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 씨!”
소리를 지르며 들어온 것은 그 날 본 저승사자이다. 하지만 오늘은 혼자가 아닌 듯 뒤이어 장신의 남자가 따라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난방이 돌고 있는 서방아 이었지만 왠지 냉기로 가득 차 오르는 듯 서늘한 공기가 흘러 넘쳤다.
문이 떨어져 나가라는 듯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저승사자가 들어왔지만 오구는 역시나 꿈쩍도 안한다. 그런 반응 없는 오구의 모습에 화가 난 것인지 저승사자가 서방아 구석으로 이동하더니 컴퓨터의 전원 코드를 뽑아버렸다.
“엇? ……으아아아악! 뭐하는 짓이야! 이 빌어먹을 검은콩 같은 놈아!”
오구의 하얀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보지 않았더라도 등장인물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검은콩은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생각하면서도 달자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입술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험악한 분위기의 두 사람이 서로 지지 않을 새라 노려보고 있기를 잠시. 뒤 따라 들어온 검은 옷의 장신의 남자가 중재에 나섰다. 턱밑에 난 수염때문일까? 아님 너무나도 단단해 보이는 체구때문일까? 어딘지 모르게 산적같은 느낌이 강했다.
“하기. 진정해 흥분하지 말고, 그리고 오구님도 진정하시죠.”
생김새와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진정? 진정하게 생겼어? 내일이 마감인데! 아직 저장도 시키지 못했단 말이야! 그런데 전원을 뽑아 버리면 어떡해! 원고 빵꾸나면 어떡하라고! 빌어먹을!”
머리를 감싸 쥐는 오구는 쓰러질 듯 박차고 일어난 의자에 다시 주저앉았다. 오구의 괴로움에도 하기라 불린 저승사자는 눈 하나 깜박 안하며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명부첩을 책상 위에 던졌다. 꾀나 거칠은 행동임에도 오구는 흘긋 그것을 바라볼 뿐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엇인 줄 아시겠죠. 바로 당신이 며칠 전 저승 문지기에게 건네주고 간 명부첩입니다. 바로 저 아이와 함께 왔어야 할 명부첩이죠.”
하기가 구석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에 도화가 겁을 먹은 것인지 달자의 몸 뒤로 숨어 고개만 빼곡히 내민다. 하기는 한 숨을 내쉬고 다시 오구에게 시선을 돌린다.
“어찌해서 저 아이의 혼이 아닌 작은 새의 혼을 이것과 함께 저승에 보내신 겁니까?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일들에 차질이 생기는지 알고 계십니까?”
“차질 생길 일이 뭐있어? 그리고 내가 내 입으로 저 아이를 저승에 데려가겠다고 말한 적 있나? 없지. 그냥 아이를 좋은 곳에 데려간다고 했을 뿐이고. 그리고 난 분명 문지기에게 이리 물었어, 그거면 됐지? 그리고 문지기는 이리 답했지. 이거면 됐소. 라고!”
“이제와 무슨 말씀이세요. 변명은 그만 두시지요. 물론 문지기가 명부첩과 혼령을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잘못이 있지만, 여러모로 보나 당신의 잘못이 크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분명 저 아이를 저승까지 데려다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데려다 줬지. 데리고 가서 저승 문 구경도 시켜주고, 앗! 그리고 그날 때 마침 내가 키우던 새가 죽은 것이 가여워 영을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이왕 간 김에 직접 전해 줬지.”
오구의 얼굴은 새의 죽음이 안타깝다는 표정이었지만, 목소리는 지극히 담담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점심 메뉴라도 말하는 것만 같다. 저승사자의 입장이라면 누구나 어처구니없는 변명 같이 들릴 것이다. 하지만 오구의 말투가 전혀 변명 같지 않으니 그것이 더 기가 찰 노릇.
“당, 당신은 지금 무슨 말씀을, …하.”
오구에게 더 이상 얘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했던지 지금까지 반듯한 모습만 보여주었던 하기가 근처 책 더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신이 그렇게 나오신다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지만 이 이상 혼령을 가지고 장난치시는 것은 봐 드릴 수 없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아시겠죠.”
허탈한 듯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하기는 말했다.
“장난친 것은 아니지…, 뭐 그렇지만 그리 부탁한다면 들어주지.”
“부탁이라니,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이지…”
오구는 끝끝내 신세지는 것이 싫다는 듯 자신이 오히려 부탁을 들어주는 입장처럼 말을 한다. 그 모습이 지겹다는 듯이 하기는 시선을 던졌다.
“그 보다 다 죽어가는 새를 구해와 영을 바꿔치기할 만큼의 이유가 저 아이에게 있나요? 이전에 신세를 졌다거나?”
하기의 질문에 오구의 미간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오구는 입 꼬리를 올리며 기가 차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신세? 내가? 무슨 그런 소리. 그냥 단지 이전에 만났던 인연도 있고, 귀엽잖아. 우리 서점 영업에도 아주 좋을 것 같고, …그것보다 그 새의 영은 잘 지내나?”
“예, 잘 지냅니다. 좀 병약하긴 하지만….”
하기는 오구의 질문에 답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장신의 저승사자가 엷은 미소를 띠우며 허리 숙여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그 새는 지금 하기가 키우고 있습니다. 그것도 애완동물 금지인 사신정에서 몰래."
“지운!”
하기는 옆에 있는 장신의 남자를 지운이라 부르며 질책하는 눈빛인지 부끄러운 것인지 붉어진 얼굴로 노려본다. 하지만 지운이란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능글맞게 웃을 뿐이다.
“오―, 나의 쪽쪽이를 네가 키우고 있다고!”
“쪽쪽이? 짹짹이 입니다.”
오구는 짹짹이가 뭐냐면 작명센스가 나쁘다고 투덜거리지만 그 표정이 나쁘지 만은 않다. 하기역시 쪽쪽이란 이름은 기분 나쁘다고 중얼거렸다.
“에? 에에에에?!”
갑자기 서방아 구석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집필실에 있던 셋의 시선이 일제히 소동이 벌어진 곳으로 향하자 그곳에서 빼빼마른 몸에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달자가 앞으로 고꾸라져 있는 것이다. 갈색 빛을 띠는 고서들 위에 빨간색 코트를 입고 엎어져 있는 격이라 그 모습이 더욱 눈에 띤다.
“앗! 내가 아침부터 정리해 놓은 건데, 뭐하는 짓이야!”
도화가 머리를 움켜쥐며 원망스럽다는 듯 달자를 쏘아본다.
“정말 칠칠치 못하게 뭐하는 짓이야. 하여간 일도 못할 팔로 오랜만에 나타나더니 도와주지 못할망정 어지럽히기만 하고.”
오구는 혀를 쯧쯧 차면 일으켜 줄 생각도 하지 않고 집필실 의자에 앉은 채 바라만 볼 뿐이다. 뭐, 어차피 그런 친절은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 달자는 한쪽 팔로 간신히 혼자서 일어나 집필실 쪽으로 달려갔다.
“오, 오구 씨! 여기 있던 새 죽은 거예요? 저 꼬마 귀신 대신 그 새가 저승에 간 거예요?”
“너는 이제 와서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오구가 눈살을 찌푸리며 달자를 바라본다. 엉성해 보이는 달자의 모습을 보는 하기의 표정도 오구와 같다.
“참, 둔감한 아이로 군요.”
“둔감하지, 둔감하다 못해 가끔은 국어실력이 부족하다싶을 정도로 이해력도 부족하고.”
“무, 무슨 그런. 저 언어영역 점수 높아요! 다만, 두 분만 아실 이야기로 얘길 하니 저는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뿐이라고요. 그보다 정말 여기 있던 새가 대신 간 건가요?”
오구는 대답대신 책상 위에 팔을 걸쳐 턱을 괴고 고개를 까닥해 보인다. 그리고 또다시 눈살을 찌푸리고 달자의 깁스한 팔을 바라본다.
“얼마나 해야 한데?”
“아, 이거요? 상황 봐가면서 몇 주 정도. 별거 아니에요. 이정도, 웃훗훗.”
달자는 오구가 걱정해주는 모습에 기쁜 것인지 넘어지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면서 웃는다. 하지만 오구는 그런 달자를 어이없이 바라보면 말한다.
“너도 말이야. 바보라는 자각이 있다면 남들보다 세 배는 더 생각을 한 뒤 행동해야지. 그 남자가 도화에게 끌려간다고 무턱대고 잡아대는 행동을 할 게 뭐야. 그런 인간 돕겠다고 팔이나 그 꼴 나고… 미련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
그럼 그렇지. 오구라는 작자가 자신을 걱정해 줄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 한 순간 고마움을 느낀 가슴을 두들겨 패 주고 싶은 심정이다.
'흥―!'
토라진 마음을 표현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자니 등 뒤에서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 유리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화가 흰 자기 잔이 들린 쟁반을 들고 간당간당한 걸음으로 다가와 오구의 책상위에 올려 놓았다. 노란 빛깔을 띤 차가 세잔 올려져 있었다.
“국화차예요. 추우신데 차가운 음료수 보다 따뜻한 차가 좋을 실 것 같아서 준비해 봤어요.”
도화는 부끄러운 듯 우선 손님으로 온 하기와 지운에게 두 손으로 찻잔을 건넨 뒤 한 잔은 오구의 앞에 놓았다.
“에? 내건?”
달자의 말에 아이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직접 갖다 마시라는 것인지 차를 가지고 온 방향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런게 어디 있어! 같이 가져다주면 좋잖아.”
“난 작아서 쟁반에 세잔 드는 것도 힘들단 말이야.”
도화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어깨를 살짝 들었다 내렸다. 역시 저것은 얼굴만 귀여운 작은 악마라고 달자는 생각했다.
“역시 도화는 센스가 있네. 이렇게 따뜻한 차까지 준비해 주고 만년 주스밖에 모르던 누구하고는 완전 딴판이라니깐.”
도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구는 흐뭇하게 다른 한 손에 들린 찻잔을 들어 그윽하게 퍼지는 국화 향을 맡아본다. 옆에 앉아 있던 하기와 지운 역시 기분 좋게 향과 차를 즐긴다.
“허구헛날 주스만 찾던 분이 누군데요!”
들은 채도 안한다.
'너무 하네 이 사람들! 아니지 사람이 아니지! 역시 산자는 산자끼리 놀아야 한다니깐! 흥! 니 뿡이올시다!'
“그보다 내 원고 어떡할 거야? 다시 쓸려면 얼마나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줄 알아! 검은 콩 빨리 책임져.”
검은 콩이라 불린 하기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업자득일 뿐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말해온다. 즐거웠던 시간은 끝나고 다시 험악한 분위기가 흐르려 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지운이 오구 앞에 고서 한권을 내민다.
오구를 제외하고 모두 그 책에 집중이 쏠렸다.
책의 제목은 ‘필률공명’
“…?”
“날아간 소설은 잊으시고 현대판 피리노래로 다시 한 번 써보시는 건 어떠세요?”
지운이 살짝 웨이브 진 머리를 뒤로 넘기며 오구에게 미소 지어 보인다.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요. 작가 미낭 말입니다. 이거 오구님 이시죠?”
오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달자를 슬쩍 바라본 뒤 책을 들어 옆으로 치운다. 그런 오구의 모습에 지운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응?”
달자는 무언가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오구와 숨긴 책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자 오구는 저승사자 둘에게 화를 내며 나가라고 한다.
“가뜩이나 서점도 어두워 죽겠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무죽죽한 네들이 죽치고 앉아있으니 더 어둡잖아! 일 끝났으며 냉큼 올라가 버려!”
“하하하! 그럼 오구 씨,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 제안 한번 잘 생각해 보시고요. 하기 이만 가자.”
지운의 말에 하기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일어서려 하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오구를 바라보았다.
“혹시 이야기꾼이라고 아십니까?”
“이야기꾼? 뭐야 그게?”
오구는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이다.
“다른 솟대님이 계신 곳에 이야기꾼이란 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미낭이라는 작가가 과거에 쓴 이야기를 바탕으로...살인을 저지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금 윗분과 피해를 입은 솟대님들의 화가 장난 아니라고 하더군요. 워낙 귀찮은 것을 싫어하시는 분이니.”
“살인?”
하기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얘기야?”
오구의 질문에 하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야기꾼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흘리며 다닌다고.
-옛날에 미낭이라는 글쟁이가 있었답니다. 그들이 쓴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죠.
오구는 하기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이 상한 것인지 아니면 찝찝한 것인지 모를 기분에 휩싸였지만 직접 만나보지 않는 이상 이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이내 ‘내 쪽쪽이를 잘 부탁 한다’라고 말하며 저승사자들을 쫓아내려 했다. 하지만 바로 짹짹이라고 정정하며 하기와 지운은 서방아를 떠났다.
둘의 존재가 사라진 뒤 달자는 무언가 알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오구에게 달라 들었다.
“설, 설마 필률공명을 쓴 저자가 오구,”
탁! 달자의 엉덩이에 가느다란 막대의 충격이 전해져왔다. 따끔한 충격에 뒤를 돌아보니 작은 악마 도화가 먼지떨이를 들고 서서 뒤를 가리킨다. 좀 전에 달자가 넘어진 책장 부근이다. 하필 이런 중요한 때에 방해라며 뭐라 쏘아붙이려고 했지만 이어지는 도화의 뒷말에 그럴 수가 없었다.
“손님을 맞이할 종업원의 자세가 이렇게 느긋하면 쓰나. 어서 네가 너질러 놓은 책들 정리해. 저래서야 손님이 오시더라도 놀라 도망가시지 않겠어!”
오구 역시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휘휘 젓는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물 밀 듯이 밀려오는 달자였지만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쓰러트린 책 더미로 다가가 익숙한 솜씨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팔도 아프고 억울하다며 궁시렁거리고 있자, 등 뒤에서 정성을 드려 제대로 하라고 도화가 구박해 온다. 이에 울컥하고 달자가 도화를 보면 말한다.
“오구 씨도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뭐라고 그러는 거야?!”
도화에게는 그것이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인 것인지 혀를 쯧쯧 차며 답해준다.
“요즘 시대에 맞춰 우리의 서열에 대해 말해준다면 이런 거야. 오구님이 서방아의 주인이니깐 사장님. 그리고 나는 서점을 관리하는 매니저. 너는 종업원!”
뭔가 그것도 많이, 옳지 않은 서열인 것 같지만 이 이상 저 꼬마 악마와 말을 섞으면 입만 아플 것도 같아 달자는 포기하고 다시 책을 정리하기로 했다. 뒤에서 옳지, 옳지 라고 말하는 도화의 목소리가 짜증스럽게 들려온다. 500년을 넘게 살아왔어도 귀신으로 살아온 것일 테니 인생 자체를 따지고 보면 자신이 인생 선배라고 소심하게 속으로 불만을 말해보는 달자였다.
반 이상의 책들이 정리가 되어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는 달자의 뒤통수로 오랜만에 종이 뭉치가 날아들었다. 충격은 없지만 여간 기분 나쁜 것이 아니다.
“오구 씨! 종이 좀 던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요!”
오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만 원짜리 지폐가 들린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오구가 심부름을 시키려는 것이다. 달자는 바쁘다고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돈을 받아 들었다.
“포도주스. S사 100% 짜리로.”
아까는 따뜻한 국화차가 센스있다 어쩐다 했던 주제에 주스 심부름이라니.
달자는 이런 추운 겨울에도 주스를 사러 학교 앞 큰길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으스스 떨려 왔다. 그냥 갈수도 없어 코트를 집어 들어 입자 뭔가 밑에서 무거운 느낌이 들어와 고개를 아래로 내려 보았다.
보이는 것은 귀여운 작은 아이가 눈을 초롱초롱 거리며 달자의 코트자락을 살며시 잡고 있는 것이다.
“달자 누나~ 도화는 호빵이 먹고 싶어요. 이곳에 와서 어제 처음으로 호빵이라는 걸 먹어봤는데, 그 맛이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도화는 또 한번 그 호빵을 먹어 보고 싶어요. 누나~”
큥~♥
날아오는 큐티 화살을 심장에 맞은 듯 달자는 그 귀여운 모습에 넋을 잃고 ‘꼭 사다 줄게’ 라는 다짐까지 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달자가 정신을 차린 후에는 어느새 서방아 문 밖으로 내 몰아져 차가운 겨울바람을 느끼며 골목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추운 바람과 함께 달자는 한 가지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은 오늘부터 솟대의 영조인 큰 악마 오구와 500년을 귀신으로 살아온 열 살도 안 된 작은 악마 도화와 함께 살아가야 한 다는 것을.
이제는 꽃다운 낭랑 19세가 된 달자지만 그 인생은 겨울 폭풍과도 같은 처절한 나날이 펼쳐지리라는 예감에 심하게 몸이 떨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