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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
작가 :
작품등록일 : 201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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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피리, 노래를 시작하다.
작성일 : 16-09-26     조회 : 408     추천 : 0     분량 : 5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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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노래

 내 노래를 들으러 온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지?

 내 노래가 좋은 거지? 내가 부른 노래가, 내 목소리가 좋은 거지?

 그래서 다들 내 노래를 들으러 온 거지?

 내 노래…

 내 목소리….

 들으러 왔어.

 

 그런데,

 그런데.

 

 내 노래… 내 목소리가…

 싫다고 했잖아…, 더 이상 듣기 싫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제와 날 찾아온다고 해서!

 내가 부를 줄 알아!!!!!!

 내가 부를 줄 아냐고!

 

 

 ….아냐,

 

 부르라, 부르라, 불러 달라 애원하면 내 불러주지.

 나의 원망과 나의 절망을 가득 담아!

 내 목이 찝어 져라

 노래를 불러 줄 거야.

 

 부르라, 부르라, 불러 달라 부탁 한다면 내 불러주지.

 나의 원념을 가득 담아 내 목울대를 울려!

 내 목소리를 듣는 이들의

 고막을 찢어 놓을 노래를 부를 거야!!!!!

 

 

 

 

 

 

 “굿 순서는 걱정 말아라. 대충 느낌 살려 때려 맞추면 되니까. 어차피 굿이라는게 넋을 달래는 것이니 그 마음만 진심으로 담아서 하면 돼. 대신에 전에 종이에 적어 줬던 안땅있제. 그건 정성 들여 꼭 하고. 조상님께 엉터리 굿이라도 한다고 알려야 예지. 알았제?”

 

 달자에게 무복을 입히며 말년이 말한다.

 시간은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5시를 달리고 있다. 달자는 정말 자신이 굿을 해야 한다는 위화감 아래 잠도 제대로 못잔 상태여서인지 말년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듯 하다.

 

 “걱정되면 할머니가 하던가.”

 

 “씨알도 안맥 힐 소리 마라. 왜 내가 하노. 니가 해야 한다. 이 굿은.”

 

 달자의 부루퉁한 목소리에도 말년의 태도는 굳건하다. 이제껏 살면서 달자가 앵앵거리며 부탁하면 왠만하면 못이기는 척 들어주던 할머니였는데 이번에는 어림도 없나 보다.

 어째서 일까?

 달자는 궁금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다.

 

 “그럼 나는 왜 해야 하는데? 끼도 없고 내림굿도 받지 않았잖아. 무녀도 아닌 내가 굿을 한다는 게 말이돼?”

 

 “말이 안될껀 뭐 있냐. 요즘에는 연극하는 사람들도 무당 연기하고, 티비 탤런트들도 잘만 하드라. 내 드라마 보다가 진짜 무당보다 더 무당같은 배우도 봤다니께.”

 

 아―, 더 이상 화낼 기력도 안 난다.

 요리조리 빠져 나가는 말 솜씨가 여간 아닌 할머니다.

 반백년 넘게 무당하며 살아 온 말솜씨가 여간 아니시다.

 

 말년의 등 뒤에 있는 거울에 달자의 모습이 비춰진다.

 소복 같은 흰 색 치마저고리.

 

 저고리에는 짙은 다홍색 고름이 달려있고 언제나 양 갈래로 땋았던 머리카락은 하나로 묶어 꼬아 틀어 올렸다. 말년이 무복을 입은 모습을 볼 적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본인이 입고 있는 걸 보니 자기 자신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말년의 어깨너머로 거울에 비친 모습을 어색한듯 바라보고 있자니, 다 됐다는 말년의 목소리가 들려와 달자는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등짝으로 바로 매서운 손바닥이 날라 왔다. 그리고 아픔과 함께 칠칠치 못하다, 치마가 구겨진다는 잔소리도 덤으로 얻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잔소리 하나는 기똥차다.

 

 “아무렴 어때. 어차피 무당도 짝퉁 인데 그럴싸해 보이기만 하면 되잖아. 옷이야 무슨 상관이야. 어쨌든 내가 용해보이는 무당으로 보이면 되는 거잖아. 연기는 자신 있어.”

 

 “자랑이다, 자랑. 그래도 말이여 아까도 말했지만 정성을 다해 굿을 하는 겨. 알았지. 굿을 할 땐 딴 맘 품으면 안 된다는 거 알제?”

 

 거듭되는 말년의 주의에 달자는 알았다며 마지못해 대답한다.

 

 “그보다 오늘은 발목에 찬 거 풀어서 이 할미에게 맡겨.”

 

 “왜? 싫어. 풀면 허전해. 이제는 목욕할 때 빼고는 안 푼단 말이야.”

 

 어릴 적 달자가 신기도 없이 남들 보다 귀신을 더욱 끌어당기는 체질이라는 걸 알고, 말년은 서둘러 귀신 쫒기에 효험이 좋다는 복숭아나무와 잣나무를 구해 진주알 같이 둥글게 깎아서 그 알들을 섞어 끼어 염주와 같이 만들어 발찌를 해주었다.

 

 그리고 부적을 한 장 써서 복숭아나무로 만든 도장을 찍어주고, 그 부적을 태워 그 재를 알의 사이사이에 작은 구멍을 내어 끼어 넣었다. 그리하면 귀신에게 몹쓸 짓 당하며 휘둘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향내 나는 발찌를 처음 채워 줄때는 어지간히 싫어하더니 지금은 닳고 맨들맨들 해질 정도로 항상 지몸의 일부마냥 차고 다니는 것이다. 몸에 달고 다니던 물건인지라 정이 든 듯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아니 굿이 끝날 때까지라도 풀고 있어야 한다. 그리해야 한다고 말년은 오구에게 부탁받았다.

 

 ‘영조님이 그리 말씀 하셨으니 들어야지. 암, 그려야지.’

 

 나쁜 것이 들러 붙을까 걱정되긴 하지만 말년은 오구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는 오구신이니깐.

 

 

 지난여름.

 달자가 친구의 실종얘기를 들고 집으로 울먹이며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것도 좋지 않은 기운과 함께―

 

 좋지 않은 기운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맞닥뜨리지 않는 이상, 제아무리 용한 무당이라 할지라도 사람에게 묻어 온 기운을 타고 제대로 파악하기란 힘든 것이다.

 

 거기에 달자에게 묻어온 기운은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사념이 뒤엉킨 기운이었다.

 

 원통, 비애, 애련함의 덩어리.

 우매함을 가득 담은 불안과 질타의 시선.

 

 그 기운을 느끼자 달자의 친구를 위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무언가를 한다 해도 그것은 더 이상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 그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망자를 위한 시간의 흐름을 기다릴 뿐.

 이승에 남은 산자의 후회를 기다릴 뿐.

 

 그러나 산자가 후회는커녕, 망자의 대한 두려움에 과오를 범한다고 한다. 그야 말로 인간 세상에 대한 아쉬움과 한탄만이 나올 뿐이다.

 이제는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이다.

 

 그래야 산자, 망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것이 요 몇 달간 말년이 달자의 눈을 피해 오구를 만나가며 내린 결심이다.

 

 ***

 

  ― 영조님. 인간이란 무섭기도 하지만 애처로운 생물입니다. 미래의 있을 후회의 삶이 지독하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순간의 쾌락과 욕망 앞에 무너져 버리고 마니까요. 인내하고 인내하며 쾌락과 욕망을 찾아 본연, 인간의 모습을 지킨다 해도 마음이 인간이 아니게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저도 이렇게 나이를 먹고 보니 그것이 이래저래 딱하다고 생각됩니다.

 

 ― 말년, 인간의 삶중에 모나지 않는 삶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냥,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살아가며 기뻐하고 후회하고, 희망하고 절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모난 삶이면서 모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어우러짐, 그 일생을 즐기는 것이 인간일세. 애처롭다… 애처롭다 생각하면 그 인생사는 자 애처로운 자고, 행복하다 행복하다하며 사는 자, 행복한 인생사는 자일뿐이야.”

 

  ― 그렇겠네요. …정말 그렇겠어요.

 

 

 ***

 

 

 

 겨울의 숲이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름다움과 눈부신 세상이다가도 온갖 두려움의 잡귀가 성글어진 공포의 도가니로 바뀔 수도 있다.

 

 지금 달자의 눈앞의 보이는 숲은 그 을씨년스러움에 몸서리가 쳐질 만큼 한기가 도는 새 하얀 세상이 되어있었다. 며칠 전부터 내린 겨울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 덮어 버린 것이다. 달자는 이 두려움이 가득 찬 숲에서 이제부터 굿판을 벌여야 한다.

 

 장소는 하영이 발견된 구덩이이다.

 폴리스라인의 해제는 예전에 치워져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되었지만, 불길하다 하여 지금까지 누구도 발길을 하지 않은 장소가 되어 버렸다.

 

 굿을 위해 구덩이의 위쪽과 양쪽에 길 다란 대나무를 하나씩 꽂고 그 꼭대기에 흰 천을 묶어 각 천들을 연결시켜 늘어뜨려 놓았다.

 박씨 할아범과 몇 명의 장정들이 미리 해 논 것이리라. 하지만 박씨 할아범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여섯.

 달자와 달자의 할머니 말년. 굿을 부탁한 하영의 아버지 기천과 후처인 미옥. 그리고 피리와 아쟁을 연주할 악사 둘이다.

 

 “박씨에게 얘기는 들었지? 오늘은 다른 때와 좀 다르다고.”

 

 “듣기야 들었는데요. 정말 그렇게 할 건가요? 우리야 뭐, 돈 받고 하는 거라 상관없지만.”

 

 한복 위에 두꺼운 파카를 입은 40대 중반 정도의 악사가 피리를 든 채 답했다.

 

 “그냥 정성 드려 연주만 해주면 돼. 그 다음 일은 차차 알아서 풀릴 테니. 춥더라도 아마 한 시간 정도면 끝날 겨. 다른 때처럼 긴 굿판은 아니니.”

 

 “알 것 구먼. 그나저나 왜 이런 시간에 이런데서 한담. 좀 으스스하네.”

 

 아쟁을 들고 있는 이가 추운지 아님 무서워서인지 양 팔을 문지르며 숲을 휘익 둘러 보았다. 수십 수백번의 굿판을 본 그들에게도 새벽의 숲은 을씨년스럽기란 마찬가지리라.

 

 “거, 필요하니 여기서 지내는 거지. 그럼 부탁 하네. 내 돈은 두둑이 넣어줄 테니.”

 

 악사 둘은 그것이면 만사 좋다고 말하고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할머니 장구재비는? 다른 악사는?”

 

 “없어. 오늘은 저 둘이여.”

 

 “왜? 다른 악기는 빼더라도 장구는 있어야지. 제일 중요한 거 아니야?”

 

 “뭐, 새벽부터 징치고 괭가리 치고 하면 주민들한테 민폐자녀. 그리고 오늘은 저 두 가지로도 충분 혀.”

 

 “그건 내가 짝퉁 무당이라?”

 

 쯧, 하며 말년은 혀를 한번 차고 미리 보온병에 넣어온 대추차를 종이컵에 따라 한 잔 달자에게 건 낸다. 속에는 뜨신게 좋다며 한 컵을 다 비울 때 까지 말년은 사냥감을 노리는 매 마냥 달자를 바라보았다.

 

 말년은 옆에 덜덜 떨고 있는 -그것이 추위 때문인지 무서움 때문이지는 모르나- 기천 부부에게도 차 한 잔씩 건 내었다.

 두 잔을 더 따라 달자에게 악사들에게도 가져다주라 했다.

 말년이 내민 컵을 미옥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외면하고 있자 기천이 감사하다며 컵을 받아 한 잔을 미옥에게 건 낸다.

 

 “죄송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이 사람역시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서요.”

 

 “그럼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거 지내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수. 허지만 그냥 좋―게. 내 딸 좋은 곳에 간다…라고 생각하고 있어 주면 된 다우. 아시겠수.”

 

 서글스런 말년의 말에 미옥은 마지못해 네, 라고 대답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이 용의자로 의심받은 사건의 현장이다. 이런 곳에서 굿이라니 어느 누가 좋다고 온단 말인가.

 꿈에서라도 싫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라며 말년이 기천에게 말한다.

 

 “내가 미리 말해 두었던 것은 준비해 왔겠지요? 그것이 없으면 진행을 할 수 없답니다.”

 

 기천은 대답대신 한쪽에 놓아두었던 종이 쇼핑백을 말년에게 건 내었다. 말년은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 한 뒤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달자를 불러 흰 고깔을 머리 위에 씌어준다.

 

 흰 치마저고리와 같은 색의 고깔.

 저고리의 고름만 붉은 옷차림.

 정작 차림 그 자체는 소박하지만 설경 안에서 그 모습은 다른 그 무엇보다 강렬히 눈에 박혀온다.

 

 "그럼 시작하자!"

 

 말년이 강한 어조로 짧게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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