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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
작가 :
작품등록일 : 201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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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피리 소리 처량하기 그지없고(2)
작성일 : 16-09-30     조회 : 368     추천 : 0     분량 : 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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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다! 이것은 공포다!

 

 기천의 사지가 후덜덜 떨려왔다. 그 옆의 있던 미옥이 주저앉은 채 품위고 교양이고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으로 뒤로 도망가기 위해 눈밭에 헛발 짓을 하고 있다. 엉덩이와 손발에 눈과 섞인 흙이 진흙이 되어 묻어나는 모습이 꼴사납다.

 

 달자의 노기 띤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다. 차가운 얼굴에서 입만 움직인다.

 

 “저 살쾡이 년이 집을 비운 사이 네 놈이 네 딸을 계단에서 밀어 죽였다! 충격에 의해 숨을 헐떡이면서도 한없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너를 부르는 그 가여운 아이를 네 놈은 매몰차게 외면하지 않았더냐! 외면하고 외면하는 너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를 너는 듣기 싫다며 화를 냈지! 그리고 네 놈은 그 아이의 목을 베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박에 그 가느다란 목을 베지 않았더냐! 그것을 내 모를 줄 알고!!!!”

 

 미옥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기천을 바라 보았다. 정말 그런 것이냐며 미옥이 눈으로 물어왔다. 기천은 아니라며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새 차게 저었다. 하지만 미옥은 믿지 않는 눈치이다.

 

 “오호라. 이렇게 까지 얘기를 해도 아니라고 거짓을 고한다. 정말 썩어빠질 놈이구나. 그 어린것을 들쳐 매고 아무도 없는 새벽녘에 이곳으로 와서 땅에 파묻은 놈이 누구더냐! 바로 네 놈이지 않더냐! 제 핏줄을 차디찬 땅속에 얇은 옷 한 장밖에 입지 않은 어린 것을 묻은 건 네놈이지 않느냐! 이래도 부정을 할 것이냐!!!!”

 

 기천의 눈알이 충격으로 인해 튀어 나올 듯 하다. 이 일은 자신밖에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영의 친구가 알 수 있겠는가.

 누군가에게 진실을 말하기도 전에 이미 하영은 죽은 몸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믿고 싶지는 않지만, 믿기 어려운 딱 한 가지 생각이 기천의 뇌리를 스쳤다.

 

 역시 저것은 사람이 아니다. 저것은 귀신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예의 바르던 소녀의 말투가 달라진 것부터, 자신만 알고 있어야 할 얘기를 알고 있는 것도, 그렇게 생각 한다면 그 모든 것이 납득 할 수 있다.

 

 “…하지만. 귀, 귀신이라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기천은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달자를, 아니 달자의 모습을 한 그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너는 도대체 뭐야!”

 

 말하는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온다.

 

 “뭐냐고? 내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네 놈을 찢어 죽이려왔다고!”

 

 "찢, 찢어 쭉여? 하...하지만ㅡ 헉ㅡ"

 

 독살스럽게 말하는 달자의 얼굴 위로 어린 아이의 얼굴 형체가 반투명한 상태로 모습을 나타냈다. 그 형체는 점점 뚜렷한 윤곽을 띠며 한 걸음 한 걸음 달자의 몸에서 걸어 나오는 듯 했다.

 

 안개 같기도 한 형체가 빠져나와 모습을 다 드러낸 순간, 달자가 뒤로 튕기듯 떨어져 나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말년과 두 악사가 재빠르게 뛰어 나와 그녀를 받쳤다.

 

 기천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무 말도 없이 눈만 부릅뜨고 있을 뿐이다. 온 신경과 긴장이 관자놀이에 모여져 있는 듯 하다. 퍼런 혈관이 울퉁불퉁하게 튀어 나와 꿈틀거린다.

 

 "하...하...하악ㅡ"

 

 엉덩이를 질질 끌며 뒷걸음질 치려 하던 미옥은 눈앞에 펼쳐진 공포에 숨쉬기조차 힘이 드는지 거칠게 헐떡이고 있다.

 그녀 인생에서 이리 무서운 일은 처음 이리라.

 

 “나를 보니 놀라운가 보군.”

 

 반투명한 형체는 더욱 윤곽이 뚜렷해져 갔고 그것은 놀랍게도 너무나도 작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오구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산호색 바지, 남색 조끼의 한복 차림으로 흰 얼굴의 아이는 연신 미소를 띠고 있다. 귀여움을 듬뿍 받고 자란 작은 도령과도 같은 외모이다. 그 때문일까 달자의 몸 안에 들어가 호통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말했던 인물과 동일 인물 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기 쓰러져 있는 아이보다 내가 더 조그마하고 어리니깐 더 기가차고 버릇없는 놈이라 생각되지? 그렇겠지 그래서 화도 나고 내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거나 볼기짝이라도 때리고 싶겠지. 나 때문에 여기 있는 사람들이 네가 친딸을 죽였다는 걸 알게 되어버렸으니!”

 

 아이는 후후훗 하면 작게 웃었다.

 조용한 숲 속에 아이의 웃음만이 울린다. 아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미소를 띠며 작을 발로 콩콩 눈밭을 뛰어다닌다. 하지만 눈밭에 발자국은 찍히지 않았다. 기천은 그 모습을 놓칠세라 열심히 두려움의 시선으로 아이의 모습을 쫒고 있다.

 

 "하하하! 하하하! 아, 맞다!"

 

 신나게 눈밭을 뛰어 놀던 아이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기천의 곁으로 다가왔다. 주저앉아 있는 기천의 바로 앞까지.

 

 "뭐, 뭐야!"

 

 도망칠 기력도 없는 듯 아니 기천은 몸은 에너지라는 것이 다 소진해 버린 듯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머리 속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의 문자열이 요동치고 있다.

 

 “그런데 그거 알아?”

 

 처음으로 아이 같은 말투라고 기천은 생각했다.

 그는 대답 대신 얼굴을 들어 올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 귀염성이 있는 얼굴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기천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아이가 또다시 후후훗 거리며 웃는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그거 알까 몰라."

 

 아이의 상체가 기울어지면서 얼굴이 바짝 기천에게 다가왔다.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의 거리지만 그런 것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바로 눈앞에 있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기천을 바라보았지만 그 눈동자는 칠흑 같을 뿐 그 무엇도 담겨있지 않다.

 

 깊은 먹과 같은 눈.

 

 해가 떠오르려고 하는 것일까 아이의 등 뒤로 붉고 푸른빛이 맞물려 있다.

 

 “모르는 구나? 하긴 모르겠지. 당신은 예전의 친절하고 상냥했던 아빠가 아니니깐. 젊은 엄마의 엉덩이만 졸랑졸랑 쫓아다니는 아빠가 되었으니깐. 그러니깐 모를 거야.”

 

 아이는 허리를 꼿꼿이 핀 뒤 고개를 들어 미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의 시선을 느끼자 등줄기에 전류와 같은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뭐, 뭐야! 왜 날 보는 거야! 난 아무 잘못 없다고… 그 아이가 죽은 게 내 탓은 아니잖아. 난, 그 아이 예뻐했단 말야. 친…그래, 친 자식마냥 예뻐했어! 그렇죠? 여보! 그렇죠!”

 

 미옥은 당황하며, 그리고 매달리듯 기천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여보, 뭐라 말 좀 해봐요! 내가 그 아이를 예뻐했다고! 우, 우리딸 하영이를 예뻐했다고요!"

 

  콧대 높고 당당하던 그녀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는 진흙투성이의 몰골이었다. 그런 미옥을 기천은 외면하는 것인지 아니면 눈앞의 아이의 모습이 놀라운 것인지 위로 향해진 시선은 흐트러짐 없이 고정되어있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도 상상도 해보지 못한 반투명한 사람의 형체를 한 그 무엇에 눈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눈앞에 있던 아이의 모습이 어느새 사라져 놀란 기천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이는 쪼그리고 앉아 있는 형세로 공중에 둥둥 떠서 미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가 미옥을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여준다.

 

 마치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놀다 신기한 곤충이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이다. 아이가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거리며 말한다.

 

 “그럼 보고 싶겠네.”

 

 “뭐, 뭐가?”

 

 “뭐라니? 당신 딸 말이야. 그렇게 예뻐했다면 말없이 죽어간,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딸이 얼마나 보고 싶을 것 아냐.”

 

 악이 없어 보이는 아이의 질문과도 같다.

 

 “그, 그럼… 보고 싶지. 볼… 볼 수 있다면 말이야. 볼 수 있다면.”

 

 미옥이 최대한 상냥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머리를 매 만진다. 그것은 그녀의 버릇이다. 플루트 교습소에서 학부형과 학생에게 보여주는 상냥함의 제스처 중 하나. 그것을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의 앞에서 지금하고 있는 것이다.

 

 양손이 눈과 흙으로 범벅이 되어 공들여 세팅한 머리카락을 매만져 꼴이 말이 아니다.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아이는 ‘으샤’ 소리와 함께 일어섰다. 미옥의 대답이 맘에 들었던지 기분 좋은 표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조금 전 보다 더 상쾌한 표정이다.

 

 “그럼 만나게 해줄게. 내가 당신들의 딸을.”

 

 아이의 말에 기천과 미옥은 어안이 벙벙하다. 도대체 죽은 딸을 어떻게 다시 만나게 해준 단 말인가.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가능하지 않은 일도 아니다. 지금 바로 자기들 눈앞에 믿기 어려운 아이의 혼령 하나가 신나는 듯 뛰고 있으니―

 

 “그런데 말이야. 얼굴은 보여 줄 수가 없어. 그냥 대화만 하는 거야. 그래도 괜찮지?”

 

 이제와 싫다고 말 할 수도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아이의 말을 들어야, 아니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며 미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기쁘다고 말하며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숲은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로 인해 안개로 뒤덮여 있다. 그 모습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다.

 

 소복을 입고 쓰러져 있는 소녀, 소녀를 돌보는 할머니, 그 옆에 요즘에는 보기 힘든 피리와 아쟁을 든 중년 남자 둘, 거기에 무표정한 얼굴로 지금의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얼굴 하얀 남자, 모든 것이 공포다. 그리고 자신은 그 삼류 공포영화의 삼류 배우와 같다.

 

 현실 같지 않은 주변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기천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것이 이 남자 때문이다. 이 남자를 만나서 이런 꼴을 당한 것이란 생각이 들자 미옥은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한껏 기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천은 그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한 곳만 응시하며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을 뿐이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자 미옥은 숨이 막혀오는 격렬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까지 반투명한 모습을 띠고 있던 아이의 몸이 마치 푸딩과도 같이 물렁물렁하면서도 탄력이 있는 듯 탱글탱글한 모양으로 흔들림을 보였다. 그리곤 갑자기 잘게 잘게 부셔지더니 망울망울 동그란 형태가 되듯 모여들어 이제는 비눗방울과 같은 모습을 띠는 것이다.

 

 크고 작고 더 작고….

 하나, 둘, 열개를 넘어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비눗방울이다.

 어린아이들의 영화에서나 나올듯한 광경이었다.

 

 그 다음은…? 하고 기대가 되는 건 왜일까?

 마치 안개 속에 벌어지는 마술 같은 광경 때문에?

 그 환상 같은 모습에 대한 기대감?

 하지만 정말 이 다음에 그 환상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광경이 벌어지는 것인가?

 

 대답은 NO 이다.

 

 여기서의 환상은 공포를 배경으로 한 환상이 되는 것이다.

 꿈도 아닌 현실의 공포 환상.

 

 아이는 다시 역 재생되듯 비눗방울에서 푸딩이 되었다가 원래의 반투명한 형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감겨있던 눈이 소리 없이 떠진다.

 

 저 작은 입은 뭐라 하면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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