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초여름의 햇살이 눈부신 오후.
햇살 아래에 누워 달자는 대문 앞에 세워져 있는 대나무 장대와 거기에 매달려있는 빨간, 하얀색의 천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새우 맛 과자를 음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의 평화였다.
널마루에 엎드려 과자를 먹던 달자의 머리에 곰방대의 일격이 떨어졌다.
“이년아! 왜 아직도 이러고 있는 겨! 어서 빨리 오구님께 가봐야지!”
“아! 아파! 도대체 피우던 곰방대로 머리 때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머리카락이 남아 나질 않는 다고! 그리고 매일같이 거기에 가서 아무것도 할 것 없다는데 뭐하러가”
“저년저년 말꼬라지 하고는… 쯧, 내가 어젯밤 뭐라했어.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곱게 머리 빗고 오구님께 가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이 꼬라지는 뭐여. 어여 일어나 제대로 앉지 못혀!”
7살 때부터 무당을 해왔던 탓인지 목소리 하나만큼은 우렁찬 달자의할머니 조말년 여사의 꾸짖는 소리에 달자는 마지못해 맞은 머리를 비벼대며 일어났다. 그런 달자의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던지 말년은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달자의 옷 앞섬을 투박스럽게 털어준다.
“기지배가 되가지고 벌건 대낮에 밖에서 벌러덩 드러누워 과자나 먹고 앉아 있고, 쯧―”
말년은 곰방대 물부리에 입을 데고 몽실 구름을 띄운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힐긋 달자를 바라보았다.
애미 애비 잘 못 만나 부모 정 한번 못 받고 허구헛날 무당일 하는 할미 손에 커온 손녀가 언제나 눈에 밟히는 말년이었다. 하지만 그런 안쓰러운 마음을 감춰두고 다시금 손녀를 향해 따끔한 일침을 내렸다.
“도대체가 말이여. 왜 아직도 안가고 이러고 있는 것이여!”
“아니 거기에 왜 가야 하냐고! 가서 하는 거라고는 종이 쪼가리를 박스에 주워 담는 일 밖에 없는 걸. 그리고 너덜너덜 냄새나는 책들 먼지 털고, 그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래! 그런 거 한다고 나한테 무당의 신기가 팍팍 솟아나기라도 한다는 겨!”
달자의 외가는 이제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무당의 일을해오던 집안이다.
달자의 외할머니 말년 역시 철들기 전에 신내림을 받아 무당 일을 해왔었다. 지금은 60을 넘어선 나이인지라 굿판은 자제하고 집안에서만 손님을 받고 있는 실정이지만 용하기로는 소문이 자자한 무당이다.
달자의 어머니이자 조말년 할멈의 딸 역시 잠시나만 무당의 일을 해왔었다. 과거형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달자의 어머니가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이기 때문이고 이 것이 지금 달자가 외할머니의 성을 따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말하지 않았든. 무당 주제에 신도 못 받아들이는 몸뚱이를 가진 니는 그것밖에 할게 없으니 거기 가서 영조님 모시며 일이나 도와드리라고.”
달자의 외가는 집안 대대로 여자 무당이 나오는데 그 힘이 남달리 특출하다고 하는데 어찌된 것인지 그러한 집안에서 태어난 달자의 몸은 십대에 접어든지 한 참이 지난 지금도 신내림 조차 못 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 집안에서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어찌 보면 그냥 그런 경우도 있지 않겠냐며 생각하고 넘길 수, 아니 오히려 무당이 아닌 그냥 평범한 인생을 즐길 수 있으니 잘된 일이지 않으냐며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또 그러하지도 않다.
달자는 어찌된 것인지 어중간한 체질의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른 무당들처럼 힘이 큰 신을 받아드려 제령을 할 수 있을 만큼 달자의 몸은 혼령을 받아 둘 수 있는 그릇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그 몸은 원한에 휩싸여 있는 악령이나 지박령, 구천을 떠도는 영가(靈駕)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쉽사리 몸을 빼앗기고 마는 귀신 붙는 체질인 것이다.
그래서 말년은 언제 어느 때 사악한 령에게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는 손녀가 걱정이 되어 부적을 써서 달자의 발목에 달고 다닐 수 있게 해두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불안한 마음은 가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때에 말년의 꿈에 저승에서의 명이라며 명계(冥界)의 사람이 나타나 전하기를 달자를 솟대의 영조인 오구의 밑으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말년은 꿈에서 깬 후 명계의 사자가 알려준 대로 솟대의 영조를 찾아 나섰는데 그곳은 자신이 쭉 터를 잡고 살아왔던 마을의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고서점 겸 헌 책방인 건물이었다.
즉, 오랜 세월을 동네에 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지나가듯 무심코 본 건물이었던 것이다.
작은 직사각형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단층 건물은 옆 건물들과 각각 50센티 정도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었고 그 건물은 일직 선상에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닌 서너 발자국 정도 뒤로 물러나 있는 곳.
‘서방아’
. . . . 라는 작은 나무 간판이 걸려있는 단조로운 건물.
주변은 가지각색의 나무를 깎아 만든 수 십 개의 솟대가 세워져 있는곳.
말년의 기억으로 이곳은 오래전 마을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위치를 보니 이곳이 솟대의 터라고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뜻밖에도 그곳엔 젊은 청년이 있었고 말년은 그 청년의 모습을 자신이 젊었을 적에도 그리고 그 보다 더 어릴 적에도 보았던 얼굴인 것을 기억해 냈다.
그는 이 마을을 지켜주는 영조님이다―
그날 이후 말년은 달자를 매일 같이 영조님에게 보내고 있지만 이 철없는 것이 할미 마음도 모르고 언제나 투정만 부리며 농땡이 칠 생각만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 할미가 다 너를 위해 그러는 거지 아무 이유 없이 영조님께 보내것어!
잔말 말고 어서 다녀오기 나혀!”
아우! 라며 가볍게 성을 낸 달자는 널마루에서 일어나 운동화를 구겨 신었다.
“그건 그렇고 오구 씨가 정말로 솟대의 영조가 맞긴 해? 암만 봐도 그냥 번지르르 잘생긴 총각이자나! 그런 사람이 무슨 신이라는 거야? 할머니가 착각 하는 거 아니야? 신기 다 바닥 났어?”
“이런 천벌 받을 소리! 쓸데없는 생각 말고 냉큼 가기나 혀!”
할머니의 곰방대가 날아올까 무서워 달자는 구겨 신은 운동화를 질질 끌며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냉큼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그렇게 도망 나오듯 찾아온 고서점 서방아에 도착한 달자는 오구 씨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뒤 우선 바닥에 버려진 원고용지를 주워 재활용 박스에 분류 하기 시작했다.
오구는 가게와 집필실을 오가는 달자가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장소에 어울리지도 않는 최신형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우선 종이에다 원고를 끼적인 뒤 노트북에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전자화로 입력된 종이 원고는 곧장 구겨진 채 바닥에 버려진다. 그리고 지금 오구는 느티나무로 만들어진 책상 앞에 앉아 ‘월간괴담’ 이라는 잡지의 이달분 원고를 집필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오구는 겸업으로 헌책방과 고서점의 중간정도라 할 수 있는 작은 서점 ‘서방아’도 운영하고 있는데 역시 소설 쪽이 수입이 짭짭한 것인지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집필 쪽에 주력을 하고 있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서방아‘의 손님을 놓치는 것도 아까워 그는 느티나무 책상을 ’서방아‘의 내부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아 놓았다.
달자는 오구의 집필실 청소가 끝나면 대부분 가게를 보는 일을 하는데 이런 일이 도대체 무당도 되지 못하는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날도 청소가 끝나고 할 일이 없어진 달자는 가게 안에 무자비 하게 쌓여져 있는 책 더미 사이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작은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이제는 짙은 고동색이 되어버린 미닫이문 사이로 초여름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건너편 가게에 놓여있는 화분들이 너무나 눈부시다고 느껴지는 햇살이었다.
이러한 날 멋들어지게 낮잠이라도 자주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하니 왠지 낡은 책들 사이에 있는 게 억울하단 생각이 들어 달자는 따분함을 떨칠 겸 오구와의 친분도 쌓을 겸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서방아와 집필실의 경계로 다가갔다.
그중 적당히 의자 높이만큼 쌓여져 있는 책 더미에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오구는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모니터에서 얼굴을 들고 달자를 바라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오구의 시선은 원 위치로 되돌려 졌다.
왠지 오구의 그런 태도가 불만스러웠지만 얼굴을 보고 참는다며 달자는 꾸―욱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리고 최대한 인상이 좋게 웃어 보이며,
“오구 씨는 정말 대단하시네요. 소설도 쓰시고… 그것도 지난번 오신 담당 기자님 말씀에 의하며 엄청 인기 소설가시라면 서요! 알고 봤더니 저희 반 친구 중에도 오구 씨의 책을 한권도 빼놓지 않고 보는 아이가 있었더라고요. …솟대의 정령인 오구 씨에게 이런 말 하는 것도 뭐하지만 꿈이 소설가 이셨나요?”
달자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상대에게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적당한 칭찬의 말이었다고 생각하며 작게 미소를 띄우고 오구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니. 돈.”
가늘면서도 낮은 저음을 띤 목소리가 그리 말하였다.
“에?”
“이 일. 꾀 돈이 되거든.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신비로우면 신비로울수록 인기는 올라가고 그 인기가 올라가면 인간들이 책을 찾게 되어 판매부수는 올라가고 출판사는 책을 찍고 나는 인세를 받고.”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해온다.
“아, ....그렇군요.”
솟대의 영조와의 대화가 왠지 돈 얘기로 흘러가는 것이 껄끄러워 달자는 분위기도 바꿀 겸 다른 화재를 꺼내었다.
“그보다 서방아와 집필실, 오구 씨의 주거실, 밖에서 보면 딱 콘크리트 직사각형의 네모 박스네요. 이건 뭐랄까 건축적 예술의 하나로 의미를 주신 건가요? 왜 요즘은 노출 콘크리트다 뭐다 하며 그런 인테리어 장식도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뭐 랄까 콘크리트와 낡은 나무문의 조화가…”
예술의 조화에 대해 열을 띠고 말하는 달자를 오구가 한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혀를 차며 말했다.
“싸.”
“네?”
“싸다고. 이렇게 짓는 게 비용이 절감되지. 예술은 무슨 예술, 이런 건물이 예술로 취급 받으면 누가 건축가를 하겠어. 머릿속에 생각이라는 걸 가져봐.”
아흐~ 정말 왕 싸가지.
사람이 기껏 친해질 겸 말을 해도 대꾸 하는 꼬라지 하고는.
귀신은 뭐하나 저런 놈 안 잡아가고.
“귀신이 어찌 날 잡아 갈 수 있겠어. 내가 지들을 잡아 저승에 데려다 주면 데려다 줬지.”
“―!”
마음을 간파한 듯한 오구의 말에 놀란 달자는 책 더미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입 밖으로 내지도 않은 말을 오구 씨가 어찌 안다는 거야? 정말 신이긴 신인거야?
“오…오구 씨?”
여전히 오구는 변화 없이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오구를 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부르자,
“얼굴에 씌어있어.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
“아주 그냥 내가 짜증나 죽겠다는 식으로 쫘― 악 째려보는데 그 속뜻이 무언인지 모를 수가 있겠냐고.”
“하, 하, 무슨 그런. 제가 언제 오구 씨를 째…”
“사실 오고 싶지 않으면 안와도 된다. 지랄 맞은 저승사자 놈들이 일 바쁘다고 지들 몸 사리고 싶어 염라대왕에게 고해 놀고 있는 솟대의 영조들을 부려먹고 싶을 심산으로 명부첩 하나 떡하니 건네고 무당하나 붙여 준 것 같은데. 난 그런 일 하는데 무당 쓸 일도 없고.”
건조하리만큼 변화 없는 목소리가 조용한 서방아에 울렸다.
“그건 제가 불량품이라 그런가요?!”
무당이 필요 없다는 오구의 말에 달자는 욱해서 자신의 입으로 불량품이라는 말을 꺼내며 반응하고 말았다.
그것은 신기가 없이 무당집 아이로 태어난 자신의 처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도 달자는 자신의 출생을 가지고 수군덕대는 동네 어른들의 얘기를 수없이 들어왔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했었기에 상처라고는 자기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차가운 눈빛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사물을 이해하고 헤아리게 될 나이쯤이 되서는 그 소문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생각하며 흘러 넘겼고 몇 해 전부터는 그 어른들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끌어 앉고 하루하루를 지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