면 싫어도 지리를 알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진강 휴게소 화장실은 정말로 좋았다.

 상대방이 기억할까 아닐까를 신경 많이 썼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내가 기억한다는 게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든 말든 뭘했든 뭘 하든 갈 곳에 가는 것 같다. 나 혼자 가는 길이고 내가 가는 거니까.

 버스 창밖을 내다보는데 꽂혀있는 팻말이 상당했다. 깜빡졸음 번쩍저승이 번갈아가며 꽂혀있었다. 엄청난 이야기였지만 낄낄거릴 수 밖에 없었다.

 

 순천시에 진입했을 때 대한동물사랑협회 간판이 보였다. 순천 버스터미널 화장실에 갔더니 묘한 한약냄새가 났다. 그리고 문에는 용변 보신 후 물 좀 내려주세요라고 적혀있었는데 좀, 이라는 단어에서 뭔가 열받은 게 쌓여있던게 느껴져서 조금 웃겼다.

 

 내 입장에서 잘 생긴 남자랑 눈 마주쳐서 좋아하면서 순천만으로 가는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부산처럼 여기도 77번이 있었다. 애기를 가진 아줌마께 몇 번 버스를 타야될지 물어봤는데 그 사이 67번 66번 670번이 지나갔다. 그리고 66번을 탈거면 반대편에서 타야되고 67번 버스 배차간격이 몹시 띄엄띄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침내 버스 하나를 낚아채 탔는데 나중에 돌아올 때도 느꼈지만 똑같은 곳에서 버스 안내양 녹음 목소리가 갑자기 약간 공포 영화스러워졌었다. 누군가 내 뒤에서 잊어버리지 마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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