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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
작가 :
작품등록일 : 201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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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꽃잎 짙게 물들고
작성일 : 16-09-13     조회 : 479     추천 : 0     분량 : 8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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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적으로 가출이나 다름 없어진 하영에 대한 수사는 중단 된 것과 다름없었지만 달자와 친구들은 하영을 위한 노트정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하였다. 주변 친구들은 그런 것을 왜 하냐하지만 달자는 자신들의 복습도 겸할 수 있다며 일요일은 언제나 패스트푸드점에 모여 서너 시간을 할애했다. 하영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영의 새엄마가 집을 나간 후 복숭아집에 대한 소문도 잠잠해 지고, 그날 이후 달자는 기천을 만나 보지 못했다.

 

 “겨울인데도 요 며칠 비만 내려 기분이 우울했는데, 막상 그 비도 안 오니 더 싱숭생숭하네.”

 

 기영은 콜라가 담겨있는 일회용 컵의 뚜껑을 만지작거리며 통유리 넘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중충한 색을 띤 하늘은 당장이라도 요 며칠 내리던 비를 다시 쏟아 낼 듯 한 기세다.

 

 "하영의 실종도 벌써 세 달이 지나 네 달째로 접어드네."

 

 “정말이지 날도 추운데 어디 있는 거야. 잘 있기는 한 걸까…?”

 

 이제는 걱정도 되지만 화까지 나려 하는 그들이다.

 잘해오던 연락도 여름 방학을 마지막으로 끝이다. 하영이 자신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준다면 언젠가는 연락을 해 올 것이라 생각해왔지만 한 달이지나 두 달이지나 이젠 겨울이 다가왔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 정도 까지 되면 무심하기 까지 하단 생각이 든다.

 

 섭섭한 마음 한가운데 달자의 기분은 자꾸만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가출이 아니라면? 혹시 이상한 일이라도 당한 거라면?

 

 생각하기도 싫은 해괴망측한 상상이 어느덧 상상을 넘어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벌써 몇 주째 달자의 머리를 괴롭히고 있다. 그러다 못해 망상은 몸까지 꿈틀꿈틀 침투해 들어 오는 것이다. 달자는 이러한 생각을 하는 자신이 더없이 역겹게만 느껴졌다.

 

 오늘은 심지어 하영이 누군가에게 쫒기다 변을 당하는 꿈까지 꿨다.

 꿈에서 깨어 눈을 뜨자 이불속에 파묻히듯이 자고 있던 달자의 몸은 이불사이에 틈과 습기 가득 먹은 공기로 인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마를 비롯해 온 몸이 땀이었다.

 

 눈을 떠도 좀 전에 꿨던 꿈의 영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기분 나쁜 영상에 구토감 마저 일어났다.

 

 허겁지겁 기듯이 방문까지 다가가 문을 열고 찬 공기를 폐 속 깊이 들이마셨다. 온 몸에 맺혀있던 땀들이 식어가며 오한이 밀려왔지만 구토감과 자신에 대한 모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은 무당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아무런 끼도 없다. 그렇다 한다면 이것은 아무런 예지도 없는 그냥 꿈에 불구한 것이리라. 하지만 달자는 꿈은 꾸는 자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어 그것이 더욱 기분을 나쁘게 했다.

 

 

 

 꿈의 내용은 이러했다.

 

 처음의 꿈은 만개한 복숭아밭 한가운데서 시작한다.

 가장 큰 나무아래 앉아 하영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기분 좋게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가 어느 순간 눈물을 자아낼 듯 서글프게 변하더니 그 노래 소리는 어느새 공허한 음색과도 같이 바뀐다.

 

 마치 그 소리는 플루트의 소리와도 같다는 생각을 꿈에서 한다.

 

 하영이 갑자기 일어나 뛰기 시작한다.

 가끔씩 뒤를 돌아본다… 마치 쫒기 기라도 하듯이.

 

 플루트의 소리가 두껍고 낮은 음색으로 바뀌어 어느새 바람소리 같이 변하자 달리고 있던 하영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영이 보인다.

 

 

 

 낭떠러지 밑…

 

 바닥은 흙이 보이지도 않게 복숭아 꽃잎으로 뒤덮여 있다.

 그 위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하영이 하늘을 향해 누워있었다. 마치 그 모습은 꽃잎과 일체가 된 듯한 광경이었다.

 

 하얀 꽃잎.

 하얀 원피스.

 검은 긴 생머리.

 

 

 바람이 불어온다.

 회오리를 맞듯이 꽃잎이 사방으로 솟아오르며 흩날린다.

 

 윙― 윙―.

 

 바람소리인 듯 했지만, 어찌 들으며 피리소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피리를 부는 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하영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하영의 입이 움직이고 있다.

 소리는 나지 않는다.

 주변의 꽃잎들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복숭아꽃들이 마치 피에 물든 듯한 선홍빛의 동백꽃 같은 색을 띤다.

 다시…

 

 윙― 윙―.

 

 바람소리인지, 피리소리인지 이제는 분간도 되지 않는 소리가 귓속을 방망이질 한다.

 

 

 

 이러한 꿈이 벌써 일주일 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그 꿈을 꿨다.

 

 꿈으로 인해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한층 더해져 이제는 하영에 대해 화가 나기까지하는 달자이다. 어김없이 친구들과 만나 노트 정리를 하면서도 달자는 꿈을 떨치기 위해 노력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어? 눈이다.”

 

 밖의 날씨를 전하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달자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나 둘.

 창밖에는 쌀 알 같은 눈들이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바람도 꾀 부는지 움츠려 드는 자세의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띤다.

 

 “12월 초부터 눈이라니 신기하네. 요 몇 년간 이런 적 별로 없지 않았어? 화이트 크리스마스 된 적도 드물었잖아. 연말에서 새해로 접어들어야 눈 좀 내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러네. 별일이야. 그래도 눈 내리니 기분은 조금 좋아지지 않아? …어? 달자야, 너 어디 안 좋아? 아까부터 영 얼굴이 안 좋다.”

 

 화학노트를 옮겨 적던 희진이 달자의 이마를 짚어온다. 그 손에 뜨거운 열이 전해져왔다.

 

 “우와―, 열나잖아. 안되겠다. 집에 가는 게 좋겠다.”

 

 “괜찮아. 별것 아니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방문 열고 찬바람 쐬어 그래.”

 

 오늘도 역시 아침에 밀려오는 구토감을 없애기 위해 땀으로 젖은 채, 찬바람을 쐰게 화근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몸이 나른하거나 그런 건 없다. 열이라고 해도 미열일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기보다 이렇게 창밖의 눈을 좀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달자가 걱정이 되었던지 기영은 밋밋하지만 따뜻한 커피를 한잔 사왔다.

 커피에 설탕을 잔뜩 넣고 홀짝홀짝 거리기를 한 시간.

 쌀 알 같던 눈을 흩뿌리던 겨울 하늘은 어느새 탐스러운 눈송이를 쏟아 내고 있었다. 그 풍경은 마치 작은 솜뭉치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듯하다.

  동화같은 풍경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마저 설레임으로 넘치는 듯하다.

 

 달자역시 눈의 탓인지, 아니면 따뜻한 커피가 속을 달래준 것인지 울렁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기분도 조금은 나아졌다.

 편해진 마음에 지금까지 정리하고 있던 수학노트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노트의 내용은 세 가지 펜으로 구별해 정리해 놓았다.

 

 하영을 위한 것이다. 겉표지에도 하영의 이름 석 자가 적혀있다. 달자와 마주앉은 희진, 기영이 정리하고 있는 노트에도 역시 하영의 이름이 적혀있다.

 

 우연이었을까? 문득 셋은 고개를 들고 서로의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희진이 자신이 정리하던 페이지에 손가락 하나 끼운 채 노트를 덮어 표지를 들어 보였다.

 

 “첫 눈이 오니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아?”

 

 기영 역시 노트를 들어 이름 석 자 적힌 부분을 볼펜으로 톡 톡 치며 ‘컴백!’ 하고 작게 말했다. 두 친구의 얼굴에 웃음이 흘러나온다. 달자역시 설레는 기분이 되어 둘을 따라 노트를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하얀 눈의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매장의 통유리 옆을 빨간, 파란색의 불빛을 내는 경찰차가 몇 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 광경에 셋의 얼굴은 순간 굳어졌고, 동시에 학교 앞을 바라보게 되었다.

 오른쪽일까? 왼쪽일까?

 자신들이 바라보는 쪽에서 오른쪽이면 신 동네, 왼쪽이면 달자와 하영의 집이 있는 구 동네이다. 결과는 금방알 수 있었다.

 

 왼쪽이다.

 

 연이어 달려가는 경찰차와 관계차량들이 순서대로 왼쪽 골목으로 꺾어졌다.

 

 “서, 설마. 아니겠지….”

 

 “그렇겠지.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냥 동네에 다른 일이 있다던 가. 아니면,”

 

 유리창을 뚫고 나갈 정도로 달라붙어 있던 희진이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경찰차가 꺾어진 방향이 방향인 만큼 불안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셋이 앉은 자리의 공기가 불안해 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 동네 넘어서 옆 동네로 종종 가는 경우도 있어― 큰길이 막혔거나 그럴 때.”

 

 “하긴 달자네 집을 넘어가며 옆 동네의 중심가로 곧장 갈 수 있겠구나.”

 

 달자는 이 무거운 공기를 없애지 않으면 또다시 꿈이 생각날 듯 했다.

 

 “우리 있다가 오구 씨 보러 안 갈래? 눈 오는 날의 오구 씨 멋있을 것 같지 않아? 눈송이 날리는 날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한입 베어 무는 섹시남의 모습! 캬~”

 

 희진이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오, 그거 좋네. 그러고 보니 그 집 만두 먹고 싶다. 김치만두 진짜 맛있었는데. 은근히 매우면서 중독적이야.”

 

 기영이 밝게 응수 한다. 달자도 그래야 한다.

 

 “에? 뭐 하러 오구 씨를 보러가― 그냥 여기서 햄버거 하나 또 먹자. 그 얼굴 보면 더 추울 뿐이야. 여기 따뜻하고 좋잖아.”

 

 서로 억지스레 분위기를 띄우려는 걸 알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어색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지금은 이런 것도 좋다...라고 생각하면서.

 

 달랑―

 

 ‘어서 오세요’라는 점원의 인사말과 함께 눈을 피하러 들어온 손님들의 웅성거림이 인다. 그 중의 한 목소리가 유독 귀를 파고 들어왔다.

 

 “고교 뒤편 언덕에서 시체가 발견됐다는데 들었어?”

 

 “뭐? 시체? 학교 뒤 언덕이라면 구 동네? 그러고 보니 아까 경찰차 몇 대 그리 들어가던데.”

 

 시체래 시체-

 

 일말의 불안이 달자의 가슴에서 시작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려 한다.

 이러한 마음은 달자 앞에 앉아있는 희진과 기영에게도 마찬가지리라.

 

 "서....설마....., 그럴일은 없겠....."

 

 희진은 벌써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기영이 갑자기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에 둘도 아무 말 없이 서둘러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노트와 필기구를 챙겨 나와 하영의 집 을 향해 달렸다.

 

 밖은 어느새 발자국을 남길 만큼 눈이 쌓여있는 형세였지만 아직 길은 미끄럽지 않다. 아니 오히려 전날까지 내린 비로 인해 길이 질척거린다.

 진득하고 질퍽한 느낌이 스물스물 다리를 타고 올라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소름끼치기 까지 하다.

 큰 길을 뛰어 학교를 지나 작은 사거리를 달리면서 모두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차라리 가출 한 것이기를―’

 

 

 차가운 숨을 헐떡이며 만두가게가 있는 골목에 도착하고보니 이미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차량들이 골목에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경찰 관계차량, 익숙한 로고의 방송국 차량, 카메라를 든 기자들도 보인다.

 

 마을 주민들은 하영의 집으로 나아있는 작은 골목 안이 마치 불경한 장소라도 되듯이 들어가지 못 한 채 몇 명씩 모여 웅성대며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인파와 차량을 가르며 기영이 골목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 뒤를 달자와 희진이 따랐다. 뒤쪽에서 말리려는 마을주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다만 몸이 저절로 향하는 대로 따를 뿐이다.

 

 점점 빨라져 가는 발에 맞춰 뇌가 꿈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머릿속에 머물려는 영상을 뿌리치기위해 달자는 달리며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하영의 집 대문 앞에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과 사복을 입은 형사들이 여럿 있었다. 대문 너머에도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셋은 집 뒤로 나아있는 길로 달렸다.

 

 이미 수많은 발자국으로 인해 땅은 정신없이 더럽혀져 있었다.

 비와 눈으로 인해 젖은 길이 질퍽거리고 미끄러워 속도가 나지 않는다.

 

 양쪽 발에 진흙을 가득 묻힌 채 달려온 달자의 눈에 비친 것은 짙은 노랑색을 띤 폴리스라인과 수많은 카메라의 불빛들이었다.

 마치 그것들은 실제 사건 현장이라기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제복 입은 하급 경찰관들이 폴리스라인을 둘러가며 지키고 서있었다. 출입을 제지하는 것이다. 기자들도 이를 알기에 들어가지는 않고 몸을 최대한 내밀어 촬영을 할 뿐이다.

 

 "더이상 가까이 오시면 안됩니다!"

 

 경찰관이 한 카메라 맨을 제지하고 나섰다.

 

 "시신의 신원은? 남자입니까?"

 

 경찰관의 저지에도 기자는 끊기있게 물고 늘어지며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 옆에는 9시 뉴스에서 몇 번 보았던 여기자가 카메라를 향해 무언가를 떠들고 있다.

 

 달자들도 지겹게 달라붙은 습기가득 먹은 진흙들을 떨쳐내듯이 거칠어진 발걸음으로 노랑색 선에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제는 익숙해진 중년 남성의 통곡 소리가 더욱 선명히 귀를 파고 들어왔다.

 

 "아......아아아아악..........."

 

 울부짖는 목소리와 삽을 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 하는 달자를 누군가가 손으로 제지했다. 옆에서 희진과 기영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달자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과 차가운 눈이 섞여 흘러내린다.

 

 "가야해요. 가야 한다구요!"

 

 기영이 소리쳤다.

 매달렸다.

 부탁했다.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셋을 향해 몇 명의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고, 뭐라 뭐라 떠들어 대는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귀를 때려왔다.

 

 눈은 쉬지도 않고 내리고 있다.

 마치 꿈속의 꽃잎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수사관들로 인해 지워지고 더럽혀져 흙이 들어난 바닥을 보기 싫다는 듯 눈발은 더욱 굵어져 갔다.

 

 달자의 젖은 눈이 한 곳만 응시하고 있다.

 파헤쳐지고 있는 땅.

 

 흰 비닐 옷을 입고 짙은 남색의 모자를 쓴 한 수사관의 손길이 잠시 멈춰졌다. 이에 같은 차림을 한 몇 명의 수사관들이 구덩이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의 손에 의해 들려진 것은 형체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주검 하나였다. 그것은 옆 바닥에 깔려진 반투명 비닐에 옮겨졌다.

 주검은 엎어진 자세였다.

 

 흰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긴 머리의 여자.

 

 머리카락은 무언가로 인해 떡지고 엉켜있는 상태다. 종종 들리는 수사관들의 목소리에 의하며 후두부를 크게 부딪쳐 머리가 깨져 피로 인해 그러한 것이라고 한다.

 

 머리뿐만이 아닌 몸 전체가 마치 미끄덩거리는 물질처럼 보였다.

 달자는 자꾸만 앞을 가리는 눈물을 거칠게 손등으로 닦아가며 시체를 바라보았다. 수사관들로 인해 시체의 몸이 뒤집혀 졌다.

 

 시체 주변에 있던 수사관들의 눈살이 일제히 찌푸려지는 것이 보인다. 조심스레 그들을 따라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형체를 알 수 없는 얼굴이 보였다. 처음 보는 모습에 온몸이 떨려왔고 숨이 멈는 듯 했다.

 

 "........뭐야...뭐야, 뭐야 뭐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전 보다 더욱 요란하게 울리는 카메라의 셔터음과 불빛,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하다.

 

 달자는 눈을 떼지 않고―, 아니 떼지 못 한다는 게 더 정확할 지도 모른다.

 시린 눈으로 주검을 바라보았다.

 

 턱 아래가…?

 

 턱 아래, 즉 목 부분에 하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잘 보이지 않아 더더욱 고개를 내밀고 눈의 초점을 맞춰 보았다.

 

  ― 하얀 것은 목뼈.

 

 알아차린 순간 구토감이 밀려왔다. 무언가가 가슴에서 비집고 목까지 차고 올라온 듯 하다. 그리고 힘이 빠지듯 눈앞이 흐려지며 새하얀 하늘이 펼쳐졌다.

 

 

 

 

 

 “이것아 정신 좀 드냐?”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말년이다.

 언제나 카랑카랑했던 목소리가 조금 젖어있는 듯 하다. 코를 찌르는 메케한 담배 연기로 인해 눈이 맵다. 찌푸리듯 뜬 눈에 익숙한 천장이 보인다.

 

 “…담배 좀 꺼. 매워.”

 

 “미친년―. 어디서 정신은 홀라당 잃어 외간 남자 등에 업혀 온 주제에!”

 

 “에? 외간 남자?!”

 

 놀라 벌떡 일어나는 달자의 등에 말년의 손바닥이 날라 왔다.

 

 “이런, 씨글년. 외간남자라고 하니깐 정신이 번쩍 드누? 경찰 양반이다. 경찰.”

 

 “난 또―.”

 

 “어이쿠, 이년 좀 보게. 또 누워? 눕지 말고 이거나 마셔. 진―하게 우려낸 대추차여.”

 

 있다가, 라고 말하며 달자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려 했지만 그것을 보려하지 않은 말년이 이불을 뺏어들며 차가 담긴 사발을 건 내 주었다.

 한번에 마시기에는 많은 양이다.

 

 차에 입술을 대자 달근한 맛이 입안에 퍼져왔다.

 아끼는 꿀도 듬뿍 넣었다며 말년이 걱정 담긴 맘을 감추듯 거창하게 말을 건 내 온다.

 

 사발에 담긴 차를 반 정도 마시고 친구들에 대해 묻자, 기영, 희진 역시 경찰이 각각의 집에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둘 역시 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피로 엉겨 굳어진 머리카락과 검고 흐물흐물 해져 만지며 일그러질 듯한 형상의 주검이 망막에 새겨진 듯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잊어, 눈앞에 본건 잊는 겨. 그래야 세상 살기 편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알고 있다는 듯 말년이 말한다. 그리곤 달자가 남긴 대추차를 단숨에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고 싶으면 더 자라고 문을 닫아 준다.

 

 말년이 나가고 문 옆에 달아 놓은 벽시계를 바라보자 큰 바늘이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밖이 어두운걸 보니 새벽인가 보다. 달자가 쓰러진 뒤 지금까지 말년이 옆에 있어 준 것이다.

 

 방에 혼자 남겨지자 지금까지 쌓여있던 긴장의 둑이 무너진 듯 온몸에 힘이 빠져왔다.

 알고지낸지 몇년 안된 친구 관계였지만 짧은 시간에 비해 서로를 의지 할 수 있는 친구 되었다. 그것은 나머지 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잊을 수 있을 까?"

 

 하는 의문과 함께 하영을 처음 만난 날 부 터의 일들이 머릿속에 영상이 되어 스쳐 지나간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친구의 모습과 주검의 모습이 매치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친구가 아니지 않을 까 하는 의문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짧았던 의문은 주검 옆에서 괴로워하는 하영의 아빠, 즉 기천에 의해 더 이상 의문 부호를 띌 수 있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하영과는 이젠 영원한 이별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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