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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
작가 :
작품등록일 : 201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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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손님
작성일 : 16-09-05     조회 : 392     추천 : 0     분량 : 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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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이지 그 많던 만두를 먹어 두길 잘했다고 달자는 지금 눈앞에 있는 책 더미를 바라보며 자신을 칭찬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고 무언 가를 얻으려 한다. 그건 옳지 않지.”

 

 건조하면서도 비꼬는 듯한 오구의 말에 달자는 말없이 조심히 빈주먹을 움켜쥐어 본다.

 

 서방아 안.

 

 눈앞에 보이는 책 더미는 지금까지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의 양이었다.달자가 여지껏 본 책의 산 중 최고의 양으로 노끈을 풀고 먼지를 터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족히 걸릴 듯 하다. 그 양을 보며 기겁하고 있는 달자에게 오구는 자―, 하며 오천원권 지폐 한 장을 건 내 주었다.

 

 “뭡니까 이 돈은?”

 

 “조금 있다가 책장 하나 배달 될 거야. 난 잠시 볼일이 있어 나갔다 와야 하니깐 배달 오면 그분들에게 음료수라도 대접해.”

 

 돈과 시킬 일만 내던지고 나가려는 오구의 옷자락을 달자는 잽싸면서도 애달프게 붙잡았다.

 

 “잠깐만요! 서방아를 이, 이렇게 해놓고, 어딜 나가려고요? 책장 온다면서요. 그러면 배치도 같이 해야죠! 아니 그것 보다 여기에 책장이 더 들어올 곳이 어디 있어요? 이젠 발 디딜 곳도 없어져 가는 실정인데. 아니 이미 없다고요! 그럴 만한 공간이! 아…만두 값! 그거 돌려 드릴게요. 그럼 됐죠? 그래, 그거면 좋겠네. 제가 그날 겁없이 많이 먹었죠? 그래요, 제가 먹은 만두의 값 토해낼께요. 그러니 같이해요. 혼자 못한단 말이에요.”

 

 빠른 속도로 징징거리며 매달려 말하는 달자를 오구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녀석의 입에는 최신 모터가 달려있나?

 아님, 요즘 청소년들은 순식간에 써내려가는 문자 속도 마냥 입으로도 제 생각을 그리 빨리 언어로 음성으로 표현해 나갈 수 있는 건가?

 

 오구는 달자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이런 무더운 날 천장위의 선풍기만 돌고 있는 서방아에서 책에 둘러 싸여 하루를 보내야 하다니.

 이건 악몽일 뿐이다.

 

 “어쩔 수 없다고. 나도 같이 하고 싶지.”

 

 좀 전의 차가운 표정은 어디가고 오구는 정말이지 안타깝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거짓말! 어디가 같이 하고 싶은 얼굴이야!

 얼굴 근육 하나 하나에 거짓이 담겨있는데!

 

 “그럼 같이 해요.”

 

 속마음을 숨기고 달자는 다시 한 번 매달려 본다.

 

 “그게 안 되니깐 널 부른 거잖아. 지금부터 출판사에 가 봐야해. 원고 완성 되서 직접 갖다 주기로 했거든.”

 

 “왜요? 언제나 담당 기자님이 오셨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어째서?”

 

 “글쎄. 이번에는 삽화를 넣고 싶다 잖아. 그 삽화가를 오늘 만나자는 거야. 그런데 이런 누추한 곳에서 만날 수는 없잖니.”

 

 오구는 서방아를 한 번 휘리릭 둘러 본 뒤, 자신도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나가봐야 한다며 어깨를 한번 들썩인다.

  정말이지 자신에게 전재산인 서방아가 누추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악마! 악마! 악마!

 

 속에서 끌어 나오는 악마라는 말을 꼭꼭 씹어 삼키며 아부 섞인 말들은 토해가며 다시금 매달려 본다.

 

 “오구님! 오구 신이시여. 상냥한 오구 씨! 그럼 책장이 온 뒤 배치라도 함께.”

 

 제 힘으로 들 수있는 책들은 어찌 어찌 정리해 나갈 수 있지만 책장은 다른다. 그건 할머니에게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인 제 힘으로도 감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배치는 걱정 할 것 없어. 내 책상 왼편 벽에 놓기로 했거든. 그건 그 분들이 알아서 해 주 실거야.”

 

 그거라도 처리 된 다는 게 어디냐며 벌써부터 달자의 가슴 한 구석에는 안도의 바람이 불어왔다. 정말이지 그 말을 듣자마자 큰 걱정거리를 덜어내 한결 가벼워진 머리가 된 본인이 생각해도 단순하다며 욕을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순간 달자의 단순한 머리에도 의문점이 생겨났다.

 

 “에? 그럼. 그 책장은 오구 씨가 사용하는 거잖아요. 저 많은 책들은 어디에 놓으라고요? 또 바닥에 쌓으라고요?”

 

 “뭐, 그건 알아서 하고. 대신 책 정리는 오늘까지 끝마쳐야해.”

 

 오구! 이 악마 같은 놈!!!!

 저승사자는 뭐하나 저런 놈 하나 안 잡아가고!

 아 아 아 아! 지가 솟대 신이면 다야?!!!

 젠장!!!!!

 

 서방아의 문턱을 넘는 오구의 주변은 마치 상쾌한 바람이 불 듯, 가벼운 깃 털 같은 몸짓으로 나간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달자는 이를 갈며 주먹을 들어 올렸지만 그걸 알기라도 한 듯 오구는 뒤 돌아 보면 담담히 말해온다.

 

 “아. 그 책장 말이야. 밤나무로 만들어 진거야.”

 

 “....?”

 

 밤나무가 어쨌다고?

 

 “밤나무는 말이야. 귀신들이 좋아하는 나무거든. 되도록 일몰 전에는 집에 가도록. 어떠한 성질머리 인지도 모를 녀석이 등에 철썩붙어 따라갈지 모르니깐.”

 

 에에에에에에엑!!!!!!!!!!!!

 귀신??!!!!!!!!!!!!!!!!!!!!!!!!!!!!!!

 

 햇볕이라고는 입구에서 밖에 들어오지 않는 서방아에 혼자 남겨진 달자의 귓가에 오구의 웃음소리가 드릴로 땅을 파듯 제 귓속 깊숙이 들려오는 듯 했다.

 

 

 

 

 “응응. 그렇긴 한데, 나한테도 문자 왔었어. 외할머니 댁에 갔데, 친 엄마 쪽이지. 개학 앞두기 전에 온다고 하니. …우리끼리?”

 

 달자가 서방아 한 구석에 앉아 핸드폰으로 수다를 떨기 시작한지 벌써 20분 째.

 통화의 상대는 기영이다. 하영이의 집에 같이 다녀온 뒤로 열흘의 시간이 흘러, 벌써 개학을 4일 앞두고 있다.

 

 보충이 끝난 다음날 오후.

 하영이에게 문자가 왔었다. 완쾌가 되면 같이 놀러가자는 문자에 다시금 답변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하영의 답변은 기대의 어긋난, 가족들과의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는 문자 메시지였다.

 

 덧붙여 가족 여행 후에도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 하셔서 대구에서 방학의 마지막 한 주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딸을 잃고 손녀마저 가끔씩 밖에 보실 수 없으시니 달자는 알았다며 잘 다녀오라는 문자를 보내 주었다. 하지만 자신들과 약속까지 한 상태에서 이리 늦은 답변에 함께하지 못한단 얘기는 조금은 화도 나면서도 섭섭하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올 여름은 여행 운도 없다고 투덜거리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칙칙한 서방아의 청소를 하고 있는데 기영에게 가까운 곳에 물놀이라도 가자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툭-

 

 또다.

 마감이 끝나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언제 종이뭉치를 만들어 둔건지…, 머리로 떨어진 종이뭉치를 잡아채며 달자는 오구를 쏘아 보았다.

 

 뭡니까―, 라고 말하는 강렬한 눈빛을 보내면서.

 

 하지만 이에 상관도 않듯 오구는 책상에 앉아 턱짓으로 문을 가리킨 뒤, 의자에 등을 기대 회전시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손님.”

 

 기영에게 다시 연락한다며 급히 전화를 끊고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에게 달자는 황급히 인사를 했다. 자기가 주인이면 손님 상대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쏘아 주고 싶었지만 그것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기에 바로 손님 접대 모드로 들어갔다.

 

 “찾으시는 책이라도 있으신가요? 이곳이 헌책방이기는 하지만 어느곳보다 많고 다양한 책들을 보유하고 있답니다.”

 

 더운 여름날에 와이셔츠 단추를 목까지 채운 노년의 신사가 미덥지 않다는 시선으로 서방아를 한번 쭉 훑어보았다.

 

 “필률공명(篳篥空鳴)이라는 책을 찾소.”

 

 낮지만 그윽한 음성의 목소리다.

 오구가 의자를 돌려 슬쩍 노년의 손님을 바라본 듯 했지만 달자는 알지 못했다.

 

 “필, 필공?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제목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서방아에 있다 보면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책들이 많은데 이 책 역시 달자에게는 생소한 제목의 책이었다. 그리고 책 제목을 들어도 무슨 부류의 책인지도 알 수가 없다.

 

 “필․률․공․명. 아주 오래된 책인데 작자가 미낭이라고 되어있지. 미낭(迷囊)

 미혹할 미, 주머니 낭. 미혹의 주머니."

 

 머리위에서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에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지 노신사는 손부채질을 하며 한 자 한 자 책의 제목을 끊어 읽어주었다. 거기에 더해 뜻풀이 까지 해주신다.

 

  책 제목이 미낭이라는 것인지 작가가 미낭이라는 것인지 모르겠는 달자는 필률공명과 미낭을 번갈아 가며 따라 발음해 보았다. 그때 언제 곁으로 왔는지 오구가 달자를 살짝 밀어내며 앞으로 나왔다.

 

 “죄송합니다. 손님. 그 책은 저희 쪽에는 구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구는 노년의 신사에게 상냥한 미소를 띠우며 죄송함을 표명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상냥하지만 조금은 차가운 미소였다.

 

 달자가 있을 때에는 손님이 찾아와도 대체로 나와 보지도 않던 오구여서 그런지 지금의 행동이 조금은 이상스럽게 느껴졌지만 곧 ‘이럴 거면 처음부터 자기가 나와 보든지!’ 라는 불만의 말들이 뇌 속을 뛰어다닌다.

 

 “소문엔 이곳에서는 아주 오래되고 희귀한 고서들도 구할 수 있다고 해서 와봤는데. 그리고 방금 이 점원 아가씨도 이곳엔 다양한 책들이 있다 하고. 정말 없는 가?”

 

 “먼 길 발걸음 해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저희도 어지간한 고서들은 갖추고 있다고 자신해 말씀드릴 수 있는데, 그 책은 여간해서 구하기가 힘든 책이거든요.”

 

 “정말 구할 수 없겠는가?”

 

 달자는 노신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이는 깊고 검은 눈이 오구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흠―. 그런가. 그래도 혹시 책이 들어온다면 이쪽으로 연락해 줄 수 있겠소. 내 값이라면 두둑이 쳐주리다.”

 

 노신사는 작은 명함하나 남기고 서방아를 떠났다.

 오구는 좀 전에 두 손으로 공손히 받은 명함을 보지도 않고 휙― 집어 던졌다.

 

 “아니 왜 던지고 난리에요. 값도 좋게 쳐준다는데.”

 

 “필요 없으니깐 버리지. 뭔 책을 사러 왔나 했더니 그런 쓰잘데기 없는 책을.”

 

 달자는 이런 오구의 태도가 잘못됐다고 궁시렁 거리며 책장사이로 들어간 명함을 주우려 좁은 틈새로 가느다란 팔을 짚어 넣었다. 틈 사이로 팔을 허우적거리며 말한다.

 

 “그것보다 말이에요. 지금 생각났는데 그 필률공명이라는 책. 분명히 지난번에 들어 온 거 아니에요? 제가 어디다 분류해야 하는지 몰라서 물어 본 책이잖아요. 근데 왜 없다고 한 거예요?”

 

 “너, 전화 안 해도 되냐? 방학 며칠 안 남았다. 이러고 있는 사이 그 남은 방학마저 훌쩍 흘러가.”

 

 “아! 맞다. 전화!”

 

 오구가 다른 쪽으로 화재를 돌리고 싶은 마음에 꺼낸 미끼를 덥석 물은 달자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오구는 오늘은 이만 됐다며 달자를 돌려보낸다.

 

 달자가 돌아 간 뒤 오구는 서방아의 문을 걸어 잠그고 밤나무 책장에서 고서 한권을 꺼내 든 뒤 책을 펼쳤다.

 이제는 누렇다 못해 갈색 빛을 띠는 종이 위에, 흑 빛 먹물로 쓴 글이 보인다.

 

 

 피리야 피리야

 늴리리 늴리리 울어라

 너의 아버지 나무하러 갔다가

 범한테 물려 죽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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