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 안 해 준다는 건데?”
“한번 안 한다면 안하는 거지. 왜 그리 말이 많아!”
“점 좀 봐달라고! 무당이잖아. 손녀의 친구가 행방불명인데 점이라도 봐주면 좋잖아.”
“이년이 정말 며칠 전부터 왜 이려? 실성을 했나. 뭐 마려운 똥개마냥 안절부절 못하다가 이제는 이 할미 똥구녕만 쫒아 다니는 겨!”
성을 내는 말년의 말도 무시 못 할게 달자는 아까부터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졸졸 쫒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조말년 여사, 끈기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다지만 달자가 귀찮게 하는 건 도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이다.
“똥구녕이 뭐야! 그보다 매정하게 왜 그래? 복채 때문에 그래? 복채 준다니깐. 점 좀 한번 봐 달라는 게 뭐 그리 어려워? 7살에 무당 되어 벌써 반세기를 넘게 무당 일을 해왔으니 점보는 건 식은 죽 먹기잖아.”
말을 꺼내고 나자 달자는 ‘아차’하는 후회가 들었다.
말년이 재작년에 환갑을 지내고 나서 유독 나이에 민감해 져 있다는 것을 깜박하고 실언을 한 것이다.
소실 적에는 한 미모 하는 처녀보살로 유명했었는데, 그 찬란했던 젊음은 세월과 함께 주름만 남겨놓고 흘러간 것이다.
달자의 말에 말년이 화가 난 것인지 있는 힘껏 노려본다.
“그래 이것아! 네 말대로 반세기 넘게 무당 굿 하고 점쳐온 이 할미의 복채가 얼마나 비싼 지 짐작이 가겠지? 그 긴 세월 못 당 한다 이것아. 나 이래봬도 비싸! 나한테 점보겠다고 줄서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할머니 내가 잘못했어.”
달자는 최대한 불쌍하고 반성한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에 동할 조말년 여사가 아니다.
“아나꽁아. 반세기 넘게 무당해온 이 내가 아무 손님이나 받는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단단히 화가 난 것인지, 말년의 ‘흥‘ 하는 콧방귀 소리가 으스스하게 들려온다.
이 이상 졸라 봐도 지금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달자가 일단 포기를 할까 생각하던 참에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희진의 메시지다.
“나 잠깐 나갔다 올께!”
“어딜 또? … 이년아 차 조심혀!”
“올 때 울 조말년 여사 좋아하는 고기만두 사다 줄께!”
돌아와서 고기만두를 대접한 뒤 다시 한 번 점을 봐달라고 졸라봐야겠다 다짐하며 달자는 작은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메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달자는 몰랐다.
자신의 남은 용돈 구천원을 몽땅 털어 산 고기만두 3인분이 조말년 여사의 위만 가득 채우고 점은 보지도 못한다는 것을.
말년은 뛰어나가는 손녀의 모습을 안쓰러이 바라보았다.
"점을 볼 수 있다면 진즉에 봐줬지 이것아......에거."
너무나도 맑은 하늘을 바라보자니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만다.
세상이란 참으로 달면서도 참으로 독하다는 것을 긴 세월 살며 새삼스레 다시금 느껴보는 요즘이다.
일요일 오후 두 시.
학교 앞 분식점에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하영이 사라지고 나서 벌써 두 달째 계속 되고 있는 모임이다.
하지만 오늘은 갑작스레 친척 결혼식으로 지방에 가게 된 희진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원래보다 2시간 가량 늦은 시간에 만나게 되었다.
하영의 부모님과 달자들의 정보로 추측하면 8월 말에 하영이 실종이 되고, 9월에 경찰 수사에 들어간 뒤, 두 달이 지나 11월로 접어든 것이다.
경찰 관계자들은 하영을 가출로 여기고 있어 가출 소년소녀 신고 대상에 하영을 올려놓았다. 전국 수사 기관에 하영이 가출 소녀로 등록되고 난 뒤 몇 통의 하영을 봤다는 신고 전화가 있었지만 다들 하영이 아닌 다른 소녀들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외할머니 댁에서 돌아왔다는 하영의 문자 메시지가 마지막 흔적이었다.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던 하영의 실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지부지해져 지금은 하영이 없는 교실은 흔한 일상의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달자들은 하영이 언젠가는 돌아 올 것이라며 그녀가 돌아온 후 수업에 임할 수 있도록 처음에는 중간고사를 위해, 지금은 기말고사를 대비해 노트에 요약정리를 하고 있다. 벌써 시작한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노트도 몇 권으로 분량을 늘려가고 있다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어찌된 일인지 서방아의 문이 닫혀 있다.
지금까지 오구 씨를 알고 지낸지 몇 달의 시간이 흘렀지만 달자에게 가게를 맡겨놓고 외출을 하면 했지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간 적은 없었다. 또, 어제 저녁 서방아를 나올 때 내일은 오지 않아도 된다 해서 오구가 책방을 보는 줄 알았기 때문에 예상 밖의 일이라 은근 신경이 쓰인다.
“어디 간 건가? 원고도 어울리지 않게 일찍 끝내놓더니, 늦 단풍구경이라도 갔나?”
닫혀있는 서방아를 신경 쓰며 발길을 멈추지 않고 걷고 있는데, 만두가게 앞에 택시 한대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외골목이라 웬만해서는 영업용 택시 같은 것은 잘 들어오지 않는 골목인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택시가 떡하니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을 보는 것인지 그 너머의 골목길을 보는 것인지, 말 좋아 하는 동네 아줌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늘 따라 좁은 골목 안에서 그동안 보지 못한 광경 여럿 보네, 라는 생각에 무슨 일인가 궁금한 마음도 있었지만 달자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어릴 적부터 싫어해서 발을 멈추지 않았다.
“여럿 사람 모여 쑥덕거리는 얘기에 좋은 얘기 할 리가 없지.”
그리 생각한 이유는 어릴 적 그 쑥덕거림의 피해자가 달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저 아이가 무당이랑 저승사자가 붙어먹어 생겨 난 애 라네―
아직도 귓속에서는 마을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윙윙 울리는 듯 하다.
지독하게 깊이 새겨진 옛 기억을 떨쳐버리며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재촉하고 있던 발은 하나의 목소리에 의해 멈춰 졌다.
“저 여자가 새엄마라며? 아이고, 참 젊기도 하다. 어린 것이 나이든 남자한테 꼬리나 쳐서 결혼이나 하고.”
“저런 년한테 아빠 빼앗기고, 엄마자리 빼앗겼으니 딸이 오죽했으면 집을 나가.”
달자는 안 봐도 뻔 한 얼굴들을 한번 쳐다봐 주었다.
어릴 적, 지금처럼 달자의 출생에 관해 떠들던 동네 아줌마들.
그 아줌마들의 입은 옛날과 변함없이 남의 집 소문을 떠들고 있다.
벌건 입술에 축축하고 눅눅한 침을 묻혀가며―
번들거리는 침이 묻은 채 빨간 립스틱이 발린 입이 움직이는 걸 보자 구토감이 밀려왔다. 그 입들은 지금 달자의 친한 친구네 집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집 소문 좋아하는 건 버리지 못했나 보다.
“그런데 그 얘기 들었어? 못 들었는가 보네. 사실은 저 불 여시 같은 여자가 복숭아집 딸을 죽였다는 소문이 있더라고.”
…에? 하영의 새엄마가 하영이를?
그럴 리가 없다. 하영이 사라지긴 전 새엄마는 여행을 갔고 달자네 들이 여행을 간다고 한 날 저녁에 돌아왔다니 그럴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리 전처의 딸이 미워도 죽이기까지 할까? 사람인데…
짧은 시간의 틈바구니에서 온갖 상상을 하고 있는 차에 소문을 말하는 그 입술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복숭아집 아이가 실종되고 경찰들이 몇 번 왔다 갔다 했자나. 뭐라고 하지 그거? 주변 사람들이 본적 있나 없나? 이러고 경찰들이 물어보는 거?”
“탐문수사?”
“응, 그래 그거!”
개학한 날 오후.
하영의 아버지는 담임의 조언에 따라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그로 하루가 지나 경찰차 한대가 오늘처럼 만두집 앞에 세워져 두 명의 경찰이 마을을 돌며 하영의 사진을 보여 가며 탐문 수사를 했었다.
그 경찰들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무당집을 하고 있는 달자네 집까지 찾아 왔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여름이었기에 더위에 벌겋게 익은 얼굴을 한 경찰관 두 명은 달자가 학교에서 정황을 듣기 위해 불러낸 친구들 중 한명인 것을 알고 말년이 대접해 주는 음료수 한잔을 마시고 달자에게 걱정 말라며 어깨를 두들겨 주고 난 뒤 돌아갔었다.
“그런데. 그게 어쨌는데?”
“그게 그런 이유에서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날. 복숭아집 딸이 사라지기 전에 저 여자를 새벽부터 동네에서 봤다는 사람이 나왔 다자나.”
달자에겐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누가? 누가 본 거야? 난 처음 들어.”
수다의 주인공이 된 아줌마는 무슨 중대한 이야기라도 되는 듯, 그 무리 안으로 목을 깊숙이 내밀었다. 이에 다른 아줌마들 역시 같은 자세로 모여들었지만, 그것은 다만 모양에 불과할 뿐 그녀들의 목소리는 주변이 듣기에는 충분한 성량이었다.
“두부 집 아들이 봤다고 하더라고. 왜, 그 복숭아집을 부모 몰래 팔아버린 중간치.”
“세상에! 그러면 거짓말을 했다는 겨? …아니지. 그랬다면 저렇게 있을 리가 없잖아. 경찰에 끌려가 벌써 콩밥을 먹고도 남았지? 어떻게 나 온 거래?”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지. 그 뭐냐, 알리바이? 그런 거라도 있는 거 아녀? 저것 좀 봐. 저 얼굴. 어찌나 표독스럽게 생겼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는 지 소문을 이야기 하던 아줌마는 고개를 들고 만두집 옆으로 나아있는 골목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골목에는 기천과 하영의 새엄마인 성미옥이 나오고 있었다.
기천의 손에는 미옥의 것인지 작은 빨간색 캐리어가 들려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마을 사람들은 쑤군덕거리며 힐긋힐긋 바라보았지만, 그런 건 대놓고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달자는 말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미옥은 어깨를 두드려 주는 기천에게 무어라 말을 한 후, 뒷좌석에 몸을 싫고 기천은 트렁크에 캐리어를 싫었다. 그리고 기천과 택시기사와의 몇 마디가 오간 뒤 택시는 작은 소리를 남기며 골목을 떠났다.
택시가 달자가 내려온 언덕길을 지나 모습이 사라지자 기천도 마을 주민들의 시선 탓이진 얼른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발 길이 떨어지지 못하고 있던 달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달자는 오구에게 죄송하지만, 동네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싶어 하는 기천을 위해 가지고 있던 서방아의 여분의 열쇠를 이용해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오구의 모습은 없다. 하지만 언제나의 정신없는 헌책방이다.
“미안하구나. 너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달자는 고개를 저으며 서방아의 문을 닫았고 둘은 서방아의 책 더미 위에 아무렇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을날 오후의 햇살이 미닫이문의 유리를 투과하며 사방의 책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브라운 계열의 옛 빛바랜 영화를 보는 듯 한 착각을 들게 했다.
“그보다 여기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언제나 아침저녁으로 다니는 골목이면서도 몰랐네. 그런데 이곳은?”
“제가 아시는 분이 여기 주인이시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급여 없는 아르바이트 비슷하게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좀 어둠침침하고 헌책과 고서들 밖에 없어 싫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장하네.”
기천은 달자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서방아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책으로 가득 찬 곳이다. 어찌 보면 이런 곳이야 말로 마음이 편해지는 장소이지 않을 까 하는 생각에 기천은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달자가 조금 전 일에 대해 묻고는 싶지만 어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그 마음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기천이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문을 띄워줬다.
“안사람은, 그러니깐 하영의 새엄마는 친정에 가있기로 했단다. 사실이 아닌 일에 동네사람들 입방아가 본인도 힘들었던지, 뭐, 나 역시 그 사람을 위해서도 그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소문은 알고 있니?”
달자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이며, 좀 전에 들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정말이지. 어딜 가나 사람들은 남의 집 소문에 왜들 그리 좋아하고, 있지도 않은 일에 이리 열을 내는지 모르겠구나. 아, 달자양이 어떻게 생각 할지 모르겠지만 소문은 사실이 아니란다. 뭐, 그러니깐 경찰도 그걸 알고 그녀를 풀어 준거지만.”
달자는 기천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살며시 달자에게 미소로 답한 기천은 씁쓸한 표정으로 문 밖을 바라보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밖에서는 둘의 대화가 들리지도 않을 텐데, 서방아의 유리문을 통해 안을 바라보며 아직도 무언가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달자역시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안사람은 동네에 일찍 도착하기는 했지만, 목격한 시간에는 아직 부산에서 올라오기 위해 기차역에 있었다고 하더구나. 아, 부산으로 여행을 갔었거든. 역시 여름이니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해서, …정말 터무니없는 증언이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 하나로 용의자 취급이라니.”
“......”
“나도 참, 딸아이의 친구를 상대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미안하구나. …하영이는 새엄마가 돌아오면 플루트를 배우기로 했었단다. 원래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인데, 악기는 영―아니었거든.”
기천은 옛 일이 생각나는지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하영이가 플루트를 배우기로 했었군요. 몰랐어요. 새엄마가 플루트 전공이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마도 부끄러워서였겠지, 아니면 배우고 난 뒤 멋지게 연주해 너희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던지 말이야. 우리 집은 말이다. 하영이 어렸을 때부터 가족이 함께 모여 노래도 하고 그랬거든. 아, 하영의 친엄마가 노래하기를 아주 좋아했던 사람이었지. 나도 그 노래에 반해 프로포즈할 정도였으니. 남에게 말하기는 부끄럽긴 하지만 결혼을 하고 하영이 태어나고, 우리 가족은 언제나 화목하다고 할 정도로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단다. 그런 시간을 보내와서 그런지, 아니면 제 엄마를 닮아서인지 하영이도 커가면서 틈만 나면 자기도 모른 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집안을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영의 그런 버릇은 달자들도 익히 알고 있다. 학교에서 함께 있다 보면 언제나 같은 멜로디의 노래를 흥얼흥얼 거렸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그런 하영을 보고 노인네 같다며 약 올리기도 했지만, 사실은 점심시간에 밖에서 쉬고 있다 보면 그런 하영의 흥얼거림 속에서 기분 좋은 낮잠을 즐기는 것을 좋아 했었다.
“저도 그 노래 알아요. 하영이 부르는 걸 들어 본 적이 있었거든요.”
“너희들도 아는 구나. 그 노래는 하영의 엄마가 가르쳐준 노래란다. 배웠다기보다 언제나 그 노랠 흥얼거리는 제 엄마를 보며 자연스레 익힌 거지. 아이가 노래를 부르며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게 어찌나 귀엽던지.”
행복했던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는 지 기천의 얼굴은 평온한 미소가 스쳤다. 하지만 곧 그 미소는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런 아이가 새엄마에게 플루트를 배우기로 약속까지 해놓고선 가출이라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단다.”
기천은 유리 너머로 보이는 복숭아나무 집을 바라보았다.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는 것인지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듯 했다.
“나는 이만 가봐야겠구나. 난 자리가 둘이나 되니 집 정리도 해야 하고.”
애써 웃는 기천의 모습에 달자의 마음은 먹먹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달자 양과 희진, 기영 양에게 고맙다고 생각해. 우리 하영이랑 친구로 지내줘서,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걱정해주고.”
“저… 아저씨?”
“…?”
“하영 이는 돌아오겠죠?”
“글쎄… 언젠가는 돌아와 줬으면 좋겠구나.”
어째서인지 달자는 기천의 말들이 마치 단념이 담긴 체념의 말 같게만 느껴졌다. 정말 가출을 했다고 생각 하는 것인지, 돌아올 지도 모르는 하영 이를 기다려 주시지는 않는 것인지 등의 불안한 생각들이 들었다.
머릿속에 온갖 물음표들을 떠올리고 있는 사이 서방아에는 달자 혼자만이 남겨졌다. 밖에 있던 동네 사람들의 모습도 사라진지 오래다. 왠지 울적한 마음과 함께 기운이 빠져버린 달자는 희진에게 미안하다며 내일 학교에서 보자는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 서방아 한 구석에 주저앉았다.
책 위를 부상하며 두둥실 갈피를 못 잡고 떠다니는 먼지가 온 몸 가득 가을 햇살을 받으며 빛을 바라고 있다. 언제나 마른 걸레에 치이며 털리는 먼지에 눈이 부셔왔다.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오구 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