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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의 새벽
작가 : 라브로지아
작품등록일 : 201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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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章. 당신을 듣고 싶어
작성일 : 16-08-27     조회 : 194     추천 : 1     분량 : 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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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章.

 

 "마마. 오늘 산책 나가실 겁니까?”

 

 

 "……산책?"

 

 

 탐스런 머리를 한데모아 따던 이매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날씨가 좋긴 하지만, 움직일 마음은 없다."

 

 

 "왜 그러십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나가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꿈을 꾸었다."

 

 

 이매가 나직이 말했다.

 

 꿈이란 말에 모란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모시는 공주마마께서 자주 꾸시는 꿈.

 

 그 꿈을 꾸고 나면 공주마마는 언제나 힘들어하셨다.

 

 이매가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 꿈을 꾸고 나니 나갈 생각이 없구나. 오늘은 동궁 안 정원만 둘러볼 터이니, 너도 좀 쉬어라. 항상 날 도와주었잖느냐."

 

 

 "그건 제 일이잖습니까."

 

 

 이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의 서랍을 뒤지던 이매가 뭔가를 찾아냈다.

 

 그것은 탈이었다. 도깨비 모양의 이매 탈.

 

 탈을 얼굴에 쓴 이매가 궁 바깥으로 한걸음 나왔다.

 

 

 "봄 내음이 향긋하구나."

 

 

 모란은 그 옆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괜히 서러움이 북받쳤다.

 

 왜 공주마마께선 이 탈을 쓰고 나가셔야 하는가.

 

 왜 그런 소문이 시달려야 하시는가.

 

 

 "사람들도 너무하죠!"

 

 

 결국 참지 못한 모란이 빽 소리쳤다.

 

 이매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채 모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매가 자신이 쓰고 있는 탈을 가리키며 말했다.

 

 

 "결국 보이는 건 겉모습이니까."

 

 

 "그래도 이렇게 착하신 분이 이 세상에 어디있다고요! 있으면 어디 한 번 데리고 와보라고 해요!”

 

 

 이매가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참 예쁘게 하지. 이리와라. 우리 같이 놀자꾸나."

 

 

 이매가 모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느새 눈물이 송글송글 맺힌 모란이 수줍게 손을 잡았다. 마주치는 온기가 따스했다.

 

 동궁은 작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정원을 같이 거닐던 모란이 입을 열었다.

 

 새벽의 일이 생각난 것이었다.

 

 

 "참, 마마. 사실 새벽에 어떤 남자가 침입했습니다."

 

 

 그 말에 이매가 우뚝 멈춰 섰다.

 

 모란이 이매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변명을 했다.

 

 

 "아니, 그게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것은 아니고. 뭔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데리고 구석진 곳으로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물어보았는데? 어떻게 대답하였느냐."

 

 

 모란이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다. 딱히 별다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답한 것은 없습니다. 단지, 이곳에 엮이지 말라는 것만 말했을 뿐이죠."

 

 

 그제야 이매의 표정이 풀어졌다.

 

 긴장했던 모란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꼼지락거리며 같이 걷던 모란이 별안간 손뼉을 짝 쳤다.

 

 

 "참, 그 남자가 마마께 남긴 말이 있습니다."

 

 

 "내게……?"

 

 

 "예. 음, 뭐였냐면. 자신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었습니다. 자신은 중앙궁 호위를 맡고 있는 소루하라고 했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 호위 중 한 명이래요. 그리고 마마의 노랫소리를 들었으니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다던데요?"

 

 

 모란의 말에 이매가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노랫소리 하나만 듣고 만나자니. 무모하기 짝이 없는 사내구나.

 

 

 "나중에 보거든 됐다고 전해라.”

 

 

 이매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 듯 모란은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꿈을 꾸듯이 중얼거렸다.

 

 

 "역시 마마의 노래는 천상을 거니는 선녀의 목소리라니까요. 오죽하면 지나가던 호위가 듣고 반하겠습니까."

 

 

 이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단지 목소리만 들렸을 때의 일이다.

 

 만약 얼굴을 보게 된다면…….

 

 

 "역시 안 만나는 게 나을 것 같다."

 

 

 모란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이매를 응시했다.

 

 

 "그래도 좀 좋으신 분 같았는데."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서 판단해서는 안 되느니라. 자, 들어가자. 간단히 요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모란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서 이매는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

 

 

 

 

 중앙궁 호위는 굉장한 자신감을 안겨주었지만, 그만큼 심심했다.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하고 있지 않은, 그런 느낌이랄까.

 

 루하는 벌써 지쳐버렸다.

 

 하기야 원래 호위가 이런 것이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하루 반나절이 지나도록 인형처럼 궁궐 앞에 세워놓기만 한다니.

 

 무료하게 서 있던 루하는 멀리서 다가오는 동료 호위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교대 근무래.”

 

 

 루하의 얼굴이 급속도로 밝아졌다. 그 말인 즉.

 

 

 “나 이제 근무 끝?”

 

 

 “그래. 수고했다. 가봐라.”

 

 

 루하는 신이 나서 호위청 숙소로 달려가 짐을 내려놓고, 동궁 쪽으로 단번에 향했다.

 

 어제는 만날 수 없다 했지만. 사람이 그리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동궁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오시면 안 된다고 했잖습니까! 일 안 하십니까?”

 

 

 “일은 다 끝내고 왔으니, 한 번만 얼굴을…….”

 

 

 모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참, 이상하십니다. 노랫소리를 듣고 좋으셨다면서 왜 굳이 얼굴을 보시려 하십니까? 그냥 노래로 만족하시면 안 되는 겁니까?”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분의 얼굴은 그만큼 고울 것 아니냐.”

 

 

 루하의 말에 모란은 폭발했다.

 

 

 “무사님 같은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마마께서 괴로워하시는 겁니다!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볼 가치가 없는 것 같군요. 그만 돌아가 주십시오!”

 

 

 자신이 뭘 잘못 했는지 깨닫지 못한 루하가 저항했지만, 모란이 빽 소리쳤다.

 

 

 “얼른 가시라고요!”

 

 

 눈앞에서 육중한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루하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이봐! 잠깐만. 이 문 좀 열어봐!”

 

 

 그러나 문 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모란아. 밖이 소란스러운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이매가 물었다.

 

 모란은 애써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별일 없었습니다. 그보다 무슨 책을 읽고 계시는 겁니까?”

 

 

 “‘꽃신’ 작가님의 최신작. 새로 나왔다기에 얼른 구해왔지.”

 

 

 “저 없이 혼자서요?”

 

 

 놀란 모란이 묻자, 이매가 쿡쿡 웃음을 흘렸다.

 

 

 “얼굴을 가리면 나 혼자서도 바깥엔 나갈 수 있단다.”

 

 

 모란이 심드렁하게 이매의 옆에 앉았다.

 

 모란을 바라보는 이매의 눈빛이 변했다.

 

 

 “왜.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놀란 모란이 손사래를 저었다.

 

 

 “네? 없어요. 그런 거.”

 

 

 “없긴. 날 속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성정이 맑고 착하여 남의 마음을 잘 알아내는 이매를 모란은 참 좋아했다.

 

 

 “공주마마께서는 너무 착하십니다.”

 

 

 모란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매가 모란의 머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

 

 이매는 언젠가 어마마마께 들었던 것 같은 노랫소리를 작게 흥얼거렸다.

 

 모란은 한동안 훌쩍거리다가 곧 잠에 들었다.

 

 이매는 그런 모란에게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고선 동궁의 작은 정원으로 나왔다.

 

 햇살은 맑고 따뜻했지만, 이매의 마음만큼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이매는 정원 가운데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작게만 보일 이 동궁은, 이매에게만큼은 집이자 세상이었다.

 

 이매는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율이 이매의 입술을 따라 흘러나왔다.

 

 노래를 부를 때, 이매는 가장 아름다웠다.

 

 정원에 흐드러지게 펴 있는 수많은 꽃들도 이매의 아름다움을 따라가지는 못하였다.

 

 이매는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다.

 

 자신의 허한 마음이 만족감으로 가득 찰 때까지.

 

 

 

 

 ****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쪼그려 앉아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루하는 별안간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문을 두드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루하는 잠자코 손을 내렸다.

 

 그랬다가 저 여린 목소리가 도망 갈까봐. 대신에 문에다 귀를 대고 얌전히 듣기로 결정했다.

 

 루하는 있는 힘껏 문에 밀착해 귀를 호강시켜주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달콤한 목소리는 잔잔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루하는 슬그머니 미소를 띠었다.

 

 모란은 오해했다.

 

 루하에게 얼굴 따위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한 번만 더 그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내가 말하면 도망가겠지?

 

 루하는 작게 속삭였다.

 

 상대는 절대 들을 수 없는 크기로.

 

 

 “조금만 더 들려줘요.”

 

 

 당신을 듣고 싶어.

 

 

 

 

 ****

 

 

 

 

 “이상해.”

 

 

 가슴이 간질거린다.

 

 난 분명 혼자 부르고 있는데 꼭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느낌.

 

 이매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공주마마.”

 

 

 모란이 이매를 나직이 불렀다. 이매가 고개를 돌려 모란을 응시했다.

 

 모란이 눈을 비비며 일어섰다.

 

 

 “절 깨우시지 그러셨어요.”

 

 

 모란이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너무 곤히 자길 래.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매의 말에 모란이 빙긋이 미소 지었다. 남 생각하시는 마음은 일품이시네.

 

 

 “그러셨나요? 그럼, 마마. 전 잠시 용무로 인해 나갔다 오겠습니다.”

 

 

 모란이 공손히 인사 하며 문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쉬잇!”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에 모란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또 그 호위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지.

 

 

 “당장 안 떠나요?”

 

 

 아뿔싸, 크게 말해버렸다.

 

 문 안쪽에서 이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란아? 뭐라고 했느냐?”

 

 

 “아, 아닙니다! 마마.”

 

 

 모란은 입모양으로 루하에게 조용히 따라오라고 말했다.

 

 루하는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컸지만, 잠자코 모란을 따랐다.

 

 

 

 

 ****

 

 

 

 

 “앞에서 뭐하는 짓입니까!”

 

 

 “뭐하는 짓이긴, 조용히 노래 듣고 있었지 않느냐.”

 

 

 루하의 느긋한 말투에 모란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가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발 좀 가주십시오.”

 

 

 루하가 미소 지었다.

 

 

 “싫은데.”

 

 

 루하의 번듯한 얼굴을 빤히 응시하던 모란이 외쳤다.

 

 

 “대체 왜! 뭐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마마를 그렇게 괴롭히고 싶으세요?”

 

 

 “내가 여기서 듣는 게 그 분을 괴롭히는 건가?”

 

 

 루하의 물음에 모란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연하죠! 마마께서는 밖을 싫어하세요. 특히 무사님 같은 사람들을 말이에요!”

 

 

 모란의 말에 충격 받았는지, 루하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멍하니 서 있던 루하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을 게.”

 

 

 루하의 말에 모란이 반색을 하며 좋아했다.

 

 

 “단, 노랫소리는 듣게 해줘. 매일 조용히 와서 안 보이는 곳에서 듣고 갈 테니까, 그것만큼은 양해해줘라.”

 

 

 루하의 말에 모란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를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꼭 지키셔야 해요.”

 

 

 “당연하지. 난 한 번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무사 아닌가.”

 

 

 모란이 살짝 웃어보였다. 음,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공주마마께 더 이상의 접근은 불가피하다.

 

 

 “가보겠습니다.”

 

 

 모란이 자리를 피한 뒤, 루하는 다시금 동궁 앞으로 돌아왔다.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쩌지, 나. 앞으로도 계속 여기 올 것만 같은데.

고슴도치 16-09-16 23:44
 
글이 귀엽고 재밌어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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