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의 시작을 알리는 푸너리 장단대신 피리와 아쟁의 구슬픈 연주가 시작되었다.
기이이이잉.
휘이이이이이익.
이른 새벽녘 컴컴한 숲에 두 악기의 연주가 울리자 나뭇가지에 쌓여있던 눈이 투두둑 하며 조금 떨어져 내렸다. 이제는 무당이 굿을 하며 춤을 춰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달자가 할 굿은 소박한 굿이다.
색채가 화려하지도 않고 소리가 요란 하지도 않다. 펄럭이는 부채도 없고 울려 퍼지는 방울소리도 없다. 대신 흰색의 한지를 길게 오리고 잇대어 만든 지전(紙錢)을 들고 소리하며 무당이 된 달자가 춤을 춘다.
딱, 지금 이 계절. 이 분위기와도 같은 굿.
신을 벗고 버선발을 한 달자가 양손에 지전을 들 때였다.
뒤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두 명의 인영이 보였다.
머리색과 같은 색의 옷으로 무장한 오구와 지난 번 서방아에서 검은색의 옷으로 갖춰 입은… 저승사자였다.
'어? 저승사자가 어째서….'
뜻밖의 등장한 인물들로 인해 달자의 손이 멈춰지자 말년이 이를 알고 재촉했다.
피리, 아쟁의 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소리로 구슬프게 계속 연주가 되고 있다.
달자는 오구와 저승사자의 시선을 뒤로 한 채 한 발을 눈밭 위에 내밀며 굿판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잠시 배워 두었던 한국 무용이 이렇게 쓰이다니 좀 씁쓸하단 생각을 하며 달자는 어느새 하영이 발견된 구덩이의 근처까지 다다랐다.
이제는 이 곳을 한 바퀴 돌아야 한다.
달자는 흰 버선의 뾰족한 코를 반듯이 세우며 한 발을 조심스럽고 곧게 내딛으며 목을 가다듬는다. 배의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를 끌어 모아….
“에~ 헤~ 에~~~~~”
연주에 맞춰 길고 힘 있는 소리를 내며 또 한 발을 내딛었다.
반대쪽의 흰 버선의 코가 지면에 닿기도 전,
풉-.
조용한 굿판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참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새어나오는 것이 달자의 귀에 들려왔다. 피리도 금방 본래의 소리로 되돌아 왔지만 중간에 잠시 어긋난 듯한 소리도 났었다.
조금 전까지 춥기만 했던 달자의 몸에 어느새 열이 달았다.
그 이윤 즉, 달자는 춤이라면 자신 있는데, 자신이 음치인 것을 알기에 소리에는 영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래 소리가 본인에게도 괴로울 정도이니 남이 들으면 말 다한 것이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한 발 한발 내딛으며 구덩이를 돌면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힐긋 바라보았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덮고 있는 말년의 모습이 보이고 그 옆에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한 기천과 미옥의 모습도 보였다.
'그럼 오구 씨는…?'
몇 걸음을 더 나아가자 오구와 저승사자의 모습이 보였다.
배를 부여잡고 쓰러질 듯 주저앉아 입을 막고 있는 오구와 입술을 살짝 깨물고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저승사자의 모습이 보였다.
창피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달리고 있는 달자에게 말년이 계속하라는 듯 손짓을 해 보인다. 달자는 하는 수 없다며 체념하고 우선 비손(두 손을 비비며 신에게 비는 일)을 하며 안땅(조상께 굿하는 것을 알림)을 했다.
솔직히 달자로서는 굿의 순서도 모르고 무가(巫歌)도 어찌 부르는지 몰라 지금은 어릴 적 굿을 본 기억과 어설프게 주워들은 단어들을 나열해 가며 굿의 한 복판에서 놀고 있을 뿐인 것이다.
'내 모습을 보고, 조상님도 배꼽 빠지게 웃고 계시는 것 아냐?'
보지도 못한 조상님에 대한 창피함을 뿌리치고 달자는 무가를 엉터리로 불러대며 굿을 진행해 나갔다.
사실 씻김굿은 조상님에게 굿을 한다 알리는 안땅을 마치면, 혼을 불러들이는 혼맞이와 불러들인 혼을 즐겁게 해주는 처 올리기를 한 뒤 원한과 한을 풀어주어야 하는 영혼 달래기를 해야 한다.
그 뒤 맑은 물로 영혼을 씻겨 편안히 저승세계로 가기 위한 이슬 털기라는 것을 한다. 그리고 이승에서 맺힌 원한을 풀어주는, 굿의 중요한 넋풀이를 하는 것인데 달자는 말년의 말대로 이래저래 생략해 가며 생각나는 것만 하다보니 금세 이슬 털기까지 오게 되었다.
차가운 눈에 젖고 흙이 묻은 달자의 흰 버선발이 가지런히 구덩이 앞에 섰다. 발과 함께 달자의 모든 동작도 멈춰졌다. 살며시 눈을 뜨고 다음 준비를 부탁했다.
“영돈을 준비해 주세요.” (*영돈 - 망자의 모습을 한 무구)
어찌된 것인지 말하는 달자의 태도가 좀 전과는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떠나간 친구를 위해 지금이 자신에게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말년이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달자에게 다가온다.
손에는 자그마한 크기의 돗자리와 기천이 굿을 시작하기 전에 건 내 주었던 쇼핑백이 들려있다.
달자와 말년은 짧게 무언가의 대화를 주고받은 뒤 말년은 가지고 온 돗자리를 펴고, 달자는 두 손에 들고 있던 지전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옆에 쇼핑백을 주워들며 말한다.
“영돈이란 망자의 육신을 대신하는 도구를 말합니다.”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모를 낭랑한 목소리가 조용한 숲에 울려 퍼졌다.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달자에게 향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는 악사들의 연주도 멈춰있다. 오구도 좀 전까지의 웃음을 어느새 지워버리고 굿을 바라보았다.
달자가 쇼핑백 안에 들어있는 물건 중 하나를 꺼내들자 옅은 풀빛을 띤 얇은 티셔츠 하나가 손에 딸려 나왔다. 그것을 본 순간 달자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 봄.
친구들과 다같이 쇼핑을 나갔다가 하영이 구입한 티셔츠이다. 아껴 입는 다며 몇 번 입지도 못한 봄날의 새싹과도 같은 색이다.
굿의 다음을 진행해야 하는데 목울대가 징징 통증을 알려오듯 아파온다. 달자는 꾹꾹 마른입의 침이라도 삼켜보려 목에 힘을 줘본다. 그리고 짧고 길게 찬 공기를 들이 마신 뒤,
“이곳에서 죽은 망자의 한과 이승에서의 여한을 씻어 주려 합니다.”
달자는 말년이 펴 놓은 작은 돗자리에 손에 쥐고 있던 티셔츠를 조심스레 올려놓고 돗자리를 돌돌 말아 세웠다. 말년의 도움을 받아 옷이 싸여진 돗자리를 일곱 매듭으로 묶고 말년은 달자를 남겨 두고 자리를 물러났다.
순간 무언가 더 순서가 남은 듯 했으나, 기억이 나지 않아 자신의 생각대로 하기로 맘을 먹었다. 옆에는 물이 담긴 작은 그릇 세 개와 빗자루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빗자루에 각각의 물을 적셔 영돈을 씻어주면 되지만 달자는 영돈이 하영이라 생각되는지 차마 빗자루를 쓸 수가 없어 겨울의 새벽공기에도 시린 손을 첫 번째 그릇에 담갔다.
첫 번째의 그릇의 물은 향물이다.
맨손가락에 물이 닿자 짜릿한 통증이 손끝에 전해져왔다. 손끝이 아려옴에 살짝 입안의 혀를 깨물고 달자는 조금 더 손을 담가 향물을 담아 올려 영돈에 묻힌다.
위부터 아래까지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마치 어린아이를 씻기듯.
그 뒤로 두 번째 그릇의 쑥물과 세 번째 그릇의 맑은 물도 첫 번째와 같이 손에 담아 영돈에 묻혀 씻어 주었다.
'하영아, 정말 이승에 많은 아픔이 남아있다면 다 잊고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래….'
빨갛게 변해버린 두 손이 옆에 놓인 하얀 지전을 잡아 올렸다.
아쟁의 애잔한 현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지며 망자의 허망한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바람소리 같은 피리가 곧이어 연주를 시작해 두 소리가 겨울공기 안에서 어울 어 졌다.
발을 모으고 선 달자가 지전을 든 두 팔을 가지런히 그러모아 서서히 머리 위로 올렸다. 세 자가 넘는 긴 한지 다발로 만들어진 지전이 길게 늘어져 달자의 얼굴을 가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종이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그런데 그 소리마저도 서글프게만 느껴지는 것은 영에 대한 애잔한 마음 때문이리라…
달자의 시선이 지전을 따라 올라간다.
짙은 코발트블루 빛 새벽하늘에 가느다랗게 잘려 한데 모아진 지전이 대비되며 보인다. 거기에 굵은 눈발이 내려 살짝 지전위에 앉았다 녹는다. 멈춰 있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시선을 내림과 동시에 하얀 치맛자락 가르며 뾰족한 버선코가 들어났다. 이제부터 달빛 아래에서 나비의 모습과도 같다는 지전춤이 시작되는 것이다.
힘차게 두 팔을 양옆으로 벌려 지전을 위로 쳐 올렸다. 그 모습은 나비라기보다 마치 날개 짓하는 학처럼 보인다. 두 발 역시 거칠지 않고 무겁지도 않으며 경망스럽지도 않은 가볍고 우아한 발짓이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달자의 머리위로 지전이 앞뒤로 천천히 교차되는 가 싶더니 점점 속도를 가 한다.
달자의 몸이 서서히 회전을 시작한다.
치마가 바람을 먹어 부풀어 오르고 지전도 함께 힘을 받아 점점 형체를 크게 한다. 그것은 마치 봉오리가 벌어져 피어올라 만개를 해 나가는 흰 국화와도 같아 보였다.
피리, 아쟁의 소리, 흩날리는 눈과 어우러지는 그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광경이다.
“무당은 아니지만 꾀 하는 군. 말년이 가르친 건가?”
오구가 달자의 춤사위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년에게 말을 건넨다.
“부끄럽습니다. 영조님. 어릴 적부터 저것이 춤에는 흥이 나는지 꾀 저를 따라하곤 했답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꾀 소질도 있고 하여 우리 춤을 배우게 했지요.”
말년은 망자의 넋을 달래는 손녀의 서글픔과 한을 담은 춤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답했다. 어느새 저리 커서 저런 춤을 추는 것인지, 하지만 그것이 남들에게는 아름다워 보이는 춤일지언정 말년에게는 손녀가 가엾어 보일 뿐이다.
“말년, 그대가 가엽다 생각하면 아이는 가여운 인생을 사는 수밖에 없어. 자네가 저 아이를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여긴다면 그것이 저 아이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야.”
“…영조님.”
“내가 보기에 저 아이는 행복해 보이는 걸.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절을 보내는 10대 소녀의 모습이야. 뭐, 이번일로 아픔을 겪긴 했지만.”
오구의 말에 말년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간다.
달자가 태어나 자신의 호적에 올려 키운 지 벌써 햇수로 18년이다. 부정한 출생이라 탄생에 축복도 받지 못하고 자라 온 아이에게 가엾음을 숨기고 억척스럽게 키어왔는데, 영조님에게 아이가 행복해 보인다고 들으니 마음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던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듯 했다.
행복하다―
말년의 입가에 저저로 웃음이 지어진다. 그때였다.
“영혼아, 영혼아~~~~~~~!”
투두둑.
갑자 시작된 달자의 노래에 나뭇가지에 눈이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끼리리릭―
나무에서 잠들어 있던 새들이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 위해서인지 떼 지어 날아올랐다. 조금 전까지 미소로 만연했던 말년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 옆의 오구는 배를 쥐어 잡고 입을 틀어막았다.
“마, 말년 이왕이면 노래도 좀 가르치지 그랬어. 저건 너무 아니잖아.”
“죄송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영조님”
말년은 창피함에 이마를 쥐었다.
정말이지 자신의 핏줄이라지만 저리 노래를 못할꼬.
쇠를 긁어 대는 소리와 견주어도 지지 않을 정도이다.
“영혼아, 영혼아~~~~~~~~~~!”
달자가 넋풀이를 하려나 보다.
가사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피리 소리에 맞춰 노래를 할 심산인 것이다.
노래가 시작 되도 춤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속도는 떨어져 그 춤사위가 팔랑 팔랑 날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나비의 몸짓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