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조달자 입니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꽃다운 17살로 무당과 저승사자가 붙어먹어 생겨났다는 소문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 입니다. 지금은 반세기를 무당으로 살아온 외할머니와 함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답니다.
할머니는 제가 태어나자마자 홀로 저를 보살피며 키워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드릴 일이죠. 그런데 그런 고마운 할머니께서 어느 날 불쑥 저에게 사람도 아닌 솟대의 영조라는 신의 수발을 들라는 것입니다.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이라니요?
영조라니요?
아무리 저희 할머니께서 무당이라시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혹여 신이 있다고 칩시다.
하고 싶은 것 많고 보고 싶은 것 많은 청소년기의 소녀에게는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지요.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한다, 모시겠다, 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신의 수발이라고 해서 거대한 기와집이나 궁궐에서 일을 하냐? 그건 또 아니더라고요.
제가 모실 영조님은 70년도에 아주 저렴하게 지어진 네모난 콘크리트 건물에 기거를 하고 계신답니다. 그 건물에 주거 공간, 작업실, 작은 헌책방을 겸한 고서점까지 운영하면서요.
좁고 낡고 쾌쾌한 그런 건물이죠. 하지만 그러한 건물과 어울리지 않게 영조님은 정말이지 감탄사가 연이어 나올 정도로 훌륭한 외모로 저희 동네에서는 인기스타 저리가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이 아주 거시기 하더라고요.
신이라고 다 좋은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 듯이요. 영조님과 함께 5분만 있다보면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실 겁니다.
저런 말 싸가지 하고는―!
이런 말이 나오도록 하는 사람이 바로 제가 모시는 솟대의 신, 영조님 이십니다. 그런 영조님에게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일이 주어졌답니다.
그것은 저승사자를 대신하여 죽은 혼령을 저승까지 데려다 주는 일! 하지만 싸가지 인 성격은 버리지 못하는 지라, 언제나 혼령하나 저승까지 데려주기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답니다.
그 중, 저와 영조님이 처음 만나, 처음 하게 된 일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합니다.
앗, 한 가지 더 추가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신기도 없는 제가 가짜 무당 짓을 한다는 거죠.
어디 그럼,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피리야 피리야
늴리리 늴리리 울어라
너의 아버지 나무하러 갔다가
범한테 물려 죽었단다…
-함흥지방의 전래동요, [피리노래]의 한 구절
어째서, 어째서
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거야? 이제 웃어주지 않는 거야?
나는 계속 노래 부르고 있는데…어째서, 어째서
왜? 내 목소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거야?
내가…
이렇게 노래 부르고 있는데―
제1화. 달자와 솟대, 그리고 오구
저 조달자와 오구 씨의 만남은 최악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학교 앞 문방구 50원짜리 뽑기 운조차 없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운이 없었을 줄이야, 생각도 못해 보았습니다.
“뭐야, 불량품인거야?”
오구씨가 첫 대면날 제게 한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이지 본새 없는 말투라고 생각 합니다.
“지들이 쓰기 싫다고 불량품을 보낸 거야?”
어쩜 저 외모에 저런 싸가지 없는 말들이 술술 나오는 걸까요?
제가 말투만을 가지고 무턱대고 그를 싸가지 없다고 평가한다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한 불량품은 바로 저를 가리키는 말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그런 말을 듣고 서도 이렇게 참고 있는 것은 그의 외모 때문입니다. 제가 굴욕을 참을 정도로, 그 정도로 그의 외모는 수려하거든요.
그리고 저 좀... 남자 외모에 약하답니다.
흠― 흠―, 오구씨의 외모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제가 조금 설명을 해보자면 그를 처음 본 순간, 미미하게 뛰고 있던 제 가슴의 고동은 온 몸 가득 방망이질을 했다고나 할까요.
에? 이게 무슨 설명이냐고요? 역시나 사견일 뿐이라고요?
저런, 제 설명이 너무 부족하였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지금도 처음 오구씨를 보았을 때를 회상하니 제 심장이 조금 문제를 일으켜 횡설수설 하게
만드나 봅니다. 그럼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해 보자면.
봄이 지나가고 여름을 맞이할 무렵의 토요일 오후 3시.
이른 여름날 오후의 햇살 아래에서 첫 대면한 그는 정말 황홀하다고 싶을 만큼 눈이 부셨습니다. 외견상으로 그는 이십대 후반쯤 되어 보였죠.
그런데도 그의 피부는 마치 투명하리 만치 맑고 깨끗해보였고 그것과 대조적으로 연약할 듯한 백옥같은 피부를 감싸주는 검은 색 옷이 더욱 그를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답니다.
마지막으로 제 가슴에 한방을 날린 건 그의 얼굴이었습니다. 조금은 나른한 듯한 눈, 오뚝하게 자리잡은 코. 촉촉히 젖어 살짝 한쪽으로 올라간 입술.
잘 정돈된 그의 작은 뽀얗고 작은 얼굴이 제 눈에는 그리 멋져 보였답니다.
또한 그 얼굴을 살짝 가리듯이 흩날리는 그의 어둡지 않은 청회색 머리카락이 한 몫 분위기를 더해 마치 그를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보이게 해주었답니다.
네, 아까부터 계속 말씀 드렸듯이 그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까마득한 먼 옛날서부터 사람들에게 모셔져온 우리나라 민속신앙인 솟대에 깃들여져 있는 영조(靈鳥)입니다.
그는 솟대의 영조(靈鳥)인 오구 씨 입니다.
“그러니깐 제 말을 듣고 계시긴 한 거예요?”
아까부터 오구는 달자의 말을 듣고 있기나 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옆에서 소리를 지르건 잔소리를 하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오구 씨! 제발 원고용지를 아무데나 버리지 말라니까요!”
“아무데나 버리지 않았잖아. 바닥에다 버렸어.”
건조한 음성으로 오구가 말한다.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방금 전에 주은 종이를 재활용 박스에 넣기도 전에 또다시 구겨진 원고용지가 바닥에 던져지는 걸 보며 달자는 크게 한 숨만 내쉴 뿐이다.
“… 여기서 또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달자가 불만을 대신해 작은 소리로 웅얼거린다.
안녕하세요. 조달자입니다.
어깨를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땋아 내리고 팔랑거리는 교복치마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꽃다운 나이 18살의 여고생 조달자입니다.
사춘기 소녀인 저 조달자와 솟대의 영조 오구 씨가 만난 날로 벌써 두 달 가량의 시간이 흘렀답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우선 저는 두 달 전부터 방과 후 오구 씨가 있는 집 겸 서점 겸 집필실인 서방아에서 급료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답니다.
이런 제가 서방아에 오자마자 하는 일은 방안 가득 널려있는, 쓰다말고 버려진 원고용지를 치우는 일입니다.
네? 어째서 방안 가득 원고용지가 널려있냐고요?
흠― 이런,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 보군요. 오구 씨의 직업은 소설가 입니다. 그것도―
괴담 소설가.
에? 어째서 솟대의 영조라면 신(神)인데 그 고단하고 돈 안 되는 직업인 소설가를 하느냐 구요?
이거 이거 당신.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군요. 세상은 신(神)이라고 해서 마냥 놀고 먹을 수 있을 만큼 녹록하지 않다고요.
이 세상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돈이지 않습니까.
자고로 이제는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는 솟대의 정령이 살아가기 위해서도 역시 돈이 필요한 시대가 바로 지금 이 시대란 말입니다.
그런데 솟대가 뭐냐고요? 저런, 당신.
아직도 솟대가 뭔지 모른 채 여기까지 읽고 계셨단 말입니까? 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솟대를 모른다고 하셔도 사실 저도 이해가 갑니다.
요즘 시대에 와서 솟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므니깐 말이죠. 그럼 여기서 제가 짧게 솟대에 대해 설명해 보자면,
솟대란 말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솟대란 옛부터 마을 어귀에 놓여져 있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그 상징으로 세운 것이 긴 나무 장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솟대는 삼한 시대의 ‘소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장대 끝에는 새의 형상으로 된 나무 조각이 놓여져 있습니다.
이 새의 조각으로는 오리, 갈매기, 까마귀, 기러기 등을 형상화 한 것이 있는데 이 새들에 따라 솟대에는 많은 의미가 제각기 있지만 통 털어
종합적으로 보자면 마을의 수호신으로 풍요와 안전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이 솟대에 많은 의지를 하고 소원을 빌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것이 잊혀지고 퇴색해 져서 지금은 많이 뽑혀
없어지기도 하고 아니면 하나의 장식물로써 밖에 여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시골길을 지나거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볼 때 우연히 본적 있지 않으세요?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은 공공시설 한쪽 구석에서 본적은 없으시고요?
긴 나무 장대 위에 고고하게 올라앉아 있는 새 한 마리의 조각.
이러한 모습의 솟대는 혼자 서있는 경우도 있고 장승과 함께 서 있기도 한답니다.
사실 오구 씨 역시 몇 백 년 전만 해도 솟대의 영조로 동네 입구에 살면서 마을에 들어오려는 악귀가 있으면 그것을 가로막고 쫒아내기도 하며
소원을 비는 이가 있으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곤 했다고 합니다.
오구 씨 말로는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 주고 했는데, 어느 샌가 그런 발걸음이 뚜~욱 끊기고 말았다 하더라고요. 그런 세월을 한탄하며
살아오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있던 솟대의 터가 어느새 마을 어귀가 아닌 네모난 박스의 집들과 상점, 아파트들로 둘러싸인 콘크리트 숲의 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구 씨는 이 마을을 떠나 볼까 라고도 생각했지만 그 동안 싸워왔던 인간들과의 정 때문에 그냥 머물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세상에 머물기 위해서는 오구 씨가 살아가야할 땅을 살 돈과 작은 콘크리트 박스 하나 지을 돈이 필요해 졌던 거죠.
거기에 살 곳만 있으면 뭐합니까. 세상에 살기로 맘먹었으면 세월에 발맞춰
패션도 챙겨야 하고 전기세며 전화세며 수도세 등 온갖 공과비의 영수증들을 해결해야 했죠. 그걸 위해서 오구 씨는 펜대를 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어라? 솟대 설명을 하다가 어느새 다시금 오구 씨 얘기로 돌아오고 말았네요. 소설 얘기가 나와서 그런지 오구 씨와 만나고 일주일이 지난 그 날의 일이 생각나네요.
사실 저와 오구 씨의 만남이 그다지 부드럽지는 않았던지라 첫 대면한 날로부터 한 주가 다 되어가도록 우리는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않은 사이였고, 평일은 방과 후에
찾아가 같이 있는 시간이라고 해봤자 고작해야 2~3시간 정도.
그리고 저 역시 나이가 나이인 지라 주말은 집에서 늘어져 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니, 그 불만으로 둘 사이의 거리는 완전 타인이나 마찬가지였었죠.
그날 역시 일요일인데다 날은 덧없이 맑아 전 오구 씨의 집 따위 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