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째 휴식을 즐기고 있는 달자는 오늘도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쯤 잠에서 깨어 지금은 말년과 함께 느긋이 방안에 앉아 고구마를 먹고 있다. 노랗게 익은 알찬 호박 고구마가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그보다 조 말년 여사. 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뭐?”
말년이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청춘 연애 드라마 재방송에서 눈도 떼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자 달자는 무릎걸음으로 기어서 말년의 앞으로 다가와 화면을 가리고 앉는다.
“뭐여! 왜 티비를 가려 이년아! 지금 한창 중요한 장면인디.”
말년이 성을 내도 이에 기죽을 달자도 아니다. 달자는 입안에 있던 고구마를 서둘러 목에 넘기고 물 한 컵 들이켠 뒤 말을 한다.
“나 말야. 신기도 없는데 어떻게 혼령을 볼 수 있었던 거야? 거기에 저승사자까지 보고?”
“…”
“할머니도 알잖아. 나 영감도 없고, 여하튼 그런 유령이나 귀신 이런 것에 영 둔하다는 거. 그런데 어떻게 그 날 그 아이를 볼 수 있었을 까? 그게 궁금해. 나, 사실은 몸속에 잠재되어 있는 신기가 있는 게 아닐까?”
말하는 달자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하지만 답하는 말년은 그렇지 않다.
“지럴을 혀라. 있기는 뭐있어. 암― 것도 없다. 그것은 무당 경력 반세기를 넘는 내가 보장하마. 너는 그냥 귀신에 몸 뺏기기 쉬운 체질이라고 몇 번을 말혀. 신기가 있는 것이랑 그것은 다른 것이지 암―. 그 날도 봐봐 홀라당 아이의 영에게 몸 뺏겨 쇼한 거. 캬―! 정말 대단 하더라 우리 손녀 양반. 째려보고 쫑알쫑알, 이년 저년 찾으며 욕지거리 하는 게.”
달자는 자신이 몸을 빼앗겼다는 것을 혼령의 남아있던 감정으로는 알 수는 있었지만 막상 자신이 빙의가 되어 한 행동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말년의 얘기를 들어도 자신이 그런 말과 행동을 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말이여. 이건 내 생각인 디… 그 날은 영조님도 계시고 하셔서 아마도 너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혼령이 보인 것 같아.”
“그러니깐 오구 씨가 사람이 아니고 신이니깐? 그래서 그 영향을 받아서?”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달자는 잠시 생각한 후 납득이 간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언가 맞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런데 왜 저승사자는 나에게만 보인 걸까? 할머니도 몰랐다며? 나는 굿하기 전부터 보였단 말이야.”
말년은 그것은 자신도 모른다며 달자를 발로 밀쳐내고 엉덩이를 끌어당겨 티비에 가까이 다가갔다. 등 뒤에서 환자를 이렇게 대해도 되냐며 달자가 발악을 한다. 말년은 눈앞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영상을 밀어내며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을 끄집어내었다.
굿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쉬면서 달자가 자신도 볼 수 없었던 저승사자의 모습을 보았다는 얘기를 했을 때는 심장이 방망이질 하듯 뛰었었다.
달자가 산 사람은 볼 수 없는 저승사자를 봤다는 것―.
그것은 말년이 지금까지 한쪽으로는 믿고 있었지만 또 다른 마음으로는 깊게 부정하고 싶었던 일이 사실이라는 것이라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이란 말인가…'
반은 사람의 피지만, 반은 저승사자의 피가 흐르고 있는 아이.
달자는 저승사자의 딸로 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아껴온 외손녀의 출생에 관한 생각을 하는 말년은 괴로운 마음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남들은 믿지 않을, 오히려 미친 소리라며 손가락질 할 이야기지만 말년에게는 무시 못 할 슬픈 사연의 이야기.
남편과 일찍 사별한 말년에게는 귀여운 외동딸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이두이.
두이는 자신을 닮아 어린 나이에 무당 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나 몸이 병약해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았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집 안에서만 무당 일을 해오던 두이가 20살이 되던 해 점점 몸이 쇠약해 지는 가 싶더니 갑자기 밥상 앞에서 구역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수상한 마음 보다는 몸이 약한 딸아이에게 무슨 탈이라도 났는지 걱정을 하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안가 딸아이의 몸의 변화가 병이 아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는 증조였다는 것을 알고 말았다. 그것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큰 충격이었다. 밖에도 나가지도 않던 딸아이가 어찌 아이를 밴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라 말년은 두이를 붙잡고 다그쳐 묻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묻기를 며칠, 침묵으로 일관하던 두이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더욱 까무러칠 말이었다.
"내 아이는 사자님의 아이에요. 사자님과 나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날 아이에요."
딸아이의 말에 재정신이 아니라며 소리치고 젊은 것이 정신을 놓았냐며 진짜 애 아비가 누구냐며 화를 냈지만 두이는 그냥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이것은 예사 일이 아니라며 조심스레 걱정하고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만삭이 다된 두이를 보고 더 이상 화를 내고 한탄을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말년은 곧 태어날 아이 아버지 얘기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찌 할지도 못하고 단지 몇 날 며칠을 울며 눈앞이 캄캄해 지는 날들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는 단 하나,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잃게 되는 가여운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자는 것 그것뿐이었다.
벌써 십 수 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 그때를 기억하며 솟아오르는 여러 감정들을 억눌러 가며 말년은 가엾은 손녀딸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딱하고 안쓰럽기만 한 달자는―,
“이런 정신 나간 년!”
“앗! 아파! 갑자기 베개는 왜 던져!”
조금 전까지 옛 감상에 젖어 있던 말년은 달자를 보기 위해 뒤를 바라 본 순간 화가나 옆에 뒹굴고 있던 베개를 집어 들어 힘차게 내던졌다.
“이년아―, 그 양재기가 얼마나 큰 건데 그 안에 들어있던 고구마를 다 먹어! 이런 미련 곰팅이 같은 년을 봤나! 내가 너 땜에 미친다 미쳐!”
말년은 아침 일찍 일어나 다음날 까지 먹을 군것질 거리로 쪄 놓은 고구마가 자신이 잠시 딴 생각을 한 그 찰나에 두 세 개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사실에 황당하고 화가 났다.
어릴 적부터 부모 없이 커온 아이가 가엾어 먹을 것에는 궁하게 기르지도 않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손녀는 꼬챙이 같은 몸을 하고 식탐이 많은 것이다.
먹고 또 먹고, 그러고 나서도 무언가 먹을 것이 없을 까 해서 냉장고를 뒤지고.
“내가 먹은 것이 그리 아까워? 그리고 따지고 보면 얼마 먹지도 않았어.”
“어럽쇼. 몇 개가 뭐여 몇 개가! 양재기 가득 담겨 있던 고구마가 바닥만 남기고 사라졌는데! 이것아 미련해도 정도가 있지! 그 많은 것을 위에 꾸역꾸역 쑤셔 넣고…, 그러고 또 누 울려고? 움직여 움직여서 소화를 시켜!”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년의 구박에 달자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바닥에 굴러다니는 구겨진 빨간 코트를 주어입고 목도리를 칭칭 감으며 집을 나섰다.
만사가 귀찮은데 밖으로 쫓겨나 투덜투덜 거리며 언덕을 내려오며 서점이라도 갈까 하다 달자는 오구가 돌아왔나 궁금해 서방아에 들려 보기로 했다.
아침까지 쉬지 않고 내리던 눈으로 인해 거리와 지붕들은 하얀 눈으로 소복이 덮여 있다. 먼발치에서 서방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솟대들의 눈에 들어왔다.
들쑥날쑥 키가 다르고 모양도 다른 솟대들은 푸른 하늘과 겹쳐져 분위기 있는 한 폭의 사진과도 같았다.
시선을 내려 보자 오랜만에 서방아의 입간판이 나와 있는 것이 보여 조금은 들뜬 마음에 조심스레 뛰어가 나무문을 열었다.
“오구 씨…?”
“어서오세요! 서방아 입니다!”
'에? 뭐야? 이 소린?'
자신의 허리 부근에서 들려오는 익숙지 않은 소리에 놀란 달자는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엇? 너, 너는…”
“뭐야, 칫! 손님이 아니잖아.”
“에? 에에에에에! 너는 그때 그 귀, 귀신?”
달자의 눈앞에는 키 작은 남자 아이가 귀를 후비며 서있었다.
아이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흰 라운드 티셔츠에 남색의 면바지를 입고 있지만 분명히 얼굴은 며칠 전 굿에서 본 그 귀신 아이이다. 한복을 입고 있어야할…, 아니지 그 전에 이 곳이 아닌, 지금이면 저승에 있어야 할 아이가 왜 서방아에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먼지떨이를 들고 만연의 웃음을 띠우고 손님을 맞이하며?
“뭐....뭐야?”
달자는 상황파악이 안된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허나 아이는 문을 연 것이 달자라고 안 순간 얼굴에 웃음을 지우며 먼지떨이로 책꽂이를 톡톡 두들긴다.
달자는 있건 없건 상관 없다는 듯이.
“오, 오구 씨 이게 어떻게 된 거에요? 분명 저승에 저 귀신을 데리다 준 거 아니었어요? 분명히 함지박에 발자국도 찍혔는데.”
달자가 와서 떠들어대도 오구는 마감 날이 가까워 왔는지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달자는 쉬지 않고 오구에게 질문 공세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가 달자의 빨간 코트자락을 힘껏 끌어당겨 서방아의 구석으로 끌고 갔다.
“거참, 자네 엄청 시끄럽군 그래. 오구님은 지금 바쁘다고. 자네와 놀아줄 시간이 없어. 그러니 나가서 친구라도 만나서 놀아.”
“자, 자네라니. 내가 너보다 큰데 어째서 호칭이 그래. 누나라고 불러야지.”
달자는 아이의 이상한 말투에는 신경도 쓰지않고 우선 자네라고 불린 것에 불만을 말하자 아이는 기가 차다는 듯 손을 허리에 얹고 혀를 찬다.
“누나? 인생을 고작 18년 밖에 살지 않은 아이가 500년을 넘게 살아온 나에게 누나라고 불리고 싶은 거야? 버릇이 없어 버릇이. 그리고 자꾸 귀신, 귀신 그러는데 그거 아주 기분 나쁘다고― 나에게도 엄연히 ‘도화'라는 이름이 있다고.”
“오, 오백년? 그럼 도대체 언제 적이야? 조… 조선시대 인가? 에? 오옷!”
500년이란 세월의 흐름을 가늠하고 있자 순간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달자는 얼른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그것보다!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저승에 간 거 아니야?”
아이는 무언가 기분 좋은 상상이라도 하는 듯 베시시 웃더니 낮은 책꽂이에 콩 하고 가볍게 뛰어 올라 앉았다. 낮다고 해도 책꽂이의 높이는 성인의 가슴팍까지의 높이로 역시 귀신의 몸짓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책장 끝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아이는 달자에게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얘기에 의하면 이러하다.
굿이 끝나고 오구의 손을 잡은 도화는 청회색 빛에 둘러싸여 어디론가 이동을 하는 듯 했다고 한다. 이동이라고 해도 움직인다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한다.
빛을 따라 가기를 잠시, 어느새 오구와 도화는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 문은 검은 색으로 꼭대기가 구름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등 뒤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강이 펼쳐져 있고 주변은 온통 붉은색의 상사화와 노랑색의 국화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도화와 오구가 잠시 그곳을 구경하고 있자 그 문과 맞먹을 정도의 문지기가 나왔고 오구는 품에서 검은 가죽의 장부와 작은 구슬을 하나를 건네 주웠다고 한다.
― 들어가 보겠소? 온길 힘들었으니 쉬었다 가시오.
― 쉬기는… 다시 돌아가 봐야지. 그거면 됐지?
― 이거면, 좋소. 그럼 조심히 돌아가시오.
문지기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오구는 도화의 손을 잡고 온 것과 같은 방법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장소는 복숭아 숲이 아닌 솟대가 세워져 있는 서방아의 뒤편이었다는 것이다.
“뭐야 그게.”
“나야 모르지. 그리고 어제까지 오구님이 여기저기 데려가 주며 옷도 먹을 것도 사줬어. 이 옷도 오구님이 사준 거야. 아 맞다! 아주 폭신폭신한 이불하고 베개도 사주셨어. 엄청 부드러워.”
아이는 폭신한 이불이 생각나는 것인지 아주 황홀하다는 듯한 눈빛이다.
“머, 먹을 것? 분명 저기 책상에 앉아 있는 저 사람이? 너에게 먹을 것을 사줬다고? 거기에 옷과 이불도? …에이, 거짓말이지?”
“젊은 것이 속고만 살아왔나. 왜 그리 인생이 부정적이야.”
자신에게는 만두 값도 아까워 그 보복으로 엄청난 일을 시킨 사람이 옷과 먹을 것을 사주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짠돌이에 짠짠돌이인 오구 씨가?
아이는 처음 입어 보는 옷들이 신기하기만 한지 자신의 손을 달자의 코트에 쓱쓱 문지르고 티와 바지를 매만져 본다. 달자는 어이없다는 듯 한 쪽 눈썹을 올리며 아이에게 묻는다.
“어이― 뭐하는 짓인가? 꼬마 어르신.”
“응? 뭐가?”
“어르신의 옷을 만지기 전에 왜 내 옷에 손을 닦느냐고요?”
아이는 부끄럽다는 듯 팔을 앞뒤로 흔들며 입을 오물거린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넋 놓고 보고 있자 달자의 오른팔에 아이의 가느다란 팔이 강력한 충격을 주며 부딪쳐 왔다.
“왜긴, 내 옷이 더러워지니깐 네 옷에 닦은 거지. 그것도 몰라?!”
방긋 웃는 상큼한 얼굴―
'얼굴만 귀여우면 뭐야. 아주 그냥 속은 시커먼 악마네 악마!'
달자는 아픈 팔을 열이 나도록 쓱쓱 문지르며 저것은 작은 악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때였다. 겨울바람에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 나무문이 부셔질 듯 세차게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